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을 따르던 변사 괴철이 나서서 말렸다. "대장군께서는 다시 한번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여기서 물러나셔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일찍이 대장군께서는 한왕의 조칙을 받들어 제나라를 치러 먼 길을 오셨습니다. 그런데 어찌 여기서 돌아간단 말씀입니까?" - P59
역이기는 오히려 세 치 혀를 놀려 장군의 승리를 훔친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 P61
한신이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떨어지는 오동잎 한 잎으로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듯이 작은 전기 하나로도 큰 싸움의 승패를 가늠할 수 있는 법이오. 전해는 이제껏 내 헤아림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내 헤아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외다." - P77
역이기가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나라가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위로 하늘을 일컫는 자도 아래로 못에 이르는 자도 함부로 멈출 수 없는 큰일이오. 한나라 군사가 제나라로 쳐들어온 것이 우리 대왕께서 뜻을 바꾸신 까닭인지 대장군 한신이 멋대로 움직였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한낱 늙은 세객이 멈출 수 있는 일은 못 되는 것 같소." - P87
항왕은 지난번 대왕께 도읍인 팽성을 잃어 본 뒤로 왕궁을 군막에 담아 다닌다고 합니다. 그동안 얻은 금은보화는 말할 것도 없고 피붙이와 미녀까지도 패왕의 군막과 함께 움직이다가 싸움터와 가장 가까운 성으로 옮겨 가장 믿을만한 장수에게 지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 P94
"기현의 조구, 참으로 멀리도 왔구나. 옥리에서 몸을 일으켜 제후에 오르고, 대사마로 천군만마를 호령해 보았으니 무슨 여한이 있으리!" 그러고는 들고 있던 칼로 목을 찔러 죽었다. 새왕 사마흔도 조구의 뒤를 따랐다. - P108
"대왕께서는 눈비를 맞으며 함께 싸운 맹장들보다도 우리 항씨 종친들을 더 믿고 아끼신다. 거기다가 저기 저 두 번째 수레에 탄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 미인으로 봉해진 우희가 저 수레에 타고 있다. 우 미인을 도읍 팽성에 두는 것도 못미더워 군막과 함께 옮겨 다니게 하는데, 그녀를 한왕에게 뺏기고 무슨 수로 대왕께 용서를 구하겠느냐?" - P114
"대왕께서는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장수로 전장을 떠돌면서 한세상을 마치고자 하십니까? 아니면 널리 민심을 거두어 천하를 얻고 가여운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열 군왕이 되고자 하십니까? - P132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싸우는 자가 이제 싸워 이기려는 적에게 너그러워야 한다니 이 무슨 괴상한 이치냐. - P136
패왕의 군사적 자부심과 자신감은 부풀기만 했다. 거기다가 또한 갈수록 심해지는 완벽 지향은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믿지 못하게 해 패왕을 누구보다 바쁘고 고단한 장수로 만들었다. - P148
한왕이 펼쳐 둔 여러 전선을 번갈아 뛰어다니며 싸우는 것은 실상 패왕 혼자인 셈이었다. - P149
패왕은 그때 이미 나이 스물아홉이고 세력은 천하를 호령하면서도 왕비를 맞아 후사를 두려 들지 않다. 그래서 둘 사이에 정궁이 가로막지 않은 것 또한 우 미인과 패왕의 사이를 여느 군왕과 후궁 사이보다 더욱 각별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 P150
"우 미인에게 맞는 갑주를 한 벌 구해 주고, 시녀와 시양졸을 붙여 군막 한 채를 내주어라. 앞으로는 과인의 중군과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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