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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ABC - 입문자를 위한 음악 기초 문법 ㅣ 음악의 글 7
이모겐 홀스트.벤저민 브리튼 지음, 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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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공부 언제 해 봤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처음 음악에 흠뻑 빠졌던 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이었다. 5살이나 6살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좋아서 닥치는대로 음악을 들었던 것이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부모님이 가지고 계시던 카세트 테이프를 내가 더 열심히 듣기도 했었다. 처음으로 좋아했던 클래식음악은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이었고, 처음으로 합창을 해 본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교회 성가대에서였다. 이후로도 아마츄어로서 상당히 많은 음악활동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한 순간도 음악을 놓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계속 가지고 갈 평생의 취미이다.
음악이 그렇게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론적으로 음악에 대해서 공부해 본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면 고개를 젓게 된다. 학교 다닐 때 배운 것이 전부다. 그나마라도 배운게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조금씩은 음악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어차피 아마츄어이고 취미로 하는 음악인데 본격적으로 공부할 틈도 별로 없었고 필요성도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게 당연하다. 그러니까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이론은 퍼즐조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직소퍼즐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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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겐 홀스트 Imogen Holst 1907~1984 영국의 작곡자, 지휘자, 음악교육자, <음악의 ABC> 저자
본격적인 음악 이론서
음악에 관련된 책은 여러가지가 있다. 가지고 있는 책들을 살펴 보니 당연히 악보가 있고, 음악사에 대한 책, 개별 음악가에 대한 전기, 음악 형식에 대한 책, 음악에 관련한 에세이가 있다. 그런데 꽤 많은 음악 관련 책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음악이론에 관한 책이 한 권도 없다. 생각해 보니 그런 책을 살 생각을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실 음악의 기초이론을 모른다고 해서 음악을 듣는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음악을 듣기만 하는게 아니라 따로 음악 활동도 하고 있어서 간혹 음악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음악의 ABC>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되는 음악 이론서이다. 기본적인 기보법부터 설명을 시작해서 음표의 종류와 박자, 쉼표, 각종 박자지시, 셈여림까지 악보를 읽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어서 학교 다닐 때 음악시간에 배웠던 것들을 되새기면서 읽을 수 있다. 특히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인 딸림화음이라든지 버금딸림화음같은 용어를 볼 때는 살짝 입가에 웃음이 돌기도 한다. 책의 2/3 가량은 온전히 악보를 읽고 쓰는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어서 악보를 봐야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내가 이 책에서 기대를 했던 부분은 4부의 '대위법' 부분이었다. 음악을 하면서 대위법이라는 말은 참 많이 들었지만, 그동안 잘 찾아 보지도 않았고 제대로 설명을 들어 본 적도 없어서 대강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확히 뭔지알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약 30페이지의 대위법 부분을 읽어도 다른 부분과는 달리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이해력이 딸려서 그런 건 아닌가 자괴감이 들어서 음악을 전공하는 친구들에게 물어 보니 원래 대위법이 굉장히 어려운 것이고 음대를 다니더라도 작곡과가 아닌 경우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졸업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를 듣고는 안심을 했다. '대위법'은 어려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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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저민 브리튼 Benjamin Britten 1913~1976 영국의 작곡자, 지휘자, 피아니스트, 서문을 썼다.
이론으로 배우는 음악의 역사
책의 나머지 1/3은 여러가지 음악의 형식과 악기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이름으로 들어 왔던 여러가지 춤곡의 형태로부터 소나타, 오페라, 칸타타 및 각종 음악 양식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고 있다. 물론 얇은 부분에서 모든 장르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음악 양식에 대해서 짧은 시간에 한 번 훑어 보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각 장르에 대해서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들어 봐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출발점으로 삼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음악을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다. 음표가 처음에 어떤 모양으로부터 나왔는지도 설명을 하고, 각 장르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변천을 겪었는지도 설명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음표들, 악기들, 음악 장르들이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음악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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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음악은 그냥 듣기만 해도 괜찮다. 좋은 음악을 듣는데 꼭 이론적인 지식이 필요지는 않다. 하지만 음악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질 때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좋은 책, 하지만 조금 애매한 포지션
나는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책이냐고 물어 본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하기는 좀 쉽지 않다. 이 책은 일종의 교과서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기는 하지만 이론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딱히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 특히 악보를 볼 필요가 없거나(사실 살면서 악보를 봐야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클래식을 듣지 않는 사람이라면 별로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그렇다고 전공자에게 읽으라고 하기엔 맛만 보고 끝나는 느낌이 든다. 이 책 이외에도 서양음악의 이론이나 역사에 관한 책을 몇 권 가지고 있는데 그런 책들에 비하면 이 책은 너무 내용이 적다.(부실하다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딱 나같은 사람에게 적당한 책이다. 적당히 음악에 관심이 있어서 내용을 좀 체계적으로 알고 싶은데 시간은 많지 않아서 짧은 시간에 훑어 보고 싶은 사람에게 딱 좋다. 이 책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자고 생각하는 건 욕심이다. 위에서 쓴 것처럼 이 책은 훑어 보고 시작할 수 있는 책이지 완결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음악의 어떤 분야에 대해서 관심이 생겨서 더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딱 좋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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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등학교 음악교과서는 이렇게 나오는구나. <음악의 ABC>는 원래도 음악교육을 위한 교과서같은 책으로 쓴 책이다.
★★★★☆
추천할 대상은 명확하다.
1. 아마츄어 음악가 중에서 합창이나 중창, 아카펠라같은 보컬 활동을 하거나 악기를 다루기 때문에 악보를 볼 필요성이 있는 사람
2. 클래식 애호가 중에서 음악을 좀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
3. 프로(여기서 프로는 음대를 준비중인 수험생이나 갓 입학한 학생을 말함) 중에서 음악의 이론을 간단하게 훑어 볼 수 있는 시작점이 필요한 사람
어쨌든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