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이미화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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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가기를 …

일생에 한 번은 뉴욕에 간다면, 꼭 가을에 가고 싶었습니다. 영화 <뉴욕의 가을> 때문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이미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두 주인공을 감싸며 화면을 가득 채우던 노란 은행잎의 강렬함은 아마도 평생 잊히지 않을 듯합니다. 그때 결심했지요. 뉴욕에 간다면, 꼭 가을에 가야겠다고 말입니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내 삶의 일부가 되기를 기도하면서요. 

어제도 어제와 같았고, 오늘도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만 같은 무료한 일상을 살다 보면, 한 번씩 영화와 같은 일들이 내게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몽상에 빠지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화와 같은 일들을 현실로 만들어낸 여행가가 있습니다.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이 책은 "죽을 때까지 영화 촬영지 찾아다니기"를 꿈꿨던 한 사람이
영화 촬영지를 찾아다니며 기록을 남기는 '영화 속으로 떠난 여행기'를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늘 꿈으로만 간직해왔던 바로 그 일을, 현실이 되게 만든 책이지요. 

영화와 같은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오직 영화 <리스본 야간열차> 때문에 리스본 야간열차에 오르고, 오직 <비포 선라이즈>라는 영화 때문에 비엔나에 가고, 영화 <노팅 힐>의 한 장면 때문에 노팅을 거닐고, 영화 <원스> 촬영지를 찾아가려고 더블린에 3일씩이나 머물렀던 날들의 기록입니다. 






"사랑에 푹 빠진 적 있나? 
배도 안 고프고 말도 필요 없는 지독한 사랑에."

"모르겠어요."

"있었다면 기억 못 할 리 없지. 뚜렷이 기억할 테니까." 







지루하다는 말 뒤에 가려진 소소한 순간들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일상도 시가 되고 영화가 될 수 있다(297).

영화 속 촬영지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상상이 현실이 되는 마법이기도 하고, 기억 속에 새겨진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도 하고, 여행이 그렇듯 익숙한 삶과 결별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그 모든 시간들이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발걸음이라는 사실에 눈 뜨게 해줍니다.

셀린처럼 대화가 잘 통화는 남자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낭만을 꿈꾸며 영화 속에 머무르게 되는 순간에도, 영화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소가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일 수도 있고, 상상하던 그런 장소가 아니어서 행복과 실망이 교차할 때에도, 영화처럼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현실을 문득 자각하게 되는 순간에도, 그 모든 순간을 나와 함께하며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나를 나라고 느끼는 나이지요.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 그렇게 이 책은 영화 속 한 장면과, 그들의 속삭임과, 내 안의 나와의 대화로 가득 찬 책입니다. 영화 속 한 장면을 찾아 그 모든 낯섬에 순응해가는 시간들이 또다시 한 사람의 영화가 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가든 당신도 야간열차를 타야 할 때가 온다. 낯선 정거장의 플랫품에 발을 딛고 역사에 풍기는 냄새를 맡으며, 당신은 겉으로만 먼 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외딴 곳에 왔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 먼 곳을 돌아 다시 찾아왔을 때 당신이 발견하는 것은 이미 예전의 당신이 아닌 당신일 것이다"(44).

<비포 선라이즈>를 따라 비엔나를 걷다 보면, 문득 알게 되지요. 요란한 사건처럼 느껴졌던 영화 속 한 장면도 사실은 소소한 일상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은 꿈꾸던 것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선물해주는 책입니다. 누군가에게 이것은 특별한 경험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일상적인 기쁨일 수도 있겠습니다. 수줍은 듯 큰 소리를 내어 말하지 않는 이 여행자는, 느릿 느릿 느리게 우리를 영화 속 한 장면으로 안내합니다. 그런데 그 느리고 조용한 여행이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 책이 궁금한 모든 독자에게, 어느 페이지를 펼치든, 어느 장면 속을 걸어가든, 마주치는 모든 순간이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책의 제목이 당신의 버킷리스트가 될 것이라는 것도요.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삶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일어난다. 

- 파스칼 메르시어, <리스본행 야간열차>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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