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데이션 파운데이션 시리즈 Foundation Series 1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옥수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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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제국이 멸망하고 있다

인류는 이미 우리 은하를 꽉 채우고 있다. 인간이 거주하는 행성은 약 2,500만 여개. 은하계에 퍼져 있는 인구는 모두 400경 명, 4,000,000,000,000,000,000 명이다. 수만년 동안 은하계를 지배하고 있는 은하제국이 모든 인류를 지배하고 있으며, 은하제국의 수도는 트랜터이다.


팔십 평생을 '심리역사학' 연구에 몰두한 해리 셀던은 공공연히 은하제국이 멸망할 것이며 3만년 동안 야만스러운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언(이라기보다는 증명)을 한다. 제국의 불순분자이다. 결국 은하제국의 통치자들은 해리 셀던과 그를 따르는 10만여 명이 넘는 과학자들을 은하 변방에 있는 터미너스라는 불모지로 추방한다. 해리와 추종자들은 터미너스에 정착하여 파운데이션을 세우고 3만 년으로 예상되는 야만의 시대를 1,000년으로 줄이기 위해 세워 놓은 미래 역사의 설계를 진행한다. 장대한 미래 우주역사 대서사시, 파운데이션 시리지의 시작이다.


그 유명한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F 작가 중 한 명인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SF 시리즈 중 하나인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로봇 시리즈와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원래 세계관이 다른 소설이었는데 나중에 세계관을 하나로 합쳐 버렸으니, 로봇-파운데이션 세계관의 첫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시모프가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감명을 받아 썼다고 한 만큼 <파운데이션>은 은하계의 장대한 미래역사를 다룬다. 관찰자로 등장하는 가알 도닉의 눈으로 바라 본 해리 셀던과 터미너스에 파운데이션이 건설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터미너스로 추방된 후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던 해리 셀던의 예측과 반전이 흥미롭다.


아이작 아시모프 Isaac Asimov 1920 ~ 1992. 소련 출신의 미국 작가. 유태인으로서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했다. 엄청나게 많은 저작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며, 아서 클라크, 로버트 A. 하인라인과 함께 세계 3대 SF 작가로 불리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 <로봇> 시리즈, 우주 3부작이 대표작.


심리역사학, 은하대백과사전.. 이건 페이크다!

심리역사학은 소설 <파운데이션>에서 가장 먼저 제시한 개념으로, '개인의 행동은 추측할 수 없지만 인간을 집단으로 다루면 그 흐름을 파악하고 조정까지 할 수 있다'는 가상의 학문이다. 해리 셀던은 심리역사학의 창시자이며, 일군의 심리역사학자들과 함께 1,000년 후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후 30,000년 동안 지속된다는 것을 증명해 내고 그 기간을 1,000년으로 줄이기 위해서 은하계 변방에 파운데이션을 세운다. 파운데이션의 목적은 인류의 지식을 집대성한 사전인 '은하대백과사전'을 만들어서 인류의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는 것이다. 


<파운데이션>은 처음 파운데이션을 설립하는 과정을 보여준 후, 파운데이션이 발전해 나가는 역사를 다루는데, 은하대백과사전을 편찬하는 것은 사실상 은하제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페이크였다. 그 사실을 몰랐던 사전 편찬자들은 현실이 흘러가는 것을 제대로 판단하여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 샐버 하딘 시장에 의해서 물러나고 샐버 하딘은 샐던 위기(파운데이션이 처한 큰 위기, 해리 셀던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을 한 방향으로 미리 설계해 놓았다)를 무사히 넘기면서 권력을 잡고, 파운데이션은 차츰 주변 성계를 지배해 나간다.


<파운데이션>의 시점에서는 이미 인류의 근원지가 어딘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 지구를 찾아 나서는 것이 시리즈의 주요 모티브 중 하나가 된다.


심리역사학이 멋진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통계학적으로 다룬다는 것과 그 흐름을 컨트롤해서 미래의 방향을 바꾼다는 소설의 아이디어는 정말 멋진 것 같다. 하지만 소설에서 세부적으로 적용할 때, 실제 역사에서는 중요한 순간, 단 몇 사람의 결단에 의해서 해리 셀던이 선택한 방향으로 나간다는 점이 좀 불안하다. 파운데이션의 첫 영웅인 샐버 하딘도 그렇고 이후에 등장하는 호버 말로도 마찬가지인 게, 그 개인들이 적절한 자리에 있어서 적절한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 혹은 무능력해서 계획을 실패했다면 해리 셀던의 계획은 크게 벗어났을 것이다. 일단 한 번 정해진 루트에서 벗어난 샐던 프로젝트(해리 셀던이 안배해 놓은 미래의 역사)는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으므로 장대한 계획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심리역사학은 통계학적인 사회학이기 때문에 큰 집단을 다룰 때는 유용하겠지만 개인의 심리를 다룰 때는 유용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소설 맨 처음 단 한 사람의 판단을 측정해서 파운데이션의 설립 장소를 터미너스로 예측한 것은 반전으로서는 멋진 장치이지만 심리역사학적인 측면에서 너무 개인의 판단에 도박을 걸었기 때문에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마찬가지 이유로 샐버 하딘이나 호버 말로같은 파운데이션 초기의 지도자들이 굉장히 개인적인 결단에 의해서 셀던 프로젝트를 수호해 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스러워 보인다. (결국 사단이 나고 말긴 하지만..)


애플이 파운데이션 드라마판 판권을 구매했다고 한다. 이미지는 왼쪽부터 해리 셀던, 뮬, 아르카디아 다렐로 추정된다.


★★★★☆

SF 소설을 좋아한다면 아시모프를 모를 수가 없고, 아시모프를 안다면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모를 수가 없다. SF 소설의 기념비적인 작품인만큼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예전에 9권짜리 책을 읽었는데 개정되어 나온 책을 오래 전에 샀다가 이제서야 새로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산 후에 혹시 <로봇>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 없는지 출판사에 문의를 했는데 별다른 계획은 없는 것 같다. SF 소설이 그렇게 독자층이 넓지 않은 편이라서 출판사에서 쉽게 손대지 못할 것 같기는 하다.


강력히 추천한다. 특히, 언제까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절판된 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SF 팬이라면 꼭 전권을 소장해 놓을 것을 권한다. (나왔을 때 사놓지 않아서 후회하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모프의 우주 3부작도 그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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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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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세요.


우발적인 살인을 한 모녀, 그들을 돕는 수학교사

수학교사인 이시가미는 옆방에 살고 있는 야스코라는 여자에게 마음이 있다. 야스코는 미사토라는 중학생 딸이 있는 이혼녀이지만 예쁘고 사랑스럽다. 어느날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야스코의 집에서 우당탕하는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되어 벨을 누르니 야스코가 나온다.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 머리가 흐트러지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방안에서 담배냄새가 나는데 담배를 피울 만한 사람의 신발이 없다. 그리고 거실 한가운데에 있는 고다스 안에 누군가 숨어 있는, 사실은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있다. 사람을 죽였구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야스코의 말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옆집의 모녀는 지금 큰 위험에 빠졌다. 큰 사건을 목격하고 나니 이시가미는 오히려 냉정해지고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야스코를 도와줘야겠어'. 결심을 한 이시가미는 야스코에게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부인하던 야스코도 침착한 이시가미의 추궁에 살인을 실토하고 만다. 이시가미는 머리를 식히고 사건을 덮을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그동안 두 권을 읽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처음 읽었는데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구성도 좋아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 후 읽은 <범인없는 살인의 밤>은 단편집이었는데,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후 찾아 보니 히가시노 게이고는 굉장히 다작을 하는 작가이고, 책의 완성도가 소설 별로 꽤 많이 차이난다는 것 알게 되었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게이고의 수많은 소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고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니 기대를 잔뜩하고 읽기 시작했다.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어설퍼 보이는 트릭, 그런데도 헤매는 경찰

야스코와 그의 딸 미사토가 야스코의 전 남편인 도미가시를 죽이면서 소설이 시작한다. 옆집에 살던 수학교사이면서 수학천재인 이시가미는 우연히 살인사건을 알게 되고 사모하던 모녀를 위해 살인사건을 감출 트릭을 만들어 낸다. 과연 모녀와 한 남자는 끝까지 살인 사건을 숨길 수 있을까? 이 소설의 극적 긴장감의 포인트다.


사건이 일어났으니 당연히 경찰이 따라 붙는다. 이시가미가 용의주도하게 트릭을 만들어 놨을 것 같은데 의외로 순식간에 모녀가 바로 용의자로 특정된다. 어설프다. '도대체 무슨 트릭을 썼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곧 잡힐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간다. 그런데 경찰은 이상하게 모녀의 알리바이를 깨지 못한다. 어설픈 트릭에 무능한 경찰의 두뇌싸움인 것 같았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최악의 스포일러

사건을 맡은 담당형사인 구사나기에게는 유가와 마나부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테도대학 물리학과 조교수이다. 가끔 풀리지 않는 사건의 조언을 해 주는 친구다. 우연찮게 이시가미와 구사나기, 마나부는 모두 테도대학 동기였고, 마나부는 이시가미와 잘 아는 사이다. 더군다나 마나부는 물리학부에서, 이시가미는 수학에서 천재로 유명했던 친구들이었다. 이제부터 자강두천의 두뇌싸움이 벌어질 것은 자명하다. 원래는 이쯤에서는 도대체 누가 이 두뇌싸움을 이길지 긴장하면서 책을 읽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까지 읽기 전에 알게 되었는데, 형사인 구사나기가 마나부를 부를 때, '갈릴레오'라고 부르는 장면이 나왔다. 그 순간, 이 책의 최고의 스포일러에 당하고 말았다. '갈릴레오'는 예전에 본 적이 있는 일본 드라마의 주인공이고 <용의자 X의 헌신>은 갈릴레오가 주인공인 시리즈물 중에 한 편이었다. 갈릴레오는 경찰을 돕는 천재 탐정 포지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모녀와 이시가미의 패배로 끝날 수밖에 없다. 긴장감의 한 축이 날아가 버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영화화가 많이 되었고, 드라마화도 되었다. 한국에서도 <용의자X>라는 제목으로 영화로 만들어 졌다. <용의자 X의 헌신>은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중의 하나로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에 하나이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고 트릭도 멋지다


많지는 않아도 일본에서 유명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초반에 몰입감이 굉장히 좋다. <용의자 X의 헌신>도 그렇다. 단지 갈릴레오가 누군지 몰랐더라면 훨씬 긴장감있게 읽을 수 있었을텐데, 그 점은 많이 아쉽다.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의 또다른 특징이 마지막 반전을 너무 신경쓴 나머지 무리하게 끝맺음을 해서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용의자 X의 헌신>은 마지막 트릭까지도 멋지게 배치해 놓아서 결말의 반전도 무릎을 치게 만든다. 


나는 이시가미에 감정이이입을 해서 읽었는데, 중간에 은혜도 모르고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야스코가 굉장히 싫었고, 갈릴레오가 튀어나오는 순간 짜증이 확 치밀어 올랐다. 야스코에 대해 복수하려고 하는 모습이 좀 이상했는데, 그것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이시가의 용의주도함에는 감탄했다. 진심으로 이시가미의 트릭이 성공하길 바랬는데, 갈릴레오의 방해 때문에 실패한 것이 너무나도 아쉽다. 이게 다 갈릴레오 때문이다!


★★★★☆


만약 갈릴레오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었을 것 같다. 하긴, 형사 콜롬보가 나온다고 해서 드라마의 긴장감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 갈릴레오가 이시가미의 트릭을 파헤치는 과정만 봐도 재미있다. 오랜만에 밤새워 읽은 책이다. 앞으로도 재미있다고 하는 게이고의 책을 좀 더 찾아 읽어 볼 생각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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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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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세계, 지구를 향해 진격하다

알파 센타우리는 지구에서 약 4.37광년 떨어진 가장 가까운 항성계이다. 지구의 인류는 오랫동안 외계의 생명체를 찾아 왔는데, 뜻밖에도 가장 가까운 항성계에, 그것도 인간보다 문명과 과학기술이 압도적으로 발달한 행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행성에는 세 개의 태양이 있는데 삼체문제의 불가해성 때문에 태양의 정확한 궤적을 알 수 없어서 안정적인 문명을 이룰 수 없고 수많은 문명이 명멸한다.


1부 삼체문제에서 예원제가 우주로 쏘아올린 신호 때문에 삼체세계는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지구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기 위해 대규모 선단을 꾸려 지구로 출발한다. 광속의 10% 속도로 우주를 항해하는 선단이 지구에 도착하는 것은 약 450년 후. 지구인들은 자손들이 외계인의 침략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지구적인 방어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남은 시간은 450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류츠신 1963`~ . 중국의 대표 SF소설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8년 연속 중국 SF문학상인 은하상을 수상했다.


인류를 향한 덫 지자, 인류의 마지막 희망 면벽자, 파훼하려는 파벽자

1부인 《삼체문제》에 이은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전편에서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외계행성인 삼체세계의 정체와 삼체세계를 주(主)로 모시는 지구 삼체조직의 실체가 밝혀졌다. 이제 삼체세계의 침략을 막을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전지구적인 과제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삼체세계에서 지구로 지자(智子)라는 양자 크기의 입자를 수도 없이 뿌려 놓은 것이다. 지자는 비록 하나의 작은 입자이지만 차원 접기를 통해 그 안에 삼체세계의 기술력이 집대성되어 있어서 기초과학의 결과물을 교란시켜서 지구의 과학이 발전하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지구는 삼체세계의 침략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과학을 발전시킬 수 없고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과학만으로 삼체세계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 더불어 지자는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을 삼체세계로 보내고 있어서 지구는 삼체세계 몰래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다.


지구의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염탐당하는 상황, UN은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그동안 시도해 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낸다. 그것은 면벽자,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삼체세계인들은 생각을 숨길 수가 없다. 따라서 계략을 짜낼 수 없다. 지자 역시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살펴볼 수 있지만 인간의 속마음까지 훔쳐볼 수는 없다. 면벽자들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지구를 구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자의 염탐을 막고 삼체세계가 계획을 알아내는 것을 막기 위해 면벽자들은 오로지 혼자만의 생각으로 지구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지구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네 명의 면벽자는 UN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포함해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각자 지구를 구할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채 면벽자로 선택된 뤄지는 모든 권력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지구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


한편, 지구의 삼체추종세력들은 면벽자 프로젝트를 깨기 위해서 각 면벽자에게 한 명씩의 파벽자를 붙여 놓는다. 당연히 그들의 정체는 비밀이다. 면벽자의 행동을 분석해서 그들의 계획을 미리 알아내 분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과연 면벽자는 지자와 파벽자의 눈을 피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생각'을 해낼 수 있을까?

 

잘 살펴보면 책 속에서 삼체세계가 있는 알파 센타우리 항성계가 이 사진 속에 있다. 누군가 지구의 위치를 신호로 보낼 가능성이 있어서 정확히 어떤 별인지는 표시하지 않겠다.


반전 또 반전, 전개가 무척 흥미롭다

첫번째 책인 《삼체 - 삼체문제》는 삼체문제라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를 잘 엮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삼체 - 암흑의 숲》의 흥미로운 소재는 면벽자이다. 이들의 임무는 지구를 살리는 것인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삼체세계와 그들의 하수인인 누군지 모르는 파벽자의 눈을 피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게다가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다. 홀로 외롭게 지구 구원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네 명의 면벽자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이다.


서로 숨기고 속이는 두뇌싸움. 따라서 《암흑의 숲》은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식으로 읽게 된다. 면벽자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그것을 마지막에 파헤치는 파벽자. 우리의 주인공 뤄지를 제외한 세 면벽자의 계획이 파벽자에 의해서 파헤쳐질 때, 반전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특히 세 번째 파벽자의 정체는 충격적이다. 세 면벽자의 계획은 엉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외부와 협조해서 세운 계획이기 때문에 삼체세계의 감시를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뜬금없이 항성에 저주의 부적을 날리고 그 계획을 확인하기 위해 동면에 들어간 뤄지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뤄지의 말도 안되는 행동의 숨은 뜻은 무엇이었을까? 동면을 마치고 185년 후 눈을 떴을 때, 세계가 삼체세계를 물리칠 자신감에 똘똘 뭉친 것은 또 무슨 함정일까? 삼체함대보다 더 빨리 지구로 항해해서 태양계에 도착한 물방울 모양의 척후선은 정말 화친의 사절일까?

 

삼체함대보다 200여년 앞서 지구에 도착한 '물방울'. 평화의 사절이라고 지구인들이 착각하는 동안 기습적으로 7대를 제외한 지구의 모든 함대를 박살내 버린다.


문득 드러나는 《파운데이션》의 오마쥬

《암흑의 숲》을 읽으면서 SF소설의 고전 중에 하나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인류문명이 멸망을 향해 가고 있고 그 기간이 상당히 길다는 설정. 멸망을 피하고 인류를 보전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며, 그의 계획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뤄지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 있어서 면벽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뤄지는 결국 《파운데이션》의 해리 셀던, R.다닐 올리버, 골란 트레비스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인류의 구원자이다. 그리고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에 비견할만한 가상의 학문인 '우주사회학'이 존재하는 것도 비슷하다.


책을 읽으며 받았던 이런 느낌은 240페이지에서 해리 셀던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확신하게 됐다.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광팬인 나로서는 참 반가웠다. 물론 《암흑의 숲》은 《파운데이션》에 비해 훨씬 하드SF적인 성격이 강하고 주된 멸망의 이유가 은하제국 내부의 사회적 모순이 아닌 외계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암흑의 숲》을 읽으면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의 영향이 느껴졌다.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 명의 면벽자가 실패하고 이제 면벽자는 뤄지 한 명밖에 없다. 동면에서 깨어나 본래보다 200년 일찍 도착한 삼체세계의 탐측기는 전 지구의 우주함대를 겨우 일곱 대만 남겨 놓고 모두 폭파시켜 버렸다. 그나마 남은 일곱 대 중 다섯 대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다른 항성계로 떠나버리고 지구는 이제 멸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뤄지는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동면에 들어가기 전 우주에 발사했던 저주의 주문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3부인 《사신영생》. 아직 우리나라에는 번역출판되지 않았다. 빨리 발간되길 바란다.


★★★★☆


《삼체》 1부 《삼체세계》에서 발생한 위기는 2부 《암흑의 숲》에서 결국 해결이 된다. 뤄지의 저주는 지구를 구했다. 마지막 두 개의 공리를 이용해서 지구를 구한 방법을 스창에게 설명하는 장면 역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던 아시모프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 뤄지가 지구와 삼체세계의 운명을 걸고 펼친 마지막 도박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추리소설의 마지막 자물쇠가 열리는 것같은 시원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좀 두꺼운 책이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SF매니아라면 정말 좋아할 책이다. 최신 과학이론을 이렇게까지 요리해서 책 속에 녹여놓은 책은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리학, 우주론, 차원이론, 양자론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읽는게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인다.


뤄지가 면벽자로 선택된 것은 삼체세계가 뤄지를 제거하려고 하는 시도를 보고 UN이 뭔가 삼체세계가 뤄지를 노린 이유가 있어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마지막까지 삼체세계가 왜 뤄지를 제거하려고 했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책이 시작할 때, 예원제가 뤄지에게 '우주사회학'의 공리를 알려주는 것을 알게되어 위험인물로 판단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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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가족
오에 겐자부로 지음, 오에 유카리 그림, 양억관 옮김 / 걷는책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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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극복하기 힘든 굴레

예전에 지인의 소개로 자폐증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하는 모임을 몇 년간 알고 지냈던 적이 있다. 아이들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했고, 처음 아이들을 봤을 때 상당히 당황했다. 하지만 부모들은 어떻게든 아이들과 소통을 하고 있었고, 아이들을 다른 사람들 속에서 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이 때 어떤 부모님에게 들은 것인지 아니면 전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아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말이 특히 장애인, 특히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자폐아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의 바람이라는 것을 듣고 참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자폐아이들 부모의 또다른 바람이 아이에게 서번트 증후군을 기대한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오에 겐자부로 大江 健三郎 (1935 ~ ) 일본의 소설가. 1958년 《사육》으로 아쿠다가와 상을 시작으로 일본 대표 작가로 발돋움하였고,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두 번째로 일본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일상을 담은 오에 겐자부로의 에세이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이 자랑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1994년에 수상했으니 벌써 25년 전이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몇 권 읽기는 했는데, 되돌아 보니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모두 에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오에의 일상생활을 담은 에세이다. 그런데..


유명한 얘기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큰 아들 오에 히카리는 선천적인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뇌수술을 받았고,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 그 후에도 자폐증 증세를 보이고 지능도 낮아서 혼자서 살기 힘들다. 게다가 뇌전증까지 앓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장남이 태어난 후 모든 사람이 히카리를 위주로 돌아가게 됐다고 한다.

《회복하는 가족》은 오에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다. 오에의 아들은 장애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오에 겐자부로의 일상에서 히카리의 장애는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결국 오에 겐자부로의 일상은 히카리를 빼고는 얘기할 수 없고, 《회복하는 가족》은 오에 겐자부로와 오에 히카리의 삶을 함께 쓴 겐자부로 가족의 일상을 적은 글이 되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인 오에 히카리 大江 光 (1963 ~ )는 태어나서부터 3년동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삶을 기대하기 힘든 아기였다. 수술 후 기적적으로 살 수는 있었으나 언어장애, 행동장애, 자폐증을 가지고 있으며, 지능지수는 65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음악재능을 발휘하였고, 현재는 두 장의 베스트셀러 앨범을 발매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잔잔함 속에 숨어 있는 태풍

《회복하는 가족》은 굉장히 잔잔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오에 겐자부로에겐 왠지 감정의 동요가 없어 보인다. 스무 개의 소제목과 그 아래 담겨있는 몇 개의 에피소드를 굉장히 담담한 필치로 적어 내려간다.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어느날은 아들 히카리와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 고집을 피우는 히카리를 내버려두고 물건을 산 후 히카리를 잃어버리고 놀라기도 한다. 아내 유카리, 그리고 히카리와 함께 유럽으로 여행을 할 때는 과연 아무 문제없이 여행을 마칠 수 있을지 계획하는 내내 불안하다. 장애를 가지고 이미 30세에 달한 아들(그리고 치매 증상을 보이는 아내의 어머니)을 돌보며 사는 생활이 어떻게 잔잔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잔잔해 보이는 이유는 이미 수많은 고통을 겪고 힘든 삶을 받아들이면서 인생에 대해 관조하는 태도를 지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책을 읽다보면 언뜻 마치 다른 사람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부분이 보인다. 어찌보면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또 그나마 경제적,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최고 작가라는 위치가 그런 여유를 갖게 한다는 점에서 많은 장애인 가족이 부러워할 만한 최적의 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히카리가 가진 음악재능을 발견하고 주변의 인맥을 통해 키워줄 수 있었던 것도 겐자부로 가족에겐 큰 행운이었을 것이다.


낭만적인 '문학적인' 삶

제목부터 '회복하는 가족'이고 오에 겐자부로의 삶에서 히카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에피소드가 대부분이지만 문학가로서 오에 겐자부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즐거운 점이다. 자꾸만 등장하는 일본의 예술가는 잘 몰라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읽을 수밖에 없지만(다른 나라 예술가라고 해서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많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마치 고등학교 문학 소년소녀처럼 하나의 에피소드 → 생각 → 에피소드 후일담 식으로 글이 진행되는데, 마치 예전 어릴 때 '빨강머리 앤'이 '너무 낭만적이야'를 연발하며 친구에게 자신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낭만적인 문학감성이 이렇게 차고 넘치는 글을 읽은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안날 정도인데 이 책은 어릴 때의 그럼 감성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참 좋다.

 

책 속에서 언급된 오에 히카리의 두 번째 앨범. 일본에서 10만 장 이상이 팔리면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가장 마음에 드는 두 개의 에피소드
20개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두 개 다 히카리의 말과 관련된 것이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올해 쉰여섯 살이 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것 같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보다 더 크게는 쓸 수 없습니다. 나는 문장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매일 저녁 나절이 좋습니다. 그것은 저녁을 나르는 일입니다. 어느 가족이건 차찬가집니다. 저녁 나절이라고 해도 다섯 시입니다.
이빨은 튼튼한가요. 매주 수요일이 되면 치과 의사에게 가는데, 조심하겠습니다.
나는 별로 겁나지 않습니다.
p.131


히카리가 56세를 맞은 엄마인 오에 유카리에게 쓴 편지인데, 그냥 언뜻 읽어서는 대체 무슨 말을 써놓았는지 알 수 없다. 이 글을 오에 겐자부로가 나름대로 이해하고 해설을 해나가면서 히카리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꼭 추리 소설에서 암호를 푸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히카리에 대한 오에 겐자부로의 사랑이 있으니 따뜻함이 함께 느껴진다.

 


힘내서 제대로 죽으세요!
p. 165


히카리가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잔뜩 친해졌다가 헤어지면서 한 말이다. 이 부분을 읽다가 진심으로 빵터졌다. 그리고 조금 후 할머니를 걱정하는 조금 모자란 손자의 저 얘기를 듣고 할머니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헤아려 보니 감동적이면서도 참 여러가지 감정이 느껴졌다.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집에 오면서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여동생, 전해듣고 오에 겐자부로가 할머니와 통화하며 히카리의 선의를 설명하는 동안 전화통 옆에서 귀를 기울이는 가족들,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은 할머니, 히카리가 실수로 내뱉은 한마디로 연출된 이 장면이 참 따뜻했다.


★★★★☆

참 따뜻한 마음이 드는 에세이다. 그리고 문학적인 감성을 일깨우기도 하는 글들이 가득해서 한때 문학소년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이 그리워지는 책이었다. 아들 히카리를 걱정하는 다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해서 따뜻하다. 추천한다.


P.S. 마지막 장에 누군가 오에 겐자부로의 집 앞에 놔둔 엽서에 씌여진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만일 '오에 히카리'가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이 아니었더라면 과연 천하의 '산토리 홀'에서 발표회를 가질 수 있었을까. 또한 CD로 나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일본에서 일류로 인정받는 연주가들(세계 수준에서는 많이 ?어지지만)의 협력을 얻을 수 있었을까. (후략)
p. 267


오에 히카리의 성공이 사실은 히카리의 재능이 아니라 오에 겐자부로의 사회적 지위에 힘입은 결과가 아니냐는 참 아픈 비판이다. 사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정말 오에 히카리가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한 많은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성공한 음악가가 된 것 처럼 보이는 것은 아닐까? 오에 히카리의 음악을 인터넷에서 찾아 들어 봤지만 이 질문에 대한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에 겐자부로가 쓴 답변 역시 명쾌한 해답은 되지 않았다. 그저 오에 겐자부로가 세계적인 문학가일지라도 아들이 히카리같은 장애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일 뿐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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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속살 1 - 경제학 편 경제의 속살 1
이완배 지음 / 민중의소리 / 2018년 12월
평점 :
품절


 


인간은 이기적이며 똑똑하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라고들 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따로 구분되지 않았을 때,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다른 학문과 따로 구분되지 않았을 때, 《국부론》을 써서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의 이론을 정립했다. 그리고 이기적인 시장참여자들이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적정선에서 시장가격이 형성된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가의 시장개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고전주의 경제학의 탄생이다.


케인즈는 생각이 달랐다. 20세기 초,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경제공황의 덫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장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돈을 쓸 사람이 없으면 시장이 활성화될 수 없다. 정부는 아무 필요없는 뻘짓을 해서라도 돈이 돌게 해야 시장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즈학파의 이름은 당연히 그의 차지였다.


케인즈학파의 이론이라고 해서 영원히 경제학의 왕좌를 차지할 수 없었다. 20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세계경제는 이제 국가간의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되고, 예전에는 경제학의 문제였던 경쟁체제가 인간의 모든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모든 경제주체가 극단적인 경쟁에 내몰리고 효율성이 최고의 덕목이 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도덕, 윤리, 인간성을 모두 파괴하는 경제학, 지금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시대다.

 

이완배 1971~ . 서울대학교 국제경제학과 졸업. 동아일보 사회부와 경제부에서 기자로 일하다 네이버 금융서비스 팀장을 거쳐 2014년부터 민중의소리 경제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팟캐스트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된 이완배 기자

'이완배 기자의 경제 속살 ~♪' 인기 팟캐스트인 '김용민 브리핑'에서 인터넷 신문인 '민중의 소리' 경제부 이완배가 기자가 등장하기 전에 나오는 시그널 음악이다. 동아일보 출신인 이완배 기자가 '친구의 강압적인 권유'에 의해서 민중의소리 기자가 된 것은 이 팟캐스트를 듣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요새 너무 정치이슈에 몰입하는 것 같아서 해당 팟캐스트를 전부 듣지는 않고 있지만 이완배 기자의 경제해설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듣고 있다.


사실 경제부 기자(든 다른 기자든)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완배 기자의 설명, 그의 논조, 관점은 경제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몇 안되는 기자 중에 한 명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휴가를 내고 책을 쓴다고 하니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그가 쓴 책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는 것은 당연지사.

 

아담 스미스 Adam Smith 1723~1790. 경제학의 아버지.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를 마련했다.

 

행동경제학, 게임이론, 그리고 인간을 위한 경제학

 

경제학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 보자. 고전경제학과 케인즈학파,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경제학은 두가지 대전제가 있다.
1.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적인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2.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현재 여건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는 행동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고전주의나 신자유주의는 이런 전제하에 경제학을 설명하고 이론의 틀을 잡아나간다. 하나의 이론을 깨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틀의 대전제를 깨는 것이다. 이완배 기자는 신자유주의를 깨는 도구로 행동경제학과 인간을 위한 경제학을 활용한다.


행동경제학은 행동심리학에서 파생되어 경제학에 편입되었다.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할 때,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기존의 생각과는 달리 행동경제학에서는 인간이 때로는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엉뚱한 이유로 선택을 한다고 주장한다. 최초로 행동경제학 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은 노벨상을 받을 때도 심리학자였다. 이완배 기자는 그동안 수많은 실험과 연구결과를 실증된 행동경제학의 실험들을 토대로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3부인 '여러 경제학 이론들'에서는 인간이 단순히 이기적인 이유로 자신의 이익이 최대한 보장되는 경제활동을 한다고 전제했을 때, 이해하기 힘든 경제현상들을 제시하면서 인간은 예상보다 이타적인 존재이며 그 이타성을 근거로 차가운 경제학이 아닌 따뜻한 경제학이 성립할 수 있다고 역설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신자유주의로 황폐해지는 경제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틀어서 따뜻하고 인간적인 사회를 위한 경제학을 꽃피우고 싶어하는 한 경제기자의 작은 몸짓이 드러난 책이다.

 

대니얼 카너먼 Daniel Kahneman 1934~ . 이스라엘의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 행동경제학으로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쉬운말로 쓴 날카로운 사회비판

이 책의 탁월한 점은 경제학의 이론을 이론만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회현상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원래 매일 방송했던 팟캐스트의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기도 하고 저자가 기자이기 때문에 경제학을 단순한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과 밀접하게 접목시켜 놓았다. 재벌의 행태, 정치가의 잘못된 선택을 꼬집으며 그들의 행동이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투명하게 사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더불어 경제학 기자가 쓴 경제학 책이라고 하기엔 정말 쉬운 구어체로 씌여 있어서 읽기 편하다. 굉장히 어려운 이론들을 마치 중고생에게 설명하듯이 풀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읽는데 어려움이 없어서 성인뿐만 아니라 중고생들도 아주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또 책의 중간중간 이완배 기자의 짤막한 논평(인듯한 욕)을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에 하나다.

 

죄수의 딜레마는 게임이론 중에서 가장 유명한 예시 중에 하나이다. 게임 참가자가 최선의 선택을 했을 때, 전체적으로는 최선의 결과를 내지 못한다. 로버트 액설로드는 연속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이용하여 협력이 창발하는 원리를 설명했다.


★★★★☆

자세히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2부 게임이론도 죄수의 딜레마나 팃포탯을 중심으로 가장 핵심이 되는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았으니 게임이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평소 관심이 있던 문제들에 대해 잘 정리된 작은 사전을 보는 기분이 드는 좋은 책이다. 특히 책을 읽는 동안 사회를 바라보는 이완배 기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다.


사회와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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