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 - 동갑내기 두 거장의 예술론.교육론
오에 겐자부로.오자와 세이지 지음, 정회성 옮김 / 포노(PHONO)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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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음악도, 그리고 문학도 인간을 지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 이게 아닌가 싶어요.
p. 116


너무 흔해서 무시되는..

'취미가 뭐예요?'라고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치자. 이렇게 물어 보는 사람은 내 입에서 '독서'와 '음악감상'이 취미라는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건 마치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밥이요'라고 답하는 것처럼 심심하고 인상적이지 못한 대답같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전각'과 '합창', '오카리나'같이 질문자가 만족할 만한 답변을 준비해 두고 있다.(실제로 내 취미이다.) 하지만 밥먹고 일하는 시간을 빼고 나면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이 독서와 음악감상이다. 책과 음반을 사는데 가장 돈을 많이 쓰기도 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이 나는 내 취미를 취미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학과 음악은 너무나 흔하다. 그래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실제로 문학과 음악에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 생각해 보면 굉장히 심한 착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책을 많이 읽는지, 정신 집중해서 흘려 보내지 않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면 문학과 음악이 흔하기는 하지만 주변에서 둥둥 떠다니기만 할 뿐이지 실제로 손을 내밀어 잡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자와 세이지 小澤 征爾 (1935 ~ ) 일본의 지휘자. 피아니스트로 출발하여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로 시작, 토론토 심포니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음악감독, 빈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일본 최고의 동갑내기 거장

물론 이견이야 있을 수 있지만 일본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사람은 오자와 세이지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지휘한 음반이 몇 장 있는데, 사실 다른 일본의 클래식 음악가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오자와 세이지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나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오자와 세이지가 클래식 음악계를 대표한다면 오에 겐자부로가 일본의 문학을 대표한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최근 매년 밥먹듯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일본에서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함께 유이하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우연찮게도 두 명은 모두 1935년생이 친구여서 이 대담이 성립되었다. 대담이 있었던 때 두 사람은 65세, 한창 의욕적인 활동을 있었던 이 대담의 주인공들은 지금 83세가 되었다. 이 대담기록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두 거장의 (잡담을 가장한) 치열한 삶과 예술에 관한 기록이다.

 

오에 겐자부로 大江 健三郎 (1935 ~ ) 일본의 소설가. 1958년 《사육》으로 아쿠다가와 상을 시작으로 일본 대표 작가로 발돋움하였고, 1994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어 두 번째로 일본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음악, 문학, 예술 그리고 삶

오자와 세이지는 일본의 전쟁 패망 전에 만주에서 태어나 종전 후 일본으로 입국했고,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시골 깡촌에서 태어났다. 둘 다 일본에서 교육받고 자랐지만 세계적인 예술가로 발돋움하면서 일본의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인으로서 보편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런 시각은 오자와보다는 오에에게 있어서 더 두드러지는데, 서양에서 활동하면서 서양음악을 지휘하는 오자와에 비해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어로 글을 쓰는 오에가 더 탈일본의 경향을 보이는 것은 흥미롭다.


대담은 대체로 서로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부드럽게 진행되는데, 두 사람의 관심은 좀 다르다. 오자와는 과거와 현재의 성과를 미래로 연결하는데 관심이 많고 오에는 개별적인 존재로서 개인의 가치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강조한다. 그러니까 오자와는 교육에 관심이 많다면 오에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사회, 특히 정치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인다. 주된 관심사는 달라 보이지만 둘 중의 한 명이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피력하면 상대방은 동의를 표하면서 맞장구를 쳐주며 대담은 분위기 좋게 진행된다.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은 오에 히카리 大江 光 (1963 ~ )는 태어나서부터 3년동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삶을 기대하기 힘든 아기였다. 수술 후 기적적으로 살 수는 있었으나 언어장애, 행동장애, 자폐증을 가지고 있으며, 지능지수는 65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음악재능을 발휘하였고, 현재는 두 장의 베스트셀러 앨범을 발매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삶과 생각이 묻어 있는 편안한 대화

 

토론이 아니라 대담이면서 두 사람은 서로 깊이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날카로운 구석이 전혀없는 책이다. 때로 거장들의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들이 보통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구름 위에서 돌아다니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 두 사람은 진솔하게 자신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오에의 아들인 히카리가 자폐를 겪으면서 느꼈을 오에의 슬픔도 잔잔하게 느껴지고, 미국에서 스티립쇼를 관람했던 오자와의 쑥스러움도 느껴진다. 그 가운데 삶을 대하는 두 거장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대담이라고 해서 하나의 주제를 두고 의도적으로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좀 어렵지만 서로 존중하는 두 친구가 생각나는대로 떠드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의 큰 장점이다. 두 사람은 좀 민망스러울 정도로 서로를 치켜세우기도 하고 사심없이 상대방의 일화를 끄집어 내면서 편안하게 대화하기 때문에 좀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지만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

나는 소설가도 아니고 음악가도 아니다. 그저 취미로 둘다 즐기는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깊이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두 사람의 얘기가 재미있었지만 곁에서 엿듣기만 하고 대화에 끼여들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는만큼 배울 수 있다. 나는 내가 아는만큼만 읽었을 것이고, 음악이나 문학에 조예가 깊은 독자라면 스쳐지나가는 두 사람의 일상같은 대화속에서 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라는 제목과는 달리 실제 오에는 자신의 문학과 오자와의 음악에 대해서 깊이있게 얘기하는데 반해 오자와는 오에의 문학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아마도 오에의 소설을 많이 읽어 보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오에의 아들인 히카리가 작곡가이기 때문에 히카리에 대해서 언급을 할 뿐이다.(히카리는 자폐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작곡가가 되었다. 아마도 서번트 증후군이 함께 있는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머리 식힐 겸 편하게 읽을 수 있다. 분량도 많지 않고..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더 깊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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