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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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여고 교사


마에시마는 세이카 사립 여자고등학교의 수학교사이며 양궁부 고문이다. 그저 평범한 교사일 뿐인 마에시마는 얼마전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등을 떠밀어 열차가 들어오는 동안 철로에 떨어질 뻔 한 적도 있다. 수영을 하는 동안에 누군가 물속에 전기가 흐르도록 멀티 탭을 설치해 놓기도 했다. 급기야는 위에서 떨어지는 제라늄 화분을 가까스로 피해 위험을 벗어나기도 했다. 교장에게 이런 사정을 얘기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그저 시끄러운 일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우연일지도 모른다고 억지로 마음을 추스리는 마에시마.


그런데 마에시마를 따라다니던 죽음의 그림자는 엉뚱하게도 학생지도부장인 무라하시를 덮친다. 무라하시가 학교 외진 곳에 있는 탈의실에서 청산가리를 마시고 숨진 채 발견된다. 학교는 발칵 뒤집히고 운나쁘게 양궁부장인 케이와 함께 시체를 처음 발견한 마에시마는 오타니 형사에게 시달린다. 첫 용의자는 다카하라 요코. 하지만 밀실 트릭이 깨지면서 요코의 용의점은 사라진다. 과연 무라하시는 누가 죽인 것일까?


히가시노 게이고. 東野圭吾 (1958 ~ ) 일본의 소설가. 가장 인기있는 소설가 중 한 명.


베스트셀러 작가의 첫 수상작

히가시노 게이고의 첫 수상작이며 전업작가로 전향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된 소설이다. '에도가와 란포상'은 일본의 추리소설가인 에도가와 란포를 기념하기 위해서 제정된 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1985년 31회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지금은 발표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휩쓰는 다작작가이지만 이때만해도 아직은 미래가 불확실한 애송이 작가였을 게이고의 실력을 볼 수 있다.


무라하시 사후, 사건을 조하사던 오타니 형사는 요코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조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머리좋은 호조 마사미의 추리에 의해서 요코는 혐의를 벗고 살인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며칠이 지나 학교는 안정을 되찾고 예정되어 있던 체육대회가 열린다. 체육대회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가장 행렬. 마에시마는 원래 양궁부 가장 행렬에서 술취한 삐에로로 분장한 후 참여할 예정이었지만 역할을 몰래 바꾸면 재미있을 거라는 육상부 고문, 다케이 선생의 제안에 따라 아무도 모르게 역할을 바꾼다. 그런데 소품인 술병에 있는 물을 마신 다케이가 갑자기 숨지고 그 원인은 술병 속에 있던 청산가리 때문으로 밝혀진다. 역할을 바꾸지 않았으면 마에시마가 살해당했을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이유로 마에시마를 노리는 것일까? 마에시마는 또다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연쇄살인범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건의 배경은 여자 고등학교. 여고생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썼다..고 생각하지만 여고생의 마음을 들여다 본 적이 없어서 여고생도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기본에 충실한 추리소설

벌써 30년도 전에 쓴 소설이다. 학교 환경도 현재와 다를 테고 휴대폰같은 학생들의 필수품도 없을 때다. 하지만 읽는 동안 오래된 소설을 읽는 것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초창기의 소설이라고 해서 재미가 떨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최근에 (왠지 급하게 쓴 듯한) 단편집이나 재미없는 장편소설보다도 훨씬 낫다. 밀실을 둘러싼 트릭도 좋고 살해 동기를 숨기기 위해서 실제 살해목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노리는 것같은 트릭도 좋았다. 추리소설답게 마지막 반전과 추리과정도 매끄럽다. 최근 게이고의 소설을 보면 설정이 억지스럽거나 너무 전문적이어서 이해하기 힘든 작품도 많은데 그에 비하면 오히려 추리소설을 읽는 맛은 더 나은 것 같다.


살인을 하는 동기가 신선하다. 어떻게 이런 일로 살인까지 할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여고생의 수치심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니 그러려니 한다. 하긴 최근 '명탐정 코난'의 어처구니 없는 살인 이유에 비하면 훨씬 나아 보인다. 마에시마 아내의 이야기가 중간중간 들어간 것은 아무리 봐도 쓸데없다. 아내를 페이크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설정했다고 하기엔 너무 등장 장면이 적어서 전체 내용에 녹아들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뜬금없게도 책 마지막에 아내와 불륜을 일으킨 직장상사에 의해 마에시마가 살해된다. 전체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어처구니없는 마지막 장면이다. 소설 전체와 전혀 상관이 없으니 결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충격적인 마지막이지만 책을 읽는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 빠졌어야 할 부분.


내가 본 책은 이것인데 절판되고 최근에 소미미디어에서 새로 출간됐다. 그러고 보니 번역한 사람도 달라졌다. 내용도 바뀐 건 아니겠지?


★★★★

재미있고 깔끔하다. 마에시마 아내 부분이 쓸데없이 추가되어 눈에 거슬리지만 그 부분만 빼면 괜찮다. 남자면서도 여고생의 모습과 감정을 세심하게 살핀 후 소재로 삼은 것도 신선하다. 게이고가 이름을 떨친 첫 소설이므로 게이고의 팬이라면 읽어 볼 만하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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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인공존재!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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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서편력의 시작, SF소설

기억을 되돌아보면 나의 독서편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동화전집으로부터 시작됐다. 찾아보고 싶어도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책들을 어릴 때 수십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이후 백과사전, 교과서, 위인전기 같은 책들을 미친듯이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이 책들은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내가 골라서 읽은 책들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사오신 책, 그냥 집에 있던 책을 그냥 읽은 것이다. 내가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 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먼지 풀풀 날리던 도서관에는 당시에 아무도 읽지 않아 대출기록이 전혀 없었던 SF소설, 추리소설들이 가득했다. SF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 때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이때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같은 작가들과 친해졌다. SF소설은 어린 나에게 상상을 돋워주고, 독서에 취미를 붙여준 장르이다. 

장르소설은 그 목표가 명확하다. 추리소설은 알 수 없는 범인을 찾아가면서 마지막 범인을 찾아냈을 때 그 통쾌함이 극대화된다. 무협소설은 대의에 따라 영웅이 되어가는 대협의 풍모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읽는다. 판타지 소설은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지는 환상의 세계를 상상하는 재미가 우선이다. SF소설은 과학적 상상력을 현실과 잘 조합해서 마치 있을 것 같은 세계를 창조해서 지적 쾌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는 장편 《신의 궤도》를 읽은 후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일부러 찾아서 읽었다. 《신의 궤도》에서 멋진 설정에 비해 스토리텔링이나 장르적 쾌감이 아쉬워서 그걸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안녕, 인공존재》는 배명훈이 그동안 발표했던 중단편을 모아놓은 책으로 동명의 단편을 포함해 소설 여덟 편이 실려 있다.

1978 ~ . 한국의 SF소설 작가. 2011년에 《안녕, 인공존재》로 제1회 문학동네 젊은자가상 수상

설정과 아이디어는 좋았다

여덟 편의 소설이 모두 소재가 다르다. 다르면서도 굉장히 소설간의 간극이 크고 다양하다. <크레인 크레인>은 실체화된 종교를 다루고 <누군가를 만났어>는 고고학과 심령현상을 다룬다. 심지어 <안녕, 인공존재>에서는 철학까지 다룬다. 그외에도 마법, 우주론, 거대로봇 등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설정들도 좋다. 굉장히 다양한 지식을 지닌 작가라는 걸 잘 알 수 있다. 설정은 《신의 궤도》에서도 감탄을 한 바 있는데 《안녕, 인공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한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은 굉장히 부러운 점이고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안녕, 인공존재>에서는 그저 존재만 할 뿐 어떤 효용도 없는 물체를 소재로 하고 있다.

장르적 재미는? 회수되지 않는 떡밥들

그런데 아이디어와 설정만 가지고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 좋은 아이디어라도 잘 살려야 좋은 소설이 될텐데 《안녕, 인공존재》는 아이디어와 설정을 보여주는 중반까지만 재미있다. 그 이후로는 어설프다는 느낌이 결말도 모두 어정쩡하다. 계속해서 하나의 아이디어에 집중하다가 명확한 결말을 지어주지 않고 소설들이 끝나거나 데우스엑스마키나가 등장한다.

그냥 끝난다. 뭔가 의미를 찾아 보려고 해도 찾기 힘들다. <안녕, 인공존재>는 철학적인 사변만 난무한다. <매뉴얼>은 그냥 궁금증만 잔뜩 풀어 놓고 망한다. <누군가를 만났어>는 도대체 뭐지? 던져놓고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문학적인 효과를 노렸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겠지만 SF소설로 놓고 보면 실망스럽다. 멋진 소재를 만들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진행하던 소설들은 어느 순간 힘이 쭉 빠져 버린다. 결말에 이르러서도 도대체 어떤 내용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풀어 놓은 것들을 회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SF소설이라면 가질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가 없다.

문학상을 받을 정도이니 전문가들이 보기에 좋은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SF소설 팬의 한사람으로서 《안녕, 인공존재》은 읽고 나서 다른 SF 팬에게 읽어보라고 선뜻 추천할만한 책은 아니다.

★★☆

별로 재미없는 책이다. 뭔가 그럴싸하게 전개해 나가다 아무 것도 아닌 결말을 맺는다. 설득력있는 원인도 없고 개연성있는 결말도 없다. 대체로 뒷심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너무 아쉽다. 이 정도 상상력이면 훨씬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등산을 열심히 하다가 정상을 찍지 못하고 하산하는 느낌이다.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쉽다.

위에서 쓴 것처럼 선뜻 추천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고 배명훈의 소설을 또 찾아서 읽어 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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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장님 책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책을 읽는데 말입니다, 이게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겁니다. 억지로 보라고 하면 더 이상 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면 책장을 덮어도 되는 거 아닙니까? 굳이 마지막까지 그 고통을 참아내야 합니까?"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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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똑같구나..

아버지는 기도란 대화라고 했다. 나는 대화를 원했다. 기도원에 올라가 아버지가 들었다는 작고 세밀한 음성으로 나에게 말해달라 고 요구했다. 왜 아버지가 그곳에 가야 했는지, 왜 아버지를 지켜주 지 않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 납득시켜달라고 했다. 그럴듯 한 이유면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기도실에서밤하늘을 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내 귀엔 아무 말도들리지 않았다. 지친 나는 푸념을 하기도 하고 사정을 하기도 했다.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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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지 못하는 상대를 때리는 것만큼 비열한 짓은 없다. 군대의 온갖 불합리는 힘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힘이 주어지는 데서 나온다.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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