푸른 세계 -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트 에스피노사 지음, 변선희 옮김 / 연금술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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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태어나고

하루는 살고

마지막 날에는 죽어요

오늘은 당신이 사는 날이에요

나의 청소년기는 친구의 죽음으로 기억됩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친구가 죽었다고 했습니다. 친구의 삶처럼 나의 청소년기는 그 시점에 멈춰져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친구를 떠나 보내고 가장 힘들었던 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든 죽음은 들이닥칠 수 있고, 그렇게 죽음이 들이닥치면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니!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어제'는 태어났고, '내일'은 죽습니다. '오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함을 깨닫는 날입니다. 끝이 난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오늘'을 살아야 한다면, 그런데 나에게 오늘 단 하루가 남았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푸른 세계>는 살 수 있는 날이 사흘밖에 남지 않은 주인공이 줄곧 생활해왔던 병원을 나와 죽음을 향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병원에서 만난 첫 룸메이트에게 들었던 '그랜드호텔'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랜드호텔은 "마지막 순간에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고 죽음이 임박했다는 걸 증명"하면 "마지막 순간을 목가적인 장소에서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곳입니다(22). 그랜드호텔을 향해 떠난 주인공은 그곳에서 자신과 같이 죽음이 임박한 몇몇의 사람들과 최후의 며칠을 보내게 됩니다.

<푸른 세계>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단 하루가 남아 있다면, 그날 일을 할 것인가? 빚을 갚을 것인가? 뉴스에 관심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사랑에 빠질 것인가? 놀기, 웃기, 사랑하기, 소리 지르기, 노래하기? 무엇을 할 것인가?"(25) 그것을 잘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작가 프로필을 보면, 실제로 <푸른 세계>의 저자는 "열네 살 때 암 선고를 받고 그 후 10년간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수술과 치료를 받았으며, 그 결과 한쪽 다리는 잃었고, 폐와 간의 일부를 잃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스물네 살이 되던 해에 비로소 병원을 떠나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TV 시리즈에 배우로 출연"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푸른 세계>는 "젊은 시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었던"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셈이요, 그 시절에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셈입니다.

<푸른 세계>가 전하는 전하는 강렬한 메시지 중 하나는 "우리는 천년을 사는 게 아니라 하루를 산다"(24)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한때 강렬하게 죽음과 싸웠고, 또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떠나는 친구들을 지켜보았던 작가는 "슬픈 건, 죽는 게 아니라 강렬하게 살지 못하는 것"(106)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내가 항상 하고 싶었지만 두려움 때문에 하지 못한 것을 찾으라"(95)고 말입니다.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것의 충만함은 죽음을 통해서만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앞에 맞닥뜨린 죽음만큼 강렬하게 살아 있다는 것의 생생함을 전해주는 것은 없으니까요. 친구의 죽음 이후 줄곧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며 제가 찾은 답은 하나였습니다. 사랑하는 것! 그러나 누군가 나에게 '그렇다면 당신은 열렬히 사랑했는가?'를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은 산다는 것의 지루함 속에 곧 잊혀졌고, 나는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그냥 흘려보내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관통하며 강렬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저자가 (저와 같은) 독자들에게 가르쳐주는 지혜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바로 그 지혜가 다시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모든 것의 기본은, 오늘이 죽을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이 전부다. 이튿날 잠에서 깨면 24시간이 더 주어졌다는 걸 깨닫고 커다란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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