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세트 - 전6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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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시적 추억으로 다시 사게 된 천일야화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아주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나 노래를 다시 보고 듣고 싶은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어찌저찌해서 찾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도 있다. 나에게도 그런 얘기들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떤 왕자가 지하실에 있는 일곱 개의 조각상 중 비어있는 하나의 여인 조각상을 채우기 위해서 모험을 하다가 (누군지 모를 사람에개) 완벽한 여인을 찾아서 데려 오면 그 조각상을 얻을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의 이야기가 있었다. 여인을 찾아 바치러 가는 도중에 사랑에 빠지고 약속 때문에 그 여자를 바치기는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지하실에 가 보니 그 여자가 단위에 있었다는.. 그런 얘기다.
어쨌든 아마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었을성 싶은 이걸 다시 읽고 싶었는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가 활동하던 동호회 게시판에 올려 놓으니 답이 나왔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얘기라고 한다. 바로 주문을 하고 그 얘기부터 확인했다. 이 얘기는 6권의 맨 마지막에 부록으로 붙어 있는 제인 알라스남 왕자 이야기였고, 겨우 27페이지짜리 단편을 읽기 위해 여섯 권 전체를 사버린 것이다. 그리고 책장에 썩혀 놓고 있었다. 여섯 권, 2,200페이지는 참 길었기 때문이다.

Antoine Galland(1646 ~ 1715, 프랑스)

 

 

 

목숨을 걸고 낚시질을 하는 셰에라자드

천일야화, 아라비안 나이트의 처음 내용이야 모른 사람이 없을 것이다. 결국은 여자를 불신하게 된 왕(술탄이라고도 한다)인 샤리아가 처녀들과 하룻밤만 함게 보낸 후 모두 처형을 해 버리자 대재상의 큰 딸인 셰에라자드는 자원하여 샤리아의 침소로 들게 되고, 함께 있게 된 동생 두냐자드는 셰에라자드에게 얘기를 들려 달라고 한다. (이건 물론 셰에라자드의 계략이다.) 왕의 허락을 받고 얘기를 시작한 셰에라자드는 왕이 궁금해 할만한 시점에서 적절하게 얘기를 끊어버려서 하루하루 자신의 목숨을 이어나간다. 목숨을 건 낚시질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낚시질은 천 하루동안 이어진다.

 

 

 

 

 

 어릴적 꿈의 아이템. 알라딘의 요술램프.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이렇게 시작한 얘기를 읽기 시작한 나도 왕이 되어 낚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얘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얘기 속의 인물이 또 얘기하고.. 또 그 속의 인물이 또 얘기를 하고.. 기본적으로 얘기 자체가 흥미롭기 때문에 술술 읽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천일야화를 읽으면서 제일 즐거웠던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었지만 기억의 밑바닥에 어렵풋이 저장되어 있던 여러가지 얘기들을 되새길 수 있는 점이었다. 왠지 어릴 적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 나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렇게 두근거리면서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특히 어렴풋이 기억은 하고 있는데 연원을 몰랐던 얘기들이 책 속에서 많이 튀어나오니 마치 숨겨두었던 보물상자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자파. 애니메이션에서는 악역이지만 소설에서는 유능한 대재상이다.

 

 

 

 

우리의 영원한 친구, 신드바드, 알라딘, 알리바바

역시 천일야화에서 가장 친근한 사람이라면 이 세 인물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의 얘기가 제일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책의 해설을 보니 이 세 사람의 얘기는 앙투안 갈랑이 쓰기 전에는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얘기여서 갈랑의 창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내가 봐도 다른 이야기들과 좀 이질감이 들기는 하다. 특히 알라딘의 이야기는 이야기의 구조가 다른 이야기들에 비해 질질 끌지 않고 딱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알리바바 얘기는 정말 잔혹하다. 신드바드는 전혀 귀엽지 않다.

 

삽화가 참 좋다. 표류하고 있는 신드바드.

 

이야기 진행의 특성

아무래도 셰에라자드가 목숨을 걸고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서론에서 질질 끄는 법이 없다. 바로 흥미진진한 얘기로 들어간다. 그리고 인물의 성격이 어처구니없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두 아내가 최악의 악녀가 된다든지, 얘기가 끝이 난 줄 알았는데 전혀 새로운 얘기가 같은 인물로 진행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여러가지 설화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합쳐져서 그럴 것이다. 셰에라자드가 목숨을 걸고 얘기를 길게 끌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읽는 동안 나도 내내 낚였다. 하지만 내가 왕이라면 셰에라자드가 죽을 장면이 서너군데는 있었던 것 같다. 많지는 않아도 지루한 장면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니까.

 

양영순의 천일야화. 이 책도 사놓고 안 읽고 있는데 읽어 봐야겠다.

 

몇가지 새로 알게 된 사실..

알라딘은 양탄자를 타지 않는다. 마법의 양탄자는 다른 곳에서 나온다.
알라딘은 중국사람이다.
디즈니의 알라딘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악역인 자파가 자파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의 악독한 마법사가 아닌 현명한 대재상으로 나온다.
신드바드는 절대 애니메이션처럼 귀여운 어린 아이가 아니다.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가 서양에 소개된 첫 완역본이라고 한다.
그리스신화부터 중국의 설화까지 온갖 얘기들이 들어가 있다.
 

 

리처드 버턴의 아라비안 나이트.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가 외설적인 장면을 최대한 줄인 반면, 리처드 버턴은 외설적인 장면을 오히려 강조하는 듯하게 썼다고 한다. 이것도 읽어 보고 싶지만, 엄두가 안난다. 거의 두배.

 

고전이란..

고전이라는 것은 조금 농담을 섞어서 얘기하면 누구나 제목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오래된 책이라고 생각한다. 천일야화도 그렇다. 거의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지만 전체를 읽어 본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유익한 고전이라고 하더라도 재미가 없었다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단지 고전이기 때문에 편견을 갖고 생각해서 지루하고 재미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많은 분량에 짓눌리지 않고 읽어보면 굉장히 재미있다.

 

표지도 멋지고.. 열린책들이 만든 책들은 믿을만하다.

 

추천~!

우선 번역이 깔끔하다. 간혹 의역이 좀 심하다 싶은 경우도 있지만 읽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번역되어 있다. 열린책들의 다른 책들이 그렇듯이 책의 만듦새도 좋다. 무엇보다 책의 분량을 늘리기 위해서 무리하지 않은 점이 좋게 보인다. 
무엇보다, 정말 재미있어서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다. 여섯 권 합쳐서 2,000여 페이지가 넘지만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간다. 특히 어릴 적에 띄엄띄엄 에피소드별로 읽었던 사람들은 옛 추억에 잠기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딱 천일야화에 제일 어울릴 것 같은 멋진 삽화도 절대로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읽고 보니 예전에 첫 권만 사 놓고 진도가 나가지 않아 읽지 않았던 범우사판 리처드 버턴의 아라비안 나이트가 자꾸 눈에 밟힌다. 하지만, 이건 4,000페이지다.

 

 *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알라딘은 서평 적는 게시판 좀 잘 좀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글쓰기도 너무 불편하고 편집하는 것도 너무 어렵다. 서점 사이트에 서평을 쓰는 게시판에 가장 신경써야 하는 것 아닌가? 불플 앱도 어플 깔면 적립금 주는 것보다 서평란에 글이 많아야 활성화될텐데.. 우선 기본이 충실해야 부가적인 수단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이전에 운영하던 블로그에는 읽은 책의 서평을 꼭 썼는데, 알라딘에는 옮기지 않은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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