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우화
류시화 지음, 블라디미르 루바로프 그림 / 연금술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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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신화와 우화의 차이는 전자가 고난을 극복해 자신과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의 이야기인 반면에, 후자는 인생의 문제에 타협하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지혜라고 믿는 보편적인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영웅과 바보 둘 다를 내면에 지니고 여행한다."(뒷표지 날개 中에서)


신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어떤 장소에서는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두 천사를 불러 명을 내렸다. 한 천사에게는 지혜로운 영혼들을 모두 모으라고 했다. 마을과 도시들에 고루 떨어뜨려 그들이 어리석은 자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그리고 다른 천사에게는 어리석은 영혼들을 모두 자루에 담아 데려오라 했다. 그들을 지혜로운 영혼으로 바로잡아 다시 세상에 내려보내기 위해서. 

그런데 두 번째 천사가 임무를 수행하는 중에 문제가 생겼다. 어리석은 자로 가득 찬 자루가 찢어져 자루 안에 있던 영혼들이 폴란드의 헤움이라는 마을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모든 바보들이 한 장소에 모여 살게 되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드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믿는 '바보들의 마을, 헤움'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은 것이다"(11). 


이 책은 마치 탈무드의 변주곡처럼 읽힙니다. 랍비가 등장하고, 선지자가 등장하고, 마을에 회당이 있고, <아흔 마리 비둘기와 동거 중인 남자> 편을 보면 탈무드'식'의 지혜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의 지혜를 재해석하는 느낌이 들었고, 처음 몇몇 편의 이야기들은 그 재해석에서 조롱의 느낌이 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하늘에서 내리는 나무>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헤움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들의 특별한 지혜 때문이었다. 헤움 사람들은 모두가 현자였다. 적어도 그들 자신은 그렇게 믿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자부했으며,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을 바보라고 부르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27) 이 부분에서, 그리고 "현자들로 구성된 의회"라는 말에서 헤움 사람들은 유대인을 비유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가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제부터 우리는 나무를 '비'라고 부르기로 합시다. 그리고 비는 '나무'라고 부릅시다. 자, 주위를 둘러보세요. 무엇이 보입니까? 풍부한 비가 보이지 않습니까?"(31) 헤움 사람들은 현자의 말을 듣고 가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듬 해에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비가 내리니 '비'를 '나무'라고 부르며 마음을 놓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31-32). 

사실 처음엔 <인생 우화>에 등장하는 헤움 사람들이 유대인을 풍자하고, 탈무드의 지혜를 비틀어 독자에게 교훈을 전한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읽어갈수록 저의 그런 느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 우화>는 우리가 지혜라고 믿는 것의 어리석음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 속에 담긴 지혜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본 모습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혜 있는 채 하지만 사실은 그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자만'이 가장 어리석은 것이라는 사실말입니다. 그러니 이 책에서 나의 어리석음을 보았다면 이 책은 성공한 책이요, 성공한 독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음에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이야기는 <정의를 구합니다> 편이었습니다. '정의
'를 구하기 위해 미국까지 건너간 헤움 사람들이 보스턴 상인 두 명에게 속아 100달러를 내고 정의를 큰 나무통으로 한가득 구입해 돌아옵니다. 그런데 막상 마을에 돌아와 그 나무통을 열어보니 정의가 있어야 할 통에 썩은 생선선이 철철 넘치게 담겨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최고 현자 하임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구입한 정의에서 악취가 나는 이유는 세상 어디에서나 정의가 부패했기 때문입니다"(46). 이야기의 힘, 이야기주는 울림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예배를 볼 때 설교단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는 부자들이 차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점차 뒷자리나 구석으로 밀려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제부터 헤움에서는 모든 음식과 옷에 <최고급>이라는 상표를 붙인다. 그리고 회당의 모든 좌석은 <설교단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라고 지정한다"(47)고 선포함으로 헤움만의 정의를 세워갑니다.

<인생 우화>는 헤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식을 통해 우리가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것은 '해결'이라고 할 수도 없는 대응방안이지만 말입니다. <인생 우화>는 재미 있지만 재미 없는 책입니다. 말도 안 되게 어리석어도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할 수 없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바보같은 그들의 바보같은 방식이 '스마트한' 우리보다 훨씬 지혜롭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나의 내면이 분명히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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