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강의 -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과 그의 제국 이야기
왕리췬 지음, 홍순도 외 옮김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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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절대절명의 위기

왕위에 오른지 어언 20년, 영정은 이미 한과 조를 멸망시켰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었다. 연에서 온 사신 형가는 진을 배신하고 연으로 도주했던 번어기의 수급과 영정이 눈독들이던 독항 지역의 지도를 가지고 와서 연의 항복을 청한다. 항복을 받아들이면 이제 남은 건 위, 초, 제 세 나라뿐. 그런데 어전으로 나서는 형가 옆에 있던 진무양이라는 자의 안색이 창백하다. 이상한 낌새를 챘지만 형가에게 진상픔을 들고 가까이 올 것을 지시한다.


형가는 멍청한 진무양을 속으로 책망한다. 애초에 기다리던 친구가 늦어 연의 공자 단이 억지로 붙여 보낸 녀석인데, 열세 살부터 살인을 할 정도로 흉악한 자라 했으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새가슴이 되어 도움이 되지는 못할 망정 큰 일을 그르치게 생겼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독항의 지도 속에 숨겨놓은 명검, 서부인을 빼들어 진왕 영정을 치려면 몇 발짝 더 다가서야 한다.


때가 왔다. 이제 영정과의 거리는 겨우 몇 걸음. 형가는 서부인을 빼어 들고 영정에게 달려들어 영정의 소매를 부여 잡았다. 순식간에 사신이 자객으로 변했지만 영정 역시 수없이 많은 위기를 헤치고 살아온 인물. 소매는 찢어지고 겨우겨우 피해냈다. 하지만 형가의 형세는 노도와 같다. 이리저리 피하는 영정을 다른 대신들은 도울 수 없다. 진의 법에는 왕의 허락없이 무기를 들고 어전에 오르면 멸족을 당하기 때문이다.


영정이 허리춤에 매달린 장검은 너무 길어서 칼집에서 잘 빠지지 않는다. 형가의 칼에 찔릴 뻔한 일촉즉발의 순간, 어전 밑에 있던 하우저가 약주머니를 둘 사이에 던지고 형가는 순간 당황한다. 신하들이 칼을 등에 메라고 와치니 그때야 영정이 깨닫고 칼을 빼어들어 형가의 허벅지에 장검을 꽂았다. 형가의 야심찬 암살 시도는 이렇게 실패로 끝이 난다.


진의 왕인 영정이 천하의 황제인 진시황이 되기 이전에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이렇게 넘어가고, 《진시황강의》는 중국역사상 가장 긴박한 활극이 펼쳐진 형가의 영정 암살미수사건으로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왕리췬 (1945 ~ 허난대학교 문학원 교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사기 연구가. 중국 CCTV의 인문교양 프로그램인 백가강단을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진나라의 관점에서 기술한 춘추전국시대

《진시황강의》은 진시황 강의라고는 하지만 오로지 진시황의 일대기만을 기술해 놓지는 않았다. 원래는 중원의 서쪽에 있는 작은 씨족세력을 경대부 가문으로 승격시킨 효공, 주의 평왕이 낙읍에서 새롭게 왕조를 이어나가는 것을 도와 진을 제후국의 반열에 올려 놓은 양공, 춘추시대 오패 중의 한 명으로서 천하에 명성을 떨친 목공, 상앙을 등용하여 전국칠웅 중에서 진을 유일한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효공 등 선대의 중요한 군주들을 안내하고 그 와중에 명멸해간 중요 인물들도 함께 설명한다.


많은 책들이 진은 군사적으로 강하기는 했으나 바람직하지 않은 국가로 보는 경향이 짙다. 이후 시대에 중국사상의 주류를 차지한 유가, 도가의 대척점에 법가에 충실했던 진이 있었기 때문일텐데, 《진시황강의》는 진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진을 굉장히 긍정적인 관점에서 설명한다. 진시황이 주인공이니 당연하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제환공이나 진문공에 밀린 진목공을 부각시키고, 위문후나 무후보다 많이 폄하되는 느낌이 있던 진효공의 업적을 자세히 살펴 보는 것은 이 책의 재미 중에 하나이다.

 


진시황 (BC 259 ~ 210). 진 秦의 31대 군주. 통일 진나라의 초대 황제. 이름은 영정 嬴政이다.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중국 전토를 통일하여 중국대륙 최초의 황제 자리에 올랐다.


영정의 등극

책이 상당히 두껍다 그래서 이후에 진시황이 되는 영정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의 내용만 해도 140페이지 이상이 되는데 영정은 아직 등장하지도 않는다. 돈으로 세상을 산 여불위와 가능성이 없던 상황에서 왕이 되었으나 3년만에 죽은 자초(이인), 왕비가 되었으나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국정을 망친 조희, 조희의 정부였던 노애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펼쳐진 후 드디어 영정의 친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드디어 다른 여섯 개의 나라를 정벌하는 영정의 활약이 시작......되지 않는다.

 

이사 李斯 ( ~ 208) 진나라의 재상. 초나라 출신으로 원래는 여불위의 식객이었으나 후에 진시황에게 발탁되어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 진의 통일 후에 문물의 정비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진시황 사후 환관 조고의 설득에 넘어가 호해를 황제로 옹립하고 조고의 계략에 빠져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육국의 역사와 멸망원인을 제시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전국시대 책들과는 좀 다르게 편집되어 있다. 흔히 역사에 관한 책, 특히 전국시대처럼 여러나라가 이리저리 얽혀 있어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기에 관한 책은 시간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사건들을 밟아나가기 마련이다. 전국시대는 거기에 덧붙여 유명한 인물들과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배치해 놓으면 딱 좋은 시대이다.


하지만 《진시황강의》는 우선 진의 역사를 주욱 훓어 나간 후에 진에게 복속당하는 국가의 역사를 차례대로 설명한단. 그러니까 진나라로 세로로 씨줄을 만들어 놓고, 시간순으로 역사를 가로로 짜내려가다가 위나라의 멸망에 다다르면 날줄을 멈추고 또 세로줄을 짠다. 그 다음에는 또 날줄을 짜내려가다 조나라의 세로 줄을 만들고.. 이런 식으로 전국시대라는 천을 짜내려 간다.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면 동시기의 사건도 파악할 수 있으면서 한 국가의 통사도 같이 살펴 볼 수 있어서 전국시대를 전체적으로 머릿속에 정리하기 좋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진의 역사만을 다루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결국 일곱 개 국가의 흥망성쇠를 모두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춘추전국시대 전반을 아우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책의 제목이 《진시황강의》인만큼 역사의 중심에 배치된 것은 진이고 진시황이다.

 

만리장성. 중국에서는 장성이라고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시황 시대에 지어진 것이 아니고 진시황은 그동안 만들어져 있던 만리장성을 연결했을 뿐이다. 이후에도 명, 청 시기까지 장성은 계속해서 지어졌고, 총 길이는 만리가 넘는다.


꼼꼼하게 따지는 역사학자의 눈

저자인 왕리췬은 전국시대 6개국의 멸망의 원인과 시황제 영정의 등극 뿐만 아니라 조고의 유서 위조, 2세 황제 호해의 동의, 이사의 배신 및 진의 멸망까지 다루면서 모든 사건에 그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시한다. 그것도 마치 수험생에게 설명하듯이 번호를 매겨, 원인1, 2, 3, 4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 이 설명은 왕리췬의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크게 무리없는 해석이여서 사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정리하다 보니 딱히 다시 짚지 않아도 되는 내용을 되풀이하는 경우도 많다.


굉장히 두꺼운 책이고 어려운 역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건을 설명할 때 상황에 살을 붙여서 읽는 재미도 있고 번역도 깔끔해서 읽는 동안 막히는 일이 없다. 진시황 등극 후에 내용에 대한 흥미가 좀 떨어지기는 하는데, 이건 원래 역사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진시황 사후, 조고의 활약으로 내용이 다시 흥미진진해 지니 조금만 참으면 된다.

 

백가강단은 중국의 CCTV에서 방송하는 인기있는 인문강좌이다. 2001년 시작하여 처음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삼국지 강의로 유명한 이중톈 등의 인기 강사를 배출하며, 일반인을 위한 인문강좌로 현재는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

책의 두께가 어마어마한 것에 대한 부담감만 벗어난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역사교양서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전국칠웅의 역사와 진시황의 황제 등극, 사후 이세, 삼세의 역사까지 잘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읽는 재미도 있으니 강력하게 추천한다. 춘추전국시대를 종으로 왔다갔다 하니 춘추오패와 전국칠웅의 대략적인 역사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읽으면 훨씬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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