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언브로큰 - 전2권 - 모든 기적은 삶에 있다
로라 힐렌브랜드 지음, 신승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 당연히 스포일러가 있으니 내용을 알기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읽지 마세요.

 

올림픽 대표선수.. 전쟁포로가 되다..

루이스 잠펠리니는 미국의 최연소 올림픽 국가대표선수였다. 어릴 때는 많이 불량했던 루이스는 육상 중장거리 선수였던 형 피터의 지도와 도움으로 1,500미터 경기에서 미국에서 이후 수십년간 깨어지지 않을 기록을 세우고 전향한지 얼마 되지 않은 5,000미터 경기에서 국가대표로 선발이 되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다. 그러나 얼마 후 일본의 공습으로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폭격기인 B-24에 장교로서 탑승해 폭격주준기를 조종하게 된다. 전쟁에 참가하여 전공을 올리던 루이스는 행방불명된 동료를 찾으러 가던 중 비행기의 이상으로 조종사였던 러셀 앨런 필립스, 병장인 프랜시스 맥나라마와 함께 조난을 당하게 되고 46일간의 악전고투 끝에 일본군의 포로가 되고 포로수용소에서의 850일간의 포로생활을 시작한다.

 

<기관포에 맞아 뚫린 슈퍼맨 호의 측면 구멍으로 들여다 보고 있는 루이스>

 

소설.? 논픽션.?

책보다는 영화에 대한 소식이 먼저 들려 왔다.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한다는 얘기며 일본에서 영화의 내용을 문제삼아서 안젤리나 졸리의 입국을 보이콧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도 했다. 대략의 내용은 어떤 건지 미디어를 통해서 알고 있었고 사실 이런 식의 책이나 영화의 플롯 진행이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뭔가 다른 점이 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당연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에 가까운 것 같다. 작가인 로라 힐렌브랜드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모았다. 그리고 책 속에서도 취재의 과정을 숨기지 않았다. 책을 읽는 내내 기본적인 스토리에서 벗어나는 취재과정에서의 경험을 함께 적고 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각 권의 말미에는 내용에 상응하는 인터뷰 기록이 적혀 있고 소설책같지 않은 각주도 많이 달려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완전히 논픽션이나 르포라고 할 수 없는 것은 단순히 취재의 내용만을 기록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취재한 내용의 중간중간에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나 전혀 정보가 없을 것 같은 내용까지 작가의 상상력으로 살을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흔히 건조한 문장 때문에 지루해지기 쉬운 르포를 보는 것과는 달리 구성이 좋기 때문에 일반적인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흡입력도 좋아서 읽는데 지루하지 않다.

 

<예상대로 역시 여자였다. 작가인 로라 힐렌브랜드>​

 

약간 떨어지는 긴장감, 하지만 자세한 묘사는 압권..

​작가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다. 구태여 찾아 보지도 않았다. 이름을 보니 여자일 것 같고 책의 표지날개를 보니 '시비스킷:신대륙의 전설'이라는 비슷한 소설을 썼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같은 내용의 말 이야기 영화 포스터를 본 것 같다. 당연히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는다. 기본적으로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취재해서 쓴 책이기 때문에 정말 자세하다. 어떻게 이런 것까지 내용에 들어갈까 하는 내용까지도 들어가 있다. 특히 책 속에 들어 있는 사진들을 보면 주인공인 루이스 잠페리니의 엄청난 수집벽이 이렇게나 자세한 내용을 쓸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자료들을 바탕으로 작가는 루이스의 어린 시절과 육상선수가 되어 올림픽에 나가는 과정, 군에 입대하고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당했던 일들까지를 잡다한 에피소드까지 자세하게 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이미 60년이 넘게 지난 일들이지만 모든 광경들이 눈에 잡힐 것같이 머리속에서 그려진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듯 자세한 내용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약간의 단점이기도 한데 너무 자세하기 때문에 스토리를 따라가며 읽는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긴장감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책에 몰입을 하려고 하면 주변의 이야기와 메인 스토리와는 약간 벗어나 보이는 에피소그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성작가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수용소에서의 인간관계와 심리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뛰어난데 반해 올림픽 장면이라든지 전투장면은 조금 긴장감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 그래서 1권의 초반부 육상선수로 활약하는 장면과 전투장면에서 책 읽는 걸 포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2권으로 넘어가면 1권과는 달리 훨씬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특히 루이스를 집중적으로 괴롭히던 무츠히로 와타나베와 만난 장면부터는 끝까지 쉬지 않고 읽을 정도로 몰입감이 강하다.

 

<조만간 개봉하는 영화 언브로큰, 일본 극우세력이 감독인 안젤리나 졸리를 악마라고 하면서 입국금지까지 요청하고 있는 중이다>

 

영웅으로 만들지 않아 불편하지 않다.

원래부터 유명인사였던 루이스는 ​실종부터 귀환까지 언론의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화이기 때문에 더욱 기가 막힌 루이스의 경험은 전쟁영웅을 만들어 내기 딱 좋은 소재이다. 하지만 루이스가 포로수용소에서 했던 행동을 보면 영웅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루이스는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서서히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파괴당해 가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것을 일부러 멋지게 치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루이스는 폭력에 의해서 정신이 파멸될 지경에 이르고 영웅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사람이 행동할 법한 비굴한 행동도 하게 된다. 몇개의 영웅적인 계획을 시도하려고 하긴 하지만 그것은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였다. 후기를 보면 주인공인 루이스가 오히려 자신에 대해서 미화했던 언론의 보도를 바로 잡아 주었다고 했으니 작가로서도 주인공을 영웅적으로 그리는 부담감을 떨쳐 버릴 수 있었을 것 같다.

 

<포로수용소에서 루이스를 괴롭혔던 무츠히토 와타나베. 내 생각에는 끝까지 반성하지 않은 것 같다.>

 

용서하는 것이 정말 최선일까?

책의 마지막을 보면 정말 뜬금없어 보이지만 전쟁에 대한 잊을 수 없는 기억 때문에 폭주하던 루이스는 종교의 힘으로 괴로웠던 기억을 이기게 되고 결국은 자신을 가장 괴롭히던 무츠리호 와타나베까지 용서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게 과연 바람직했었던 것인가는 나로서는 조금 의문이다. 결국 무츠히로 와타나베는 전범중에서도 7번째에 이름이 거명될 정도로 중한 범죄자였지만 2003년까지 부유하게 살고 죽기전까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반성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당시 냉전상황에서 선택할 여지가 없었던 미국은 결국 전후 일본을 복구하게 되고 동북아시아의 맹주가 되도록 도와 일본이 독일처럼 철저하게 자기 반성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그 결과 일본은 지금 새로이 극우적인 성향을 나타내며 군사대국으로 가려는 욕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철저한 응징과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같은 시기에 친일파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이 넘어가서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로 사회분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철저한 자기반성이 없는 용서 혹은 소극적인 방치가 결국에는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는 큰 잘못을 제공하는 것 같다. 함부로 죄를 벌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함부로 죄를 용서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말년의 루이스. 빌리 그레이엄의 설교에 감화를 받은 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 후 사회사업에 힘쓰고 후에 올림픽 성화주자로도 나선다. 2014년 2월에 97세로 사망.>

 

책의 제목이 언브로큰(Unbroken)이다. ​루이스의 정신이 전쟁의 참상 이후에도 부숴지지 않았다는 뜻일테지..

 

책이 참 재미있다. 위에서 쓴 것처럼 초반에는 약간 책장 넘기기 힘들 수 있는데 믿고서 첫 책의 절반 가량을 읽고 나면 그 후는 쭉쭉 읽어 나갈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사람들이라면 당시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빠르기 때문에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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