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도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4
다나카 요시키 지음, 손진성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일단 믿고 간다.. 다나카 요시키..

​아주 어릴적부터 SF소설을 정말 좋아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추리소설과 SF소설을 읽기 시작해서 당시 학교 도서관에 있던 거의 모든 추리소설하고 SF소설을 섭렵하고 중학교 때 김용의 무협소설에 빠지기 전까지 엄청나게 읽어 댔으니 아마도 내 독서의 시작은 추리소설과 SF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SF소설 작가 중에 최고로 치는 작가는 아이작 아시모프이다. '로봇공학의 3원칙'을 중심으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어 인간형 로봇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 '로봇'시리즈와 '심리역사학'을 창시한 해리 셀던을 중심으로 해서 장대한 미래의 인류를 다루다가 마지막에는 '로봇'시리즈와 연결해 버리는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정말 멋진 작품들이다.

또 하나의 걸작으로 꼽는 SF소설은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이다. 아시모프의 소설이 장대한 흐름을 사회학적 관점에서 살펴 본다면 '은하영웅전설'은 미래 역사를 영웅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치, 문화, 역사를 엮어내는 것이 마치 삼국지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한 번 손에 잡으면 10권을 단번에 독파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흡입력도 좋아서 매니아층도 굉장히 두꺼운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다른 판타지 작품 '창룡전'은 조금 읽다가 ​손에서 놔 버렸고 그 외의 작품들은 읽지를 않다가 우연히 다나카 요시키의 한권짜리 소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읽기 시작했다.

​<이게 일곱도시의 지도다. 잘 보면 북극부터 북미, 남미, 남극까지를 가로로 돌려 놓고 약간 변형한 지도다.>

인류의 환경을 제한하는 특이한 설정​과 개성넘치는 인물들..

​처음은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을 동원한 환경 설정부터 시작한다. 달에 인류가 진출하여 거주하기 시작한 얼마 후 2088년에 지구의 북극점이 태평양 동북부로 이동하는 대전도에 의해서 지구는 온갖 재해에 휩싸이고 거의 모든 인류가 멸망한 후에 달에 살던 사람들이 지구에 남아 있는 인류를 모아 7개의 도시국가를 새로 만든다. 이 때 지구인들이 비행을 하지 못하도록 지상 500미터 이상으로 비행하는 물체는 모두 쏘아 떨어뜨리는 '올림포스 시스템'을 만들고 지구인들은 지상에 묶여 살게 된다. 하지만 얼마 후 운석의 바이러스에 의하여 달의 인류는 사라져 버렸지만 올림포스 시스템만큼은 자체 에너지 공급원으로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나 지구의 인구수가 5,000만명정도 되는 2190년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은하영웅전설처럼 이 책도 7개 도시의 전쟁과 정치를 다루고 있으며 그 와중에 영웅적인 인물들이 나와서 어떻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어리석은 위정자들과 지휘관들이 ​어떻게 국민들과 군인들을 도탄에 빠뜨리는지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수사는 여전히 화려하고 냉소하는 듯한 말투도 변함이 없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다나카 요시키의 수​사는 정말 화려하다. 각 인물들에 대해서 적절한 별명을 붙여 준다든지 어떤 상황을 설명할 때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런 점은 다나카 요시키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멋진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해서 불신하는 영웅적인 군사지도자들이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그런 공화주의적인 민주주의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서도 따르는 모습 역시 은하영웅전설의 '얀 웬리'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아마도 다나카 요시키는 공화주의의 시스템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작은 은하영웅전설.. 하지만 매력은 떨어진다..

너무나도 닮아 있다. 책을 읽으면서 어쩐지 은하영웅전설의 프리퀄을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일단 첫 전쟁인 북극해 전쟁에서 두 사람의 영웅이 나와 서로 이기지도 지지도 않으면서 각 도시의 영웅이 되는 모습은 은하영웅전설에서 얀 웬리와 라인하르트가 그랬던 것과 똑같다. 게다가 위에서 적은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그러면서​도 따르는 군사지도자들,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본국에서 편하게 있으면서 군인들을 사지로 모는 무능한 정치인들, 스토리는 분명히 별개인데 은하영웅전설과 너무 닮아 있다.

​하지만 은하영웅전설만큼 매력적이지는 않다. 일단 소설이 너무 짧다. 다섯개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결국 다섯개의 전쟁을 묘사하는 것으로 그치기 때문에 장대함에서 너무 부족하고 인물들의 개성을 너무 꼬아 놔서 매력이 상당히 떨어진다. 게다가 소설을 쓰다가 중지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짧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도 설득력이 떨어지고 전쟁의 진행상황도 간단하게 처리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전쟁의 모습을 좀더 현실적으로 그리기 위해서 공중전을 제한하고 육지와 바다에서만 전쟁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한정한 설정자체는 참 대담한 발상이었지만 결국은 그것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 전술적인 재미를 주지 못한다.

아마도 다나카 요시키는 3개의 국가를 벗어나 7개의 도시로 얽혀 있는 훨씬 장대한 대서사시를 그리려다가 포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공만 했으면 훨씬 멋진 작품이 나왔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아이디어가 결국은 딸렸거나 작품을 쓰다 보니 은하영웅전설을 자기모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게 아닌가 싶다.

은하영웅전설 팬이라면 한 번 읽어 볼만은 하다.

은하영웅전설을 좋아했던 팬이라면 그냥 한 번 읽어 볼만은 하다. 워낙 필력이 좋은 작가이기 때문에 책 자체는 지루함은 없이 쉽게 넘어간다. ​한 권 읽는데 4시간 정도 걸렸으니 많은 시간을 빼앗는 건 아니다. 그외에도 SF에 관심이 있으면 쉽게 읽어넘길 수 있으니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SF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이 책 이외에 읽을만한 SF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사실상 SF라기 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의 지구판 버전에 가깝다. (사실 은하영웅전설도 SF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기는 하다.)

SF 광팬에게는 추천.. 그외에는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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