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 - 동갑내기 두 거장의 예술론.교육론
오에 겐자부로.오자와 세이지 지음, 정회성 옮김 / 포노(PHONO)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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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도, 그리고 문학도 인간을 지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 이게 아닌가 싶어요.
p. 116


너무 흔해서 무시되는..

'취미가 뭐예요?'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치자. 이렇게 물어 보는 사람은 내 입에서 '독서'와 '음악감상'이 취미라는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건 마치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밥이요'라고 답하는 것처럼 심심하고 인상적이지 못한 대답같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전각'과 '합창', '오카리나'같이 질문자가 만족할 만한 답변을 준비해 두고 있다.(실제로 내 취미이다.) 하지만 밥먹고 일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독서와 음악감상이다. 책과 음반을 사는데 가장 돈을 많이 쓰기도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이 나는 내 취미를 취미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학과 음악은 너무나 흔하다. 그래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실제로 문학과 음악에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 생각해 보면 굉장히 심한 착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정신 집중해서 흘려 보내지 않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면 문학과 음악이 흔하기는 하지만 주변에서 둥둥 떠다니기만 할 뿐이지 실제로 손을 내밀어 잡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자와 세이지 小澤 征爾 (1935 ~ ) 일본의 지휘자. 피아니스트로 출발하여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시작, 토론토 심포니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음악감독, 빈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일본 최고의 동갑내기 거장

물론 이견이야 있을 수 있지만 일본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사람은 오자와 세이지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지휘한 음반이 몇 장 있는데, 사실 다른 일본의 클래식 음악가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오자와 세이지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오자와 세이지가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한다면 오에 겐자부로가 일본의 문학을 대표한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최근 매년 밥먹듯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일본에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함께 유이하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우연찮게도 두 명은 모두 1935년생이 친구여서 이 대담이 성립되었다. 대담이 있었던 때 두 사람은 65세, 한창 의욕적인 활동을 있었던 이 대담의 주인공들은 지금 83세가 되었다. 이 대담기록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두 거장의 (잡담을 가장한) 치열한 삶과 예술에 관한 기록이다.

 

오에 겐자부로 大江 健三郎 (1935 ~ ) 일본의 소설가. 1958년 《사육》으로 아쿠다가와 상을 시작으로 일본 대표 작가로 발돋움하였고,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두 번째로 일본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음악, 문학, 예술 그리고 삶

오자와 세이지는 일본의 전쟁 패망 전에 만주에서 태어나 종전 후 일본으로 입국했고,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시골 깡촌에서 태어났다. 둘 다 일본에서 교육받고 자랐지만 세계적인 예술가로 발돋움하면서 일본의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인으로서 보편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런 시각은 오자와보다는 오에에게 있어서 더 두드러지는데, 서양에서 활동하면서 서양음악을 지휘하는 오자와에 비해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어로 글을 쓰는 오에가 더 탈일본의 경향을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대담은 대체로 서로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부드럽게 진행되는데, 두 사람의 관심은 좀 다르다. 오자와는 과거와 현재의 성과를 미래로 연결하는데 관심이 많고 오에는 개별적인 존재로서 개인의 가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강조한다. 그러니까 오자와는 교육에 관심이 많다면 오에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사회, 특히 정치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인다. 주된 관심사는 달라 보이지만 둘 중의 한 명이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피력하면 상대방은 동의를 표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며 대담은 분위기 좋게 진행된다.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은 오에 히카리 大江 光 (1963 ~ )는 태어나서부터 3년동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삶을 기대하기 힘든 아기였다. 수술 후 기적적으로 살 수는 있었으나 언어장애, 행동장애, 자폐증을 가지고 있으며, 지능지수는 65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음악재능을 발휘하였고, 현재는 두 장의 베스트셀러 앨범을 발매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삶과 생각이 묻어 있는 편안한 대화

 

토론이 아니라 대담이면서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날카로운 구석이 전혀없는 책이다. 때로 거장들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들이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구름 위에서 돌아다니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진솔하게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에의 아들인 히카리가 자폐를 겪으면서 느꼈을 오에의 슬픔도 잔잔하게 느껴지고, 미국에서 스티립쇼를 관람했던 오자와의 쑥스러움도 느껴진다. 그 가운데 삶을 대하는 두 거장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대담이라고 해서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의도적으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좀 어렵지만 서로 존중하는 두 친구가 생각나는대로 떠드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의 큰 장점이다. 두 사람은 좀 민망스러울 정도로 서로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사심없이 상대방의 일화를 끄집어 내면서 편안하게 대화하기 때문에 좀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지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

나는 소설가도 아니고 음악가도 아니다. 그저 취미로 둘다 즐기는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깊이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얘기가 재미있었지만 곁에서 엿듣기만 하고 대화에 끼여들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는만큼 배울 수 있다. 나는 내가 아는만큼만 읽었을 것이고, 음악이나 문학에 조예가 깊은 독자라면 스쳐지나가는 두 사람의 일상같은 대화속에서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라는 제목과는 달리 실제 오에는 자신의 문학과 오자와의 음악에 대해서 깊이있게 얘기하는데 반해 오자와는 오에의 문학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오에의 소설을 많이 읽어 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오에의 아들인 히카리가 작곡가이기 때문에 히카리에 대해서 언급을 할 뿐이다.(히카리는 자폐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작곡가가 되었다. 아마도 서번트 증후군이 함께 있는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머리 식힐 겸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분량도 많지 않고..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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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강의 -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과 그의 제국 이야기
왕리췬 지음, 홍순도 외 옮김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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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절대절명의 위기

왕위에 오른지 어언 20년, 영정은 이미 한과 조를 멸망시켰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었다. 연에서 온 사신 형가는 진을 배신하고 연으로 도주했던 번어기의 수급과 영정이 눈독들이던 독항 지역의 지도를 가지고 와서 연의 항복을 청한다. 항복을 받아들이면 이제 남은 건 위, 초, 제 세 나라뿐. 그런데 어전으로 나서는 형가 옆에 있던 진무양이라는 자의 안색이 창백하다. 이상한 낌새를 챘지만 형가에게 진상픔을 들고 가까이 올 것을 지시한다.


형가는 멍청한 진무양을 속으로 책망한다. 애초에 기다리던 친구가 늦어 연의 공자 단이 억지로 붙여 보낸 녀석인데, 열세 살부터 살인을 할 정도로 흉악한 자라 했으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새가슴이 되어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큰 일을 그르치게 생겼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독항의 지도 속에 숨겨놓은 명검, 서부인을 빼들어 진왕 영정을 치려면 몇 발짝 더 다가서야 한다.


때가 왔다. 이제 영정과의 거리는 겨우 몇 걸음. 형가는 서부인을 빼어 들고 영정에게 달려들어 영정의 소매를 부여 잡았다. 순식간에 사신이 자객으로 변했지만 영정 역시 수없이 많은 위기를 헤치고 살아온 인물. 소매는 찢어지고 겨우겨우 피해냈다. 하지만 형가의 형세는 노도와 같다. 이리저리 피하는 영정을 다른 대신들은 도울 수 없다. 진의 법에는 왕의 허락없이 무기를 들고 어전에 오르면 멸족을 당하기 때문이다.


영정이 허리춤에 매달린 장검은 너무 길어서 칼집에서 잘 빠지지 않는다. 형가의 칼에 찔릴 뻔한 일촉즉발의 순간, 어전 밑에 있던 하우저가 약주머니를 둘 사이에 던지고 형가는 순간 당황한다. 신하들이 칼을 등에 메라고 와치니 그때야 영정이 깨닫고 칼을 빼어들어 형가의 허벅지에 장검을 꽂았다. 형가의 야심찬 암살 시도는 이렇게 실패로 끝이 난다.


진의 왕인 영정이 천하의 황제인 진시황이 되기 이전에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이렇게 넘어가고, 《진시황강의》는 중국역사상 가장 긴박한 활극이 펼쳐진 형가의 영정 암살미수사건으로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왕리췬 (1945 ~ 허난대학교 문학원 교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사기 연구가. 중국 CCTV의 인문교양 프로그램인 백가강단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진나라의 관점에서 기술한 춘추전국시대

《진시황강의》은 진시황 강의라고는 하지만 오로지 진시황의 일대기만을 기술해 놓지는 않았다. 원래는 중원의 서쪽에 있는 작은 씨족세력을 경대부 가문으로 승격시킨 효공, 주의 평왕이 낙읍에서 새롭게 왕조를 이어나가는 것을 도와 진을 제후국의 반열에 올려 놓은 양공, 춘추시대 오패 중의 한 명으로서 천하에 명성을 떨친 목공, 상앙을 등용하여 전국칠웅 중에서 진을 유일한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효공 등 선대의 중요한 군주들을 안내하고 그 와중에 명멸해간 중요 인물들도 함께 설명한다.


많은 책들이 진은 군사적으로 강하기는 했으나 바람직하지 않은 국가로 보는 경향이 짙다. 이후 시대에 중국사상의 주류를 차지한 유가, 도가의 대척점에 법가에 충실했던 진이 있었기 때문일텐데, 《진시황강의》는 진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진을 굉장히 긍정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진시황이 주인공이니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제환공이나 진문공에 밀린 진목공을 부각시키고, 위문후나 무후보다 많이 폄하되는 느낌이 있던 진효공의 업적을 자세히 살펴 보는 것은 이 책의 재미 중에 하나이다.

 


진시황 (BC 259 ~ 210). 진 秦의 31대 군주. 통일 진나라의 초대 황제. 이름은 영정 嬴政이다.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중국 전토를 통일하여 중국대륙 최초의 황제 자리에 올랐다.


영정의 등극

책이 상당히 두껍다 그래서 이후에 진시황이 되는 영정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의 내용만 해도 140페이지 이상이 되는데 영정은 아직 등장하지도 않는다. 돈으로 세상을 산 여불위와 가능성이 없던 상황에서 왕이 되었으나 3년만에 죽은 자초(이인), 왕비가 되었으나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국정을 망친 조희, 조희의 정부였던 노애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펼쳐진 후 드디어 영정의 친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드디어 다른 여섯 개의 나라를 정벌하는 영정의 활약이 시작......되지 않는다.

 

이사 李斯 ( ~ 208) 진나라의 재상. 초나라 출신으로 원래는 여불위의 식객이었으나 후에 진시황에게 발탁되어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 진의 통일 후에 문물의 정비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진시황 사후 환관 조고의 설득에 넘어가 호해를 황제로 옹립하고 조고의 계략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육국의 역사와 멸망원인을 제시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전국시대 책들과는 좀 다르게 편집되어 있다. 흔히 역사에 관한 책, 특히 전국시대처럼 여러나라가 이리저리 얽혀 있어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기에 관한 책은 시간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사건들을 밟아나가기 마련이다. 전국시대는 거기에 덧붙여 유명한 인물들과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배치해 놓으면 딱 좋은 시대이다.


하지만 《진시황강의》는 우선 진의 역사를 주욱 훓어 나간 후에 진에게 복속당하는 국가의 역사를 차례대로 설명한단. 그러니까 진나라로 세로로 씨줄을 만들어 놓고, 시간순으로 역사를 가로로 짜내려가다가 위나라의 멸망에 다다르면 날줄을 멈추고 또 세로줄을 짠다. 그 다음에는 또 날줄을 짜내려가다 조나라의 세로 줄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전국시대라는 천을 짜내려 간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 동시기의 사건도 파악할 수 있으면서 한 국가의 통사도 같이 살펴 볼 수 있어서 전국시대를 전체적으로 머릿속에 정리하기 좋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진의 역사만을 다루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결국 일곱 개 국가의 흥망성쇠를 모두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춘추전국시대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책의 제목이 《진시황강의》인만큼 역사의 중심에 배치된 것은 진이고 진시황이다.

 

만리장성. 중국에서는 장성이라고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시황 시대에 지어진 것이 아니고 진시황은 그동안 만들어져 있던 만리장성을 연결했을 뿐이다. 이후에도 명, 청 시기까지 장성은 계속해서 지어졌고, 총 길이는 만리가 넘는다.


꼼꼼하게 따지는 역사학자의 눈

저자인 왕리췬은 전국시대 6개국의 멸망의 원인과 시황제 영정의 등극 뿐만 아니라 조고의 유서 위조, 2세 황제 호해의 동의, 이사의 배신 및 진의 멸망까지 다루면서 모든 사건에 그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시한다. 그것도 마치 수험생에게 설명하듯이 번호를 매겨, 원인1, 2, 3, 4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 설명은 왕리췬의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크게 무리없는 해석이여서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정리하다 보니 딱히 다시 짚지 않아도 되는 내용을 되풀이하는 경우도 많다.


굉장히 두꺼운 책이고 어려운 역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건을 설명할 때 상황에 살을 붙여서 읽는 재미도 있고 번역도 깔끔해서 읽는 동안 막히는 일이 없다. 진시황 등극 후에 내용에 대한 흥미가 좀 떨어지기는 하는데, 이건 원래 역사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진시황 사후, 조고의 활약으로 내용이 다시 흥미진진해 지니 조금만 참으면 된다.

 

백가강단은 중국의 CCTV에서 방송하는 인기있는 인문강좌이다. 2001년 시작하여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삼국지 강의로 유명한 이중톈 등의 인기 강사를 배출하며, 일반인을 위한 인문강좌로 현재는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

책의 두께가 어마어마한 것에 대한 부담감만 벗어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교양서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전국칠웅의 역사와 진시황의 황제 등극, 사후 이세, 삼세의 역사까지 잘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읽는 재미도 있으니 강력하게 추천한다. 춘추전국시대를 종으로 왔다갔다 하니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의 대략적인 역사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읽으면 훨씬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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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칠웅
리산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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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분진 三家分晉과 전진찬제 田陳簒齊

천자의 나라였던 주나라는 견융의 침입으로 수도인 호경이 함락된 후 낙읍으로 천도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권위는 땅으로 떨어졌다. 이후 약 350여년간 중국대륙은 수많은 나라가 세워지고 멸망하면서 흔히 말하는 춘추오패가 회맹을 통해 대륙을 호령하기도 했지만 주 왕실은 명목상으로나마 권위가 살아있기는 해서 나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진 晉(전국시대를 끝낸 진시황의 진 秦이 아니다)은 중원의 강자로서 춘추시대 초기에는 진문공의 선정으로 강대국이었으나 춘추시대 후반으로 갈수록 왕의 세력보다 강한 집안이 나타났고, 여섯 개의 집안은 서로 진의 땅을 나눠 가진 후 반목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조, 위, 한 세 개의 집안이 나머지 세 개의 집안을 멸문시키고 진을 쪼개어 각자 나라를 세우니 이것을 삼가분진이라고 한다. 나라를 세운 것을 주왕에게 인정받은 것은 50년 후이지만 이미 주왕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미는 없었다.


태공망 강상(강태공)이 제후로 봉해져서 봉토로 받은 곳은 지금의 산동 지역으로 산물이 풍부하고 역대로 제환공, 관중, 포숙아 같은 훌륭한 군주와 더불어 명재상을 배출한 전통의 강국이었다. 하지만 춘추시대 말기 전씨 성을 가진 가문이 몇 대 재상을 세습하면서 왕의 권력이 약해지고 급기야 전씨가 강씨를 왕좌에서 쫓아낸 후 왕위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럿을 전진찬제라고 한다.


삼가분진은 그동안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많이 들어 봤지만 전진찬제를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처음 봤는데, 시기적으로 겹친 것인지 실제적으로 전국시대를 여는 신호탄으로 봐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전국칠웅》의 저자인 리산은 삼가분진과 전진찬제를 전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보았다.

 


리산 李山 (1963 ~ ) 현재 베이징 사범대학 교수. 중국 CCTV의 인문교양 프로그램인 '백가강단'에서 강의를 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초기 전국시대부터 꼼꼼하게 다룬다

전국시대는 삼가분진이 이루어진 B.C. 453년부터 진이 중국 전역을 통일한 B.C. 221년까지의 약 230년간을 말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삼가분진이 주의 승인을 받은 B.C. 403년을 출발점으로 따지기도 한다.) 긴 기간을 책으로 옮기려면 아무래도 주로 부각되는 인물이나 사건이 있을테고 상대적으로 무시되는 것도 있다. 저자에 따라 취사선택이 되는 인물 중에서 지금까지 전국시대를 다룬 책들은 보통 위의 오기와 방연, 제의 손빈, 진의 상앙으로부터 시작하는 책들이 많았다. 이들은 전국시대 초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장수들이면서 삶이 극적이라 흥미진진하기도 하다. 춘추시대의 백미가 합려, 부차로 이어지는 오와 구천의 월 사이의 전쟁과 오자서, 손무, 범려의 지혜대결인 것처럼 전국시대는 초기에 유명한 인물들이 몰려 있다. 반면에 전국시대에는 춘추오패와 같은 눈에 띄는 패자는 없어서 왕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도 않고 딱히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전국칠웅》에서는 초기 전국시대의 시대상황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서 초기 판도에 큰 영향력을 미친 위의 문후, 무후, 양혜왕부터 역사를 다룬다. 특히, 주로 인물의 뛰어난 점을 강조하여 장수 위주로 설명하는 다른 책들과는 달리 《전국칠웅》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발전과 쇠퇴를 왕의 기량에 따라 판단을 한다. 그동안 이야기의 흥미로움에 밀려 무시되었던 부분을 자세히 살펴 놓았다. 아무리 훌륭한 인재가 있어도 왕이 발탁하지 않으면 재주를 떨칠 수 없으니 그동안 왕에 대해 너무나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칠웅도. 중앙에 진이 3개로 분열되어 만들어진 조 趙, 위 魏, 한 韓이 자리잡고 있고, 왼쪽에는 진 秦, 아래는 초 楚, 오른쪽에는 제 齊, 오른쪽 위 한반도와 맞닿은 가장 변방에 연 燕이 자리잡고 있다.

 


종횡가의 시대, 전국종횡가서를 다룬다

초기 법가 성향의 두 정치인인 오기와 상앙에 대해서 설명한다. 오기는 위를 전국시대 초기의 강국으로 이끈 명재상이고, 상앙은 진을 발전시켜 훗날 천하통일을 할 수 있는 강국의 기틀을 다져 놓았다. 이후 전국시대는 합종연횡이라는 단어로 정리되는 종횡가의 시대로 접어든다. 종횡가는 결국 외교(라고 쓴고 권모술수라고 읽는다)에 의해서 타국과 연합을 하고, 중국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인데 그동안은 합종책의 소진과 종횡책의 장의로 대표되어 왔다.


그런데 《전국칠웅》은 지금까지 읽었던 전국시대 관련 책과는 합종연횡의 내용이 많이 다르다. 소진, 장의가 한 문하에서 공부하여 소진이 먼저 출사하여 합종책으로 진을 궁지에 몰아 넣고 장의가 후에 진을 중심으로 한 종횡책으로 소진의 합종책을 깨뜨리는 것이 그간의 상식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장의가 먼저 나온다. 장의가 진에서 활약할 때의 상대는 주로 위의 혜시와 공손연이다. 연횡책의 시조로 장의를 내세운 것은 변함이 없지만 합종책의 시조는 송 출신이면서 위에서 활약한 혜시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1973년에 마왕퇴에서 발견되었다는 《전국종횡가서》의 연구성과를 적극 반영한 것으로 그동안 다른 책들이 사기의 소진, 장의 스토리를 그대로 답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에 비해 더 역사적인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소진은 장의 사후 20여년 후에 활동을 했다고 하니, 많은 전국시대 관련 책들이 개정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한 것 같다. 단, 소진과 장의의 합종연횡책 대결은 전국시대 가장 흥미진진한 내용중에 하나라서 버리기는 참 아깝다.

 


손빈. 위나라 출신으로 제나라에서 활약한다. 손자병법을 저술한 손무의 후손으로 알려졌으며, 동문수학한 방연에게 누명을 쓰고 위기에 처하자 지혜를 발휘하여 제나라로 피신하고, 후에 마릉전투에서 방연을 전사시켜 원수를 갚는다.

 


흥미로운 내용, 좋은 번역과 저자의 입담

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인기있는 시기는 춘추시대, 전국시대, 초한쟁패기, 후한말의 삼국시대이다. 굉장히 어지러운 시기이면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매력적인 문신과 장군들이 즐비하고 온갖 인간군상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무한투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그중에서도 전국시대는 다른 시기에 비해 더 많은 국가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모든 지혜와 무력을 총동원하던 시기라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시기인 것 같다. 원래부터 재미있는 시기를 《전국칠웅》의 저자 리산은 꽤 그럴싸한 입담으로 옛이야기 풀어내듯이 역사를 풀어 나간다. 단지 이야기 뿐만 아니라 당시 각 국가의 상황과 배경, 인물들에 대한 평가도 적절하게 곁들여져 있어서 역사의 흐름을 읽어나가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종횡가의 대표적인 두 인물인 합종책의 소진과 종횡책의 장의에 대한 새로운 설명은 그동안 역사책에 있던 잘못된 정보를 잡아 주서어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은 《전국종횡가서》의 내용을 소개는 하면서도 대부분 이전에 알려졌던 내용을 답습하고 있다)


중간중간 적힌 저자의 입담도 읽는 재미를 더하는데, '초희왕의 일관된 모습으로 보자면, 그는 마치 척추신경으로 모든 일을 사고하는 듯 일을 처리함에 머리는 도무지 쓰지 않는 것 같았다. (p.309)'처럼 저자의 평가가 아주 적나라해서 통쾌함을 준다. 그리고 범저가 소진왕을 만나서 원교근공책을 설명하는 과정에도 재미있는 표현이 있는데, '그러니 다른 나라를 치려면 먼저 한나라와 위나라부터 시작하여 불도저같은 전략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면 바로 한 발자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p.507)'를 볼 수 있다. 아무리 전국시대에 각국이 발전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고 하고, 중국의 고대문화가 우리의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발전했다고 해도 2,300년 전에 설마 불도저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강의를 책으로 옮긴 것이라 들어 있는 표현일테니 걸고 넘어질 내용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다.

 


장의. 진에서 활동한 정치가. 연횡책을 구상했으며, 원교근공을 주창하여 이후 진이 전국통일을 할 수 있는 외교정책을 수립하였다.


약간 아쉬운 점도 있다

책의 여기저기에 확대경이라는 부분으로 글틀이 많이 있는데, 이게 별다른 내용이 아니라 그냥 책의 본문을 뽑아 글자를 크게 하고 굵게 해서 별칸에 다시 쓴 것일 뿐 다른 내용이 아니다. 정말 '확대'만 해 놓았는데 무슨 필요가 있나 싶다. 처음 보는 편집방식인데 쓸모있어 보이진 않았다.


사진과 지도가 너무 적다. 사진이야 크게 필요없다손치더라도 지도가 너무 적은 것은 많이 아쉽다. 전국칠웅의 대략적인 위치나 강줄기를 머릿속에 넣어 놓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독자는 각국의 위치에 기대어 설명한 부분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더구나 몇 개 있지도 않은 지도 속의 한자는 우리나라에 쓰는 정체자가 아니라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체자인다. 아무래도 중국에서 출판된 책의 지도를 그대로 따와서 붙인 것 같은데 성의없어 보인다. 한자는 알아도 간체자를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많다. 이 좋은 책에 가장 기본 적이 것이 허술해서 완성도를 깎아 먹으니 아쉽다.


진의 시황제. 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다. 하지만 사후 대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하지 않아 환관 조고, 막내아들 호해, 재상 이사가 배신하여 권력을 쥐게 되는 빌미를 주고, 결국 진은 전국통일 15년만에 멸망하고 만다.

 

★★★★☆


오랜만에 역사책을 남은 분량을 세어 보면서 아쉬워 하며 읽었다.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전국시대 역사책 중 가장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주로 열전의 인물 위주로 역사를 설명했던 기존 책들과 달리 왕과 국가의 관점에서 흐름이 끊어지지 않게 설명해서 전국시대 전체를 조망하기에 굉장히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대단한 입담꾼이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대단하다.


이 책의 전작으로 《춘추오패》라는 책도 있는 것 같은데 찾아 보니 국내에는 번역출판이 되지 않았다. 꼭 읽어 보고 싶다.


전국시대에 관한 책 한 권만 읽어볼 생각이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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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세계사를 만나다 - 역사에 숨은 수학의 비밀
이광연 지음 / 투비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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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학이 좋다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수학성적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기억하기로는 고1 2학기 무렵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야 성적이 올라가는 시점이 오는데 이때부터 수학 성적이 뚝뚝 떨어져서 점수가 썩 좋지 않았다. 대학에 갈 정도는 했지만 대학에서는 수학과 전혀 관계없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결국 손으로 수학문제를 풀고 계산할 일은 없어졌다.


수학이 단순히 문제를 풀고 계산하는게 아니라는 걸 알게된 것은 수학에서 손을 놓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초보적인 수론이나 논리학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고, 머릿속으로 밥먹고 사는 것과 전혀 상관없이 뭔가 생각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 좋았다. (양자론이나 상대성이론도 마찬가지 이유로 좋아한다.) 지금도 수학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풀었던 미적분은 기호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상용로그나 삼각함수도 보면 눈뜬 장님이나 마찬가지다. 밀레니엄 문제라든지 수학 7대난제같은 건 거의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나는 수학이 좋다.

 

 

저자 이광연. 현재 한서대학교 수학 교수.


세상사 모든게 역사 아닌게 뭐가 있겠어?

수학에 관한 교양서를 읽으면 마치 숫자와 기호만이 난무하는 수학책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학생 때 수학책이 다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런 책은 수학책이라기보다는 수학참고서를 생각하면 이해가 더 빠를 것 같다. 예전에 참고서에서 열심히 수학을 풀다보면 어느 구석엔가 '읽을거리'나 비슷한 이름으로 문제풀이를 멈추고 읽어보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어 있다. 혁명의 전사였던 갈루아가 여자문제로 결투를 예정한 전날 밤 죽음을 예감하고 급하게 논문을 쓰는 장면도 참고서에서 처음 봤다. 중국의 삼황 중에 복희씨는 굽은 자를 들고 여와씨는 컴퍼스를 들고 있는 그림도 참고서에서 처음 봤을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역사가 있고 연원이 있고 맥락이 있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는 가장 오래된 4대문명의 흔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학의 흔적부터 시작해서 세계사의 중요한 장면과 수학을 연결지어 설명한다. 수학참고서의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읽을거리를 수학만큼이나 큰 비중으로 늘려서 대충 1:1의 비율로 안내한다.

 

 

메소포타미아의 문자인 쐐기문자의 숫자


세계사? 수학사?

이제 슬슬 이 책의 정체를 살펴 보자. 이 책을 쓴 저자는 수학자이다. 아무래도 수학자가 수학에 세계사를 접목시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만 역사학자가 역사에 수학을 접목시키는 건 좀 상상하기 힘들다. 이 책은 수학자가 세계사에 관심을 갖고 세계사 속에 수학을 녹여낸 책이다. 그러니까 세계사 책은 아니다. 세계사 책이라고 하기엔 역사에 대해서 엄밀하지 않고 상식선에서만 다루었다. 그렇다면 수학사 책일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다. 처음 4대문명의 초기 부분에서는 문명에 나타난 수학을 설명해 놓았는데 6장부터는 역사와 수학이 아무런 연관이 없다. 춘추전국시대와 조합을 연결지은 것도 그렇고 페르시아의 법과 진릿값을 연결지은 것도 그렇다. 아폴론의 신탁 부분에서 유명한 3대 작도 불능 문제를 다루어서 수학사인가 했다가 알렉산더가 자른 고르디오스의 매듭과 매듭문제는 또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그러니까 이 책은 세계사의 중요사건을 펼쳐놓고 역사와 연관있는 수학사가 있으면 설명하고 없으면 역사를 소재로 수학의 이론을 설명한 책이다. 수학사도 아니고 세계사도 아니다. 앞에서 예를 든 것같이 참고서에 있는 '읽을거리'의 확장판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중인 복희여와도. 복희씨는 손에 직각자(곡척)를 쥐고 있고 여와시는 컴퍼스(규구)를 들고 있다.


'읽을거리'는 원래 재미있잖아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는 재미있다. 책을 사면서 나는 자세한 수학사의 에피소드가 담겨있을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내용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책을 제목만 보고 살 때가 많아서 읽다가 후회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기대와는 달랐지만 책이 재미없지는 않았다.이런 것도 책을 읽는 재미 중에 하나다. 세계사와 수학을 엮는다는 발상이 참신하다. 정확히는 세계사의 에피소드나 연관지어 볼 수 있는 수학지식을 풀어 놓아서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다. 세계사 에피소드는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엄밀하지는 않다. 에피소드 위주로 소개를 했기 때문에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해 놓아서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흥미 위주로 가볍게 읽기 좋다.


역사와 연관해서 소개해 놓은 수학문제도 좋다. 《수학, 세계사를 만나다》에서 소개하는 수학문제들은 역사적 사건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오로지 추상적이기만 한 수학문제보다는 실생활에서 (꼭 적용가능하다고 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번쯤 연결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이다. 혼자서 읽으면서 재밌고 끝나는 수학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서도 써먹을 수 있는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강의나 수업, 아니면 친구들과 얘기할 때 분위기를 잘 타면 한 번쯤 꺼내볼 수 있는 수학 문제들이다. 그러고 보니 소개되어 있는 세계사의 사건도 마찬가지다.


흔히 보기 힘든 수학문제도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교양 수준에서 읽는 수학책들은 보통 수론이나 집합, 기하 등을 많이 다루는데 이 책에는 매듭, 수형도 같이 내가 그동안 본 다른 수학 교양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내용들이 나와서 특이한 수학문제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델로스에 있는 아폴로 신전. 정육면체의 배적문제로 유명한 신전이다. 신전에 있던 정육면체보다 부피가 딱 2배 큰 정육면체를 만들라고 지시한 아폴론도 치사하지만, 그걸 또 자하고 컴퍼스만 가지고 두 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끙끙댄 그리스인들도 참 고지식하다. 물론 그런 고지식함이 문명발전의 큰 힘이었을 테지.

 


잘 엮어 놓은 에피소드들

본격적인 세계사 책도, 수학사 책도 아니지만 나는 이 책이 좋다. 세계사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을 알 수 있도록 꽤 많은 내용을 담아 놓았고, 그에 연결되어 있는 수학문제도 흥미가 돋는다. 좀 억지스럽게 연결된 부분도 있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저자는 수학을 전공했는데 수학보다 오히려 세계사가 더 자세하다. 수학문제야 당연히 잘 알고 있겠지만 세계사까지 섭렵한 저자의 다양한 관심이 멋지다. 흔하지는 않겠지만 수학과 세계사에 둘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단, 글에서 계속 써놓은대로 에피소드 중심의 단편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본젹적인 세계사나 수학사를 책을 다루는 책은 아니라서 그걸 기대하는 독자는 실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수학부분도 너무 파편화된 내용만 있어서 좀 아쉽다. 즉, 단편적인 세계사와 수학상식을 머리 식힐겸  부담없이 읽고 싶은 사람에게 딱 적당해 보인다.

 

고대 그리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조각상. 아무도 풀지 못했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지 않고 잘라 버렸다. 창조적인 해결인지.. 억지인지.. 합리적인 그리스인들이라면 수긍하지 못했을 해결방법일 것 같다.

 


★★★★


각 단원이 읽기 편하게 나누어져 있어서 크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모르면 모르는대로 넘어가며 읽어도 좋다. 기본적으로 많이 어렵지 않고 흥미있는 내용 + 단편적인 잡다한 지식이 많이 들어 있어서 가볍게 세계사나 수학에 관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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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과 리바이어던 - 협력은 어떻게 이기심을 이기는가
요차이 벤클러 지음, 이현주 옮김 / 반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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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통첩게임

어떤 심리학자(경제학자라고 해도 좋다)가 두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편의상 현주와 민수라고 하자. 둘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실험을 하는 동안 서로 마주치지도 않는다. 심리학자가 현주에게 10만원을 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민수에게 네가 주고 싶은 금액을 제안해 봐. 민수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제안한 돈은 민수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현주씨가 가지는 거야. 하지만 민수 씨가 제안을 거절하면 두사람 다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얼마를 제안할 거야?'


이 게임의 룰은 명확하다. 민수가 받을만한 제안을 현주가 하면 둘 다 돈을 가져갈 수 있다. 현주는 얼마를 제안하는게 좋을까? 5만원? 하지만 민수는 현주가 얼마를 제안해도 돈을 가져갈 수 있으니 이익이다. 5만원은 절반이니 너무 많다. 4만원도 많아 보인다. 이렇게 생각해 나가다 보면 이론상 현주가 천원만 제안해도 민수는 돈을 가져갈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이익이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성적이다. 그런데 정말 현주가 민수에게 천원을 제안하면 어떻게 될까? 나라면 어떨까? 아마도 십중팔구 현주는 누군지 모르는 제안자를 욕하면서 거절할 것 같고, 둘다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것 같다. 만원이면? 이것도 마찬가지. 나에게는 겨우 만원 던져주고 너는 9만원을 가져가겠다고? 만원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네가 돈을 가져가게 할 수는 없지.


민수의 이런 행동은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다.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민수가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은 이성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다. 천원만 받아도 민수는 이익이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같은 상황에 닥쳤을 때, 상대방을 욕하면서 거부할 것이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이것은 상당히 감정적인 문제이고 공평함에 대한 문제이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 소개하는 이 실험은 최후통첩게임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행동심리학(또는 행동경제학) 실험이며, 인간이 반드시 경제적인 이익만을 생각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실험 중에 하나다. 과연 인간은 이익(또는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 이상의 행동규범(협력)이 있을까?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이 문제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요차이 벤클러 Yochai Benkler 1964 ~ .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버크먼 센터 교수.

 


리바이어던, 보이지 않는 손, 펭귄

리바이어던은 성서의 욥기에 나오는 바닷속 괴물인 레비아탄의 영어식 발음이다. 토마스 홉스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규정했고, 이기적인 인간을 자연상태로 방치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끝도 없는 혼란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혼란을 막기 위해서 사회의 구성원이 계약하여 권력을 만들어 냈고, 이 권력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간의 이기심을 처벌하고 통제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이 권력을 비유한 말이 리바이어던이고, 가장 강력한 형태를 한 리바이어던은 국가이다. 홉스는 이기적인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력을 지닌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 역시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홉스와는 좀 달랐다. 이기적인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판단을 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모든 사람이 이익을 위해 선택을 하면 결국 그 이익이 부딪히는 곳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를 볼 수밖에 없고,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조정과정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국가는 시장이 돌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면서 간섭을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케인즈가 나오기 전까지 경제학의 모든 것이었던 '고전경제학'의 기본 철학이다.


리눅스는 간단하게 말하면 리누스 토발스라는 대학생이 만든 오픈소스 컴퓨터 운영체제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기여자들이 보상없이 프로그램 개발에 기여해서 현재는 세계 컴퓨터, 스마트폰의 절대 다수가 리눅스 기반의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발전한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다. 인간이 순전히 이기적이라고만 한다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리눅스의 상징이 책 제목에 있는 펭귄이다. 리눅스외에도 이기심보다는 협력에 의지하는 시스템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브리태니커의 영광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백과사전 자리를 차지한 위키피디아이다. 과연 인간은 이기적인 경향이 더 강할까, 협력적인 경향이 더 강할까?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던 1900년대 말까지 이기적이었다가 세기말을 지나 21세기가 되면서 협력적이 되었을까?

 

토마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의 표지.


이기적인 인간이 협력하는 이유

저자인 요차이 벤클러는 인간이 이기적임에도 불구하고 협력이 발생하는 이유를 여러가지 연구성과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성장하면서 도덕성과 가치에 욕구가 강해지면서 협력하는 경향성이 강해진다고 한다. 더불어 상황이 어떻게 제시되는지에 따라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변하는 프레임 효과에 의해서 협력이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평판이나 인맥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반드시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협력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에게는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다른 사람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감과 연대감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커뮤니케이션을 들고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면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결국 이기적인 마음을 누르고 손해를 보더라도 협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는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할만한 수많은 실험이 예시되어 있다.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 ~ 1790.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고전경제학의 아버지.

 


수많은 연구성과의 종합판, 그리고 리눅스와 위키피디아

《펭귄과 리바이어던》에는 저자인 요차이 벤클러가 수행한 실험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다른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유명한 실험과 책을 많이 인용했는데, 그동안 내가 읽었던 관련 서적들의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펭귄과 리바이어던》에는 위에서 설명한 최후통첩이론이라든지 공공재 게임, 신뢰게임 등 심리학과 경제학에 걸쳐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연구성과를 책 한 권으로 볼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책의 앞머리에는 협력이 창발하는 원인을 밝힌 유명한 책, 《협력의 진화》와 연관된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협력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두 책의 관점이 좀 다르다. 《협력의 진화》가 연속적인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자연적으로 협력이 창발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면,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인간의 본성에 협력이 창발할 수밖에 없는 씨앗이 있다고 설명한다.


요차이 벤클러가 협력의 결정체로서 가장 많이 예로 든 것이 위키피디아와 리눅스이다. 리눅스는 책의 제목에 상징물인 펭귄을 내세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은데, 위키피디아는 오히려 리눅스보다도 더 많은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고 있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브리태니커(우리 집에도 떡하니 한 질을 마련해 두고 자주 보고 있다) 사전의 명성을 불과 십수년만에 넘어서 버린 위키피디아는 수많은 사람의 기여로 만들어지고 있다. 저자는 우선 아무런 이익도 없이 기여하는 기여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내부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라도 본문을 고칠 수 있지만 표제어 하나의 내용을 고치기 위해서는 제안을 하고 반론을 받고 토론을 하는 가운데 합의점을 찾아 내용이 수정되기도 한다. 물론 반달리즘이 없지는 않겠지만 협력의 큰 틀에서 봤을 때,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리누스 토르발스 Linus Benedict Torvalds 1969 ~ . 핀란드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리눅스 개발자.

 


★★★★☆

모든 구성원이 가장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 사회가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오래된 경제이론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폐기되었다. 인간의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를 기본적인 성격으로 규정하지 않고 이기적인 모습만을 본성으로 상정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이기적인 본성 외에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를 새로운 구성요소로 본다면 인간행동의 함수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워 지고 수학적인 그래프만으로 경제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해 질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에 문제가 있다면 복잡하더라도 새로운 (사실 이제는 그다지 새롭지도 않은..) 경제학 또는 사회학이 더 널리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위키피디아. 2001년 1월 15일에 탄생한 온라인 백과사전. 2018년 현재 약 4,500만개의 표제어(모든 언어)를 담고 있다.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사회는 몇 사람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네트워크의 발달 덕분에 집단지성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집단지성은 결국 이기심보다는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로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그런 면에서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려 놓은 결정판같은 책이다. 행동경제학, 협력의 창발에 관련된 책을 모두 읽는 것이 물론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기본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번역이 잘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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