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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스포일러가 있으니 스포일러에 민감한 사람은 보지 말 것..
어느날 날아온 유언장 한 장으로 40년 전을 반추하다..
토니 웹스터는 60세가 넘은 이혼한 노인이다. 평범하게 살아 오고 평범하게 이혼하고 평범하게 혼자 살고 있는 노인에게 40년전에 잠깐 사귀었던 여자인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 포드 부인으로부터 500파운드의 어정쩡한 금액과 함께 학창시절 친구였던 에이드리언 핀의 일기장이 유산으로 남겨진다. 에이드리언은 토니와 사귀었던 베로니카와 사귀겠다고 토니에게 편지를 보낸 후 얼마후 자살한 친구다. 자신에게 남겨진 에이드리언의 일기를 받고 싶었지만 베로니카는 토니에게 일기장을 건네 주지는 않고 일기의 일부분만 복사햐여 보여 준다. 아무리 귀찮게 하고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해도 일기를 주지 않는다. 대신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썼던 편지를 역시 복사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한 40대 남성을 보여 주고 그 후에 토니는 40년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되고 기억을 더듬게 된다.
지적허세와 함께 사랑에 대해 미흡했던 어린 시절..
토니와 이름을 거론할 필요가 없는 두 친구는 지적 허세가 가득한 친구들이다. 어느날 전학 온 에이드리언이 그들의 패거리에 합류하는데 에이드리언은 허세가 아니라 정말 지적인 친구이다. 토니는 회상하는 내내 토니에 대해서 상당히 선망하는 태도를 취한다. 비록 친구이기는 하지만 한차원 높은 친구.. 데미안같은 느낌이 드는 친구이다. 그들은 사실 무슨 말인지 잘 알지도 못할 말들을 지껄이며 (읽는 나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마치 지성인인체 한다. 대학에 들어간 후에 토니는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지만 성관계를 맺지 못해서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베로니카의 집에 한 차례 방문한 뒤 시덥잖은 이유로 헤어지면서 베로니카와 성관계를 갖게 된다. 후에 캠브리지에 다니던 에이드리언은 베로니카와 만나게 되고 토니에게 약간의 미안한 마음으로 허락을 구하는 듯한 편지를 보내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토니는 쿨하게 받아들이는 내용의 편지를 쓴다. 그리고 얼마 후 에이드리언은 자살하게 되지만 왜 자살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1부는 조작된 기억의 기록이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40년 전의 얘기이다. 그리고 2부는 현재의 얘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는 2부의 내용을 먼저 적었다. 실제로 이 책은 시간적으로 보면 2부가 시작하는 부분이 제일 먼저이고 포드 부인이 유언장을 받은 후에 1부의 내용을 회상하고 그 회상 이후에 베로니카로부터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받으려고 노력하면서 과거의 일을 알아가는 토니의 모습의 차례로 되어 있다. 시간의 순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1부의 내용이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회상이기 때문이다.
무려 40년 후에 토니는 유언장 하나로 인해서 과거의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 대해서 회상을 하게 되고 많은 에피소드를 적게 된다. 회상을 하는 시점이 큰 문제가 되는데 무려 40년전의 일들이다. 1부를 보면 학생과 교사의 대화까지 자세하게 묘사를 하고 있다. 과연 그 묘사들이 정확한 것일까? 토니는 자신이 쿨하게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고나계를 인정하는 편지를 썼다고 기억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편지의 내용은 완전히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 완벽한 저주를 퍼붓는 내용의 편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억이 불명확한 60대 노인의 40년전 기억이 명확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시 말해서 1부는 토니의 상상이 만들어낸 기억일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정말 에이드리언이 지적인 사람이었을까? 에이드리언은 캠브리지에 입학한 수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많은 멍청한 사람들이 그저 들입다 공부만 해서 좋은 학교에 가는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베로니카와의 일들 역시 어느 하나 정확한 기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1부의 내용은 순전히 토니의 기억일 뿐이다. 실례로 토니는 그 기억을 어느 누구하고도 비교해서 검증하지 않는다. 친했던 다른 두 친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1부는 2부의 현실상황에 맞추어서 토니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의 창장해 낸 과거가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확신이다..
이 대사는 에이드리언이 역사 교사와 나누는 대화에서 나오는 대사인데 이 책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실제로 토니가 베로니카로부터 얻을 수 있는 문서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의 일부분과 자신이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사라 포드 부인의 유언장 뿐이다. 그 세가지의 문서를 가지고 정확하지 않은 기억으로 과거를 재현해 낸다. 하지만 그 기억은 완벽하게 조작이 되어 있었다는 것이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혀 진다. 작가인 줄리언 반스는 역사에 대해 굉장히 냉소적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독자에게 '정말 네가 알고 있는 역사가 사실이냐?'고 묻고 있는 것 같다.실제로 이 책을 다 일고 나서도 도대체 에이드리언이 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일기장에는 무슨 내용이 씌여 있는지, 사라 포드 부인이 도대체 왜 토니에게 미안해 하고 있으며 일기장과 500파운드의 유산을 남겨 놓았는지같은 중요한 내용도 알 수 없다. 그저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위의 물음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비록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가 왜곡이 되어 있을 수도 있고 완전히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왜곡되고 잘못된 역사라도 지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아닌 역사도 역사이다. 물론 '사실로서의 역사'를 알고 있다면 훨씬 좋겠지만 이미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그것은 '진실로서의 역사'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을 알아내고 싶어하는 역사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반드시 사실로서의 역사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목은 아무리 생각해도 낚시질밖에 안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이다.. '결말의 느낌'이라고 기계적으로 번역할 수 있고 그렇게 번역해도 대충 맞겠지만 뉘앙스상으로는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한글 제목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너무 서스펜스 소설의 느낌을 주어 마지막 반전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결국은 책을 읽는 내내 마지막 반전만을 추측하면서 읽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있는 소설상의 재미를 못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1부와 2부의 구조가 거의 완벽하게 겹쳐지는 느낌이라든지 수업시간에 나누는 대화들이 사실은 2부의 내용이라든지, 중간중간 나오는 꼴같잖은 10대의 허세같은 세세한 부분을 지나치게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다 읽고 나니 베스트셀러였다는 것을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 것 같다. 안 읽은 사람이라면 대체적으로 추천하는데 이 책을 읽을 때는 다른건 몰라도 앞의 수업시간 내용을 잘 기억하면서 읽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나오는 지적인 허세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그냥 슬쩍 지나가면서 읽어도 된다. 그냥 그렇구나~정도로 읽어야지 그 뜻을 자세히 새기면서 읽으려고 하면 소설이 너무 지루해져서 읽기 힘들다. 그리고 이 책은 미스터리물이 아니다. 물론 마지막 충격적인 대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그 반전은 우리가 추측한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이지 반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만 기대하다가는 중간의 중요한 부분을 다 놓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