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2년 2월 봄이 깊어지면서 경포와 싸울 때 다친 상처가 덧나면서 시작된 고제의 병도 점점 깊어졌다. 그러자 다시 마음이 급해진 척 부인이 고제에게 자신이 낳은 조왕 유여의를 태자로 세워 달라고 울며 졸라 댔다. - P223

고제가 눈길로 그들을 배웅하다가 문득 척 부인을 곁으로 불러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짐이 태자를 바꾸어 보려 하였으나 저 네 사람이 지키고 도와 이미 태자의 깃과 나래가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움직이기 어렵게 되었소. 아무래도 짐이 죽은 뒤에는 여후가 그대의 주인이 될 듯하오." - P226

조왕 유여의를 태자로 만들 수 없게 되자 고제는 사나운 여후에게서 사랑하는 셋째 아들을 지키기 위해 여러 길로 손을 썼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그때까지 장안에 있던 조왕을 조나라로 보내 여후의 눈에 띄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 P228

고제는 4월 갑진일에 장락궁에서 숨을 거두었다. 10여년 싸움터를 내달으며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내린 그였으나, 자신도 끝내 그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 P233

나중에 심이기는 여후와 사통(私通)한 일이 널리 알려지게 되는데, 사람들은 대개 그 일이 고제가 죽은 뒤부터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때 여후가 유독 심이기를 불러 그같이 큰일을 의논한 것을 두고, 사통이 이미 그 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닌가 보는 사람도 있다. - P234

태자 영을 제위에 올리고, 젊고 유약한 황제의 모후로서 자연스럽게 한나라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여 태후는 먼저 복수의 악귀로서 권력의 잔혹성을 드러냈다. - P241

심이기는 여태후와 사통한 정분으로 좌승상에 올랐으나 그일을 감당해 낼 그릇이 못 되었다. 대궐 안에 눌러앉아 궁중의 일만 보살피니 마치 낭중령과 같았다. 하지만 늙어 갈수록 더해지는 여태후의 총애를 입어 나라의 큰일에 간섭하였고, 대신들도 국사를 처리할 때는 심이기를 거쳐 여 태후의 재가를 받았다. - P262

여태후 4년 어린 황제가 자라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나이가 되었다. 누가 황제에게 효혜 황후는 생모가 아니고, 황제의 생모는 참혹하게 죽음을 당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 P263

궁궐 안을 은밀하게 떠도는 소문으로는, 새 황제뿐만 아니라 호관후 유무, 지후 유조 등도 모두 효혜제의 핏줄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다. 여 태후가 거짓으로 다른 사람의 아들을 데려다가 황제의 아들이라 속인 뒤에 그들의 생모를 죽이고 후궁에서 키워 효혜제의 아들로 만들었다고 한다. - P265

여 씨들은 주허후 유장을 두려워하기 시작하였고,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주허후를 따르게 되어 유 씨의 위엄이 높아졌다. - P277

결국 여 태후가 자식 다음으로 아꼈던 여씨 일족은 모조리 죽고 그가 세웠던 제후 왕도 누구 하나 성치 못했다. - P292

곧장 대전으로 들어간 동모후는 놀라 맞는 소제에게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유 씨가 아니니 천자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소. 일어나 나를 따라오시오."
그 난데없는 소리에 어린 황제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동모후를 바라볼 뿐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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