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체문제 三體問題 three-body problem 서로에 대해 미치는 중력 이외에 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세 천체의 운동을 결정하는 문제. 이 문제 (또는 3개 이상의 천체에 대한 더 일반적인 문제) 의 일반해는 없다. 실질적인 접근방법은 한 천체를 중심으로 운동하는 다른 천체가 나머지 3번째 천체의 인력 때문에 발생하는 섭동(교란)을 결정하는 것이다. (후략)

- 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갑자기 나타난 카운트다운, 그리고 가상현실 '삼체'

왕먀오는 나노연구센터의 연구원이다. 어느날 아침 집으로 찾아온 형사 두 명과 군인 두 명, 그중 매너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형사 스창이 왕먀오에게 국제적인 학술단체인 '과학의 경계' 회원과 접촉한 적이 있는지 묻는다. 불쾌해 하면서 대답을 거절하니 군인 한 명이 오후에 한 회의에 참석할 것을 요구한다. 과학자와 군인, 정보요원들이 참석한 회의,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한 회의인지 알 수 없다. 단지 최근에 유명한 물리학자들이 차례로 사망했고 최근에 죽은 사람은 양둥이라는 초끈이론을 연구하는 유능한 과학자이다. 양둥의 약혼자였던 딩이가 보여준 양둥의 유서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적혀 있고, 양둥은 최근에 자살한 물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경계'와 접촉한 적이 있다.


왕먀오 역시 최근에 선위페이라는 '과학의 경계' 인물과 접촉을 한 적이 있고, 회의의 주재인물인 창웨이쓰 장군은 왕먀오에게 '과학의 경계'와 더 적극적으로 접촉하여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봐 달라고 요청한다. 왕먀오는 간첩역할을 하기 싫어 그 제안을 거절한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왕먀오가 찍은 사진에 1200:00:00으로 시작해 연속으로 숫자가 줄어드는 카운트다운이 표시되고, 얼마 후부터는 그 글자들이 눈앞에 계속 나타난다. 당황한 왕먀오는 선위페이에게 상의를 하고 선위페이는 왕먀오에게 진행 중이던 나노연구를 중단하라고 조언한다. 왕먀오가 나노 연구를 중단하자 카운트다운이 멈춘다. 선위페이는 왕먀오가 양둥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원한다며 사이트 주소를 하나 알려 주고 접속해 보라고 한다. 그 사이트는 '삼체'라는 가상현실 게임 사이트인데, 왕먀오는 그 사이트에 접속하여 주문왕, 주왕 등을 만나고 이상한 게임 속 세계를 경험한다.

 

류츠신 1963`~ . 중국의 대표 SF소설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8년 연속 중국 SF문학상인 은하상을 수상했다.


 

중국의 SF소설? 익숙하지 않다

어릴 때,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SF소설을 읽었다.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 그리고 지금은 이름도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대부분의 SF소설이 미국 작가의 작품이었고 나에게 SF는 미국의 것이었다. 일종의 편견인 셈인데, 미국의 SF를 제외하곤 우리나라의 SF도 거의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중국의 소설은 고전소설이 아니면 무협소설이다. 고풍스러운 한시가 곁들여져 있고 천하를 상대하는 인물이 대협이나 영웅의 풍모를 물씬 풍기는 소설 외에는 읽어 본 적이 없다. 독서편식일 수도 있고 편견에 의한 잘못된 습관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는데, 어쨌든 그랬다. 그런데 중국의 SF소설이라.. 굉장히 생소하다. 이 책을 선택한 건 그저 호기심이다.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SF소설, 굉장히 느낌이 생경하다.

 

세 개의 천체가 서로 중력의 영향을 주고받을 때, 그 궤적을 확정할 수 없다는 삼체문제가 이 책의 가장 큰 아이디어이다.


세 개의 세계가 맞물려 나간다

1. 현재의 현실
왕먀오가 주인공이다. 유명한 과학자들이 한 명씩 죽어가고 그 죽음은 '과학의 경계'라는 단체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형사 스창이 죽음의 원인을 캐나가고 왕먜오는 어는 순간부터 눈앞에 1,200시간부터 거꾸로 흐르는 카운트다운을 보게된다. 그 와중에 선위페이, 예원제 등을 만나고 다른 두 개의 세계를 알게 된다.


2. 과거의 현실
예원제가 주인공이다. 문화대혁명의 파도속에서 아버지를 홍위병들에게 잃은 예원제는 벌목장에서 일을 하다가 과학자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아 홍안계획에 투입된다. 홍안계획은 우주의 지성체를 다른 나라보다 먼저 찾아 접촉하려는 중국의 계획이다.


3. 현재의 가상현실
왕먀오의 아바타가 주인공이자 삼체세계의 관찰자이다. 삼체라는 게임에는 세 개의 태양이 있어서 태양의 주기에 따라 문명이 멸망하고 새로 세워진다. 이 세계의 통치자와 과학자들은 주기에 따라 변하는 안정기인 항세기와 혼란기인 난세기의 주기를 예측하여 미리 위험에 대비하고 발전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태양 세 개의 주기를 예측하는 것에 변변히 번번히 실패하여 문명을 계속해서 멸망한다. 결국 192번째 문명에서 태양의 주기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삼체 속의 주민들은 새로운 주거행성을 4광년이 떨어진 다른 항성의 행성으로 결정한 후 우주를 향해 진출한다.

 

태양이 세 개인 행성의 삶은 어떨까? 삼체 세계는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태양의 궤도를 추정하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수많은 문명이 명멸한다.


혼란한 초반부, 읽을수록 빠져드는 지적인 쾌감

삼체를 처음 읽기 시작할 때는 도대체 내용을 종잡을 수가 없다. 뭘 초점으로 해서 읽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책을 덮고 싶다는 유혹에 계속 빠졌다. 하지만 삼체세계가 어떤 곳인지 감이 잡히고 예원제의 과거 이야기가 흐름을 타면서 흥미진진해지고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 여전히 세 이야기의 접점을 예상하기 힘들었지만 각 이야기는 점점 재미었어진다.


특히 다른 것보다 삼체 세계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삼체문제는 굉장히 오래된 문제로 세 개의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만유인력에 의해 영향을 끼치며 공전을 할 때, 궤적을 예측할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예를 들면, 우주에 태양이 세 개 있을 때 이 태양의 궤도를 예측할 수 있을까? 결론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니까 삼체의 인간들은 세 개의 태양주기를 예측할 수 없고 항세기와 난세기도 추측할 수 없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항구한 문명을 이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와중에 각 문명에서 역사상 과학을 대표하는 묵자, 뉴턴, 아인슈타인 등의 인물들이 나와 삼체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거기에 각 과학자들의 업적을 비틀어 묘사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특히, 폰 노이만이 진시황에게 청원하여 3,000만 명의 군인들을 동원해 흰색 기와 검은 색로 각자 0, 1의 bit를 표시하고 인간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장면은 정말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그 장면을 영화로 만든다면 정말 장관일 것 같았다.(책을 다 읽고 나서 2016년에 중국에서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알았다.)

 

 

 예원제는 문화대혁명의 혼란 중에 아버지를 홍위병들에게 잃는다. 결국 이 경험이 지구에 크나큰 위기를 불러일으킨다.


역사, 문화, 과학이 어우러진 멋진 SF. 좀 더 알면 좀 더 재밌다

왕먀오가 겪는 일들, 삼체 게임은 도대체 왜 등장하는지, 그냥 스쳐지나가는 등장인물인 줄 알았던 예원제의 과거를 교차로 읽을 때는 내용을 따라가느라 머리가 좀 복잡해서 참고 읽어야 했다. 그런데 예원제가 홍안에서 했던 어처구니없는 시도가 드러나고 따로 놀던 세 개의 이야기가 합쳐지면서 소설은 인류의 멸망을 다루는 우주 규모의 스토리로 흘러간다. 그 과정이 크게 무리가 없고 개연성이 탄탄해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삼체》는 소설 중에(정확히는 삼체 게임 속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인물들이 삼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워낙 유명한 인물들만 나와서 읽는데 지장은 없는데 혹시 이 인물들의 업적이 무엇인지 조금 알고 있다면 인물들의 행동을 보고 웃으면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반면에 태양을 반사판으로 이용하는 예원제의 시도라든지 몇가지 주요 이론들은 한 번 스윽 읽고서는 좀 이해하기 어려워서 몇 번 읽고는 대략의 결과만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래도 소설을 읽는데 큰 상관은 없다. 다행히 삼체문제 자체는 예전에 읽었던 적이 있고 어려운 개념도 아니라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삼체》를 계기로 중국의 SF소설에 관심이 생겨서 몇 권을 더 주문했다. 무협소설이 아닌 중국SF를 읽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회한과 알레고리

이 모든 사건의 방아쇠는 예원제가 쥐고 있었고 격발을 했다. 그리고 예원제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인간에 대한 혐오 때문이었고, 혐오는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들이 지식이었던 예원제의 아버지를 예원제의 눈 앞에서 때려 죽인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문화대혁명은 홍위병들의 광란에 의해 수천년 중국의 역사유물이 파괴되고 중국 발전의 시기를 늦춰지게 한 중국 역사의 감추고 싶은 역사이다.


예원제가 (순간적이든 항구적이든) 문화대혁명에 의해 인류를 개조시키려는 생각을 품은 것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중국인의 회한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부분, 문화대혁명이 중국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제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사건으로까지 발전했다는 것, 좀 오버스럽긴 하지만 세계문화의 유산이라는 면에서는 수긍할만한 알레고리인 것 같다.

 

《삼체》는 2016년에 중국에서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었다고 한다. 상상했던 장면이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개봉되지 않았다.


★★★★☆

처음 읽는 중국의 SF소설이었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전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해하기 힘든) 과학지식을 잘 풀어서 소설을 써 놓았고 미스터리를 끝까지 숨겨 놓았다가 마지막에 풀어 놓는 솜씨도 좋다. 게다가 삼체세계가 지구의 기초물리학 발전을 방해하기 위해서 쏘아놓은 지자를 만드는 과정도 흥미롭고 그 지자에 의해서 인류가 맞닥뜨린 절망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도 궁금하다. 기본적인 천체물리학, 상대성이론, 양자론, 초끈이론 등에 대한 개념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그것을 알고 있으면 좀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읽다가 빠뜨린 것일 수도 있는데 끝까지 읽고도 도대체 왕먀오가 본 카운트다운의 정체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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