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과 리바이어던 - 협력은 어떻게 이기심을 이기는가
요차이 벤클러 지음, 이현주 옮김 / 반비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후통첩게임

어떤 심리학자(경제학자라고 해도 좋다)가 두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편의상 현주와 민수라고 하자. 둘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실험을 하는 동안 서로 마주치지도 않는다. 심리학자가 현주에게 10만원을 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민수에게 네가 주고 싶은 금액을 제안해 봐. 민수가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 제안한 돈은 민수가 가져가고 나머지는 현주씨가 가지는 거야. 하지만 민수 씨가 제안을 거절하면 두사람 다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얼마를 제안할 거야?'


이 게임의 룰은 명확하다. 민수가 받을만한 제안을 현주가 하면 둘 다 돈을 가져갈 수 있다. 현주는 얼마를 제안하는게 좋을까? 5만원? 하지만 민수는 현주가 얼마를 제안해도 돈을 가져갈 수 있으니 이익이다. 5만원은 절반이니 너무 많다. 4만원도 많아 보인다. 이렇게 생각해 나가다 보면 이론상 현주가 천원만 제안해도 민수는 돈을 가져갈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생각하면 이익이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성적이다. 그런데 정말 현주가 민수에게 천원을 제안하면 어떻게 될까? 나라면 어떨까? 아마도 십중팔구 현주는 누군지 모르는 제안자를 욕하면서 거절할 것 같고, 둘다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것 같다. 만원이면? 이것도 마찬가지. 나에게는 겨우 만원 던져주고 너는 9만원을 가져가겠다고? 만원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네가 돈을 가져가게 할 수는 없지.


민수의 이런 행동은 경제학적으로 봤을 때 전혀 이성적이지 못하다.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민수가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은 이성이나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다. 천원만 받아도 민수는 이익이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같은 상황에 닥쳤을 때, 상대방을 욕하면서 거부할 것이다. 나도 그럴 것 같다. 이것은 상당히 감정적인 문제이고 공평함에 대한 문제이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 소개하는 이 실험은 최후통첩게임이라는 굉장히 유명한 행동심리학(또는 행동경제학) 실험이며, 인간이 반드시 경제적인 이익만을 생각해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실험 중에 하나다. 과연 인간은 이익(또는 이기심)을 추구하는 것 이상의 행동규범(협력)이 있을까?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이 문제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다.

 

요차이 벤클러 Yochai Benkler 1964 ~ .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버크먼 센터 교수.

 


리바이어던, 보이지 않는 손, 펭귄

리바이어던은 성서의 욥기에 나오는 바닷속 괴물인 레비아탄의 영어식 발음이다. 토마스 홉스는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규정했고, 이기적인 인간을 자연상태로 방치하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즉 끝도 없는 혼란한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혼란을 막기 위해서 사회의 구성원이 계약하여 권력을 만들어 냈고, 이 권력은 질서를 어지럽히는 인간의 이기심을 처벌하고 통제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한다. 이 권력을 비유한 말이 리바이어던이고, 가장 강력한 형태를 한 리바이어던은 국가이다. 홉스는 이기적인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력을 지닌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 역시 인간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홉스와는 좀 달랐다. 이기적인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 판단을 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모든 사람이 이익을 위해 선택을 하면 결국 그 이익이 부딪히는 곳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를 볼 수밖에 없고,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인 조정과정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국가는 시장이 돌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면서 간섭을 최대한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케인즈가 나오기 전까지 경제학의 모든 것이었던 '고전경제학'의 기본 철학이다.


리눅스는 간단하게 말하면 리누스 토발스라는 대학생이 만든 오픈소스 컴퓨터 운영체제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기여자들이 보상없이 프로그램 개발에 기여해서 현재는 세계 컴퓨터, 스마트폰의 절대 다수가 리눅스 기반의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발전한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다. 인간이 순전히 이기적이라고만 한다면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리눅스의 상징이 책 제목에 있는 펭귄이다. 리눅스외에도 이기심보다는 협력에 의지하는 시스템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브리태니커의 영광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백과사전 자리를 차지한 위키피디아이다. 과연 인간은 이기적인 경향이 더 강할까, 협력적인 경향이 더 강할까? 아니면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던 1900년대 말까지 이기적이었다가 세기말을 지나 21세기가 되면서 협력적이 되었을까?

 

토마스 홉스가 쓴 리바이어던의 표지.


이기적인 인간이 협력하는 이유

저자인 요차이 벤클러는 인간이 이기적임에도 불구하고 협력이 발생하는 이유를 여러가지 연구성과를 예를 들어 설명한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성장하면서 도덕성과 가치에 욕구가 강해지면서 협력하는 경향성이 강해진다고 한다. 더불어 상황이 어떻게 제시되는지에 따라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이 변하는 프레임 효과에 의해서 협력이 이루어진다고도 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평판이나 인맥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반드시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협력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에게는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다른 사람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감과 연대감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커뮤니케이션을 들고 있다. 즉,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면 다른 사람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연대감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결국 이기적인 마음을 누르고 손해를 보더라도 협력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에서는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뒷받침할만한 수많은 실험이 예시되어 있다.

 

애덤 스미스 Adam Smith 1723 ~ 1790.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고전경제학의 아버지.

 


수많은 연구성과의 종합판, 그리고 리눅스와 위키피디아

《펭귄과 리바이어던》에는 저자인 요차이 벤클러가 수행한 실험이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다른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유명한 실험과 책을 많이 인용했는데, 그동안 내가 읽었던 관련 서적들의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펭귄과 리바이어던》에는 위에서 설명한 최후통첩이론이라든지 공공재 게임, 신뢰게임 등 심리학과 경제학에 걸쳐서 많은 영향을 끼치는 연구성과를 책 한 권으로 볼 수 있는 잇점이 있다. 책의 앞머리에는 협력이 창발하는 원인을 밝힌 유명한 책, 《협력의 진화》와 연관된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협력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두 책의 관점이 좀 다르다. 《협력의 진화》가 연속적인 '죄수의 딜레마'를 통해 자연적으로 협력이 창발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했다면,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인간의 본성에 협력이 창발할 수밖에 없는 씨앗이 있다고 설명한다.


요차이 벤클러가 협력의 결정체로서 가장 많이 예로 든 것이 위키피디아와 리눅스이다. 리눅스는 책의 제목에 상징물인 펭귄을 내세울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했으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은데, 위키피디아는 오히려 리눅스보다도 더 많은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을 하고 있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브리태니커(우리 집에도 떡하니 한 질을 마련해 두고 자주 보고 있다) 사전의 명성을 불과 십수년만에 넘어서 버린 위키피디아는 수많은 사람의 기여로 만들어지고 있다. 저자는 우선 아무런 이익도 없이 기여하는 기여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내부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룰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누구라도 본문을 고칠 수 있지만 표제어 하나의 내용을 고치기 위해서는 제안을 하고 반론을 받고 토론을 하는 가운데 합의점을 찾아 내용이 수정되기도 한다. 물론 반달리즘이 없지는 않겠지만 협력의 큰 틀에서 봤을 때, 사소한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리누스 토르발스 Linus Benedict Torvalds 1969 ~ . 핀란드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리눅스 개발자.

 


★★★★☆

모든 구성원이 가장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때, 사회가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오래된 경제이론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폐기되었다. 인간의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를 기본적인 성격으로 규정하지 않고 이기적인 모습만을 본성으로 상정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 이기적인 본성 외에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를 새로운 구성요소로 본다면 인간행동의 함수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어려워 지고 수학적인 그래프만으로 경제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해 질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이론에 문제가 있다면 복잡하더라도 새로운 (사실 이제는 그다지 새롭지도 않은..) 경제학 또는 사회학이 더 널리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위키피디아. 2001년 1월 15일에 탄생한 온라인 백과사전. 2018년 현재 약 4,500만개의 표제어(모든 언어)를 담고 있다.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사회는 몇 사람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네트워크의 발달 덕분에 집단지성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집단지성은 결국 이기심보다는 도덕성과 협력에 대한 의지로서 형성될 수밖에 없다. 《펭귄과 리바이어던》은 그런 면에서 그동안의 수많은 연구성과를 종합하여 결론을 내려 놓은 결정판같은 책이다. 행동경제학, 협력의 창발에 관련된 책을 모두 읽는 것이 물론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부족하다면 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기본적인 개념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번역이 잘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