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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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늦게 흐르는 사람들

내 이름은 '에스티엔느 토마 앙브루아즈 크리스토프 아자르'. 영국 이름은 톰 해저드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프랑스에서 1581년 3월 3일에 태어났다. 어릴 때는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열세 살이 되는 해부터 몸에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정확히는 변화가 생기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성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열일곱, 열여덟 살이 되어도 여전히 겉보기에는 열세 살. 현재에도 다른 사람들이 알면 난리날텐데, 당시에는 더욱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배척받는 시대였다. 결국 엄마는 나 때문에 1599년에 마녀로 몰려 죽고 나는 살던 곳에서 도망친다.


런던 근처로 도망하여 살던 중 로즈 클레이브룩과 그레이스 자매를 만난다. 처음으로 마음을 주고 나의 비밀을 알려 줬다. 로즈와 사랑에 빠지고 셰익스피어의 눈에 띄어 글로브의 공연에서 류트를 연주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스럽고 총명한 딸, 매리언이 태어나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그 때. 하지만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내 모습에 사람들이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마를 마녀로 몰아 죽게 한 윌리엄 매닝이 글로브 공연 중에 나타나면서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결국 사랑하는 로즈와 딸 매리언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 1623년, 그레이스를 만나 로즈가 페스트에 걸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전해 듣고 로즈를 찾아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하지만 매리언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로즈는 반드시 매리언을 찾아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나는 매리언을 찾아 나선다. 무려 400년 동안.


매트 헤이그 1975 ~ . 영국의 소설가이자 동화작가


영국판 '별에서 온 그대' + '도깨비'

이제 평범해 보이는 사랑의 시대는 가버린 걸까? 드러마에서 여자 주인공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다. 신분 차이를 넘어선 평범한 여성과 재벌 남성의 사랑이 너무 식상한 나머지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드라마 'W')가 드앙을 하더니, 외계인(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이 등장해서 여심을 흔들었다. 심지어 천 년을 넘게 산 도깨비(드라마 '도깨비')까지 등장해 이제 평범한 남자는 로맨틱해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아버지의 사랑 역시 400년 쯤은 거뜬히 딸을 찾아 헤매야 만족스러운가 보다. 주인공 톰 해저드는 평범한 사람에 비해 13~14배 가량 늦게 노화가 진행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도 않고 병에 잘 걸리지도 않으니 사고가 나지 않는 한 약 천 년 정도는 거뜬히 살 수 있다. 이렇게 노화가 늦어서 오래 사는 사람들을 에너제리아라고 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인간의 오랜 바람이지만 톰 해저드는 무병장수에 대한 대가로 사랑하는 엄마가 죽고, 아내와 딸을 떠나야 했다. 이제 남은 건 자기와 같은 에너제리아인 딸 하나 뿐이다.


글로브 극장 The Globe은 1598년 지어져 지금까지 연극이 공연되고 있는 극장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많은 희곡이 초연된 것으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소재, 하지만..

《시간을 멈추는 법》은 계속해서 톰 해저드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주인공은 과거에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다. 현재에서는 타워 햄리츠 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불어 교사인 카미유 게렝과 사랑에 빠지기는 하지만 항상 평범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딸을 걱정하며 찾는 안쓰러운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딸을 찾아 준다는 약속에 낚여서 헨드릭 피터센에 끊임없이 휘둘리는 모습도 보여 준다.


조금 식상하긴 해도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데,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적절하게 등장시킴으로써 재미를 주기도 한다. 400년을 넘게 살면서 주인공은 셰익스피어가 이끄는 극단에서 류트 연주를 하기도 하고 팀 쿡 선장의 배에서 선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대화를 하기도 하고(아마도 피츠제럴드의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염두에 두고 등장시킨게 아닐까 싶다), 채플린을 만나기도 한다. 마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주인공이 역사적 순간에 여기저기 등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사건과 소재와는 반대로 인물의 감정을 다루는데는 그다지 능숙하지 않아 보인다. 주인공에게는 네 개 정도의 감정 흐름이 있는데, 엄마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은 잘 표현이 되었지만 아내인 로즈, 딸인 매리언, 새로운 사랑인 게렝에 대해 사랑하는 감정은 그다지 절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계속 마음속으로 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을 드러내지만 와닿지 않는다. 왜 그렇지? 아마도 말로만 떠들고 그에 따른 행동이 없기 때문인 듯 하다. 입으로만 떠들어 대면서 결국 아내를 떠났고, 딸을 방치하고 게렝에게도 소극적이다.


무엇보다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무리 봐도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헨드릭 피터센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493살이라는 나이는 어디로 드셨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타히티 출신으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아내와 함께 살다가 자신보다 육체적으로 나이가 많은 딸과 함께 사는 오마이가 당당한 모습이 더 수긍이 가고 멋져 보인다. 거기에 대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찌질해 보이기까지 한다. 결국 마지막에 자신을 옭아매던 피터센이 죽은 것도 톰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톰이 찾은 행복 역시 수동적이기만 하다.


《시간을 멈추는 법》의 주인공은 프랑스 태생으로 전세계를 떠돌아 다니면서 살지만 주로 영국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

소재로 볼 때 재미있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역사적 인물을 배치해서 흥미를 돋우기는 했지만 사실 이런 소설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설정이다. 오히려 흥미로운 소재를 잘 살리지 못하 전개 과정이 무척 아쉽다. 인물들의 감정을 다루는 면도 굉장히 실망스럽다. 두꺼운 책이지만 쉽게 읽을 수 있다. 영국에서라면 몰라도 우리에겐 이미 '별에서 온 그대'와 '도깨비'가 있기 때문에 소재가 굉장히 신선하지는 않다. 왜 제목이 '시간을 멈추는 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딱 별 세 개 반만큼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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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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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금 불량하지만 좋은 친구들

쇼타와 아쓰야, 고헤이는 좀도둑이다. 오늘도 물건을 훔쳐 달아나던 중 도주를 위해 훔친 차량이 길에서 퍼져 버렸다. 한밤중에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밤을 지내기 위해 살피던 중 낡은 집을 한 채 발견하고 그 곳에서 밤을 나기로 한다. 잠시 쉬려고 하는데 편지함으로 뚝 떨어지 편지 한 통. 읽어 보니 고민을 적어 놓은 편지이고 답장을 기다린다. 세 사람은 장난삼아 답장을 적어 우유배달함 속에 넣는다. 그런데 답장에 대해 또다시 도착한 편지.


아무도 다녀가지 않았는데 도착한 이해할 수 없는 편지 때문에 세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머리를 맞대고 생각한 결과 편지는 1979년에서 온 것이고 그들이 있는 집은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소통하는 방법은 편지. 세 사람은 과거의 여자가 보낸 상담 편지에 적절한 대답을 해주기 위해 머리를 맞대어 답장을 하지만 여자는 제멋대로 편지를 해석하고 세 사람이 한 조언에 따르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공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이제 시작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1958 ~ . 일본 소설가.


추리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소설 중에서도 제일 먼저 읽은 소설이다. 일본소설을 거의 읽지 않던 내 눈에 한참동안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매우 눈에 거슬렸다. 궁금함에 주문해서 읽은 것이 벌써 5년 전. 최근에 게이고가 쓴 소설을 꽤 읽었는데 내용이 거의 생각나지 않아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게이고가 쓴 소설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위치에 있는 소설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게이고 소설은 대부분 추리를 통해 지적인 쾌감을 주는 작품은 있을지언정 정서적인 감동을 주는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미스터리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범죄자도 형사도 등장하지 않고 피가 튀는 장면도 없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게이고 소설 중에서도 상당히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모든 사건은 과거에서 온 상담편지로부터 시작한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어느날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 과거의 고민에 답을 하는 좀도둑 세 명. 이 세 사람은 그다지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해결해 줄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고민상담을 원하는 편지를 읽은 후 답을 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기도 하고 때로는 고민상담을 하는 사람에게 화가 치밀어 생각나는대로 멋대로 휘갈겨 답장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 잡화점의 주인인 나미야 유지가 답장을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렇게 상담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섯 명. 다섯 개의 사연과 다섯 개의 상담이 하나의 단편을 이루고 다섯 개의 단편이 모여서 하나의 옴니버스 세계를 수놓는다.


올림픽에 나가길 원하지만 암에 걸린 남자친구가 걱정되어 곁에 머무를지 고민하는 펜싱 선수. 세 친구는 일본이 그 대회를 보이콧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꼭 남자친구 곁에 머무르라고 조언한다. 가수가 되고 싶은 꿈과 가업을 이으라고 하는 아버지의 요구 사이에서 방황하는 무명의 아마츄어 가수. 불타고 있는 고아원에서 장래에 유명가수가 되는 여자 아이의 동생을 구한 후 죽을 운명이지만 그의 노래만은 전설적인 명곡으로 남는다.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을 사랑했던 엄마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 새로 살아갈 힘을 얻고, 야반도주를 하려는 부모 때문에 고민하는 비틀즈 매니아는 결국 부모를 떠나고 만다. 가난을 이기기 위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회사원은 세 사람이 한 충고를 받아들여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각자의 사연은 다르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상담가는 어설프게 적절해 보이는 해답을 주고, 고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충고를 따르기도 하고 상관없이 행동하기도 한다.


과거와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설정은 이제는 굉장히 식상한 소재이지만 게이고는 짜임새있게 소설을 써냄으로써 많은 감동을 준다.

촘촘히 엮인 플롯

첫 에피소드를 읽을 때만 해도 과거와 현재가 우체통과 우유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과거의 고민을 세 얼간이 좀도둑이 엉뚱한 대답으로 해결해 주는 단편소설집인 것처럼 보인다. 다섯 편에 연결점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그 이상을 보여 준다. 첫 편에서 등장한 '달토끼'가 다음 편에 나오고 두 번째 편에서 등장한 '생선가게 예술가' 역시 다음 편에 나온다. 얼핏 궁금했던 전편 주인공들의 후일담이 다음 편에 반복적으로 드러나더니 마지막 편에서는 다섯 명 모두가 등장하고 '환광원'이라는 고아원과 '나미야 잡화점'을 중심으로 모든 인물이 연관되어 있다는게 드러나며 감동을 준다.


위와 같은 점에서 게이고가 쓴 이전 단편들에서 주인공 한 명이 사건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과는 좀 다르다. 사건이 하나씩 완결되지 않고 플롯이 촘촘히 엮여 있어서 뒤로 갈수록 궁금했던 것이 풀리며 흥미로워진다.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이전 단편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후일담을 확인하며 잔잔한 감동을 주는 것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장점. 한참 인물관계도를 머릿속에서 그려가며 읽다가 마지막 편을 다 읽고 책을 덮고 나면 '나미야 잡화점'을 거쳐간 사람들이 떠오르고 뿌듯함이 느껴진다.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영화화되었다.

★★★★☆

추리소설도 아니고 시리즈 중에 한 권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고 굉장히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아 이제는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책이다. 일본에서는 아마도 한국보다는 인기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히가시노 게이고를 추리소설가로 보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하고 한국과 일본의 정서가 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 미스터리도 적절하고 감동스럽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읽은 책이기도 하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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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빈원이 가난한 노동자 계층으로 하여금 공공 자원을 포기하게 하는 기구였다면, 과학적 자선은 엘리트들이 그럴싸하게 부인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었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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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의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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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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