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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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중적인 장르문학 SF소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대답은 항상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이다. 꼭 SF나 판타지 장르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지만 대체로 그런 장르들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되기 때문에 SF 영화는 제일 좋아하는 영화장르이다. (그런데 내 인생의 영화를 다섯 편 정도 꼽아보면 SF 영화가 하나도 없는 곳은 좀 아이러니)


흔히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정의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장르의 내부적인 관습과 룰에 충실한 문학'이라고 대충 정의해 놓고 보면, 무협소설, 추리소설, 판타지소설, SF소설이 주로 장르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모든 장르문학이 매니아가 있고,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과 작가도 있다. 무협이라면 김용, 추리소설이라면 코난도일, 판타지라면 톨킨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면 SF는? 여러 유명 작가가 있겠지만 나에게 SF 대표작가는 아이작 아시모프이다.


다른 장르문학도 충분히 독자가 있고 매니아층이 두껍지만 내 생각에 가장 대중적인 장르문학은 SF가 아닐까 싶다. 다른 장르에 비해 유명한 작가나 권위있는 상이 많은 편이고, 다른 컨텐츠로 활발하게 이식되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장르에 비해 매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많이 읽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느낌이니 다른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테드 창. 1967 ~ . 중국계 미국인.


중단편만 드문드문 발표하는 작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쓴 작가인 테드 창은 좀 특이하다. 1990년에 첫 작품인 《바빌론의 탑》을 발표했으니 올해가 딱 데뷔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그 긴 기간동안 겨우 17 편의 중단편만 발표했을 뿐이고 장편은 단 한 편도 없다. 그러니까 길지않은 소설을 대충 2년에 한 편 꼴로 발표하고 있다. SF 작가치고는 굉장히 게으른.. 작품수가 적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유수한 SF 관련 상을 휩쓴다. 재능이 압도적이다.


 

 바벨탑은 창세기 11장에 사람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쌓은 탑이다. 성서에서는 야훼가 사람들의 말을 다르게 만들어 성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계로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전해진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과학을 엎어씌운다.
SF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우주의 세력들이 서로 전쟁을 펼치는 우주활극의 통쾌함을 기대할 수도 있고, 새로운 우주와 미래의 역사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과학적인 정합성에 상상력을 가미한 지적인 쾌락을 좋아할 수도 있다. 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적 쾌락에 즐거움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데, 테드 창의 소설이 딱 이런 나의 취향에 맞는다.


테드 창의 소설은 다른 작가의 SF와 좀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일반적인 SF는 기존의 과학을 토대로 해서 과학이 발전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비록 그 상상력이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 오버테크놀로지를 담고 있더라도 기본적인 토대는 현재 세계의 과학기술이다. 그 상상력이 설득력이 좋을수록 현실성을 느끼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테드 창은 다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모든 소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테드 창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고 그 규칙을 토대로 글을 풀어낸다. 그래서 굉장히 생경한 느낌이 든다.

 

골렘은 유대교 전승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흙으로 만든 거인 인형이다. 랍비가 엄격한 기준과 신비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진흙을 뭉처 만들었다고 한다.


첫 소설인 《바빌론의 탑》은 바벨탑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성서에서는 분노한 야훼가 사람들의 말을 통하지 않게 해서 공사가 중단되는데 여기서는 바벨탑을 하늘까지 쌓는데 성공한다. 당연히 해와 달과 별은 탑 꼭대기에 있는 공사장 인부들의 발밑에 있고 바벨탑이 닿은 하늘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부는 그 천장을 뚫기 위해 발파작업을 한다. 《일흔 두 글자》 역시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는데 18~9세기 영국이 배경인 것 같지만 호문클루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존재하고 골렘도 존재한다. 게다가 카발라는 이성적인 철학을 대체하고 있다. 마치 다중우주를 배경으로 다른 차원의 지구를 설정하여 평행세계가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 굉장히 신선하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테드 창의 솜씨는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천사는 당연히 있는 존재이고 사람들은 천사의 존재를 싫어한다. 선의나 악의는 없지만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는 존재로 나타날 때마다 인간의 삶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천사는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신의 사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사의 종류와 계급을 정리하여 구품천사를 밝혔고,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은 4대 대천사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다.

 


SF? 판타지? 뭐가 됐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존의 과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세계를 창조해내고 모든 내용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일부는 SF가 아니라 판타지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가 완전히 뜬금없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에 바탕을 두고 그 속에서 신화, 유사과학, 종교적인 세계관을 접붙이고 그 속에서 과학적인 개연성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했기 때문에 멋진 SF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모두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 《바빌론의 탑》, 《네 인생의 이야기》, 《일흔두 글자》, 《지옥은 신의 부재》, 네 편이 마음에 든다.

 

책중 중편인 《네 인생의 이야기》는 드니 빌뇌브가 감독을 맡아 《컨택트 Arrival》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2016년에 개봉되었다.


★★★★☆

재미도 있고, 지적 호기심도 자극하고 내적인 개연성이 훌륭한 멋진 소설들로 가득하다. 한 번 읽은 후 1년이 지나서 다시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 익숙하지 않았던 소재 때문에 띄엄띄엄 읽은 것을 이번엔 집중해서 찬찬히 읽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맛이 더 있었다. 많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아닌데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도 2권밖에 되지 않아서 좀 아쉽다. 조만간 작품집 한 권이 더 나올 계획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SF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읽어볼 테고, 일반적인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테니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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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 - 사라진 민족 사라진 나라의 살아 숨 쉬는 역사 지도에서 사라진 시리즈
도현신 지음 / 서해문집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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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기 어려운 사람들

역사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수천년전, 지금으로부터 알에서 태어난 주몽까지 세는 것보다 주몽으로부터 세는 것이 더 오래된 옛날, 전쟁을 하고 법을 만들고 글자를 새겨넣었던 민족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가장 길게 늘여서 5천년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보다 수천년 이전에 각자의 지역을 호령했던 사람들을 보면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지금도 만들기 어려운 건축물을 만들었을까? 그렇게 국가를 순식간에 무너뜨렸다는 외부의 세력은 또 어디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인가? 우주를 이해하고 신을 숭배하는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많지 않은 기록을 뒤져 신화와 현실이 뒤범벅된 그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나에겐 정말 흥미로운 놀잇감이었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고대 민족들을 우리에게 소개하는 책이다.

 

수메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남아있는 최초의 기록을 남긴 민족이다.


18개의 고대인들을 살펴본다

저자인 도현신은 이전에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로 처음 알게 됐다.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었기 때문에 이 책도 큰 고민없이 집어 들었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은 예전에 존재했지만 현재는 흔적만을 찾아볼 수 있는 고대인들에 대해 설명한다. 책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문명을 자랑하는 수메르를 포함하는 고대인, 중세유럽에서 맹위를 떨치던 민족들, 동북아시아에 살명서 끊임없이 중국을 괴롭히던 민족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특이하게도 옥저, 동예, 부여, 우산국, 가야의 우리나라 고대사에 존재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다섯 개 국가에 대해서는 읽어본 적도 없고 거의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참 신선한 자극이었다.


고대사나 세계사 등 역사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도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리고 솔직히 남은 유적이나 사료가 많지 않아 흥미가 많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인데, 한 번쯤 우리의 고대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교과서나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길게 늘여서 설명한 수준의 역사 훑어보기만으로 끝나는 건 좀 아쉬웠다.

 


훈족과 흉노족은 같은 민족이라는 설이 강력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정도만 알아도 훌륭한 요약본

이 책을 읽기 전에 같은 저자의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을 읽었다고 했는데, 그 책을 읽을 때, 마치 판타지 소설을 쓰기 위한 설정자료집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역사를 토대로 한 소설, 또는 역사 판타지 소설의 설정집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저자의 책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민족과 부족들을 기원과 특징, 전성기와 멸망의 역사를 잘 분류해 놓았다. 그래서 역사를 보다가 생경한 민족이 등장하면 이 책에서 찾아 보고 눈에 익혀 놓고 계속 읽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계속 마음에 거슬리는 것이 있는데 저자가 전문적인 역사학자도 아니고 참고한 자료들이 일차자료도 아닌데 비해 저자의 설명이 너무 단정적이다. 이건 역사를 좀 깊이 보는 사람들이 보기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거기에 근거가 상당히 부족한 상상력도 여기저기 삽입되어 있어서 책의 내용이 비판을 여지가 굉장히 크다. 하지만 역사의 정확성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고삼아 읽기에 충분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 책은 옥저, 동예, 부여 등 한반도의 고대 부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요약은 내 것이 되지 않는다

어떤 학문이든지 공부하고 익히는 것은 큰 노력이 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시험이 임박해서 벼락치기 공부를 할 때는 압축, 요약된 것을 암기해서 시험을 치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고 만다. 오히려 시험과 상관없이 자세하게 파보고 복잡하게 공부한 것들이 머릿 속에 남아 나의 지식이 된다.


《지도에서 사라진 사람들》같은 책의 가장 큰 문제가 요약본이라는 것이다. 많은 분야를 다루긴 하지만 자세히 서술해 놓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잘 남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안내서가 될 수는 있어도 역사를 제대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부족하다. 이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이런 걸 시험볼 일도 없는 바에야 머릿속에 우겨넣을 것은 아니니 크게 쓸모가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의 모든 요약본의 문제점이기도 하니 이 책에만 적용할 것은 아니다.

 


★★★★

비록 그냥 한 번 읽고 지나가도 크게 머릿속에 남지는 않지만 한 번 읽으면서 익숙했던 민족, 생소한 민족들의 흔적을 훑어보는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고서 역사에 관심이 생겨서 더 깊게 팔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은 성공적일 것이다. 한반도의 민족을 소개한 마지막 부분은 작가의 민족의식이 발휘된 멋진 시도인 것 같다. 사실 부여, 동예, 옥저같은 한반도 초기의 부족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관심있게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역사자료가 거의 없어서 그야말로 수박겉핥기밖에 될 수 없는 것은 많이 아쉽다.
가볍게 읽고 머릿속에 하나라도 남으면 성공이다. 추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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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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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45년 전의 관점에서 쓴 책이다.


인도는 왜 굶주리면서도 소를 안 먹는 거야?
인도는 잘사는 나라가 아니다. 현재 약 13억 명의 인구 중에서 다수가 빈민이며 굶주리고 있다. 그냥 가난하기만 하다면 세상 모든 나라가 잘사는 것은 아니니까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인도를 여행한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 사람의 수보다 더 많아 보이는 암소들이 도로를 차지하고 차량의 흐름을 방해한다. 여기저기 배설을 해서 환경을 더럽히기도 한다(고 한다. 난 인도에 가본 적이 없다). 언뜻 생각하면 저 소들을 잡아서 굶주리는 사람들의 배를 채우면 일석이조의 해결책이 될 것 같은데 인도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알 것 같은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다른 문화를 보면 두 가지의 해결책을 찾는다. 하나는 미개함으로 설명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로서 설명하는 방법이다. '인도사람들의 종교인 힌두교는 암소를 숭배하는 미개한 종교라서 굶어죽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식량이 될 수 있는 암소를 그대로 놔둔다.' 합리적인 (척 하는) 사람에게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대답이다. 원인 진단이 이렇다면 해결책도 뻔하다. 힌두교의 미개함을 깨뜨리고 암소를 잡아먹어 굶주림을 해결하면 된다. 정말 그럴까?


《문화의 수수께끼》는 한 문화가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유를 사회, 경제적으로 설명하여 곁에서 흘낏 살펴 본 외부인의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책이다.

 

암소 여신 카마네두 조각. 인도 농부들은 암소를 한 가족처럼 생각해 목에 화환을 걸어주고 몸을 치장해준다.

 


다양한 문화의 양태를 설명하려는 노력
《문화의 수수께끼》는 모두 열한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은 다른 장과 연결되어 있기도 하지만 현대(정확히는 1975년) 인류학자들이 자세히 살펴 본 동시대를 살아가는 원시부족의 생활 양태를 소개한다. 문명의 혜택을 받아 살고 있다는 학자나 이 책의 독자들이 보기엔 소개된 부족의 생활양식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위에서 설명한 인도의 사례 뿐만 아니라 인류학, 경제학에서 유명한 포틀래치 풍습, 읽다보면 기괴하면서 헛웃음까지 짓게 하는 유령화물처럼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고 경험하기도 힘든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이런 사례들을 처음 관찰했던 학자들은 처음엔 원시종족에서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해서 교정되지 않은 미개한 풍습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마빈 해리스는 첫 관찰 후 다른 학자들과는 달리 스스로의 연구와 상상력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종족들의 생활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마빈 해리스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그럴싸해 보여서 설득이 된다. 그들이 발달된 과학문명의 혜택을 받지는 못했지만 생활양식에는 그들 내부의 합리적인 원인이 있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과 우리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지 우리가 더 발달해서가 아니다.

 

마빈 해리스 Marvin Harris 1927~2001.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로 문화유물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만을 버리고 문화상대주의로..

내가 어렸을 때는 미국이 최고였고 유렵을 동경하는 마음이 강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조금은 그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결국 이런 식으로 자기스스로를 주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타자화하여 서구인의 눈으로 보는 것이 한때 큰 문제로 인식되었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눈으로 우리를 보고 서구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높아진 자긍심으로 이제 우리보다 발달하지 못한, 아니 오로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상위권의 경제수준으로 발전한 우리나라에 비해 못하는 나라에 대해 문화적으로 무시하는 태도까지 배워온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개를 식용으로 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역설하면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미개하다고 폄하하는 관용적이조 못한 자세를 분명히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포틀래치 potlatch는 부족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사람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열고 선물을 나눠 주는 북서부 인디언들의 관습이다.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은 포트래치의 예를 들어 현대사회의 과시적 소비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45년이 지났다. 지금은?
이 책은 1975년에 처음 출판된 책이다. 정말 오래된 책이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읽은 스테디셀러이기도 하다. 이책은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라고 해서 미개하다고 치부하지 마라. 모든 문화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강변한다. 문화상대주의가 이 책의 기본적인 철학이다. 그렇다면 45년이 지난 지금은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까?


그때보다는 나아졌을지 몰라도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결국 상대주의는 모든 인종, 문화, 성별 등에 의한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서로 평등한 관계를 맺어야 할텐데, 현재 세계가 그런 불평등과 왜곡된 시각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종교, 정치적 필요에 따라 더욱 강력한 편견의 굴레를 적대세력에 씌우는 것이 더 보편화되지 않았나 싶다.

 

유령화물을 기다리는 남태평양의 원주민들. 화물 숭배 cargo cult는 죽은 조상이 카누에 선물을 싣고 돌아올 것을 믿는 풍습이다. 기다리던 카누는 시간이 흐르면서 범선으로, 증기선으로 2차대전 후에는 항공모함으로 바뀌었다.

 


★★★★☆

7장 ~ 10장에 걸쳐 굉장히 길게 써놓은 예수, 기독교, 마녀사냥에 관한 내용은 전체 맥락과 어떤 연결점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구세주에 대한 열망이 유령화물과 비슷한 의식구조속에서 생긴 것은 대충 알겠는데, 이후의 내용은 '문화의 수수께끼'와 큰 상관이 없어 보인다. 내용은 현상만을 서술했을 뿐, 현상을, 그 광기를 합리적으로 설명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기독교를 까기 위해서 쓴 걸까?


이해할 수 없는 문화양태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굉장히 흥미롭고 문화인류학의 고전이라는 점에서 처음 문화인류학을 접하는 나같은 독자가 읽기에 좋아보인다. 내용도 어렵지 않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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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 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 김영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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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영웅, 항우

역사시대인 (삼황오제와 하는 빼고) 은부터 계산하면 중국은 약 3,500년~4,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은을 지나 서주를 거쳐 동주 시대의 춘추전국시대와 전국을 통일한 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제왕과 명장, 책사, 정치가들이 어지러운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사라져 갔다. 이후 한을 지나 삼국지의 시대까지 내려오면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물들이 명성을 떨친다. 그 중에 영웅이라고 할만한 사람이 숱하게 이름을 날렸지만 내가 꼽는 최고의 영웅은 초의 항우이다.


중국 역사에서 항우 이전에 어찌 영웅이 없을까. 하지만 겨우 20대의 나이에 진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호령하다 우미인을 곁에 두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항우의 모습만큼 임팩트 있는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초의 이름을 항우에 붙이려고 할 때 계속 마음에 걸리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항우 못지않게 스펙타클한 삶을 살았던 춘추 말기 오의 명장 오자서다. 그런데 오자서는 항우와는 좀 다르게 아이돌같다는 느낌이다.(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외에 전국시대의 유명한 장수들 중 진의 장수들은 악랄하다는 느낌이고, 다른 나라의 장수들은 임팩트가 약하다. 무엇보다 항우 이전의 영웅들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물론 이게 모두 나의 편견이라고 지적당해도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른 의견도 당연히 많을테지만 항우 이전에는 항우와 같은 당당한 느낌의 선이 굵은 영웅을 찾아 보기는 힘들다. 《항우 강의》는 가장 영웅스러운 항우의 일대기를 강의한 왕리췬의 강의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항우 項羽. B.C. 232 ~ 202. 본명은 항적. 우는 항우의 자이다. 진나라 말기 초의 군주. 한의 유방과 천하를 겨루어 천하를 재패할 뻔 했으나 결국 유방에게 패배하고 만다.

 


종횡무진 시대를 누비는 항우 강의

왕리췬은 이전에 읽은 책 《진시황 강의》에서도 그랬지만 《항우 강의》 역시 시기 순으로 역사를 서술하지 않는다. 항우의 일대기를 재구성하자면 숙부인 항량으로부터 시작해서 장한에 의한 항량의 전사, 항량의 자리를 대신한 송의를 죽인 후 군권을 탈취하여 거록대전에서 장한을 물리치고 난 후 관중으로 진격, 이후 유방의 항복을 받아들인 후에 있는 일촉즉발의 홍문연 등, 이 차례로 나올 것 같은데 《항우 강의》은 그렇지 않다. 대체적으로는 시간순으로 서술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마치 항우라는 하나의 큰 주제를 잡아두고 생각나는대로 작은 주제에 따라 글을 쓴 것 같은데, 아무래도 항우의 일대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좀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작은 주제별로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고 하긴 했지만 딱히 주제를 엮어 나가는 방향성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정말 '생각나는대로' 글을 쓴 것 같다. 좋게 말하면 종횡무진 전장을 누빈 항우의 일생을 적어내려간 것 같고, 나쁘게 말하면 책의 전체 흐름을 미리 생각하지 않고 닥치는대로 쓴 것 같다.

 

유방 劉邦 B.C. 247? ~ 195. 한의 초대 황제. 초 출신으로 진나라 말기 항우를 누르고 한을 건국한다. 본명은 유계 劉季. 유씨 집안의 막내라는 뜻으로 이름으로도 평민 출신인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롭고 분석도 좋지만 너무나 결과론적이다.

《항우 강의》는 재미있다. 《진시황 강의》도 그렇지만 왕리췬은 역사를 대중에게 흥미있게 소개하는데 탁월하다.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고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 모든 사건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숫자를 매겨가며 정리를 잘 해 놓았다. 그런데 전작에서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던 분석이 이 책에서는 너무 과한 것 같다. 너무 당연한 말을 분석이라고 써놓는데다 내용에 중복이 많아서 읽은 내용을 한 번 더 읽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더 큰 불만은 항우와 그 진영에 있던 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하다는 것이다. 5부를 읽기 전까지 항우의 행동은 모두 유방에게 천하를 넘겨주기 위해 실수만 하는 천하의 멍청이로 표현한다. 항우의 수하에서 모사의 역할을 했던 범증에 대해서도 가차없다. 모든 항우의 행동은 망할 길이고, 범증 역시 적절한 조언을 하지 못하는 무능한 모사로 설명한다. 물론 항우가 무력에 비해 판세를 읽는 능력이나 재능이 없었다손치더라도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임시나마 패왕이 될 수 있었으며, 유방과 천하를 다툴 수가 있었을까?


명색이 '항우 강의'인데 이왕이면 항우의 탁월했던 점에 대해서도 좀 후하게 평가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사마천은 서슬퍼런 무제 시대에 《사기》를 쓰면서도 항우를 본기에 포함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고조 유방의 앞에 배치하기까지 했는데, 왕리췬은 그에 비해 항우에 대한 대접이 너무 좋지 않다. 춘추필법의 모범을 배우지 못한건가? 항우의 일대기는 어쩔 수 없이 역사의 승자인 유방과 일대일로 비교될 수밖에 없다. 시작점에서는 그저 동네 양아치에 불과했던 유방에 비해 초의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던 항우가 월등하게 유리했다. 가문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능력에 있어서도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거록대전 후 관중으로 들어갔을 때까지만 보면 항우는 누가 봐도 전국을 통일한 중국의 군주였다.

 

왕리췬 (1945 ~ 허난대학교 문학원 교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사기 연구가. 중국 CCTV의 인문교양 프로그램인 백가강단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패배해다

하지만 홍문연에서 유방을 살려준 후부터 항우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한다. 유방에게 계속해서 뒤통수를 맞고 휘하의 장수들은 유방에게 빼앗기고, 한 명 있던 모사 범증까지 떠니면서 철저하게 몰락의 길을 걷는다. 항우는 생애 거의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했다고 한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당대 누구도, 심지어는 한신조차도 항우를 뛰어 넘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체를 대국적으로 보는 눈은 확실히 부족해서 결국 전략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형양에서 유방과 일진일퇴하는 동안 한신이 북방의 조부터 제까지 겸병해 버리자 결국 초 땅에 갇혀 고립무원의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책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잔정에 휘둘리는 모습도 항우의 패업을 가로막는 큰 요인이 되었다. 항우와 우미인의 스토리는 지금까지도 굉장히 유명한데, 저자는 항우가 아마도 우미인을 진심으로 사랑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내 생각에도 그렇다. 이건 전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잔정이 다른 휘하의 부하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면 얘기가 다르다. 특히, 숙부였던 항백이 홍문연이 열리기 전 장량을 만나고 유방과 사돈을 맺은 후에 결정적인 순간마다 항우의 실패를 유도하는 행동을 하는데도 아무런 처벌이 없는데서 친족을 과감히 잘라내지 못한 것처럼 한 세력의 수장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던 것 같다.


반면에 유방은 모든 여건에서 뒤지면서도 오로지 큰 도량 하나만으로 천하의 주인이 되었으니 항우와 너무 대비된다. 물론 한을 세운 후 공신을 차례로 숙청한 것을 보면 정말 도량이 넓었던 것인지 의문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최소한 도량이 넓은 척이라도 한 점은 유방의 가장 큰 장점으로 보인다.

 

항우와 우희의 비극을 그린 영화. 패왕별희의 한 장면.


좀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좋다


왕리췬의 전작인 《진시황 강의》를 정말 만족스럽게 봐서 기대가 너무 컸는지 《항우 강의》는 좀 실망스러웠다. 특히 《진시황 강의》는 진의 부족함, 너무나도 철저한 법가에 입각한 정치체제 때문에 부정적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주인공인 진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룬 반면 《항우 강의》는 주인공인 항우 및 초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만 적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승자인 유방이 특별히 부각되는 것도 아니다. 항우의 일대기를 좀더 긍정적인 면에서 바라봐 주고 장점도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좋았겠는데, 그 점이 아쉽다. 그래서 그런지 책 말미에에서는 항우의 좋은 점을 쓰려고 한 것 같은데 이미 늦었다.


마지막 항우에 관한 시들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게 봤는데 다른 독자들도 읽을지는 모르겠다. 페이지수 채우기 위해서 덧붙인게 아닐까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 항우에 대해 큰 애정이 없어 보이는 저자가 시까지 줄줄이 수록한 건 좀 어색하다.


★★★★


항우의 패망의 기록이다. 이 책 한 권으로는 항우라는 영웅을 평가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항우의 찬양하는 책이 있다면 함께 읽어서 균형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나쁜 책도 아니고 재미없는 책도 아니다.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그저 《진시황 강의》가 좀더 좋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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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 - 동갑내기 두 거장의 예술론.교육론
오에 겐자부로.오자와 세이지 지음, 정회성 옮김 / 포노(PHONO)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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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도, 그리고 문학도 인간을 지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 이게 아닌가 싶어요.
p. 116


너무 흔해서 무시되는..

'취미가 뭐예요?'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치자. 이렇게 물어 보는 사람은 내 입에서 '독서'와 '음악감상'이 취미라는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건 마치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밥이요'라고 답하는 것처럼 심심하고 인상적이지 못한 대답같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전각'과 '합창', '오카리나'같이 질문자가 만족할 만한 답변을 준비해 두고 있다.(실제로 내 취미이다.) 하지만 밥먹고 일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독서와 음악감상이다. 책과 음반을 사는데 가장 돈을 많이 쓰기도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이 나는 내 취미를 취미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학과 음악은 너무나 흔하다. 그래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실제로 문학과 음악에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 생각해 보면 굉장히 심한 착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정신 집중해서 흘려 보내지 않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면 문학과 음악이 흔하기는 하지만 주변에서 둥둥 떠다니기만 할 뿐이지 실제로 손을 내밀어 잡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자와 세이지 小澤 征爾 (1935 ~ ) 일본의 지휘자. 피아니스트로 출발하여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시작, 토론토 심포니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음악감독, 빈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일본 최고의 동갑내기 거장

물론 이견이야 있을 수 있지만 일본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사람은 오자와 세이지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지휘한 음반이 몇 장 있는데, 사실 다른 일본의 클래식 음악가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오자와 세이지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오자와 세이지가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한다면 오에 겐자부로가 일본의 문학을 대표한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최근 매년 밥먹듯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일본에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함께 유이하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우연찮게도 두 명은 모두 1935년생이 친구여서 이 대담이 성립되었다. 대담이 있었던 때 두 사람은 65세, 한창 의욕적인 활동을 있었던 이 대담의 주인공들은 지금 83세가 되었다. 이 대담기록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두 거장의 (잡담을 가장한) 치열한 삶과 예술에 관한 기록이다.

 

오에 겐자부로 大江 健三郎 (1935 ~ ) 일본의 소설가. 1958년 《사육》으로 아쿠다가와 상을 시작으로 일본 대표 작가로 발돋움하였고,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두 번째로 일본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음악, 문학, 예술 그리고 삶

오자와 세이지는 일본의 전쟁 패망 전에 만주에서 태어나 종전 후 일본으로 입국했고,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시골 깡촌에서 태어났다. 둘 다 일본에서 교육받고 자랐지만 세계적인 예술가로 발돋움하면서 일본의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인으로서 보편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런 시각은 오자와보다는 오에에게 있어서 더 두드러지는데, 서양에서 활동하면서 서양음악을 지휘하는 오자와에 비해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어로 글을 쓰는 오에가 더 탈일본의 경향을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대담은 대체로 서로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부드럽게 진행되는데, 두 사람의 관심은 좀 다르다. 오자와는 과거와 현재의 성과를 미래로 연결하는데 관심이 많고 오에는 개별적인 존재로서 개인의 가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강조한다. 그러니까 오자와는 교육에 관심이 많다면 오에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사회, 특히 정치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인다. 주된 관심사는 달라 보이지만 둘 중의 한 명이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피력하면 상대방은 동의를 표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며 대담은 분위기 좋게 진행된다.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은 오에 히카리 大江 光 (1963 ~ )는 태어나서부터 3년동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삶을 기대하기 힘든 아기였다. 수술 후 기적적으로 살 수는 있었으나 언어장애, 행동장애, 자폐증을 가지고 있으며, 지능지수는 65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음악재능을 발휘하였고, 현재는 두 장의 베스트셀러 앨범을 발매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삶과 생각이 묻어 있는 편안한 대화

 

토론이 아니라 대담이면서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날카로운 구석이 전혀없는 책이다. 때로 거장들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들이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구름 위에서 돌아다니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진솔하게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에의 아들인 히카리가 자폐를 겪으면서 느꼈을 오에의 슬픔도 잔잔하게 느껴지고, 미국에서 스티립쇼를 관람했던 오자와의 쑥스러움도 느껴진다. 그 가운데 삶을 대하는 두 거장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대담이라고 해서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의도적으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좀 어렵지만 서로 존중하는 두 친구가 생각나는대로 떠드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의 큰 장점이다. 두 사람은 좀 민망스러울 정도로 서로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사심없이 상대방의 일화를 끄집어 내면서 편안하게 대화하기 때문에 좀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지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

나는 소설가도 아니고 음악가도 아니다. 그저 취미로 둘다 즐기는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깊이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얘기가 재미있었지만 곁에서 엿듣기만 하고 대화에 끼여들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는만큼 배울 수 있다. 나는 내가 아는만큼만 읽었을 것이고, 음악이나 문학에 조예가 깊은 독자라면 스쳐지나가는 두 사람의 일상같은 대화속에서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라는 제목과는 달리 실제 오에는 자신의 문학과 오자와의 음악에 대해서 깊이있게 얘기하는데 반해 오자와는 오에의 문학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오에의 소설을 많이 읽어 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오에의 아들인 히카리가 작곡가이기 때문에 히카리에 대해서 언급을 할 뿐이다.(히카리는 자폐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작곡가가 되었다. 아마도 서번트 증후군이 함께 있는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머리 식힐 겸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분량도 많지 않고..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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