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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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에 등장하는 타임머신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상인 압바스는 어느날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찬 새로운 가게에 은쟁반을 사러 갔다. 바샤라트라고 하는 가게 주인은 여러 가지 물건을 보여 주다가 수직으로 서 있는 원형고리를 보여 준다. 이 고리에 손을 넣으니 손은 통과하였으나 반대쪽에서 손이 나오지 않다가 잠시 후 반대쪽에서 손이 튀어 나온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손이 나타났다. 타임머신이다.


압바스는 말도 안되는 신기한 물건을 보고 협잡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상인이 경험한 세 가지 얘기를 듣고는 이 물건이 과거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건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압바스는 이 물건을 보고 과거에 자신이 저질러 후회하고 있는 일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 곳에 있는 타임머신은 만들어진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더 먼 과거로 가기 위해서는 이십 년 전 과거로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 있는 카이로로 가야 한다. 압바스는 바샤라트의 소개를 받아 카이로로 여행을 떠난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테드 창. 1967 ~ . 중국계 미국인. 1~2년에 한 편씩 중단편 SF소설을 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SF 작가 중에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소설가.


오랫동안 기다려 온 테드 창의 신작


테드 창은 영화 <네 인생의 이야기>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이 있다는 걸 알고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었다. 대단한 작가였다. 테드 창은 실제상황같은 배경을 하나 정한 후에 그 배경 속에 상상력을 가득 채워 놓는다. 채워놓은 상상력이 배경과 잘 어우러져서 마치 실제같다. 아주 뻔뻔하고 천연덕스럽게 상상을 현실인 것처럼 꾸며 놓는다. 


테드 창의 소설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언제쯤 소설이 나올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중편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를 구해서 읽고 기다리다가 드디어 인터넷 서점에서 신작이 나온다는 알림이 떴다. 당연히 바로 주문. 읽던 책이 있어서 그 책을 읽은 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천일야화의 서술방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SF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상상 속에 현실을 못박아 버린다


여전히 대단한 상상력이다. 그리고 치밀하다. 테드 창의 소설을 읽으면 소설 속의 일들이 모두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잘 몰라서, 공부가 부족해서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먼저 실려 있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천일야화>의 액자 이야기 구조를 완벽하게 따르고 있다. <천일야화>를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셰헤라자드가 칼리프에게 얘기를 하는 안에 다른 화자가 있고 또 그 화자가 얘기를 하던 중에 다른 얘기를 만들어 내고.. 끝도 없이 액자 속에 다른 액자가 끼여들면서 얘기가 진행된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철저히 그 구조를 따랐기 때문에 이 단편이 <천일야화>의 어디 쯤에 들어가 있어도 이질감이 들지 않을 정도다.


책의 제목과 같은 단편인 <숨> 역시 마찬가지다. 독자에게 미리 정보를 주지 않는다. 자락을 깔아 놓지 않고 그냥 직접 얘기를 진행해 버린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슬슬 분위기 파악을 해 나가고 '아! 얘기를 하는게 사람이 아니라 로봇 비슷한 건가 보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로봇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상정해 놓고 설득할 생각도 하지 않은채 소설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전편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서도 그랬듯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독자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가 좋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양자붕괴에 의해 발생하는 평행우주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때 생길 수 있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소재 하나를 잡아 집요하게 상상한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타임머신이 주제이다. 그 시대적 배경이 천년대 초반의 어느 시점이고 글을 쓰는 스타일이 천일야화에서 따온 것일 뿐, 타임머신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다. 타임머신이 미래,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우주관으로 글을 쓴다.


<숨>은 엔트로피에 관한 우화이다. 숨을 쉴 수록 아르곤의 무질서도가 높아져서 세상의 아르곤 밀도가 낮아지면 결국 인류의 멸망이 올 것이라는 아이디어로 소설을 썼다.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는 읽자마자 스키너의 유명한 심리실험이 생각났다. <옴팔로스>는 지구가 창조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 들이고,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양자붕괴에 의해 평행우주가 생긴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사기를 쳐 먹을지 연구하고 있다.


테드 창은 하나의 소재에 꽂히면 그 소재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현상들을 집요하게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상상하는 것 같다. 그 후 가장 그럴 듯한 내용으로 소설을 써내려간다. 그 내용들이 전개되는 과정이 무리가 없어서 설득력이 있다. 소재 하나를 잡아 굉장히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는 느낌이다.


옴팔로스 Omphalos는 델포이 신전에 있는 돌로서 세상의 중심을 표시한다.


★★★★☆


장르문학이면서 그렇게 인기가 있는 장르도 아닌 SF소설인 <숨>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떡하니 올리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테드 창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건 오로지 영화 한 편 뿐이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어쨌든 멋진 작가의 책이 인기가 있는 것은 충분히 기쁜 일이고 나도 강력히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과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


이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이 있는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책 속에 들어 있어서 불만이 있다. 이미 읽은 책이라서 약 150페이지 정도 읽을 필요가 없었던 건 많이 아쉽다. 아쉬움에 별 반 개를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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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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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한만큼 갚아 준다.


*책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버블 경제의 종말과 정글 속에 던져진 은행원들


1980년대 중반, 엔고의 시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신호탄으로 일본 경제는 역사상 유례없는 대호황의 시대를 맞게 된다. 주가는 폭등하고, 부동산 가격도 따라 올랐다. 한때 도쿄의 땅을 다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고 했고, 세계 50대 기업 중에서 일본기업이 30개가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일할 사람은 부족하고 인재는 더욱 부족했다. 이른바 일본의 버블경제기이다.


한자와 나오키도 버블 경제기에 몸값이 최고인 상태에서 '산업중앙은행'에 입사한다. 은행으로부터 인재로 인정받은 순간, 다른 은행이나 회사에 뺏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받는다. 버블 경제의 시대, 한자와 나오키는 은행 입장에서 다른 곳에 빼앗길 수 없는 뛰어난 인재였다.


경기가 언제나 호황일 수는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인 대호황기는 그리 길지 않았고,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본 경제는 어두운 터널 속에 갇히고 말았다. 산업 전반이 침체에 빠졌고, 한자와 나오키가 근무하고 있는 '산업중앙은행'은 '도쿄제일은행'과 합병하여 초대형 은행인 메가뱅크가 되었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한자와 나오키는 그 와중에 지뢰를 밟아 버렸고, <한자와 나오키>는 5억엔이라는 엄청난 돈을 부실대출한 한자와 나오키의 생존을 위한 분투기이다.


이케이도 준 池井戸潤 1963 ~ . 일본의 소설가. 


정글과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 초대형 은행의 한 지점에서 벌어지는 은행원간 암투를 다루는 소설이다. 일본소설은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굉장히 많아서 다양한 소설들이 번역되서 소개되고 있고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많이 올라 있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내가 느끼는 일본소설은..

1. 만화책을 소설로 옮긴 것 같다.

2. 추리소설이 많고 극적 반전에 집착을 많이 한다.

3. 가볍고 읽기 쉽고 소시민적이다.

4. 초반에 특이한(또는 엽기적인) 소재로 몰입감이 대단하다.

5.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정도일 것 같다. 심심풀이로 손에 잡고 읽으면 시간은 잘 가는데 마지막에 실망을 하고 읽은 책 목록에 꼭 남길 필요는 없는 그런 책들이 많다. 2할 타율 정도 되는 것 같다.


<한자와 나오키>는 지금까지 읽어 온 일본소설들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최근 사회 분위기(그래도 나온지 15년이나 지났다), 그 중에서도 경제를 많이 반영하고 있고 직장에서 흔히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사건들이 내용을 이룬다. 특히, '부하의 공은 상사의 공, 상사의 잘못은 부하의 잘못'이라는 말로 대변되듯이 부하의 공적을 상사가 가로채고 상사의 잘못을 부하가 뒤집어쓰는 은행의 모습은 우리나라 직장인들도 읽다 보면 공감을 할 수 있다. 


정글과 같은 직장, 먹느냐 먹히느냐.


위기에 처한 한자와 나오키는 이제 5억엔을 회수하지 못하면 은행에서 낙오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이라고 해서 낙오한 직장인의 삶이 평탄할 리가 없다. 극한까지 몰린 한자와 나오키는 분식회계로 회사의 자금사정을 속여서 대출을 받은 히가시다 미쓰루 사장을 찾아 5억엔의 일부라도 찾으려고 한다. 나오키 과장이 이렇게 애쓰고 있는 동안 지점장인 아사노 다다스는 5억엔 부실대출 책임을 한자와 나오키에게 떠넘길 생각만 한다. 국세국에서는 한자와 나오키보다 먼저 히가시다 미쓰루를 찾아 국세를 받아 내려고 한다.


3중고에 시달리면서도 한자와 나오키는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합법적인 방법만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편법과 불법의 경계선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한다. 어차피 잡아 먹지 않으면 잡아 먹히게 되어 있으니 이것저것 가릴 계재가 아니다. 마지막 결말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불법을 눈감아 주기까지 한다. 한자와 나오키는 정의로운 인물은 아니다. 단지, 적들보다 덜 불법적인 사람일 뿐이고, 이 책의 주인공이여서 독자가 감정이입을 한 사람일 뿐이다. 새가슴을 지닌 일반적인 직장인과는 달리 직장내의 정치와 음모에 탁월한 점이 있다. 그래서 통쾌하다.


원작은 2004년에 발간되었다. 한국판에서 첫번째 책은 부제가 드라마로 유명한 대사인 '당한만큼 갚아준다'로 정해졌지만, 원작의 부제는 '우리들, 버블입행조'(버블시대에 은행에 입사한 직원)이다.


통쾌한 결말, 이제 다음 이야기로..


한자와 나오키는 결국 불법대출 사건을 해결한다. 사건의 전말은 처음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 히가시다 미쓰루 사장을 찾기 위해 애쓰던 중 은행장과 히가시다 사장이 중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큰 불법 가운데 작은 불법이 숨어 있었다. 히가시다가 숨겨 놓은 재산을 탈탈 털어서 은행의 대출금을 갚고 덤으로 한자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아사노 지점장의 약점까지 잡아서 자신이 원하는대로 인사이동을 요구한다. 속이 시원해지는 결말이다.


와중에 아사노의 부인이 우연히 지점장실에서 만난 한자와에게 아사노를 잘 부탁한다고 고개를 조아리는 장면은 마음을 좀 짠하게 한다. 아사노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내와 딸을 사랑하고 가정을 지키려는 모습과 그 틈을 노려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한자와의 모습은 묘하게 선과 악을 뒤틀어 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애초에 한자와라고 해서 꼭 선은 아니고 아사노라고 해서 악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있는 처지에서 어떻게 상대방을 누르고 올라갈까 고민을 하던 두 짐승의 싸움일 뿐이었다. 그냥 한자와 나오키 과장이 우리 편일 뿐이다.


2013년 3/4분기 TBS 드라마에서 방영된 <한자와 나오키>. 주인공인 사카이 마사토가 열연했고,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엄청난 화제와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아 원작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았다.


★★★★☆


소설 <한자와 나오키>는 우리나라에는 같은 이름의 일본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함께 유명해 졌다. 드라마는 소설의 1부와 2부를 다뤘고, 소설은 4부까지 출간되어서 드라마의 뒷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찾아 봤지만 소설을 찾을 수 없어서 아쉬워 했다.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전권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하고, 기쁘게도 서평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읽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내년 2/4분기에는 <한자와 나오키>의 3부와 4부를 다루는 드라마 시즌2가 방영될 예정이라고 하니 그것도 정말 반갑다.


굉장히 재미있다. 은행시스템에 대해서 모르는 것도 많고, 일본은행 시스템은 우리나라와는 또 다를테니 익숙하지 않은 용어도 있다. 그래도 조금 어려운 용어는 책 속에서 자세히 설명을 해 놓아서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책이다.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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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1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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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제국이 멸망하고 있다

인류는 이미 우리 은하를 꽉 채우고 있다. 인간이 거주하는 행성은 약 2,500만 여개. 은하계에 퍼져 있는 인구는 모두 400경 명, 4,000,000,000,000,000,000 명이다. 수만년 동안 은하계를 지배하고 있는 은하제국이 모든 인류를 지배하고 있으며, 은하제국의 수도는 트랜터이다.


팔십 평생을 '심리역사학' 연구에 몰두한 해리 셀던은 공공연히 은하제국이 멸망할 것이며 3만년 동안 야만스러운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언(이라기보다는 증명)을 한다. 제국의 불순분자이다. 결국 은하제국의 통치자들은 해리 셀던과 그를 따르는 10만여 명이 넘는 과학자들을 은하 변방에 있는 터미너스라는 불모지로 추방한다. 해리와 추종자들은 터미너스에 정착하여 파운데이션을 세우고 3만 년으로 예상되는 야만의 시대를 1,000년으로 줄이기 위해 세워 놓은 미래 역사의 설계를 진행한다. 장대한 미래 우주역사 대서사시, 파운데이션 시리지의 시작이다.


그 유명한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F 작가 중 한 명인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F 시리즈 중 하나인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로봇 시리즈와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원래 세계관이 다른 소설이었는데 나중에 세계관을 하나로 합쳐 버렸으니, 로봇-파운데이션 세계관의 첫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시모프가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감명을 받아 썼다고 한 만큼 <파운데이션>은 은하계의 장대한 미래역사를 다룬다. 관찰자로 등장하는 가알 도닉의 눈으로 바라 본 해리 셀던과 터미너스에 파운데이션이 건설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터미너스로 추방된 후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던 해리 셀던의 예측과 반전이 흥미롭다.


아이작 아시모프 Isaac Asimov 1920 ~ 1992. 소련 출신의 미국 작가. 유태인으로서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엄청나게 많은 저작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며, 아서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세계 3대 SF 작가로 불리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 <로봇> 시리즈, 우주 3부작이 대표작.


심리역사학, 은하대백과사전.. 이건 페이크다!

심리역사학은 소설 <파운데이션>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의 행동은 추측할 수 없지만 인간을 집단으로 다루면 그 흐름을 파악하고 조정까지 할 수 있다'는 가상의 학문이다. 해리 셀던은 심리역사학의 창시자이며, 일군의 심리역사학자들과 함께 1,000년 후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후 30,000년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증명해 내고 그 기간을 1,000년으로 줄이기 위해서 은하계 변방에 파운데이션을 세운다. 파운데이션의 목적은 인류의 지식을 집대성한 사전인 '은하대백과사전'을 만들어서 인류의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파운데이션>은 처음 파운데이션을 설립하는 과정을 보여준 후, 파운데이션이 발전해 나가는 역사를 다루는데, 은하대백과사전을 편찬하는 것은 사실상 은하제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페이크였다. 그 사실을 몰랐던 사전 편찬자들은 현실이 흘러가는 것을 제대로 판단하여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 샐버 하딘 시장에 의해서 물러나고 샐버 하딘은 샐던 위기(파운데이션이 처한 큰 위기, 해리 셀던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을 한 방향으로 미리 설계해 놓았다)를 무사히 넘기면서 권력을 잡고, 파운데이션은 차츰 주변 성계를 지배해 나간다.


<파운데이션>의 시점에서는 이미 인류의 근원지가 어딘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 지구를 찾아 나서는 것이 시리즈의 주요 모티브 중 하나가 된다.


심리역사학이 멋진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통계학적으로 다룬다는 것과 그 흐름을 컨트롤해서 미래의 방향을 바꾼다는 소설의 아이디어는 정말 멋진 것 같다. 하지만 소설에서 세부적으로 적용할 때, 실제 역사에서는 중요한 순간, 단 몇 사람의 결단에 의해서 해리 셀던이 선택한 방향으로 나간다는 점이 좀 불안하다. 파운데이션의 첫 영웅인 샐버 하딘도 그렇고 이후에 등장하는 호버 말로도 마찬가지인 게, 그 개인들이 적절한 자리에 있어서 적절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무능력해서 계획을 실패했다면 해리 셀던의 계획은 크게 벗어났을 것이다. 일단 한 번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난 샐던 프로젝트(해리 셀던이 안배해 놓은 미래의 역사)는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으므로 장대한 계획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심리역사학은 통계학적인 사회학이기 때문에 큰 집단을 다룰 때는 유용하겠지만 개인의 심리를 다룰 때는 유용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소설 맨 처음 단 한 사람의 판단을 측정해서 파운데이션의 설립 장소를 터미너스로 예측한 것은 반전으로서는 멋진 장치이지만 심리역사학적인 측면에서 너무 개인의 판단에 도박을 걸었기 때문에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마찬가지 이유로 샐버 하딘이나 호버 말로같은 파운데이션 초기의 지도자들이 굉장히 개인적인 결단에 의해서 셀던 프로젝트를 수호해 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스러워 보인다. (결국 사단이 나고 말긴 하지만..)


애플이 파운데이션 드라마판 판권을 구매했다고 한다. 이미지는 왼쪽부터 해리 셀던, 뮬, 아르카디아 다렐로 추정된다.


★★★★☆

SF 소설을 좋아한다면 아시모프를 모를 수가 없고, 아시모프를 안다면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모를 수가 없다. SF 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인만큼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예전에 9권짜리 책을 읽었는데 개정되어 나온 책을 오래 전에 샀다가 이제서야 새로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산 후에 혹시 <로봇>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 없는지 출판사에 문의를 했는데 별다른 계획은 없는 것 같다. SF 소설이 그렇게 독자층이 넓지 않은 편이라서 출판사에서 쉽게 손대지 못할 것 같기는 하다.


강력히 추천한다. 특히, 언제까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절판된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SF 팬이라면 꼭 전권을 소장해 놓을 것을 권한다. (나왔을 때 사놓지 않아서 후회하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모프의 우주 3부작도 그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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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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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우발적인 살인을 한 모녀, 그들을 돕는 수학교사

수학교사인 이시가미는 옆방에 살고 있는 야스코라는 여자에게 마음이 있다. 야스코는 미사토라는 중학생 딸이 있는 이혼녀이지만 예쁘고 사랑스럽다. 어느날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야스코의 집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어 벨을 누르니 야스코가 나온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 머리가 흐트러지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방안에서 담배냄새가 나는데 담배를 피울 만한 사람의 신발이 없다. 그리고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고다스 안에 누군가 숨어 있는, 사실은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사람을 죽였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야스코의 말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옆집의 모녀는 지금 큰 위험에 빠졌다. 큰 사건을 목격하고 나니 이시가미는 오히려 냉정해지고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야스코를 도와줘야겠어'. 결심을 한 이시가미는 야스코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부인하던 야스코도 침착한 이시가미의 추궁에 살인을 실토하고 만다. 이시가미는 머리를 식히고 사건을 덮을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그동안 두 권을 읽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처음 읽었는데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구성도 좋아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 후 읽은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단편집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후 찾아 보니 히가시노 게이고는 굉장히 다작을 하는 작가이고, 책의 완성도가 소설 별로 꽤 많이 차이난다는 것 알게 되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게이고의 수많은 소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고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니 기대를 잔뜩하고 읽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어설퍼 보이는 트릭, 그런데도 헤매는 경찰

야스코와 그의 딸 미사토가 야스코의 전 남편인 도미가시를 죽이면서 소설이 시작한다. 옆집에 살던 수학교사이면서 수학천재인 이시가미는 우연히 살인사건을 알게 되고 사모하던 모녀를 위해 살인사건을 감출 트릭을 만들어 낸다. 과연 모녀와 한 남자는 끝까지 살인 사건을 숨길 수 있을까? 이 소설의 극적 긴장감의 포인트다.


사건이 일어났으니 당연히 경찰이 따라 붙는다. 이시가미가 용의주도하게 트릭을 만들어 놨을 것 같은데 의외로 순식간에 모녀가 바로 용의자로 특정된다. 어설프다. '도대체 무슨 트릭을 썼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곧 잡힐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간다. 그런데 경찰은 이상하게 모녀의 알리바이를 깨지 못한다. 어설픈 트릭에 무능한 경찰의 두뇌싸움인 것 같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최악의 스포일러

사건을 맡은 담당형사인 구사나기에게는 유가와 마나부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테도대학 물리학과 조교수이다. 가끔 풀리지 않는 사건의 조언을 해 주는 친구다. 우연찮게 이시가미와 구사나기, 마나부는 모두 테도대학 동기였고, 마나부는 이시가미와 잘 아는 사이다. 더군다나 마나부는 물리학부에서, 이시가미는 수학에서 천재로 유명했던 친구들이었다. 이제부터 자강두천의 두뇌싸움이 벌어질 것은 자명하다. 원래는 이쯤에서는 도대체 누가 이 두뇌싸움을 이길지 긴장하면서 책을 읽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기 전에 알게 되었는데, 형사인 구사나기가 마나부를 부를 때, '갈릴레오'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그 순간, 이 책의 최고의 스포일러에 당하고 말았다. '갈릴레오'는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일본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용의자 X의 헌신>은 갈릴레오가 주인공인 시리즈물 중에 한 편이었다. 갈릴레오는 경찰을 돕는 천재 탐정 포지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모녀와 이시가미의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다. 긴장감의 한 축이 날아가 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영화화가 많이 되었고, 드라마화도 되었다. 한국에서도 <용의자X>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 졌다. <용의자 X의 헌신>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중의 하나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에 하나이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고 트릭도 멋지다


많지는 않아도 일본에서 유명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초반에 몰입감이 굉장히 좋다. <용의자 X의 헌신>도 그렇다. 단지 갈릴레오가 누군지 몰랐더라면 훨씬 긴장감있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그 점은 많이 아쉽다.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의 또다른 특징이 마지막 반전을 너무 신경쓴 나머지 무리하게 끝맺음을 해서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용의자 X의 헌신>은 마지막 트릭까지도 멋지게 배치해 놓아서 결말의 반전도 무릎을 치게 만든다. 


나는 이시가미에 감정이이입을 해서 읽었는데, 중간에 은혜도 모르고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야스코가 굉장히 싫었고, 갈릴레오가 튀어나오는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야스코에 대해 복수하려고 하는 모습이 좀 이상했는데, 그것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이시가의 용의주도함에는 감탄했다. 진심으로 이시가미의 트릭이 성공하길 바랬는데, 갈릴레오의 방해 때문에 실패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이게 다 갈릴레오 때문이다!


★★★★☆


만약 갈릴레오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 하긴, 형사 콜롬보가 나온다고 해서 드라마의 긴장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갈릴레오가 이시가미의 트릭을 파헤치는 과정만 봐도 재미있다. 오랜만에 밤새워 읽은 책이다. 앞으로도 재미있다고 하는 게이고의 책을 좀 더 찾아 읽어 볼 생각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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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삼체세계, 지구를 향해 진격하다

알파 센타우리는 지구에서 약 4.37광년 떨어진 가장 가까운 항성계이다. 지구의 인류는 오랫동안 외계의 생명체를 찾아 왔는데, 뜻밖에도 가장 가까운 항성계에, 그것도 인간보다 문명과 과학기술이 압도적으로 발달한 행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행성에는 세 개의 태양이 있는데 삼체문제의 불가해성 때문에 태양의 정확한 궤적을 알 수 없어서 안정적인 문명을 이룰 수 없고 수많은 문명이 명멸한다.


1부 삼체문제에서 예원제가 우주로 쏘아올린 신호 때문에 삼체세계는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지구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기 위해 대규모 선단을 꾸려 지구로 출발한다. 광속의 10% 속도로 우주를 항해하는 선단이 지구에 도착하는 것은 약 450년 후. 지구인들은 자손들이 외계인의 침략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지구적인 방어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남은 시간은 450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류츠신 1963`~ . 중국의 대표 SF소설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8년 연속 중국 SF문학상인 은하상을 수상했다.


인류를 향한 덫 지자, 인류의 마지막 희망 면벽자, 파훼하려는 파벽자

1부인 《삼체문제》에 이은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전편에서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외계행성인 삼체세계의 정체와 삼체세계를 주(主)로 모시는 지구 삼체조직의 실체가 밝혀졌다. 이제 삼체세계의 침략을 막을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전지구적인 과제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삼체세계에서 지구로 지자(智子)라는 양자 크기의 입자를 수도 없이 뿌려 놓은 것이다. 지자는 비록 하나의 작은 입자이지만 차원 접기를 통해 그 안에 삼체세계의 기술력이 집대성되어 있어서 기초과학의 결과물을 교란시켜서 지구의 과학이 발전하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지구는 삼체세계의 침략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과학을 발전시킬 수 없고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과학만으로 삼체세계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 더불어 지자는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을 삼체세계로 보내고 있어서 지구는 삼체세계 몰래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다.


지구의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염탐당하는 상황, UN은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그동안 시도해 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낸다. 그것은 면벽자,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삼체세계인들은 생각을 숨길 수가 없다. 따라서 계략을 짜낼 수 없다. 지자 역시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살펴볼 수 있지만 인간의 속마음까지 훔쳐볼 수는 없다. 면벽자들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지구를 구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자의 염탐을 막고 삼체세계가 계획을 알아내는 것을 막기 위해 면벽자들은 오로지 혼자만의 생각으로 지구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지구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네 명의 면벽자는 UN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포함해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각자 지구를 구할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채 면벽자로 선택된 뤄지는 모든 권력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지구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


한편, 지구의 삼체추종세력들은 면벽자 프로젝트를 깨기 위해서 각 면벽자에게 한 명씩의 파벽자를 붙여 놓는다. 당연히 그들의 정체는 비밀이다. 면벽자의 행동을 분석해서 그들의 계획을 미리 알아내 분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과연 면벽자는 지자와 파벽자의 눈을 피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생각'을 해낼 수 있을까?

 

잘 살펴보면 책 속에서 삼체세계가 있는 알파 센타우리 항성계가 이 사진 속에 있다. 누군가 지구의 위치를 신호로 보낼 가능성이 있어서 정확히 어떤 별인지는 표시하지 않겠다.


반전 또 반전, 전개가 무척 흥미롭다

첫번째 책인 《삼체 - 삼체문제》는 삼체문제라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를 잘 엮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삼체 - 암흑의 숲》의 흥미로운 소재는 면벽자이다. 이들의 임무는 지구를 살리는 것인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삼체세계와 그들의 하수인인 누군지 모르는 파벽자의 눈을 피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게다가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다. 홀로 외롭게 지구 구원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네 명의 면벽자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이다.


서로 숨기고 속이는 두뇌싸움. 따라서 《암흑의 숲》은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식으로 읽게 된다. 면벽자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그것을 마지막에 파헤치는 파벽자. 우리의 주인공 뤄지를 제외한 세 면벽자의 계획이 파벽자에 의해서 파헤쳐질 때, 반전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특히 세 번째 파벽자의 정체는 충격적이다. 세 면벽자의 계획은 엉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외부와 협조해서 세운 계획이기 때문에 삼체세계의 감시를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뜬금없이 항성에 저주의 부적을 날리고 그 계획을 확인하기 위해 동면에 들어간 뤄지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뤄지의 말도 안되는 행동의 숨은 뜻은 무엇이었을까? 동면을 마치고 185년 후 눈을 떴을 때, 세계가 삼체세계를 물리칠 자신감에 똘똘 뭉친 것은 또 무슨 함정일까? 삼체함대보다 더 빨리 지구로 항해해서 태양계에 도착한 물방울 모양의 척후선은 정말 화친의 사절일까?

 

삼체함대보다 200여년 앞서 지구에 도착한 '물방울'. 평화의 사절이라고 지구인들이 착각하는 동안 기습적으로 7대를 제외한 지구의 모든 함대를 박살내 버린다.


문득 드러나는 《파운데이션》의 오마쥬

《암흑의 숲》을 읽으면서 SF소설의 고전 중에 하나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인류문명이 멸망을 향해 가고 있고 그 기간이 상당히 길다는 설정. 멸망을 피하고 인류를 보전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며, 그의 계획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뤄지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 있어서 면벽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뤄지는 결국 《파운데이션》의 해리 셀던, R.다닐 올리버, 골란 트레비스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인류의 구원자이다. 그리고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에 비견할만한 가상의 학문인 '우주사회학'이 존재하는 것도 비슷하다.


책을 읽으며 받았던 이런 느낌은 240페이지에서 해리 셀던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확신하게 됐다.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광팬인 나로서는 참 반가웠다. 물론 《암흑의 숲》은 《파운데이션》에 비해 훨씬 하드SF적인 성격이 강하고 주된 멸망의 이유가 은하제국 내부의 사회적 모순이 아닌 외계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암흑의 숲》을 읽으면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의 영향이 느껴졌다.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 명의 면벽자가 실패하고 이제 면벽자는 뤄지 한 명밖에 없다. 동면에서 깨어나 본래보다 200년 일찍 도착한 삼체세계의 탐측기는 전 지구의 우주함대를 겨우 일곱 대만 남겨 놓고 모두 폭파시켜 버렸다. 그나마 남은 일곱 대 중 다섯 대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다른 항성계로 떠나버리고 지구는 이제 멸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뤄지는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동면에 들어가기 전 우주에 발사했던 저주의 주문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3부인 《사신영생》. 아직 우리나라에는 번역출판되지 않았다. 빨리 발간되길 바란다.


★★★★☆


《삼체》 1부 《삼체세계》에서 발생한 위기는 2부 《암흑의 숲》에서 결국 해결이 된다. 뤄지의 저주는 지구를 구했다. 마지막 두 개의 공리를 이용해서 지구를 구한 방법을 스창에게 설명하는 장면 역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던 아시모프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 뤄지가 지구와 삼체세계의 운명을 걸고 펼친 마지막 도박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추리소설의 마지막 자물쇠가 열리는 것같은 시원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좀 두꺼운 책이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SF매니아라면 정말 좋아할 책이다. 최신 과학이론을 이렇게까지 요리해서 책 속에 녹여놓은 책은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리학, 우주론, 차원이론, 양자론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읽는게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인다.


뤄지가 면벽자로 선택된 것은 삼체세계가 뤄지를 제거하려고 하는 시도를 보고 UN이 뭔가 삼체세계가 뤄지를 노린 이유가 있어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마지막까지 삼체세계가 왜 뤄지를 제거하려고 했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책이 시작할 때, 예원제가 뤄지에게 '우주사회학'의 공리를 알려주는 것을 알게되어 위험인물로 판단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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