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으로 본 세계사 - 판사의 눈으로 가려 뽑은 울림 있는 판결
박형남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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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018 격동의 사법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재판장인 이정미 판사는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했던(후무하기를 바란다) 대통령 탄핵 결정을 내렸다. 국정농단으로 우리나라는 혼란에 빠져 있었고, 연인원 수천만 명이 촛불집회를 벌이던 참이었다. 이 판결은 거꾸로 흘러 가던 대한민국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았고, 한때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는 이제 구치소에 구속되어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확하게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적인 헌법기관이긴 하지만 판사가 판결을 한 것으로 생각하면, 박근혜의 탄핵판결은 아마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파급력이 큰 판결로 영원히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마저 구속되어 1심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두번째로 두 전직 대통령이 한꺼번에 구속된 꼴을 지켜보고 있다.

역사를 바라볼 때, 중요한 사건을 짚어가면서 보는 것은 당연하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는 그 중에서도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재판을 살펴보는 보기 드문 책이다. 게다가 저자는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이다. 재판에 대해서만큼은 가장 전문가인 판사가 쓴 책이기 때문에 읽기 전부터 큰 기대가 되었다. 책에서는 개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재판들을 한 번에 모아서 역사순으로 보니 정리도 잘 된다. (이거 설마 혹평을 쓰면 고소당하거나 그런거 아냐?)

 

저자 박형남. 현 서울고등법원 판사. (1960 ~ )


한 장에 재판 하나

《재판으로 본 세계사》은 모두 15장이다. 각 장은 역사적으로 의마있고 유명한 재판을 담았다. 각장의 구성도 비슷하다. 첫 페이지에서는 각 재판이 벌어진 시기, 재판 당사자, 쟁점, 결론과 역사적인 의미를 간단하게 소개해서 재판의 개요를 미리 머릿속에 넣어 놓고  읽을 수 있다. 각 장은 먼저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재판 또는 사회현상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본격적으로 주제가 되는 재판의 발단, 경과, 결론이 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사건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할 문제와 역사적, 법적 의미를 되새겨 본다. 약 400페이지의 책에 15개의 재판 에피소드가 담겨 있으니 각 에피소드는 약 30페이지 정도이다. 끊어서 읽기 편하다.


현직 판사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으려고 하니 기대는 되었지만 처음엔 좀 딱딱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현직 판사가 쓴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은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의 저자인 박형남 판사는 법률만 아는 편협한 판사가 아니다. 역사 지식이 해박하고 당시 사회상까지 자세히 살펴보면서도 딱딱하지 않게 글을 풀어낸다. 쉽게 읽으면서도 각 재판의 배경과 쟁점을 법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도 있어서 유익하다. 거기에 덧붙여서 각 장의 구성이 똑같고 설명이 깔끔해서 이해가 안돼서 앞장을 펼칠 일이 별로 없었다.

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세일럼에서는 마녀사냥으로 37명의 무고한 여자들이 생명을 잃었다.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다양한 판결들

《재판으로 본 세계사》에는 역사에서 의미가 있는 판결들을 가려서 실어 놓았다. '의미있는' 판결이지 꼭 '올바른' 판결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재판이나,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숨어서 내뱉었다는 갈릴레이의 판결도 중요한 판결로 등장한다. 미시사로 유명한 '마르탱 게르'의 귀환을 다룬 흥미진진한 재판 기록도 있고, 책의 뒤로 갈수록  근로시간 제한, 참정권, 인종차별, 악의 평범성, 미란다 원칙 등 유명하면서도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세계적인 판결들이 많이 실려 있다. 때로는 지금의 상식에 비추어 봐도 올바르게 판결이 된 것이 있고, 어떤 판결들은 도대체 말이 안되는 판결도 있다. 하지만 옳든 그르든 하나같이 중요한 판결들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판결들이 이 책 하나로 굴비 꿰이듯이 엮여나가면서 인간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온 방향을 조망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알프레드 드레퓌스 Alfred Dreyfus (1859 ~ 1935)

 


재판, 판결, 사회의 마지막 보루

책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두고 읽은 부분은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재판이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이미 사건이 어떻게 진행이 되었고 결과가 어땠는지는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재판에 다시 한 번 꽂힌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사법부의 상황과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판사이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 판사는 개개인이 독립적인 기관이면서 판사 본인의 양심에 맞게 판결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드레퓌스 사건을 보면 판사가 법과 양심이 아닌 다른 것을 고려해서 판결을 내린다. 현재의 우리나라에서는 그 '다른 것'이 정치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사법부의 이익일 수도 있고, 자존심일 수도 있고,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재판은 최종판결이 나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저자가 쓴 다음 해설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드레퓌스가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왜 12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렸을까? 앞에서 보았듯이 형사사건이 유죄로 확정되면 재심으로 바로잡는 것은 어렵고 복잡하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프랑스 국민들은 분열되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판결을 번복하는 경우 엄청난 정치, 사회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법적 논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p. 262


위의 해설이 저자의 의견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판사들의 생각을 해설해 놓았을 것이다. 판결에서의 모든 문제는 법적 논리만으로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법적 논리가 아닌 정치적 상황, 전관예우, 돈, 권력 등이 결부되는 순간 판사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사회는 마지막 보루를 잃어 버려 사회적 안정성이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된다. 사회적 안정성은 차치하고라도 재판의 당사자인 피의자는 인생을 잃게 된다. 법이라는 객관적인 잣대에 기댄 판결만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이런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잘못된 판결로 인해 인생을 망친 사람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에르네스토 미란다 Ernesto Miranda가 서명한 미란다 카드. 미란다는 출소 후 미란다 카드에 사인을 해서 1달라 50센트에 팔았다.


재판에 관한 책을 읽은 김에..

우연히도 이 책이 나온 시점으로부터 내가 읽은 시점에 우리나라는 판사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 쓰레기같은 양XX라는 전임 대법원장은 판결을 가지고 권력과 거래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진실을 파헤칠 것을 많은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데 양XX의 뒤를 빨던 판사들은 정당한 영장을 발부하지 않음으로써 검찰의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사법부가 이런 상태라면 어떤 국민이 자신이 받는 판결에 대해서 승복을 할까? 유죄를 선고받은 피의자가 판사들이 무슨 권위와 권리로 나에게 유죄를 내리느냐고 따져 묻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판사의 권위는 공평하다는 데서 나오는 것인데 이미 많은 국민들은 판사들이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의 사법부 적폐를 드러내지 않는 한, 아마도 언젠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

흥미있게 읽을 수 있고 유익하기도 하다. 책이 어렵지도 않고 끊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꽤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대체적으로 모든 재판을 쉽게 읽을 수 있는데, 법적인 논리를 따지고 드는 재판을 설명한 장은 깊이 생각하면서 그 안의 논리를 읽어나가야 해서 좀 어려운 편이다. (나의 리갈 마인드가 많이 부족하다). 책의 저자인 박형남 판사가 누군지는 모른다. 그저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 멋진 판사가 쓴 좋은 책을 읽었기를 바랄 뿐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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