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간병 살인 - 벼랑 끝에 몰린 가족의 고백
마에다 미키 외 지음, 남궁가윤 옮김 / 시그마북스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 사회가 늙어가고 있다
전체 인구 중에 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7%가 넘으면 고령화 사회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14%를 넘어서면 고령사회라고 한다. 바로 작년인 2017년 우리나라는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우리나라의 고령인구비율은 14.3%이고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달려 가고 있다. 초고령 사회의 기준은 20%이다. 2017년의 합계 출산율(한 여성이 15~49세의 가임기간 동안 출산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산아 수)은 1.05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KOSIS 국가통계포털 자료 참조) 출산을 꺼려할 뿐만 아니라 비혼가구마저 늘고 있다. 사회가 혁명적인 변화를 겪지 않는 한 이제 달려가기 시작한 기차를 멈출 방법은 없어 보인다.
사회가 늙어가면서 많은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는 것은 당연하고,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간의 복지비용을 둘러싼 대결 양상도 펼쳐지고 있고, 일자리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 간병을 하는 가족들의 고통 역시 아직은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 않지만, 누구나 주변에 간병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을 지인이 있거나 본인이 간병을 하고 있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문제다. 장수는 복일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고 가난하면서 오래 사는 것은 너무나도 큰 고통이다. 문제는 당사자 한 명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큰 고통을 주며, 결국에는 가족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거다. 《간병살인》은 오랜 간병으로 인해 파괴된 가정을 취재한 기록이다.

고령사회에서 치매는 가장 비극적인 질병 중에 하나이다. 특히 치매는 회복의 희망이 전혀없이 나빠지는 것만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 점 때문에 절망스럽다.
'살인자'를 취재한 마이니치 신문사의 《간병살인》 취재반
《간병살인》은 마이니치신문의 기자 세 명이 취재한 기사를 새롭게 엮어서 써낸 책이다. 시민의 애환을 그린 다른 기사 시리즈인 <애환기>를 취재하던 중에 간병을 둘러싼 비극이 4건이 되는 것에 주목하여 새롭게 팀을 짜서 취재했다고 한다. 기자들이 취재를 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특히 비극의 현장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의 어려움은 더욱 클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간병을 하다 한계에 도달하여 환자를 살인한 사람은 분명히 범죄자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취재과정이 순탄하지 않다. 죄책감과 상실감 때문에 잊고 싶은 기억을 끄집어내기 싫은 취재대상으로부터 그들의 진심을 끌어내는 과정이 절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기다림과 설득을 통해 취재를 해낸 기자들의 취재과정에 박수를 보낸다. 마에다 미키오 前田幹夫, 시부에 치하루 渋江千春, 무코하타 다이지 向畑泰司, 세 명 기자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한 번 언급은 하고 가자.
글의 서두에서 고령화 사회에 대해서 다루었지만 '간병'이 꼭 노인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선천성 환자도 있고, 젊은 나이에 사고로 거동을 할 수 없는 장기환자도 있다. 그래도 역시 간병이 가장 필요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고령으로 인해 신체 또는 정신에 문제가 생긴 노령층이다. 특히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치매환자가 늘어난 것이 최근에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치매의 가장 큰 문제점은 활동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으나 정신의 이상 때문에 간병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고, 잠깐 동안의 방심으로 인해 화재 등의 큰 사로고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취재의 대상 중에 상당 부분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취재한 총 44건의 사례 중에서도 20건이 치매를 앓는 환자의 사례이다. 그 외에 조현병, 우울증, 사고나 병에 의한 마비환자들도 취재했다.

스스로 거동을 할 수 없어서 간병이 필요한 환자는 본인이 불행한 것 뿐만 아니라 가정까지 파괴할 수 있다.
벗어날 수 없는 간병의 늪에 빠진 가족들의 절망
《간병살인》 취재반은 꽤 다양한 사례를 취재했다. 그런데 모든 사례들에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간병살인》에 등장하는 '살인자'들은 자신의 가족인 환자를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적게는 십수년, 많게는 30~40년 동안 간병하지는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슬프긴 하지만 기꺼이 가족의 간병을 시작하고 책임감있게 간병을 해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물론이거니와 잠잘 시간마저 부족해 져서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게 되고, 그 결과 심각한 우울증 증세로 이어진다. 게다가 장기간의 간병으로 인해 수입은 없어지고, 돈마저 다 떨어지고 나면 경제적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상태로 몇 년간 더 지속하다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환자를 살해하거나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집에 간병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가족 중에 누군가 병석에 눕고 거동을 할 수 없게 되면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간병을 시작한다. 하지만 하루이틀 지나고 일년이년이 지나가면 간병은 이제 환자 한 명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웃음을 앗아가 버리고 집안에서는 없앨 수 없는 환자의 냄새로 가득찬다. 직접 간병을 하지 않는 가족은 집에 들어 오는 것을 꺼려해서 바깥으로 나돌게 되고, 결국 가족도 해체되기 시작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가 죽기를 바랄 수도 없다. 이 절망감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커서 환자의 가족들을 비난하는 것은 말도 안되고, 섣부른 동정마저도 가족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환자 가족에게 있어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은 너무나도 잘 들어 맞는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서 사랑하는 가족을 살해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 어떻게 이 사람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도 '간병살해'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용적으로 판결하여 집행유예나 단기 징역혁을 선고한다고 한다.

거동을 할 수 없는 환자에게는 온전히 한사람 몫을 넘어서는 간병이 필요하다. 결국 환자 한 명으롱 인해 가족 한 명이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간병비용은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가족의 경제상황은 파탄날 수 밖에 없다.
사회를 향한 기자의 질문
이 책은 '일본'의 기자들이 취재한 사례들을 편집하여 펴낸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병에 대한 지원이 우리나라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일본인의 성향'(이 성향이 일본인들만이 가진 특성인지에 대해서는 따지지 말고 넘어가자)이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라고 해서 딱히 일본에 비해 환자가족에 대한 지원이 나을 것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아직 일본만큼의 '간병살인'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주목을 하지 않아서 드러나지 않는 걸까? 나는 전자이기를 바라는데, 그렇다면 그 이유는 뭘까?
결국 간병에 대한 문제는 한 가정이 책임지기에는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불가능한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장기환자 한 명은 한 가정을 파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시급하게 필요한 문제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공적인 지원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그저 '더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도에서 끝을 맺는다. 기자들은 파헤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지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간병살인》 시리즈 취재 후에 일본의 매스컴에서 간병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고 하니 사회적 담론으로 끌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답변은 정부와 사회가 할 차례이다. 이 기사가 나간 후 일본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다.
일본은 이미 2006년에 세계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을 했고, 65세 이상이 아니라 70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2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예정이다. 얼마 안 남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넋놓고 있다가는 일본이 겪고 있는 문제에 그대로 맞닿뜨릴 수 밖에 없다. 미리 고민해서 알맞은 방안을 준비해 두지 않으면 몇십년 후, 아니 빠르면 몇년 후면 우리에게도 분명히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 정부에서는 '치매국가책임제' 등 고령사회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으니 기대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더불어 고령인구가 아닌 다른 간병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함께 고려하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항상 그렇지 못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 개인과 함께 사회도 함께 대비하는 것만이 불의의 사태를 맞아 개인이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는 방법이다.
★★★★☆
이 책의 마지막에는 기사를 읽은 사람들의 편지 일부가 실려 있다. 하나같이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과 사회의 지원을 바란다는 내용이다. 비록 상황은 우리와 다르지만 읽어 보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책이다. 부디 환자를 간병하는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