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살인의 문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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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려면 무언가 필요하다"(2권, 23).

<살인의 문>은 '미스터리의 제왕'이라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가 내놓은 또 하나의 신작이지만, 미스터리 소설은 아닙니다.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나 트릭에 숨은 추리 게임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그보다 <살인의 문>은 한 사람이 살의를 느끼고 실행하기까지의 과정을 지난하게 따라가는 심리 소설 같은 작품입니다. 그 안에 일본의 사회적 문제와 사건을 녹여냈다는 점에서 사회적 소설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도 합니다.

<살인의 문>은 '악연'과 '악의'와 '살의'라는 세 단어로 요약해볼 수 있겠습니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아버지가 치과 병원을 운영하는 지역에서도 유명한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난 '다지마 가즈유키'와 두부 가게 아들로 태어난 '구라모치 오사무'의 질긴 악연이 큰 줄기를 이루며 지루할 정도로 반복됩니다. 가난을 몹시도 싫어했던 구라모치의 질투는 다지마의 불행으로 이어지고, 구라모치에게 인생을 농락당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다지마가, 결국 무엇이 도화선이 되어 오래도록 지속됐던 살의를 실행에 옮기게 되는가 하는 것을 독자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합니다. 

<살인의 문>이라는 작품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가 독자들에게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는 것은, "살인이란 이른바 '욱해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내면 안에서 살의가 그토록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서, 차라리 주인공이 몇 년에 걸쳐 복수의 불꽃을 태우고, 그 살의를 실행에 옮기는 냉정함을 집요하게 보여주었다면, 이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차라리 살의를 품은 다지마의 시선이 아니라, 증오에 삼켜지는 구라모치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이끌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구라모치의 저주에 의해 끊임없이 추락하기 시작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살인에 흥미가 있었고 구라모치에게 복수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데도, 왜 다지마의 증오는 살의를 행동으로 옮길 만큼 끓어오르지 않는 걸까를,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해하기에는 솔직히 독자로서의 인내심을 시험당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야기의 끝자락에 이르러 다지마와 구라모치를 연결하는 운명의 검은 끈이 그 실체를 선명하게 드러냈을 때, 비로소 다지마의 증오가 살의로 바뀌는 그 한계점을 넘어섰을 때, 오히려 맥이 빠졌습니다. 구라모치라는 악마에게 일생을 조종당하며 망가졌던 다지마가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벗어날 수 없었던 드디어 구라모치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고 되뇝니다(2권, 348). 그러나 과연 그의 저주에서 해방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씁쓸한 뒷맛이 남습니다. 솔직히 치밀한 심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참아내느라 지쳐갔던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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