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었다. 밤마다 들려오던 구두소리를 그날 밤엔 끝내 들을 수가 없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아무도 와보지 않는 병원이 있다니. - P203

"정신병동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어요. 미쳐서 갇힌 자와 갇혀서 미쳐가는 자." - P213

폭풍이 오던 밤, 치명상을 입은 건 승민의 시력만이 아니었다. 말, 풍부한 표정, 분노, 유머, 활기, 뻔뻔함, 웃는 눈. 녀석을 설명하는 특징들이 다 사라졌다. 승민은 자신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돌아온 것이었다. - P224

"네 엄마한테 가서 전해. 내가 웃더라고."
승민은 웃음을 그쳤다.
"눈치껏 죽어주지도 않을 것 같더라고. 난 여기서 오래오래 살 생각이거든."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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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혼자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유원지 때문에 가장 피 보는 건 우리야. 정기적으로 청소 나가야지, 야밤까지 시끄럽지. 재작년부터는 글라이딩 하는 애들까지 몰려들어서 겨울에도 조용한 날이 없다니까." - P154

나는 허둥거렸다. 가슴 밑바닥에서 낯선 충동이 일고 있었다. 숲의 그늘을 벗어나 댐 비탈로 나가고 싶은 충동. 금빛으로 익어가는 옥수수들처럼, 막 타오르기 시작한 태양 아래 서고 싶은 충동. - P157

사람들 역시 꼼짝하지 않았다. 백일몽에 빠진 듯한 시선들이 제각기 다른 곳을 더듬고 있었다. 무엇을 더듬는지 궁금했다. 저들도 나와 같은 걸 느꼈는지 궁금했다. 그랬다면 그 통증에 대한 진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혹은 기억이 가져다준 ‘쓸쓸함‘ 이라고. - P159

‘인격적 대우‘의 보편적 의미가 상대를 존중하는 행동방식이라면, 정신병원적 의미는 물리적 수단을 쓰지 않고 환자를 통제하는 방식을 의미했다. - P166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승민은 많은 걸 할 줄 아는 놈이었다. 춤을 출 줄 알고, 노래를 부를 줄 알고, 근사한 목소리를 낼 줄 알았다.
자신이 가진 걸 온전히 누릴 줄 알았다. 무엇보다 놈에게서 터져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에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 P174

한이는 백합방으로 갔다. 보호사가 꽂은 주사에 정신을 잃고 이동침대에 실려 갔다. 이는 병원의 문제 해결방식이었다. 당사자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식.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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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 정녕 나를 버리시나요. - P63

"병원은 무법천지가 아냐. 대리인이 입원시키는 경우는 없어."
"이보세요, 최기훈 선생님. 당신 눈앞에 있잖아요. 댁이 가족이라고 우기면 가족이 아닌데 가족이 됩니까? 난 호적상 가족과 마주 앉아서 얘기를 하고 싶다고요." - P65

"수명아."
승민의 팔이 뒤에서 목을 감아왔다.
"오빠가 그렇게 좋아?"
나는 놀라서 목을 빼려 했으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 P83

나는 샌드백이 있는 창가에서 걸음을 멈췄다. 특별한 매력을 가진 자리였다. 이틀 전 우연히 발견한 사실인데 창살 하나가 정상이 아니었다. 무심코 잡았더니 흔들흔들했고, 슬쩍 당겼더니 구멍에서 쑥 빠졌다. - P85

모 정신의학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라이터는 이런 사람이다. 소방서를 물 먹이며 광범위한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 불놀이 선수. 병동 주민들은 라이터를 사이코패스의 범주에 넣는다. - P94

승민은 아침부터 수간호사를 달달 볶았다. 보호자가 수요일 오후에 퇴원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원장 사인이 든 퇴원 서류도 봤다. 오늘이 목요일이다. 어떻게 된 일이냐. 수간호사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퇴원 오더를 받은 바 없다. - P106

이상한 배신감을 느꼈다. 최기훈은 적어도 점박이보다 나은 줄 알았다. 공정한 사람인 줄 알았다. 따지고 보면 근거 없는 생각이었다. - P117

"그놈은 미치광이야."
십운산 선생이 모처럼 상대를 적시한 점괘로 말잔치를 정리했다.
"미치광이는 미쳐야 사는데, 못 미치게 하니까 미쳐버린 거야."
왕자, 개망나니, 유학생, 못 미치게 해서 미쳐버린 미치광이. 승민은 누구일까. - P130

지난 토요일에야 렉터 박사가 류재민이 속내를 확인시켜 주더라. 방화광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자고,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도덕의 정신병이며 치료법은 영원한 격리뿐이라고. 난 웃었어. 하도 암담하니까 웃음밖에 안 나오데. 난…."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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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보건심판위원회-2:00 PM
정신보건심판위원회는 오전 9시에 시작됐다. 심사 대상자는 일곱명, 한 사람당 심리시간은 30분이었다. 유례없이 긴 시간이었다. - P6

나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그 때문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수요일 저녁, 낯선 동네의 파출소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던 이유를 밝히자면, 죄목은 성폭행 미수였다. - P11

아버지는 내게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걸로 쓸데 있는 놈인지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4

간호사들은 매일같이 ‘주사 한 방‘ 이라는 은혜를 궁둥이에 내려주었다. 약 이름은 모른다.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충동적 본성과 야만성을 억눌러주는 마법의 약이라고 설명해준 기억만 난다. 내게 떨어진 지상과제는 ‘마법에서 살아남기‘ 였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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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에서 꺼내 방부처리한 내장을 담고 있는 용기를 이집트 학자들은 ‘카노푸스 단지‘라고 부른다. 카노푸스Canopus라고 불리던 고대 이집트의 그리스 거주민 정착지에서 특별한 항아리를 신으로 섬겼는데, 바로 여기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 P209

서기관 누는 이른바 <사자의 서>를 쓰는 전문가였다. ‘사자(死者)의 서(書)‘는 이승을 떠난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안내서로, 위험천만한 저승의 길을 지나 영원한 안식처에 무사히 도달하는 법을 소개하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였다. - P212

심판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절차는 진실과 선의를 나타내는 마트의 깃털과 죽은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이승에서의 삶을 평가하는 부분이다. - P213

<저승의 서>라고도 부르는 <암두아트의 서>는 태양의 신라가 밤이 되어 저승에서 12시간 동안 머물다가 다시 아침이 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여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P216

"그렇다면 즉시 작업을 시작하라." 투트모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 P251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금을 일컬어 ‘신의 살‘이라고 불렀다. 이집트에서는 특별히 은이 금보다 더 귀했는데, 은을 두고는 ‘신의 뼈‘라고 부르기도 했다. - P259

이 지푸라기들은 불을 피우는 연료나 가축의 먹이처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진흙벽돌을 만들 때도 빠질 수 없는 재료였다. - P268

파라오의 머리 위에 쓰는 붉은색 왕관은 하부 이집트를 그리고 그 위에 함께 쓰는 하얀색 왕관은 상부 이집트를 상징하며, 투트모세가 이집트 전체의 지배자임을 나타낸다. 또한 그가 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임을 나타낼 때 쓰는 파란색 왕관도 있었다. - P277

코브라와 독수리 여신의 모습이 새겨진머리 장식 또한 파라오가 상부 이집트와 하부 이집트, 이 두 땅의 주인임을 나타낸다. - P278

아멘호테프 3세의 아들 아멘호테프 4세는 태양의 신 라를 나타내는 여러 모습 중, 빛을 여러 갈래로 뿜어내는 원반인 아톤을 이집트의 유일신으로 섬기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이집트를 뒤흔들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 ‘아톤신을 이롭게 하는 자‘라는 뜻의 ‘아케나톤Akhenaton‘으로 바꾸었고,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인 멤피스와 테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신만의 새로운 수도를 건설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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