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신화여행 - 신화, 아주 오래된 이야기
김헌선 외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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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신화

나에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익숙한 신화는 그리스 신화이다. 로마신화는 그리스신화에 부속품처럼 딸려서 약간의 변용이 이루어 졌을 뿐, 단독으로 출판이 되는 경우도 드물다. 거의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진 그리스 신화의 뒤를 잇는 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북구 유럽의 신화이다. 특히, 너무 흔해서 흥미가 떨어지는 그리스 신화에 비해 조금은 생경하면서도 서사구조가 탄탄한 유럽의 신화는 최근 많은 서브컬쳐 장르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스와 북구 유럽의 신화가 1,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세상에는 나라의 수보다 더 많은, 민족의 수만큼 많은 신화가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신화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단편적으로 흩어져서 통일된 서사구조가 부족하기 때문에 myth라고는 해도 mythology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그리스·로마신화를 가장 먼저 읽어 보고 이후 북구 유럽 신화, 한국의 신화도 꽤 읽어 봤다. 그외에도 중국, 인도, 남미, 아프리카 신화 등으로 차츰 읽는 범위를 넓혀 갔는데, 신화 중에서도 가장 흥미진진한 신화는 수메르신화로부터 시작하는 고대 중동의 신화였다. 특히 어릴 때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처음 수메르 신화를 읽으면서 받은 충격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 창세기에 나오는 홍수신화의 원형도 그 전에 이미 있었던 것이었고, 이사야가 물리쳤던 바알과 아세라 신들이 사실은 중동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중동신화여행》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에 큰 영향을 끼쳤던 고대 중동의 신화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이다.

원통형의 인장을 굴려서 점토판에 찍은 엔키(오른쪽에서 두번째)의 모습. 엔키는 수메르 신화의 최고신인 안의 둘째 아들로 실제적인 최고신인 엔릴의 동생이다. 대홍수에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도록 도와준 신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의 포지션과 비슷하다.


강연을 옮겨놓은 책

《중동신화여행》은 2017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원에서 주관한 '신화와 예술 맥놀이 - 중동신화여행'에서 강연한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일곱 명이고 책의 내용도 강의체로 되어 있다. 중간에 간혹 현장에 없었던 사람은 느끼지 못할 내용이 나오기도 하는데 크게 신경쓰일 정도는 아니다. 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형식의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주제의 핵심을 짚어내면서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렇다.

 

길가메시 부조. 길가메시는 수메르 신화에서 처음 나타나 바빌론 신화에까지 등장한다. 친구인 엔키두가 죽은 후 불사가 되기 위해 여행을 해서 거의 성공했지만 마지막에 잠깐의 실수로 불사의 기회를 놓쳤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최초의 영웅이다.


중동신화의 핵심에 대한 자세한 설명

일곱 명의 강연자는 처음에 기조 강연을 통해 신화를 보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한 후 각자가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중동신화에 대해서 강연한다. 그러니까 책은 모두 8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은 하나의 독립적인 강연 내용이다. 각 강연은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 수메르의 엔키 신화, 메소포타미아의 이난나 신화, 길가메시 이야기, 에누마 엘리쉬와 쿠쉬나메까지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한 신화 전체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각 신화의 중요한 신(또는 인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길어야 2~3시간 정도 되었을 시간에 신화 전체를 다룰 수는 없었을 테니 집중적으로 한 명의 신을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각 장은 신화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한 후에 집중적으로 개별 신에 대해서 안내하는데 해당 신화에서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신화를 설명하기 때문에 신화의 대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몇 번 읽어 봐서 익숙했던 수메르나 이집트의 신화보다는 익숙하지 않았던 쿠쉬나메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대한 6, 7장의 내용이 나에게는 관심이 더 많이 갔다.

 

이난나. 아카드어로는 이슈타르. 릴리스라고도 하고 금성을 상징한다. 판본에 따라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저승을 다녀 온 것으로 유명하다.


쉽게 접하기 힘든 중동신화,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할 수도..

고대중동신화는 접하기 쉽지 않다. 내가 처음 수메르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을 때는 적당한 책이 없어서 백과사전을 뒤적이면서 서사가 아닌 사전적으로 신들을 기억했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많이 달라져서 인기있는 그리스나 켈트 신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꽤 많은 책들이 나와 있고, 원서를 바로 번역해 놓은 좋은 책들도 있다. 그리고 개별 신화를 넘어서 서사구조를 가진 신화는 내용이 꽤 많아서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이 책 한권으로 중동신화를 모두 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면 상식선에서 충분할 것 같다. 물론 이 책을 읽고 중동신화에 관심이 많이 생긴다면 더 많은 책을 찾아 보고 보충을 하면 될 것이다.

 

오시리스.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죽은 자와 부활의 신이다. 아내는 이시스. 동생인 세트가 살해하여 몸을 산산조각을 냈으나 아내인 이시스가 조각을 찾아 몸을 다시 맞추어 부활했다. 단, 성기만은 찾지 못해서 진흙으로 빚어서 붙였다고 한다. 오시리스의 피부는 녹색이고 한 손에는 권력을 상징하는 홀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생산을 상징하는 도리깨를 들고 있다.


★★★★☆

꽤 많은 신화에 관한 책을 읽어 봤는데 《중동신화여행》은 그 중에서도 쉬우면서도 핵심을 잘 소개하는 책이다. 그리고 중동신화 전체를 조망해서 설명한 점에서 중동신화 입문용으로 굉장히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다가 혹시나 해서 찾아 보니 같은 시리즈로 되어 있는 신화에 관한 책들이 몇 권이 더 있다. 아마도 조만간 구매해서 읽어 보게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 속에 실려 있는 그림이 좀 컸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좀 남는다.

신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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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콘롤 2021-03-05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알과 아세라를 물리쳤던 유대 (정확히는 북 이스라엘) 선지자는 이사야가 아니고
엘리야입니다.

한담 2021-03-05 18: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잘못 써 놓았네요. ^^

로콘롤 2021-07-16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 전에 이 책을 사서 완독했습니다.

다만 수메르 신화가 성경 창세기의 원형처럼 보이는건
이스라엘 성경의 성문화가 수메르보다 늦었던거죠.

시장에 상품 하나가 출시되었다고 봅시다.

중국산 짝퉁이 재빠르게 시장을 장악합니다.

소비자들은 짝퉁이 오리지널인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