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이니
배영익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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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만든 세계에는 직선이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직선을 긋는 행위야말로 진짜 창조적인 행위다. 직선은 신에게서 해방된 인간성의 상징이다.


연쇄살인사건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있는 덕적도.. 덕적도 주변에서 엉뚱한 변사체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시신은 모두 세 구가 발견되었는데, 비닐에 싸여서 돌덩이 몇 개와 함께 가방에 담겨 있다. 누군가 살인을 한 후 바다에 유기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PD이면서 전직 프로파일러인 류문학 피디가 이 사건을 알게 되고 살인사건의 뒤를 쫒기 시작한다. 당연히 처음에는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 시신의 손가락은 훼손돼서 지문으로도 신분을 확인할 수 없다. 전직 프로파일러이기 때문에 당연히 환영받지는 못해도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철저하게 시신을 훼손해서 신분을 알 수 없을 것 같았던 시신 중 한 구에서 척추에 인공디스크 수술을 한 것이 확인됐고, 이것을 힌트로 해서 한 사람의 신원은 알 수 있게 됐다. 인공디스크에 새겨진 제품번호로 확인을 해 보면 어디서 수술기록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외국에서 받은 수술이니 외국에 확인을 해 봐야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게다가 가방 속에 들어 있던 특이한 돌 덕분에 실제 범행이 이뤄진 장소, 즉 가방이 던져졌던 장소도 특정할 수 있게 되었다. 류문학 피디는 이렇게 점점 연쇄살인마를 쫓아 간다.

 

머리에 이런 감투를 쓰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도깨비 감투

성기담은 거의 인생의 막장까지 와 있다. 아내와는 별거 중이며, 운영하던 학원은 부실한 운영으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은행으로부터 대출도 거절을 당했다. 혹시나 돈을 빌릴 수 있을까 해서 염치는 없지만 장인어른을 찾았다. 장인으로부터 차마 돈 얘기는 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장승과 장승이 머리에 쓰고 있는 감투를 하나 얻어 온다. 여담이지만 성기담은 귀신과 함께 살고 있다. 함께 살고 있다기보다는 귀신이 성기담의 집에 붙어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다. 어느 집이든 귀신 몇 위 정도 함께 사는 것은 흔한 일이니까 딱히 놀랍지는 않다. 이 귀신은 성기담에게 이런 저런 얘기도 해 준다. 그 중에 사람이 타지 않고 있는데 움직이던 차에 관한 얘기도 있다.


우리는 금세 예상할 수 있다. 장인이 성기담에게 줬던 감투는 도깨비 감투이다. 머리에 쓰면 투명인간이 된다. 이 감투가 어째서 장인 집 허름한 궤짝 속에 있었는지, 장인은 왜 성기담에게 이 감투를 줬고, 이 감투가 도깨비 감투인지 알고 있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어쨌든 굉장한 보물을 얻었다. 안그래도 쫒기던 기담은 도깨비 감투 덕에 사채업자들에게 추적당하는 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찾아 보니 의외로 도깨비 감투에 관한 창작품이 많다. 사진은 신문수 화백의 <도깨비 감투>. 굉장히 오래된 만화이다.


도깨비감투와 싸이코패스의 대결

설화 속에 나오는 도깨비 감투가 소재의 하나로 등장하는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이다. H. G. 웰즈가 쓴 소설 <투명인간> 이후로 온갖 SF 판타지 소설과 영화의 소재로 숱하게 사용되고 있는 소재이다. 투명인간이 등장한다면 모두들 생각하는 전개가 있다. 목욕탕.. 은행털이.. 히어로가 되어 남몰래 선행을 한다든지.. 이런 기대를 하면서 책을 읽게 된다. 당연히 어려움에 처한 주인공은 투명인간이 되어 시원하게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내가 보이니>에서 도깨비 감투를 손에 쥔 성기담을  따라 가다 보면 그런 시원시원한 전개는 물건너가 버린다. 찌질하고 자신감없어 보이는 성기담은 도깨비 감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찌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당황스러운 것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소재일 것 같았던 도깨비 감투는 사실은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내 생각으로는)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감투를 손에 넣은 성기담이 아니다. 사람들을 죽여서 덕적도에 던져 버린 연쇄살인마가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다. 성기담과 류문학의 두 사람의 관점을 교차하면서 소설이 진행되는데, 성기담보다는 살인자를 찾는 류문학에게 더 많은 무게가 실려 있다. 그리고 그 싸이코패스 살인마의 정체가 밝혀진 후에는 살인마 vs. 다른 사람들의 대결구도가 긴장감을 자아낸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같은 신비한 물건을 손에 넣은 성기담은 주요 인물을 짚어 나가다 보면 정체를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싸이코패스와 생명을 놓고 사투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절대적인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이 대결은 싸이코패스가 승기를 잡아간다. 무적일 것 갓 같은 투명인간이 되는 능력은 교활한 살인마 앞에서는 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살인마는 결국 범죄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되지만 성기담이나 류문학의 활약 때문이라기보다는 욕심 때문에 스스로 무너졌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도깨비 감투는 이 과정에서 인간에게 힘을 부여하는 물건이 아니라 탐욕을 부리는 사람에게 스스로 벌을 주는 심판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의 중요한 두개의 소재는 투명인간과 싸이코패스이다. 하지만 의외로 굉장히 성적이거나 폭력적이지는 않다.


★★★☆


독특한 분위기의 소설이다. 읽기 전에 기대했던 것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얘기가 전개되는데 나쁘지 않다. 도깨비 감투에 페널티를 부여해서 주인공이 무적이 되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 소설에서 기대하는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 어렵다. 대신 싸이코패스 살인마의 성장과정, 행동 등은 설득력이 있어서 긴장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도 상징적으로 잘 결말지은 것 같다.


재미있게 읽었으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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