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대통령의 위트 - 조지 워싱턴에서 조지 W. 부시까지: 1789~2000, 미국 대통령들의 재기 넘치는 명코멘트와 일화
밥 돌 지음, 김병찬 옮김 / 아테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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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 


이 책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유머 지수가 통치력과 비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유머 감각이 높다고 평가되는 대통령들이 일반적인 기준에서도 가장 효율적이었던 최고 지도자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유머도 리더십의 한 요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리더십에는, 덜 드러나기는 하지만 다른 요소가 하나 있다. 통치력에 버금가는 요소로 유머 감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32). "미국 현대 정치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되는 저자 밥 돌은 "세계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많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웃음은 감정적인 안전밸브"(33)라고 말합니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웃음'이라는 무기 없이는 버텨낼 수 없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대공항과 세계대전을 겪어낸 프랭클린 D. 루스벨트도 위트에 있어서는 "경지에 오른 인물"로 평가되는데, 저자는 그의 위트가 "자신(그리고 미국)이 대공항과 세계대전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됐다"(17)고 평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자신의 이상형으로 '재미있는 사람'을 꼽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나를 웃게 해줄 누군가를 원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현상은 사는 것이 그만큼 퍽퍽해졌다는 뜻으로도 풀이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유머에 고통을 치유하는 미덕이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아마 본능적으로 웃음이 눈물을 해독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는 여기에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더 일깨워줍니다. 웃음의 감수성을 타고난 사람은 삶을 훨씬 유연하게 즐길 줄 안다는 것입니다. 

적도 아군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는 링컨은 미국 대통령의 위트와 유머에 대한 밥 돌의 순위에서 최상위를 차지한 인물입니다. 밥 돌은 링컨의 위트 능력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일화로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링컨의 팽생 라이벌인 스티븐 더글러스가 링컨 보고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했다. 링컨은 청중들을 향해 느릿하게 말했다. 
"여러분께 판단을 맡깁니다. 만일 제가 또 다른 얼굴이 있다면, 지금 이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37)

그런데 또다른 일화를 보면, 링컨이 타고난 웃음의 감수성은 그의 지적 능력(언어 감각)뿐 아니라, 유연한 삶의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863년 가을, 링컨에게 주치의가 가벼운 천연두 증세가 있다고 말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공직 희망자들에게 시달리던 상황이었다. 
"전염되는 겁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매우 전염성이 강합니다." 의사가 단언했다.
그런데 링컨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의사가 이유를 묻자 대통령이 설명했다.
"좋은 점이 하나 있군요. 이제 내가 모든 사람들한테 나눠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갖게 됐으니 말입니다"(76).

당시
'공직 희망자들' 무리가 워낙 극성이었다는데 그것이 링컨에 얼마나 큰 스트레스였나 하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고난(문제) 앞에서도 긍정적인 해석으로 웃음을 잃지 않는 이런 능력이야말로 그를 위대한 지도자로 만든 최고의 덕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밥 돌은 "경지에 이르다 / 양키 위트 / 솔직담백, 과장, 무표정 / 클래스룸 유머리스트 / 평균보다는 더 재미있는 대통령 / 사람들 생각엔 재미었었던 그들 / 고집불통 / 농담거리 신세 / 그리고 대기 중(조지 W. 부시, 앨 고어)"이라는 범주 안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의 유머에 대한 순위를 매기고 그들의 일화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빌 클린턴을 평가하는 한 줄을 보면, 저자 자신이 상당히 위트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밥 돌은 빌 클린턴을 "위대한 연설 능력과 재능 있는 농담 작가들을 구비하는 축복을 받았다"(19)고 압축하여 평합니다.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를 읽으며 가장  재미있었던 일화는 '위대한 소통의 사나이'라는 별칭을 가진 로널드 레이건의 이야기(이 책에서 2위에 빛나는)입니다. 

[위대한 소통의 사나이]였던 로널드 레이건마저도 그 능력이 작동하지 않던 날이 있었다. 레이컨이 언젠가 멕시코시티에서 연설했다. 저명인사들이 대거 청중으로 모인 자리였다. 연설을 마친 후 레이건은 맥없이 드문드문 이어지는 박수소리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다음 연사인 멕시코정부 대표가 스페인어로 군중들에게 한 연설은 박수와 웃음으로 계속 중단되곤 했다. 그럴수록 레이건의 부끄러움은 더해갔다. 레이건은 창피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박수치는 데 동참했다. 매국대사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제가 대통령님이라면 박수치지 않겠습니다. 연사가 지금 대통령님의 연설을 통역하고 있습니다"(89).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는 백악관 사나이가 다른 사람을 겨냥한 유머도 보여주지만, 애석하게도 백악관의 사나이가 웃음거리가 된 유머도 들여줍니다. 독자는 여기서 "사람의 혀보다 더 날카로운 무기는 없다"(40)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미국의 정치사, 특히 현대 정치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훨씬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미국 현대 정치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거의 없는 저로서는, 정치적 배경을 안다면 그 상황이 훨씬 더 생생하게 와닿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위트에 있어서는 경지에 오른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평을 보며, 웃음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능력인지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삶을 최대한 누리다. 그리고 많이 웃다"(18). 

사실 유머도 잘못 사용하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비아냥을 담은 모욕성 유머는 관계에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니까요. 가까운 사이일수록 허물 없는 '농담'을 잘 주고받는데, 유머에도 품격이 필요하고,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위대한 대통령의 위트>가 다시 한 번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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