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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 2부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단숨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삼체세계, 지구를 향해 진격하다
알파 센타우리는 지구에서 약 4.37광년 떨어진 가장 가까운 항성계이다. 지구의 인류는 오랫동안 외계의 생명체를 찾아 왔는데, 뜻밖에도 가장 가까운 항성계에, 그것도 인간보다 문명과 과학기술이 압도적으로 발달한 행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행성에는 세 개의 태양이 있는데 삼체문제의 불가해성 때문에 태양의 정확한 궤적을 알 수 없어서 안정적인 문명을 이룰 수 없고 수많은 문명이 명멸한다.
1부 삼체문제에서 예원제가 우주로 쏘아올린 신호 때문에 삼체세계는 지구의 존재를 알게 되고 지구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기 위해 대규모 선단을 꾸려 지구로 출발한다. 광속의 10% 속도로 우주를 항해하는 선단이 지구에 도착하는 것은 약 450년 후. 지구인들은 자손들이 외계인의 침략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지구적인 방어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남은 시간은 450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류츠신 1963`~ . 중국의 대표 SF소설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8년 연속 중국 SF문학상인 은하상을 수상했다.
인류를 향한 덫 지자, 인류의 마지막 희망 면벽자, 파훼하려는 파벽자
1부인 《삼체문제》에 이은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전편에서는 미지의 영역이었던 외계행성인 삼체세계의 정체와 삼체세계를 주(主)로 모시는 지구 삼체조직의 실체가 밝혀졌다. 이제 삼체세계의 침략을 막을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전지구적인 과제이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삼체세계에서 지구로 지자(智子)라는 양자 크기의 입자를 수도 없이 뿌려 놓은 것이다. 지자는 비록 하나의 작은 입자이지만 차원 접기를 통해 그 안에 삼체세계의 기술력이 집대성되어 있어서 기초과학의 결과물을 교란시켜서 지구의 과학이 발전하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지구는 삼체세계의 침략에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과학을 발전시킬 수 없고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과학만으로 삼체세계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 더불어 지자는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을 삼체세계로 보내고 있어서 지구는 삼체세계 몰래 아무런 대책도 세울 수 없다.
지구의 모든 상황이 실시간으로 염탐당하는 상황, UN은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그동안 시도해 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낸다. 그것은 면벽자,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삼체세계인들은 생각을 숨길 수가 없다. 따라서 계략을 짜낼 수 없다. 지자 역시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살펴볼 수 있지만 인간의 속마음까지 훔쳐볼 수는 없다. 면벽자들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지구를 구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지자의 염탐을 막고 삼체세계가 계획을 알아내는 것을 막기 위해 면벽자들은 오로지 혼자만의 생각으로 지구를 구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지구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네 명의 면벽자는 UN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포함해서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각자 지구를 구할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채 면벽자로 선택된 뤄지는 모든 권력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지구의 미래에는 관심이 없다.
한편, 지구의 삼체추종세력들은 면벽자 프로젝트를 깨기 위해서 각 면벽자에게 한 명씩의 파벽자를 붙여 놓는다. 당연히 그들의 정체는 비밀이다. 면벽자의 행동을 분석해서 그들의 계획을 미리 알아내 분쇄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다. 과연 면벽자는 지자와 파벽자의 눈을 피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생각'을 해낼 수 있을까?

잘 살펴보면 책 속에서 삼체세계가 있는 알파 센타우리 항성계가 이 사진 속에 있다. 누군가 지구의 위치를 신호로 보낼 가능성이 있어서 정확히 어떤 별인지는 표시하지 않겠다.
반전 또 반전, 전개가 무척 흥미롭다
첫번째 책인 《삼체 - 삼체문제》는 삼체문제라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를 잘 엮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삼체 - 암흑의 숲》의 흥미로운 소재는 면벽자이다. 이들의 임무는 지구를 살리는 것인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삼체세계와 그들의 하수인인 누군지 모르는 파벽자의 눈을 피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게다가 누구와 상의할 수도 없다. 홀로 외롭게 지구 구원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네 명의 면벽자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이다.
서로 숨기고 속이는 두뇌싸움. 따라서 《암흑의 숲》은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식으로 읽게 된다. 면벽자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그것을 마지막에 파헤치는 파벽자. 우리의 주인공 뤄지를 제외한 세 면벽자의 계획이 파벽자에 의해서 파헤쳐질 때, 반전의 희열을 느끼게 된다. 특히 세 번째 파벽자의 정체는 충격적이다. 세 면벽자의 계획은 엉뚱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외부와 협조해서 세운 계획이기 때문에 삼체세계의 감시를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뜬금없이 항성에 저주의 부적을 날리고 그 계획을 확인하기 위해 동면에 들어간 뤄지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 뤄지의 말도 안되는 행동의 숨은 뜻은 무엇이었을까? 동면을 마치고 185년 후 눈을 떴을 때, 세계가 삼체세계를 물리칠 자신감에 똘똘 뭉친 것은 또 무슨 함정일까? 삼체함대보다 더 빨리 지구로 항해해서 태양계에 도착한 물방울 모양의 척후선은 정말 화친의 사절일까?

삼체함대보다 200여년 앞서 지구에 도착한 '물방울'. 평화의 사절이라고 지구인들이 착각하는 동안 기습적으로 7대를 제외한 지구의 모든 함대를 박살내 버린다.
문득 드러나는 《파운데이션》의 오마쥬
《암흑의 숲》을 읽으면서 SF소설의 고전 중에 하나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선 인류문명이 멸망을 향해 가고 있고 그 기간이 상당히 길다는 설정. 멸망을 피하고 인류를 보전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며, 그의 계획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게다가 뤄지는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 있어서 면벽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뤄지는 결국 《파운데이션》의 해리 셀던, R.다닐 올리버, 골란 트레비스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인류의 구원자이다. 그리고 《파운데이션》의 '심리역사학'에 비견할만한 가상의 학문인 '우주사회학'이 존재하는 것도 비슷하다.
책을 읽으며 받았던 이런 느낌은 240페이지에서 해리 셀던에 대한 언급이 나오면서 어느정도 확신하게 됐다.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광팬인 나로서는 참 반가웠다. 물론 《암흑의 숲》은 《파운데이션》에 비해 훨씬 하드SF적인 성격이 강하고 주된 멸망의 이유가 은하제국 내부의 사회적 모순이 아닌 외계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은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암흑의 숲》을 읽으면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의 영향이 느껴졌다.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 명의 면벽자가 실패하고 이제 면벽자는 뤄지 한 명밖에 없다. 동면에서 깨어나 본래보다 200년 일찍 도착한 삼체세계의 탐측기는 전 지구의 우주함대를 겨우 일곱 대만 남겨 놓고 모두 폭파시켜 버렸다. 그나마 남은 일곱 대 중 다섯 대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 다른 항성계로 떠나버리고 지구는 이제 멸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뤄지는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동면에 들어가기 전 우주에 발사했던 저주의 주문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3부인 《사신영생》. 아직 우리나라에는 번역출판되지 않았다. 빨리 발간되길 바란다.
★★★★☆
《삼체》 1부 《삼체세계》에서 발생한 위기는 2부 《암흑의 숲》에서 결국 해결이 된다. 뤄지의 저주는 지구를 구했다. 마지막 두 개의 공리를 이용해서 지구를 구한 방법을 스창에게 설명하는 장면 역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던 아시모프의 영향이 짙게 느껴진다. 뤄지가 지구와 삼체세계의 운명을 걸고 펼친 마지막 도박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추리소설의 마지막 자물쇠가 열리는 것같은 시원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좀 두꺼운 책이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SF매니아라면 정말 좋아할 책이다. 최신 과학이론을 이렇게까지 요리해서 책 속에 녹여놓은 책은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리학, 우주론, 차원이론, 양자론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읽는게 어려울 수도 있어 보인다.
뤄지가 면벽자로 선택된 것은 삼체세계가 뤄지를 제거하려고 하는 시도를 보고 UN이 뭔가 삼체세계가 뤄지를 노린 이유가 있어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마지막까지 삼체세계가 왜 뤄지를 제거하려고 했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책이 시작할 때, 예원제가 뤄지에게 '우주사회학'의 공리를 알려주는 것을 알게되어 위험인물로 판단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강력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