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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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자와 사토시 : 시공을 뒤섞어서 한바탕 난장을 벌여봅시다.

p.282


코난 도일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셜록 홈즈

내 이름은 셜록 홈즈, 탐정이지. 범죄의 도시, 안개 자욱한 런던을 떠나 조용한 시골 사우스 시에서 쉬고 있는 중이야. 하지만 언제나 사건은 나를 따라 다니는 듯 해. 어쩌면 내가 사건을 몰고 다닐 수도 있지. 이 조용한 시골 한구석에서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어. 조용했던 마을은 시끌벅적해 지고. 도저히 범인을 발견하지 못한 경관은 나에게 찾아와 도움을 요청해. 내 숙명이라고 해야 하나?


경관을 따라가서 현장을 보니 완벽한 밀실살인이야. 피해자는 있는데 살인한 방법을 알 수가 없어. 결국 밀실트릭을 깨야만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아. 피해자? 아, 피해자에 대해서 말을 안했군. 3류 추리소설가야. 자기 작품의 주인공인 탐정을 작품에서 죽여 버린 후에 독자로부터 항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를 받아 왔나 봐. 이름이.. 코난 도일인데, 유명하지 않은지 처음 듣는 이름이야.


셜록 홈즈는 코난 도일의 살인 사건을 추리한다.


괴상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단편집

표지를 보면 퀴르발 남작이 틀림없어 보이는 흑백 표정을 한 남자가 표지를 떡 차지하고는 째려 보고 있다. 옷깃사이로 손가락 일곱 개가 튀어나와 있고 왼쪽에는 낚시바늘 두 개가 튀어나와 있다. 전체적인 느낌이 일본소설 표지같다. 처음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표지가 책의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는 느낌이 든다.


저 일곱 개의 손가락이 책에 들어 있는 일곱 편의 단편을 의미하는 것일까? 《퀴르발 남작의 성》은 단편 일곱 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다. 그런데 일곱 편이 모두 괴상한 이야기들이다. 퀴르발 남작은 친척 아이들을 성으로 데려와서 잡아 먹는다. 셜롬 홈즈는 코난 도일이 어떻게 죽었는지 추리한다. 차화연은 대학시절 자신이 괴롭혔던 이현정을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고, 강철수는 사람을 죽여 놓고는 자기 안의 다른 사람이 죽였다고 주장한다. 굉장히 평범해 보이는 소재들을 괴상하게 풀어 놓는다. 현실같으면서도 그 안에 왜곡된 판타지를 섞어 놓아 생경한 재미를 느끼게 하기. 《퀴르발 남작의 성》의 매력은 거기에 있다.


최제훈 1973 ~ .


왜곡된 서사, 왜곡된 기억

《퀴르발 남작의 성》은 '변형'과 '왜곡'을 다루고 있다.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의미있는 영화를 다루는 대학강의로부터 시작하는 첫 단편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영화가 어떻게 변형이 되어가는지 설명한다. 그걸 시간 순으로 되돌려 보면, 흑사병이 창궐하던 프랑스 작은 마을 부부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성으로 들여 보내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할머니가 아이에게 들려 준 이야기, 그 이야기를 기억했다가 영화로 만드는 감독, 영화를 만드는 중에 참견하는 관계자들, 그 영화를 리메이크한 일본 감독, 그리고 그 영화를 다시 해석하는 교수.. 이렇게 이루어지면서 원래 이야기가 가지고 있던 서사가 변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두번째 단편인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은 정말 재치가 넘친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홈즈가 자신을 창조한 코난 도일이 죽은 사건을 조사하다니.. 비록 트릭이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죽으면서도 홈즈를 희롱하는 코난 도일과 '제4의 벽'을 뚫고 나와 추리하는 홈즈의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현실과 소설을 왜곡한다.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그녀의 매듭>과 <그림자 박제>는 왜곡된 정신을 그려낸다. <그녀의 매듭>에서 차화연은 자신이 도와줬다가 질투로 망쳐버린 이현정을 아예 기억속에서 지운다. 기억에 빈틈을 만들어 버렸다. <그림자 박제>에서는 거꾸로 강철수가 톰, 제리, 강우빈이라는 세 인격을 품고 살고 있다. 다중인격 때문에 강철수 역시 기억에 빈틈이 생긴다. 정신도 왜곡되어 버렸다.


위에서 이 책이 일곱 편의 단편을 모아 놓은 소설집이라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차례를 보면 여덟 개의 소제목이 적혀 있다. 마지막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는 책 자체를 왜곡해 버린다. 가장 짧은 마지막 글은 이 책 전체에 대한 재치있는 개그다. 이 책에 등장한 인물들이 책을 펼치지 않은 동안에는 책 속에서 자기들끼리 파티를 하고 떠들면서 지내고 있다는 설정으로 쓴 짤막한 글이다. 마치 <토이 스토리>에서 장난감들이 사람이 없을 때 서로 대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형식을 어디서 봤나 했더니 문정후 작가가 그린 <용비불패>라는 만화책에 비슷한 컨셉을 가진 장면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바로 저런 찌그러진 모자를 쓰고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 다니는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이 억울하다.


재치와 상상력이 넘치는 멋진 소설집

최제훈이라는 작가는 잘 모른다. 워낙 한국 작가에 대해서 많이 모르기 때문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들도 꼭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멋진 상상력으로 다양하게 글을 쓴 소설가를 많이 알지 못한다. 특히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은 그리스신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지고 재치있게 마녀의 모습이 왜곡되어 가는 역사를 차분히 살펴 보는데, 정말 그랬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야기를 잘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짧은 책 한 권 속에 강의, 민담, 기사, 취조 등 온갖 종류의 서술 기법을 자연스럽게 담아 놨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와 <숨>을 쓴 테드 창이 자꾸 떠올랐다. 단편집을 썼고, 상상한 것을 마치 현실인 것처럼 뻔뻔하게 글을 써내려갔다. 조금 다르다면 테드 창은 하드 SF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글을 썼고, 최제훈은 역사와 일상을 다루는 글을 썼다는 점이다. 테드 창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그만큼 최제훈 역시 굉장히 멋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프랑켄슈타인은 사실은 저 괴물이 아니라 저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라고 한다. 


★★★★☆

사실 그동안 한국소설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다. 사실 소설 자체를 그렇게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소설을 집중적으로 읽으면서 내가 참 어리석었다고 반성하는 중이다.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많고 읽는 책마다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퀴르발 남작의 성》도 그렇다. 읽는 동안 내내 즐거웠고, 작가의 재치와 능글맞은 글솜씨에 매혹됐다. 최제훈이 쓴 다른 글들도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이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도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꼭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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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속살 2 - 경제학자 편 경제의 속살 2
이완배 지음 / 민중의소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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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시대

어떤 학문이든, 모임이든, 주류가 있는가 하면 비주류가 있다. 요새 주로 사용하는 말로 바꿔 보면 인싸(insider)와 아싸(outsider)라고 할 수 있겠다. 주류는 그 사회전체의 생각과 체제를 지배하며 안정을 추구한다. 반면에 비주류는 끊임없이 주류를 흔들며 변화를 모색한다. 한때 비주류였던 생각이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면 이제 또다른 비주류의 견제를 받기도 한다.


현재 경제학의 주류는 신자유주의이다. 세계의 모든 민중들은 모든 삶에서 자본에게 극한의 경쟁을 요구받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1%는 보답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하지만 경쟁에서 탈락한 99%는 인간다운 삶은 커녕 기본적인 생활조차 할 수 없는 비참한 환경에 내몰린다. 우리나라도 빈부격차가 심하지만 눈을 전세계로 돌려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그나마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우리나라 하위 10%만 해도 최근 생활고로 죽음에 내몰리는 사람이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데, 세계 하위 10%는 그 차원을 넘어선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마음껏 밀어주고 있는 거대자본은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 《경제의 속살2 - 경제학자 편》은 신자유주의에게 주류를 빼앗긴 비주류 경제학자에 대한 기록이다. 



경제학이라고 해서 꼭 돈만 생각할 필요가 있어?

경제학은 돈을 다루는 학문이다. 사람이 사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나도 돈을 벌기 위해서 매일 출퇴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기도 한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돈이 없어서 죽는 사람들의 뉴스가 심심찮게 보도되는 것을 보면 우리의 삶을 돈이 지배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경제학은 결국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괴물같은 학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경제의 속살2》에서 이완배 기자가 소개하는 경제학자들은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경제학이 돈을 다루는 학문이지만 차가운 경제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가슴 뜨거운 사람을 잊지 말라고 끊임없이 독자들을 일깨운다. 똑똑한 주류 경제학자들의 말빨에 휘둘려 잘못된 생각을 가진 독자의 굳어버린 생각을 깨기 위해 끊임없이 망치를 내려친다.


이완배 1971~ .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졸업. 동아일보 사회부와 경제부에서 기자로 일하다 네이버 금융서비스 팀장을 거쳐 2014년부터 민중의소리 경제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들의 가르침 - 속지 마라

1권을 읽을 때도 많이 느낀 거지만 2권에서는 더욱 나의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기존 경제학의 틀에 맞춰져서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굳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나 스스로는 그래도 기존 사고의 틀을 벗어나려고 애를 써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주류라는 건 그 사회에서 활용가능한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언론들이 민중들에게 수없이 주류의 시각을 강조하고 있어서 흔히 말하는 계급배반투표도 많이 일어난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주류언론과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서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이 정말 내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소개한 학자들은 끊임없이 속지 말라고 우리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다 소개할 필요도 없다. 목차만 살펴 봐도 우리가 속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유재산이 자연권이라고? 소유는 도적질이다! -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자본주의는 어떻게 인류의 본성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나? 칼 폴라니

부(副) 뿐 아니라 빈곤도 확대 재생산된다 - 군나르 뮈르달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 하워드 진

가난에 대해 아는 척 하는 것을 멈춰라 - 뤼트허르 브레흐만


칼 폴라니 Karl Polanyi 1886~1964.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의 경제학자.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본성이 아닌 자본가 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

1권에 비해서 2권이 좀 어렵다. 수많은 경제학자가 등장하고 그들의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그렇다. 하지만 수식이나 그래프를 잔뜩 써 놓은 것도 아니고 1권과 마찬가지로 시사를 곁들여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읽기 힘들지는 않다. 많은 경제학 책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난이도로 따지면 '하'로 분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잘 들어 보지는 못했지만 알아 두었을 때 유익할 것 같은 많은 비주류 경제학자를 다루고 있어서 경제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이 책에 나온 경제학자들에 대해서는 더 알아볼 생각이다. 더불어 주류 경제학의 논리에 찌들어 있는 지식을 세탁하는데 도움이 된다.


반쯤은 응원하는 기분으로 사서 읽은 책이지만 정말 좋은 책이다. 곧 있으면 절판이 예상되는데 그 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사서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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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과 제국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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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해리 셀던의 안배대로 흘러가는 역사

전편인 <파운데이션>에서 해리 셀던은 심리역사학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해서 은하제국이 멸망하고 인류가 야만의 시대에 들어설 것을 예측했다. 해리 셀던은 야만의 시대를 줄이기 위해서 은하계 변방에 있는 터미너스에 파운데이션을 설립했다. 파운데이션으로 이주한 주민들은 은하대백과사전을 편찬하는 것을 임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를 읽는 영웅들은 해리 셀던이 파운데이션을 설립한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챘고 파운데이션은 영웅들의 활약에 힘입어 주변 성계를 지배하면서 발전해 나간다.


결국 은하제국의 위협까지 물리치고 파운데이션은 명실공히 은하의 최강세력이 된다. 여기까지가 <파운데이션과 제국>의 전반부 내용이다. 하지만..


아이작 아시모프 Isaac Asimov 1920 ~ 1992. 소련 출신의 미국 작가. 유태인으로서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엄청나게 많은 저작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며, 아서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세계 3대 SF 작가로 불리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 <로봇> 시리즈, 우주 3부작이 대표작.


뮬의 출현으로 어긋나버린 해리 셀던 프로젝트

현자이며 예언자였던 해리 셀던의 파운데이션 프로젝트는 뮬이 나타나면서 박살이 나버린다. 파운데이션이 세워진 후 300년이 지난 시점에 시간유물관에 나타난 해리 셀던 홀로그램은 뮬이 은하를 접수해 나가는 현재 상황과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한다. 홀로그램은 자신이 하는 예측이 92.4%의 확률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뮬에 의해 현실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절대적인 존재인 해리 셀던의 예언에 벗어나자 파운데이션은 혼란과 공포에 빠진다.


정보에 의하면 뮬은 돌연변이이며 이해하기 힘든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뮬의 정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셀던이 예측하지 못한 돌연변이에 의해서 멸망의 위기에 처한 파운데이션은 과연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파운데이션과 제국>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뮬은 노새라는 뜻이다. 노새는 말과 당나귀의 교배종이다. 수컷 노새는 번식력이 없다. 소설 속의 뮬을 대비해서 생각하면 좀 짠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슬아슬하더니 결국 파탄난 심리역사학

해리 셀던은 <파운데이션> 시리즈 세계관에서 거의 신이나 다름없다. 절대적인 종교 수준이다. 파운데이션은 셀던의 주도하에 설계되었고, 야만의 시대를 넘어 1,000년 후 새로운 문명시대를 인류에게 선사해야 했다. 그런데 앞서 파운데이션의 영웅이었던 샐버 하딘이나 호버 말로의 활약은 왠지 불안했다. 사회전체를 다루는 심리역사학의 기본 명제와는 달리 '셀던 위기'의 순간, 단지 선견지명을 가진 영웅 몇 명이 역사의 흐름을 이어 나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간이 역사의 중심축으로 활약해야 했던 파운데이션과 은하의 미래는 뮬이라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압도적인 돌연변이가 등장하면서 셀던의 설계를 벗어나고 만다. 결국 셀던 프로젝트는 궤도를 벗어나고 말았고 어긋난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셀던의 계획은 너무 많이 틀어져 버렸다.

뮬은 소설 속에서 비지소너라는 악기를 다루는데, 비지소너는 듣는 사람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뮬이 가진 능력과 연관이 있다.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마지막 반전

<파운데이션과 제국>은 비밀 두 가지를 알려 주지 않고 끝까지 끌고 간다. 하나는 뮬의 정체, 그리고 하나는 제2파운데이션의 위치이다. 마지막에 드러난 뮬의 정체는 충격적이다. 돌연변이로 태어나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뮬은 그 능력을 힘껏 사용해서 결국은 파운데이션을 포함한 은하의 일부를 지배한다. 지금까지대로라면 결국은 뮬은 은하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뮬을 보면서 짠한 마음이 드는 건 또 어쩔 수 없다.


과학력을 기반으로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던 제1파운데이션을 접수한 뮬은 정신력을 기반으로 제1파운데이션의 은하계 반대쪽에 은둔하던 제2파운데이션까지 접수하려고 한다. 하지만 제2파운데이션이 어디에 있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뮬은 제2파운데이션의 위치를 거의 알아내기 직전까지 가지만 가장 인간적인 애정을 느꼈던 사람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도대체 제2파운데이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

전편인 <파운데이션>이 마치 <로마제국쇠망사>같이 파운데이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그려냈다면, <파운데이션과 제국>은 거기에 추리요소가 더해졌다. 아시모프가 이후 자주 사용하는 반전 요소가 더해져서 전편보다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파운데이션 3부작> 중 두 번째 책이다. 그리고 3부작 중에서 두 번째로 재미있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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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 교수의 인간의 경제학
이준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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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 아직은 어린 학문
행동경제학에 대한 책들은 그동안 꽤 많이 읽었다. 행동경제학의 아버지라 하는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절망하다가 새롭게 번역한 책이 좋다고 해서 읽으려고 사놓고 대기 중이다. 최근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탈러의 책도 여러 권 사서 읽었고, 행동경제학 관점에서 거시경제학을 설명했다고 하는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실러의 《야성적 충동》도 찾아 읽어 봤다. 경제학은 원래 큰 관심이 없었는데 행동경제학에 흥미가 돋아서 오히려 거꾸로 경제학 전반에 관심이 많아졌다.


행동경제학은 연구한지 오래되지 않은 학문이라서 각론은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은 총체적인 학문으로 정립되지는 않은 것 같다. 개별 학자가 연구한 분야가 비온 후 죽순 올라오듯 쑥쑥 치고 올라와 거대한 대나무가 되고는 있지만 아직 숲을 이루지 못한 느낌이다. 어쩌면 행동심리학을 경제학에 적용한 행동경제학은 원래부터 그럴 수 밖에 없는 학문인지도 모르겠다.


저명한 경제학자가 쓴 행태경제학 입문서
행동경제학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 보고 싶어서 개괄서를 찾던 중 일본 학자인 도노모 모리오가 지은 《행동경제학》이 있었다. 그 외에 딱히 맘에 드는 책이 없었는데, 경제학 서적을 뒤적이던 중 이준구 교수를 알게 됐고, 그의 저작을 살펴 보던 중 행동경제학 관련 도서를 낸 적이 있는 것을 알았다. 개정판까지 나왔으니 꽤 오래된 책인데 왜 눈에 띄지 않았지? 일단 제목이 《인간의 경제학》이고 이준구 교수는 행동경제학을 '행태경제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눈에 검색에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경제학에는 전혀 문외한인 입장에서 이준구 교수라는 분도 잘 모르니 내 눈에 띌 리 없는 책이다. 궁금증에 사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준구 교수 1949 ~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쉽다

책을 읽기 전에 이준구 교수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굉장히 유명한 경제학자이고, 경제학원론 등 수많은 책을 쓴 사람이다. 예전에 들었던 이해하기 힘들었던 경제학 수업을 생각하면서 긴장을 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인간의 경제학》은 굉장히 쉬운 책이기 때문이다. 그냥 좀 쉬운 책이 아니라 지금까지 읽었던 행동경제학 관련 책 중에서 가장 쉬운 책이다. 해외의 행동경제학자의 저서들은 굉장히 신경을 써서 공들여 읽어야 했는데, 《인간의 경제학》은 출퇴근 시간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다. 잘 이해되지 않던 어려운 용어를 쉽게 풀어 놓았고 실례도 풍부하다. 개별적으로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개념들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번역이 아니라서 문장도 이해하기 쉬웠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굉장히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여담으로 이 책을 읽은 후, 경제학 책도 쉽게 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동안 사려고 마음만 먹고 있었던 경제학 원론 책을 한 권 샀다. 물론 이준구 교수 공저.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 1934 ~ . 이스라엘 출신 경제학자. 심리학자로 시작해서 행동경제학의 초창기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전망이론'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행동경제학 전반을 정리해 놓았다

《인간의 경제학》은 행동경제학에 대해서 연구한 책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에서 다루는 여러가지 이슈와 아이디어를 정리해 놓은 책이다. 저자가 애초에 행동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책에서 밝혔듯이 다른 분야에 비해 최근에 알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독자적으로 행동경제학에 대해 연구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려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행동심리학 연구를 노교수가 할 수는 없었을 테니 이 책은 태생적으로 종합·정리·소개하는 책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경제학》은 종합해서 정리한 후 소개하는 과정이 정말 잘되어 있다. 그동안 읽어왔던 행동경제학 책들과 비교해 봐도 이 책만큼 행동경제학을 잘 정리해 놓은 책을 보지 못했다. 기본적인 행동경제학의 개념과 용어에 대해서 거의 대부분 다루었고,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중요한 실험들도 충실하게 다루었다. 따라서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행동경제학 전반에 대한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누군가 나에게 행동경제학 책을 딱 한 권만 추천하라고 하면 이 책을 권하겠다.


리처드 세일러 Richard H. Thaler 1945 ~ . 독일 출신 미국의 경제학자. 독일 출신으로 이름을 탈러라고 읽는 것이 맞지만 미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세일러라고 표시한다. 행동경제학을 체계화한 공으로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다 좋은데..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서술의 태도이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다른 연구자의 연구성과를 '종합'해서 쓴 책이다. 1차 저작물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물론 책 말미에 출처를 충실히 밝혀 놓긴 했지만 본문 내에서도 '실험에 의하면'보다는 '행동경제학자 누구누구의 실험에 의하면'처럼 읽는 사람이 이론의 공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썼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단정적인 서술표현도 많이 나왔는데, 1. 저자가 직적 실험해서 확인한 것이 아니며, 2. 행동경제학이 아직은 정립되지 않은 학문이라는 점에서 과하게 단정적인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

행동경제학을 빨리 이해하기 위해서 단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에 행동경제학 전반에서 이슈가 되는 개념을 이해한 후 개별 학자의 책으로 범위를 넓혀 나가면 행동경제학을 이해하는데 최고의 방법이 될 것 같다. 행동경제학을 처음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behavioral economics 행동경제학? 행태경제학?


저자는 책의 앞부분에서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보다 행태경제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처음 행동경제학이라는 용어를 들었을 때, 어차피 번역이지만 도대체 어떤 이유로 학문의 이름이 저렇게 되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어를 보면 어째서 그런 명칭이 되었는지 이해는 되지만 나는 적어도 용어 문제에서만큼은 이준구 교수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미 행동경제학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당대 최고의 경제학자가 주장을 한다고 해도 행태경제학으로 바뀌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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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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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내가 일하고 있는 영장류센터 근처에 있는 별장에서 불이 났다. 그 별장에는 어째서인지 야생동물들이 있는 케이지가 있었고 안에 있던 동물 중 침팬지 한 마리가 도망쳐 나무 위에 올라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119 구조대는 영장류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내일 낮에 베를린으로 떠나려 했던 나는 별로 탐탁치 않은 마음으로 스승과 함께 침팬지를 구하러 한밤 중에 나갔다. 스승과 나는 침팬지로 오해받은 보노보를 구출해서 연구소로 돌아오기 위해서 밴에 태웠다. 스승은 항상 운전이 불안했다. 오늘따라 더 불안했는데 안 좋은 예감은 꼭 들어맞는 법. 스승은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에 놀라 운전대를 틀었고 밴은 가드레일을 받아 버린다. 보노보를 안고 있느라 조수석에서 앉아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았던 나는 지니와 함께 앞 유리창을 깨고 튕겨나와 절벽으로 떨어졌다.


기대하면서 기다린 소설


정유정이 3년만에 쓴 소설이다. 사실 나에게 3년만이라는 시간이 큰 의미는 없다. 정유정을 안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의 소설을 읽은 것도 차례대로 읽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새로 소설이 나온다고 해서 기다기긴 했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을 읽었고 정유정이 쓴 소설 중에 네 번째로 읽는 소설인데 세 권 모두 굉장히 만족스럽게 읽었기 때문이다. 먼저 읽었던 책들은 모두 긴장감을 강하게 주는 책들이라 가슴을 잔뜩 졸이면서 읽었다. <진이, 지니>를 읽기 시작할 때, 각오를 단단히 하고 첫 장을 넘기는 것은 당연하다. 절대로 읽는 사람을 편하게 놔두지 않는 사람. 정유정은 나에게는 그런 이미지를 주는 작가였다.


책을 읽기 전에 소제목만을 읽으니 <28>의 느낌이 물씬 났다. <28>에 개가 중요하게 등장했다고 하면 <진이, 지니>에는 영장류인 보노보가 등장한다. 인간과 보노보의 교감이 중요한 소재일 것 같다. 그리고 또 어디선가 피가 튀겠지.. 라고 생각을 했는데 좀 다르다. 이전 세 권에서는 사람이 죽어 나가고 피가 튀는 장면을 마치 실제로 해 본 것처럼 자세하게 묘사했었는데 <진이, 지니>는 그런 묘사는 나오지 않는다. 안심했다.


정유정. 1966 ~ .


하드웨어는 그대로인데 소프트웨어는 바뀌었다


짧게 끊어지는 문장, 부사도 극도로 자제해서 사용하고, 접속사는 볼 수가 없다. 정유정의 소설을 읽으면 최대한 절제된 문장과 빠른 속도감에 항상 감탄을 한다. <진이, 지니>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읽었던 그의 소설 그대로다. 전혀 변함이 없이 군더더기없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긴장의 끈을 놓기도 힘들다. 지금까지처럼 조각가가 돌을 쪼듯이 정성스럽게 가다듬었을 것이 틀림없는 정제된 문장이 이어진다.


그러데 내용은 다르다. 이전 소설에서 느꼈던 심장을 꽉 조이는 듯한 긴장감이 많이 사라졌다. 긴장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같지는 않다. 오히려 예전 소설에서 느끼지 못한 따뜻함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 도구는 그대로인데 결과물인 조각품이 달라진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피칠갑을 하고, 다시 읽기 부담스러울 정도였던 고통스러운 외부묘사는 굉장히 많이 사라졌다. 대신에 내면 묘사에 집중했다. 그역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살을 에이는 느낌이 많이 줄어든 것은 틀림없다. 물론, 이진이의 심정이 편해 보이는 건 아니다.


보노보. 인간과 가장 가까우면서 성격이 온순한 영장류.


도대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주인공인 이진이는 큰 사고가 났지만 벼랑 밑에 있던 나무에 걸려서 겨우 살았다. 좀 아프긴 했지만 걸을만 하다. 아픈 몸을 이끌고 영장류센터로 가는데... 몸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평소 걷는 것과는 다르게 걷는다. 어? 뭐지?라고 생각하는데.. 이진이는 자신이 보노보인 지니(스승이 이름붙여 준)의 몸속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진이의 영혼이 지니의 몸 속에 빙의해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이제부터 진이는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원래 몸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쓴다. 민주는 때마침 근처에서 노숙을 하던 처량한 백수였고, 보노보의 몸으로 병원에 갈 수 없는 진이는 민주에게 천만 원을 사례비로 지급하기로 약속한 후 민주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향한다. 보노보의 모습으로 민주와 처음 대화할 때는 힘으로 굴복시키기도 하고 글을 써서 설득을 한다. 


이쯤되니 도대체 작가가 이 소설을 어떻게 끌고 나가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도대체 이 소설을 어떻게 끝맺으려고 하는 거지? 어째서 보노보(지니)의 몸 속에 진이가 빙의된 거지? 그럴듯한 이유라도 나중에 알려 주려나? 독자를 설득할 수 있을까? 결국 정유정은 독자를 설득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된 거다. 병원에는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보노보의 몸 속에 빙의된 진이의 영혼이 병원으로 간다고 해서 정말 되돌아 갈 수 있긴 한건가? 책장은 대책없이 넘어간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불안감


정유정은 자신의 작품속 인물들을 절대로 편하게 놔두지 않는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들을 보면 인물들을 극한상황까지 밀어 붙여서 주인공이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도록 만든다. 해피엔딩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지도 않는다. 진이는 어떻게든 병실에 누워 있는 자기 몸 곁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간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어렴풋이 그 곁에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유정이 주인공을 편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진이는 아마도 결코 편안하게 결말을 맞기 힘들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진이의 몸체는 그냥 죽어 버리고 진이는 지니의 몸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걸까? 이건 또 이거대로 굉장히 충격적인 결말인데.. 제일 바라는 결말은 극적으로 자기 몸으로 돌아가서 얼마동안 코마 상태에서 치료를 받다가 정신을 차린 후 민주와 웃는 모습으로 재회하는 것인데, 정유정이 그렇게 놔둘 리는 없잖아. 그냥 마구 불안한 마음 뿐이다. 도대체 진이를 어떻게 할 거냐? 책의 결말은 내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수긍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슬프다.




진이와 지니의 공감


보노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주인공 진이. 자기도 모르는 새에 인간에게 자유를 뺏기고, 몸까지 빼앗긴 지니. 예상과는 달리 진이와 지니가 대화를 한다든지 하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았다. 몸을 빼앗겼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니의 기억을 진이가 볼 수 있게 되고 기억이 현재로 흐르면서 진이는 자신의 육체가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행복한 숲속의 삶을 살다가 인간의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지니에게 미안하다. 일부러 한 것은 아니지만 지니의 몸까지 빼앗은 것도 미안하다. 결국 진이는 육체가 죽는 순간 자신도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예상과는 다른 결말이다. 원래 작가가 해피엔딩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니들 인간이 아무리 잘났어도 자연을 니들 편한대로 이용해 먹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작가는 묻는다. 자연을 그대로 좀 놔두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지니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켜 인간세계의 구경거리로 전락시킨 사람이 물론 제일 나쁘다. 하지만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자기 편의에 의해서 지니의 몸을 떠나지 않고 있는 진이 역시 그런 자신의 모습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니의 것은 지니에게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그리고 민주는 그 고생을 해 놓고 결국 아무런 댓가를 받지 못했다. 좀 뭐라도 챙겨주지..




훔치고 싶은 정유정의 문장


정유정이 쓰는 문장은 정말 멋지고 깔끔하다. 글쓰는 걸 좋아하는 나도 그의 문체를 따라해 보고 싶어서 부사와 접속사를 빼고 되도록 단문장으로 글을 써 보려고 노력해 봤다. 하지만 그게 정말 어렵다. 군더더기를 모두 빼고 글을 쓰려고 하니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하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접속사를 빼고 쓰는 건 더 어려워서 그러려면 앞뒤에 있는 문장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접속사가 없어도 글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이게 말로 하는 것처럼 만만치가 않았다. 그만큼 정유정의 글은 멋지다. 아마도 일반적인 소설가보다 퇴고를 훨씬 여러 차례 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멋진 작가. 멋진 문장 솜씨이다. 따라하고 싶고 훔치고 싶다.


★★★★☆


정유정의 소설은 읽으면 도대체 뒷수습을 어떻게 할지 항상 긴장을 하면서 읽는다. 긴장감만큼은 우리나라 소설 중에 정유정 소설을 이길만한 소설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진이, 지니》도 마찬가지다. 다른 소설들은 긴장감에 잔혹함이 곁들여져 있다면, 《진이, 지니》는 긴장감 속에 따뜻함이 묻어 있다는 것이 좀 다르다.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 다 떠나서 재미있다.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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