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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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대중적인 장르문학 SF소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종류의 영화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대답은 항상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이다. 꼭 SF나 판타지 장르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지만 대체로 그런 장르들이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되기 때문에 SF 영화는 제일 좋아하는 영화장르이다. (그런데 내 인생의 영화를 다섯 편 정도 꼽아보면 SF 영화가 하나도 없는 곳은 좀 아이러니)


흔히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정의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장르의 내부적인 관습과 룰에 충실한 문학'이라고 대충 정의해 놓고 보면, 무협소설, 추리소설, 판타지소설, SF소설이 주로 장르문학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모든 장르문학이 매니아가 있고,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과 작가도 있다. 무협이라면 김용, 추리소설이라면 코난도일, 판타지라면 톨킨이 바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면 SF는? 여러 유명 작가가 있겠지만 나에게 SF 대표작가는 아이작 아시모프이다.


다른 장르문학도 충분히 독자가 있고 매니아층이 두껍지만 내 생각에 가장 대중적인 장르문학은 SF가 아닐까 싶다. 다른 장르에 비해 유명한 작가나 권위있는 상이 많은 편이고, 다른 컨텐츠로 활발하게 이식되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장르에 비해 매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많이 읽는 것 같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느낌이니 다른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테드 창. 1967 ~ . 중국계 미국인.


중단편만 드문드문 발표하는 작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쓴 작가인 테드 창은 좀 특이하다. 1990년에 첫 작품인 《바빌론의 탑》을 발표했으니 올해가 딱 데뷔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그 긴 기간동안 겨우 17 편의 중단편만 발표했을 뿐이고 장편은 단 한 편도 없다. 그러니까 길지않은 소설을 대충 2년에 한 편 꼴로 발표하고 있다. SF 작가치고는 굉장히 게으른.. 작품수가 적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발표하는 작품마다 유수한 SF 관련 상을 휩쓴다. 재능이 압도적이다.


 

 바벨탑은 창세기 11장에 사람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쌓은 탑이다. 성서에서는 야훼가 사람들의 말을 다르게 만들어 성을 완성하지 못하고 세계로 퍼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고 전해진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과학을 엎어씌운다.
SF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재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우주의 세력들이 서로 전쟁을 펼치는 우주활극의 통쾌함을 기대할 수도 있고, 새로운 우주와 미래의 역사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혹은 과학적인 정합성에 상상력을 가미한 지적인 쾌락을 좋아할 수도 있다. 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지적 쾌락에 즐거움을 느끼는 걸 좋아하는데, 테드 창의 소설이 딱 이런 나의 취향에 맞는다.


테드 창의 소설은 다른 작가의 SF와 좀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일반적인 SF는 기존의 과학을 토대로 해서 과학이 발전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비록 그 상상력이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 오버테크놀로지를 담고 있더라도 기본적인 토대는 현재 세계의 과학기술이다. 그 상상력이 설득력이 좋을수록 현실성을 느끼고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테드 창은 다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실린 모든 소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테드 창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고 그 규칙을 토대로 글을 풀어낸다. 그래서 굉장히 생경한 느낌이 든다.

 

골렘은 유대교 전승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흙으로 만든 거인 인형이다. 랍비가 엄격한 기준과 신비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진흙을 뭉처 만들었다고 한다.


첫 소설인 《바빌론의 탑》은 바벨탑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성서에서는 분노한 야훼가 사람들의 말을 통하지 않게 해서 공사가 중단되는데 여기서는 바벨탑을 하늘까지 쌓는데 성공한다. 당연히 해와 달과 별은 탑 꼭대기에 있는 공사장 인부들의 발밑에 있고 바벨탑이 닿은 하늘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부는 그 천장을 뚫기 위해 발파작업을 한다. 《일흔 두 글자》 역시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는데 18~9세기 영국이 배경인 것 같지만 호문클루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존재하고 골렘도 존재한다. 게다가 카발라는 이성적인 철학을 대체하고 있다. 마치 다중우주를 배경으로 다른 차원의 지구를 설정하여 평행세계가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 굉장히 신선하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테드 창의 솜씨는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천사는 당연히 있는 존재이고 사람들은 천사의 존재를 싫어한다. 선의나 악의는 없지만 시도때도 없이 출몰하는 존재로 나타날 때마다 인간의 삶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천사는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신의 사자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사의 종류와 계급을 정리하여 구품천사를 밝혔고,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우리엘은 4대 대천사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하다.

 


SF? 판타지? 뭐가 됐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존의 과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세계를 창조해내고 모든 내용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일부는 SF가 아니라 판타지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가 완전히 뜬금없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에 바탕을 두고 그 속에서 신화, 유사과학, 종교적인 세계관을 접붙이고 그 속에서 과학적인 개연성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했기 때문에 멋진 SF소설로 읽을 수도 있다. 모두 여덟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중에서 《바빌론의 탑》, 《네 인생의 이야기》, 《일흔두 글자》, 《지옥은 신의 부재》, 네 편이 마음에 든다.

 

책중 중편인 《네 인생의 이야기》는 드니 빌뇌브가 감독을 맡아 《컨택트 Arrival》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2016년에 개봉되었다.


★★★★☆

재미도 있고, 지적 호기심도 자극하고 내적인 개연성이 훌륭한 멋진 소설들로 가득하다. 한 번 읽은 후 1년이 지나서 다시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 익숙하지 않았던 소재 때문에 띄엄띄엄 읽은 것을 이번엔 집중해서 찬찬히 읽어서 그런지 책을 읽는 맛이 더 있었다. 많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아닌데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도 2권밖에 되지 않아서 좀 아쉽다. 조만간 작품집 한 권이 더 나올 계획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SF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읽어볼 테고, 일반적인 독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테니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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