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쏘다, 활 -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
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 걷는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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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당황한 점.. 그저 제목만 봤을 때는 당연히 한국(까지는 아니더라도 동양)의 작가가 활을 쏘는 즐거움을 적다가 그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다루는.. 뭐.. 흔히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문한 책을 받아 들고.. 작가를 보니 오이겐 헤리겔이다.. (추천을 받아 읽었기 때문에 미리 아무런 정보도 없이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독일 사람이다.. 게다가 철학자다..

두번째 당황한 점.. 택배로 책을 받고 상자를 열어 보니 책이 무쟈게 작다.. 시집하고 같은 크기에 두께만 살짝 두껍다.. 책값이 오르긴 많이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번째 당황한 점.. 작가는 벌써 57년전에 죽은 사람이다.. 난.. 나온지 얼마 안 된 책인지 알았는데.. 꽤 오래 된 책이다..

당황했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냥 읽으면 되니까..

이 책의 저자 오이겐 헤리겔은 독일의 철학자이다.. 그리고 이 책은 독일의 철학자가 일본에 가서 활의 명인인 아와 겐조로부터 활을 배우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독일에서 일본까지 가서 6년이나 배웠으니 대단한 열성인 듯 하다..

책 자체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철학자가 쓴 책이라고 해서 굉장히 어려운 뭔가를 썼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냥 활을 배우는 일상을 일기 쓰듯이 적은 글이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그 숨어 있는 내용까지 쉬운 것은 아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서양 철학의 대가가 일본의 선사상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며 활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도를 닦는 과정의 하나라고 여기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서 '자신을 잊고 무의식중에 활을 쏘는 경지'까지 이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엄한 스승의 가르침과 자신의 노력으로 결국은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면서 일본 정신의 정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인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말하는 무아의 경지는 아마도 처음에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신칸트주의'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칸트라는 이름이 들어간 걸 보니 칸트-헤겔을 잇는 독일 관념주의의 대가일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결국 진리를 추구하는 방식이 이성을 근거로 한 끊임없는 생각일 수밖에 없는 관념주의자가 '무아'라는 걸 이해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아무래도 동양인들이 서양인들보다는 분명히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저자를 폄하하자는 거 아니지만.. 마지막에 얻었던 깨달음이 진정한 동양의 선의 극단이라고 하기도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저자는 배움을 위해서 끝까지 노력을 한다.. 그리고 최소한 스승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이러한 저자의 끊임없는 배움에 대한 열정이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한가지이다..

그리고 일본인의 교욱에 관해서도 잘 엿볼 수 있다.. 배우는 자가 스스로 벽에 부닺힐 때까지 가만히 놔두었다가 스스로 가장 답답함을 느낄 때 다리를 하나 놓아서 한걸음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일본의 가르침의 본질이라고 이 책에서는 알려 주고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지금 외국의 창의력 위주의 교육이 절대 진리인 것처럼 알고 있어서 스승의 모든 것을 습득한 후에 마지막에 스승을 뛰어 넘는 전통적인 교욱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무시하고 질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름지기 어떤 분야에서든 큰 깨달음을 얻으려면 스스로 벽에 부딪힐 때까지 이것저것 해 보다가 그것을 넘어섰을 때 가장 큰 발전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읽으면서 좀 삐딱하게 생각한게 하나 있다면.. 결국 '선'이든 '도'이든 일반 사람들과의 삶과는 너무나도 유리되어 있는 지배층의 논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기는 했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은 절대로 이루기 힘든.. 그래서 사실 거짓말이라고도 느껴지는.. 없는 걸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사변적이고 엘리트 중심적인 철학은 이렇게 책으로 읽기는 좋지만 아무래도 뜬구름 잡는 소리같아서 조금 마음이 불편하다..

내 생각에 이 책은 결국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 들이는 사람의 자세에 관한 책이다.. 지금까지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내면화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 들일 때 어떻게 그 문화의 정점까지 나아가는가를 알려 주는 배움에 관한 책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독일이이 일본에 알아가는 과정에서 한 사람이 다른 문화를 배워가는 과정으로 일반화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읽으면서 내내 내가 무엇인가를 배우고 습득하고자 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일본의 활쏘기의 궁극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별 느낌이 없었다.. 아마도 같은 동양인으로서 저자보다는 이미 체화되어 있는 사상에 대한 자만심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내가 의식적으로 '동양적'이라는 말보다는 '일본적'이라는 말을 쓰고 '서양'이라는 말 대신에 '독일'이라는 말을 쓴 걸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일본문화가 동양문화를 대표하지 않고.. 독일철학자가 서양철학자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인정하기 불편한 마음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일본의 선사상은 너무 오버스로운 면이 많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무아의 경지'에 너무 인위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좀 역설적인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1930년대에 썼을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2차대전의 두 주역이었던 국가의 지성이 만난 기록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역자의 해설이 맨 앞에 나와 있다는 점이다.. 책 내용을 미리 다 알려 주고 있어서 이걸 먼저 읽으면 책에 대한 선입관을 가지고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난 뛰어넘고 맨 나중에 읽었다.. 이 책을 읽을 사람은 역자의 말과 서문(이것도 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글임..)은 뛰어넘고 본문부터 읽은 후에 맨 마지막에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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