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만 원의 돈은 그를 대담하게 만들어주었고 그에게 든든한 밑천이되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돈을 잃어버리고 보니 잃어버린 것이단지 돈뿐만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그러한 밑천이었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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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사귀려면 낮은 지위에 있을 때 사귀는 것이 더 바람직한 법이다. 높은 지위에 오르면 이미 친구가 부족하지 않거나 더 이상 친구를 운운하지도 않기 때문에 친구가 되려 해도 이미 때가 늦기 마련이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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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100쇄 기념 특별판 리커버)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행복한 가족에게 닥친 최악의 불행

매켄지 앨런 필립스(맥)는 어릴 때의 불행을 딛고 내냇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위로 세 명의 아들 존, 테일러, 조시, 그리고 캐서린(케이트)와 멜리사(미시)라는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다. 어느 여름, 매켄지는 조시, 캐서린, 미시를 데리고 왈로와 호수 주립공원으로 캠핑을 간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캠핑 마지막 날, 조시와 케이트가 카누를 타던 중에 카누가 뒤집히는 사고가 나고 맥은 미시와 함께 물밖에 있다가 급하게 뛰어들어 겨우 두 아이를 구해 낸다.


두 아이와 함께 물밖으로 나온 맥. 그런데 아이들을 구하는 사이에 막내 미시가 사라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미시를 찾았지만 미시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고 맥은 불안해 하기 시작한다. 경찰까지 동원된 대규모 수색에도 미시는 찾을 수 없고 공원 관리인이 미시가 트럭에 실려 공원밖으로 나간 것을 목격한 것을 듣게 되어 수색범위는 넓어진다. 최근 인근에서 유소년 여아들이 납치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슷한 유형의 연속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까지 듣고 더욱 불안해 하는 맥의 가족.


결국 트럭의 흔적을 쫒던 중 어느 오두막에서 핏자국과 함께 미시의 드레스가 발견되고.. 미시는 시신도 찾지 못한 채 연쇄살인범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결론난다. 그로부터 3년 반 후 눈오는 어느날, 집에 혼자 있던 맥은 우편함에서 이상한 편지를 발견한다. 편지의 내용은..


"

매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파파

"


파파는 맥의 아내인 내냇이 하나님을 부르는 말이었다. 맥은 장난편지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지만 편지의 내용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이 친정에 가있는 어느 주말, 맥은 악몽을 되살리며 그 오두막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맥이 만난 사람은..


윌리엄 폴 영 William Paul Young 1955 ~ . 캐나다 작가.


묘한 소설

특이한 이력을 지닌 소설이다. 작가인 윌리엄 폴 영은 뉴기니에서 활동한 캐나다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독실한 기독교인인 것 같다. 그가 자신의 여섯 아이에게 선물하기 위해 쓴 책이 《오두막》으로 처음에는 열다섯 권만 복사본으로 만들어 나눠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돌려 읽던 사람들이 출판을 권유했고, 자비출판한 이 책은 입소문만으로 밀리언 셀러를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처음엔 실화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 도입 부분이 실화처럼 씌여 있다) 실화가 아니고, 읽다 보니 기독교 소설인 것을 알게 됐다. 그것도 굉장히 노골적인 기독교 소설이다. 하나님이 나오고 예수와 성령까지 등장한다. 예수가 직접 등장하는 소설은 조반니 과레스키가 쓴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읽은 적이 있는데 《오두막》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소설 속 배경인 왈로와 호수. 주립공원으로 오리건 주에 있다.


헉! 이게 뭔 소설이야?

맥이 아이를 잃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이 책의 중심내용이고 그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일텐데.. 맥이 오두막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세 사람이 맥을 기다리고 있다. 엘루시아라는 흑인 여성, 죠슈아라는 아랍 남자, 사라유라는 아시아 계열 여자. 이 세 사람은 맥을 보고 굉장히 반가워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맥을 초대한 파파라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실화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다가 이 부분에서 실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만약 실화라면 정신병자나 광신도(결국 같은 범주겠지만)의 이야기일테니.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우화.. 뭐 그런 것도 괜찮다. 앞에서 말한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시리즈에서도 예수가 돈 까밀로 신부와 대화하면서 어루만져 주고 깨우쳐 주고 했으니까.. 그런데 《오두막》은 좀..


막내 미시는 살해되고 시신도 찾지 못한다.


위로가 아닌 강요와 교리문답 투성이 소설

결론적으로 맥을 초대하고 오두막에서 만난 세 사람은 사기꾼이 아니라 하나님이 맞다. 그것도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사람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세 명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인종과 성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는지 성부와 성령은 여성의 모습으로 성자의 모습은 남성으로 설정했고 인종 역시 제각각이다. 여기까지는 우화의 한 형태로 인정해 줄만하다.


그런데 세 명의 신이 맥을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들이 엉뚱하다. 위로가 아니라 교리 강독을 하고 있다. 읽으면서 대충 적어 본 것만 해도 하나님의 성별에 관한 문제, 자유의지론, 삼위일체론, 예수의 신성과 인성, 성육신, 원죄론, 교회론 등을 다루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이 내용들을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딸을 잃은 남자에게 과연 가당키나 한 설명인가? 이게 위로가 될 수 없을텐데.. 작가는 맥의 상처를 보듬는데 주안점을 둔 것이 아니다. 기독교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저항감을 가지는 주제에 대해 설명을 나열한다. 그러니까 맥은 독자 포지션이고 하나님들은 저자의 포지션에서 설명하는 중이다. 이런 정확하지도 않은 교리 강독이 무슨 쓸모가 있지?


예를 들어 기독교에서 가장 민감한 삼위일체론같은 경우, 사실상 교회에서 요한계시록과 함께 언급하면 안되는 금기사항같은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론이 확립된 이후 삼위일체에 관한 논쟁은 적대파를 이단으로 몰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리고 《오두막》에 표현된 하나님의 모습은 이단으로 공격받기에 딱 좋다. 즉, 어설프게 교리를 비유로 설명하다 보니 정확하지 않은 교리 지식이 계속 인용되고 있다. 도대체 상실감이 큰 맥을 위로하는데 교리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책 후면에 추천사를 쓴 목사님들은 이게 전혀 걸리지 않았나? 나는 이단으로 이 책을 단정지으려고 하는게 아니다. 책에 나오는 하나님(들)이 실제로 맥을 위로하는데 신경을 쓰지 않고 기독교 교리 강해를 하고 있는 것이 어처구니 없다는 거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교리가 그다지 정교하지도 않다.


삼위일체론은 기독교에서는 다루는 순간 이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민감한 주제인데 소설에서는 너무 쉽게 다루고 있다.

★★

이런 책들이 가끔 있다. 소설이라는 탈을 쓰고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이론을 줄줄 늘어놓는 소설. 사실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발표해야 하는 하는 책.. 우리 불쌍한 매켄지의 비극은 그저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억지로 만들어 놓은 비극일 뿐이다. 만일 매켄지가 '제4의 벽'을 뚫고 나올 수 있다면 저자인 폴 영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폴 영이 자신이 만든 인물인 맥에 대해서 애정이 없다고 느꼈다. 단지 계몽되어야 할 무지몽매한 '믿음을 잃은 자' 정도로 생각한 것처럼 보였다.


작가의 이런 태도 때문인지 마지막에 감동을 받아야 할 장면에서도 전혀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없었다. 또 마지막에 차사고는 왜 나는 건지.. 사건의 개연성도 없고 의미도 없다. 기독교라는 엄청난 시장을 잡은게 이 소설의 성공비결인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윌리엄 폴 영은 제대로 소설을 쓸 줄 모르는 아마츄어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천 만 명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저 나는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신앙적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있는 소설이 꽤 많을텐데.. 《오두막》은 아닌 것 같다. 착해 보이는 소설이라고 해서 좋은 소설이 아니다.


별로 추천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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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면수靑面獸 양지楊志는 우연히 장단단張端端을 만났다. 감甘씨가 운영하는 ‘흔주식부所州食府라는 음식점에서였다. 감씨는 목청이 상해 숨소리를 이용해서 말을했다. 몹시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말을 했다. - P9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늑대처럼 사람들을 잡아먹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양처럼 사람들에게 잡아먹히는 사람입니다. - P4

자살이 좋긴 했지만 유약진은 끝내 자살을 하지 않았다. 유약진이 자살을 하지 않은 것은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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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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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보트가 가는 곳>

2개월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세상이 멸망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답게 하늘에서 내리는 눈. 그런데 눈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수천, 수만 개의 볼링공 모양의 '무엇'이 함께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엇'은 땅에 끝도 없는 구멍을 뚫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구멍 속으로 떨어지고 '무엇'은 그치지 않고 계속 쏟아졌다. 가까스로 구멍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쏟아지는 '무엇'과 빨려들어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구멍을 피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엇'은 마치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몰아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이동하기를 닷새쯤 지났을 때, '나'는 어떤 여자가 구멍에 빠지려는 걸 구해주고 추워하는 그녀를 위해 파커를 벗어 줬다. 그녀는 27세의 윤정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코즈믹 호러의 순간에도 사랑은 싹이 튼다. 그녀와 나는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서로의 과거 상처도 얘기하고 미래에 대해서도 얘기하며 힘든 시간을 함께 견뎌냈다. 하지만.. 바닷가에 도착해 사람들 사이에 소동이 일어난 와중에 구멍으로 떨어진 한 남자가 그녀의 팔을 잡아챘고, 그녀는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녀가 보고 싶다.


김중혁. 1971 ~ . 한국의 소설가.


김중혁 소설가의 단편집

두 번째 읽은 김중혁의 책이다. 굉장히 유명한 작가이고 국내 유수한 문학상도 여러차례 받았다고 알고 있다. 이전에 읽은 책은 장편이었는데 만족스럽게 읽었다고 할 수는 없다. 두 번째 읽은 책이 단편집인 건.. 별 의미는 없다. 그저 책장에 꽂혀 있는 순서대로 뽑아 읽는 중이니까.. 그래도 호흡이 긴 장편소설과 달리 짧게 결판을 내야 하는 단편소설은 어떻게 썼을지 궁금해 하면서 읽었다.


상실감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

천 단편부터 소재가 '포르노'다. 포르노 가획자와 여배우에 관한 얘기.. 그러더니 두 번째 소설은 AV를 보는 두 고등학생이 없어진 아이돌 가수를 찾아나서는 얘기다. 왠지 성인스러운 것에 경도된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 책의 제목과 같은 단편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헤어진 여자와 남자가 만나 이전과 별로 다른 점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내용이고, <뱀들이 있어>는 예전에 좋아하던 여자의 남편이 태풍으로 사라진 걸 전해들은 남자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거의 모든 소설이 '사람이 없어진' 이야기다. 배우가 사라지고, 아이돌이 사라지는가 하면, 연인은 헤어지고 남편은 실종된다. 모두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사라진 사람이 없는 작품은 <힘과 가속도의 법칙>밖에 없다. 이게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김중혁이 갖가지 이별 그리고 상실감에 대해서 다루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얘기가 중간에 끝이 나는 것 같다

김중혁의 소설은 이제 겨우 두 권밖에 읽어 보지 않았고, 그의 대표작이 어떤 소설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장편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점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음에 걸린다. 각 단편이 얘기가 시작되어서 끌고 나가다 뚝 끊어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클라이막스가 되는 부분이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기와 승이 있는데 전과 결이 없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인생의 한 부분을 들어내서 이야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인생이 항상 짧은 순간에 소설처럼 펼쳐질 수는 없을테니까. 또는 (평범한 독자인 나는 알아챌 수 없는) 문학적인 장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건 전문적인 문학심사위원이 따질 일이고 내가 보는 점에서는 대체로 소설이 허전하다. 재미가 좀 덜하다는 뜻이다. 단편소설은 짧은 분량 속에 군더더기없이 하나의 플롯이 완결되는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완결이 안된 작품 모음집인 것 같다. 유명한 소설가이니 실력이 모자른 건 아닐 거다. 의도한 것일텐데 난 그 의도를 모르겠다. 여백의 미? 미완의 아름다움? 난 그냥 재미있는 소설이 좋다.


★★★☆

굉장히 재미있지는 않다. 주욱 얘기했지만 소설이 완결되는 맛이 없고 밋밋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보트가 가는 곳>은 굉장히 마음에 든다. 코즈믹 호러 속에서 싹트는 사랑,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까지..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에 실린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요요>도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굉장히 잘 표현되어 있어서 좋다. 이전에 읽은 책에서도 느꼈지만 문장이 굉장히 깔끔해서 읽기 쉽고 책장이 잘 넘어간다. 상황묘사도 명확해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앞으로도 김중혁의 소설을 더 읽을텐데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있으면 좋겠다. 별 4개에 가까운 3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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