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다
모리 에토 지음, 김난주 옮김 / 무소의뿔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세월도 있다. 사람은 산 시간만큼 과거에서 반드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맞닿은 손끝의 따스한 열기를 느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매듭, 155).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던가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 누구나 당연하게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이 사실이 회한으로 사무쳐 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헤어지고 난 후에야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그 인연이 나에게 정말 소중했음을 깨닫게 된다든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후에야 뒤늦게 그 사람의 진심 혹은 나의 진심을 깨닫고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지요.

그런데 모리 에토의 최신작 <다시, 만나다>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이 단순한 공식(사고)을 살짝 비틀어 인생이 경험하는 만남과 헤어짐은 그보다 훨씬 다이내믹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나이를 먹는다는 건 같은 사람을 몇 번이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다시, 만나다, 39)라는 한 줄 문장으로 풀어냅니다. 여기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단순히 늙어가거나 시간(세월)이 흘러가는 것뿐 아니라, 죽음 저 이후의 생(生)까지 확대됩니다.

"지난 8개월 동안 아무리 회한에 찬 밤을 지냈어도, 폭주하는 외로움에 통곡하는 때가 있었어도,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떠오르는 것은 아야의 웃는 얼굴이었다. 나와 교스케 옆에서 깔깔거리고 웃던 엄마이자 아내의 모습이었다"(파란 하늘, 244).

총 6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데, <다시, 만나다>는 단순히 일 때문에 인연을 맺게 된 일러스트 작가와 편집자가 우연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서로의 인생(변화)을 지켜보는 증인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순무와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던 한 여인이 혼잡한 길거리에서 누군가와 부딪혀 넘어진 단순한 사고 때문에 우연히 백화점 지하에 들렀다가 '순무와 셀러리와 다시마 샐러드'를 사온 날의 이야기입니다. 가볍게 사온 반찬거리 하나 때문에 백화점 직원과 한참 실랑이를 벌인 후, 자신이 오늘 살인범과 부딪혀 넘어졌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모두가 평온한 일상을 연기하고 있지만, 인연과 인연이 얽히고 설키며 운수 나쁜 날이라고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할 수 없는 위태로운 일상이 그려집니다. <마마>는 어렸을 때 돌아가신 '마마'가 남편과 아내의 기억 속에서 새롭게 부활하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은 누군가의 기억(상상) 속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으로 공유될 수 있는 것일까요?

<매듭>은 초등학교 때 풀어내지 못한 어두운 기억을 다시 만난 반상회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입니다. 그때의 그 꼬맹이들은 15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만나 비로소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고, 과거로부터 해방됩니다. <꼬리등>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만남과 헤어짐, 다시 만남을 반복하는 어떤 인연을 보여줍니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남은 그렇게 초월적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같은 사람을 몇 번이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이 생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파란 하늘>은 아내를 잃고 자책으로 괴로워하던 남자가 큰 사고를 당할 뻔한 현장에서 죽은 아내가 자신과 아들을 구해주었음을 깨닫고 자책에서 벗어나 새로운 빛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실제였을까요? 환영이었을까요?

"거미집처럼 금이 좍좍 간 눈부신 파랑.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망가진 것, 소실된 것은 두 번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이킬 수 없지만, 저 균열들 사이로 빛을 찾으며 살아갈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파란 하늘, 245).

만남과 헤어짐,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짐을 반복하는 6편의 이야기는 그것이 가벼운 만남이든, 중요한 만남이든, 우연한 만남이든, 한 번 이어진 인연은 헤어졌다고 끊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헤어짐이 꼭 아프고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더불어 말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도 있듯이, 헤어짐이 두려워 만남을 거부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만나다>는 잔잔한 이야기 속에 따스한 위로와 뜨거운 열정과 아름다운 슬픔이 녹아 있는 책입니다. 마치 평범해 보이지만 격렬한 우리 인생과 닮았다고나 할까요.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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