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진 것 보다 더 많이 말해져야 한다
도로테 죌레 지음 / 한들출판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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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성신학자인 도로테 죌레는 하나님에 대한 화석화된 생각을 깨뜨리며 올곧게 말하고 새로운 관계맺음을 외치고 있다. 기존 남성중심적인 신학의 폐해를 낱낱이 파헤치며 그것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찾는 여성 해방신학적 시도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말 "나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해방되도록 나는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그러므로 나는 애원합니다. 나에게서 하나님을 제거하여 달라고" 을 인용하여 복종과 위계질서 속으로 하나님을 가둬버린 남성중심적, 권위적 신학을 뛰어넘어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철저함의 신학과 신앙을 갈망하고 있다.

본문은 총 9 장으로 1. 우리는 도대체 어떠한 하나님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가? 2장 그림 그리기, 그림 지우기, 3장 하나님의 이름을 찾는 여성신학적 시도 4장 알지 못하는 이와 씨름하기 5장 하나님의 아픔과 우리의 아픔들(고후7:10) 6장 타자를 위한 인간, 예수 7장 십자가와 부활 8장 하나님 사랑하기 9장 위로와 정의 로 구성 되어 있다.

그녀의 말들 중 핵심을 골라 본다면 '어떠한 하나님에게 우리는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에게 말할 때 우리는 다만 하나님에 대해서 말한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라는 정의 속에서 본말이 전도된 신학의 행태를 비판하며 참다운 신학함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내어주는 것에서 부터 시작됨을 천명하고 있다.

5장 하나님의 아픔과 우리의 아픔들에서 고난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였고 결국 이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알려주는 초석이 되었다. 즉 기쁨과 고통의 모순적인 조화와 역설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되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됨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왜 기독교를 변증하는 가에 앞서 신앙의 발전의 국면을 숙고하였는데 첫째 마을의 종교적 국면에서 의식적인 비판을 받게되는 (취사선택) 국면을 지나 제 3의 구면인 의식적인 종교 결단의 국면의 길로 이행된다고 한다. 이것은 다시 말해 기독론의 변화로 표현하면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에서 천상의 존재로 다음 위로부터의 생각(그리스도 숭배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으로 투쟁속에서 이뤄져 나간다고 분석하고 있다. 함께 고난 당하고 함께 싸우는 것을 표현는 한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부르고 있다. 그녀의 신학을 잘 대변해주는 표현으로 "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과 정의를 향한 그들의 요청을 외면하는 자는 함게 오라!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 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꿈꾸는 것은 공산주의인가? 모두가 가난하지 않고 짓밟히지 않은 나라] 결국 그녀는 본회퍼의 정의를 통해 그리스도를 표현하게 된다. 타자를 위한 존재!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이다.

즉 예수가 승리했다거나 세상을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가 타자를 위한 존재로 살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이 모습이 새겨지기 때문에 우리는 나사렛의 예수를 믿을 수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신앙을 이렇게 고백한다 . "죽음에 맞선 생명을 위한 우선적 사랑" 이것이 신앙이다라고..... 

좀더 읽어진 것보다 더 많이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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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신학생 여러분
헬무트 틸리케 / 나침반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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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틸리케, 나침반사   여러분은 왜 신학도가 되고자 하는가?

내용

1장 신학생에게 주는 글

신학적 오만의 병폐-인간에게서 진리와 사랑이 좀처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 제기

사랑은 소유하고자 하는 의지 반대편에 서 있다. 곧 자신을 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자신을 뽐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이다. 한 신학생이 불트만의 신약성경 신학을 들이밀음으로서 바리새적 승리감에 도취된 것은 진리를 한개이느이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 동시에 누군가를 죽이는 수단을 사용한 예이다.

진리를 자기 방어와 교회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삼은자의 독백 " 내 영혼아 안식하라 너는 너의 진리 때문에 비방을 듣지만 너는 정당하다. 혹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 동료들처럼 신자들 귀나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도시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그들을 좇고 있나이다. 텅 빈 교회당의 좌석이 저를 대신해서 저를 증거하고 있나이다." 라고 자신을 옹호

당신을 강렧하게 감동시킨 모든 신학 사상들을 당신의신아엥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라 당신을 지식적으로 깨우쳐 주고 신학적으로 감동시킨 일체의 사상들을 당신이 믿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하지 말라 만일 그런 것을 당영하게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어는 순간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 않으며, 오리려 루터 혹은 어떤 신학 사상가들을 믿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가 2인칭이 아니라 3인치을 사용해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중하게 검토해만 한다. 즉 신학은 오로지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공기 속에서만 살아 숨쉴 수 있다는 것이다.

* 신학의 난점 중 하나는 실제 삶을 통해 성경의 진리에 도달하고 건전하 체험에 귀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신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남다른 열심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2장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인가,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할 것인가?(마6:5~8) 의 설교를 한 내용 : 주제-기도

보델슈빙크의 자서전의 내용을 소개(두  주 동안 네 명의 자녀들을 잃은 부모로서의 심정을 털어 놓은 내용을 소개)

그는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 하지 않고 오히려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기도로 승화시켰다.

예수께서는 기도의 고향으로부터 오셔서 말씀을 전파하고 치유하며 사역을 수행하셨다. 예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말씀은 이전에 하나님과 나누었던 말씀이었다. 아무도 받지 않은 곳에서 울리느 전화벨 소리갘이 기도가 전혀 무의미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 예수님의 기도하라는 명령은 고통과 번민으로부터의 완전하고도 진정한 해방을 줄 것이다.

기도할 수  있는 조용한 골방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혼란을 해결해 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시야에서 놓친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이 세상에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축복의 샘물을 막아 버린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겠으며 이 세상을 이기신 분고의 교제를 단절해 버린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공헌할 수가 있겠는가?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이미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 믿어야 한다. 베드로가 바다에 가라앉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님께 외쳤듯이 우리도 주님께 외치고 주님께 부르짖는 일을 결코 중단해선 안된다. 그리고 이 어두운 세상을 용감하게 성큼성큼 걸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3장 세상의 꿀인가 소금인가? 마5:13~16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양들을 그리고 있다. 그리스도깨서 친히 소금이 되어서 빌라도와 로마 제국이 가두려고 했지만 결국은 세상을 부패케 하는 것을 막는 소금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포하시기를 너희는 소금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잗들은 이 세상에 소금을 운반하여 이세상을 멸망과 타락으로 이끄는 해독 다시말 해 현대ㅑ 산업 사회의 몰락이라고 까지 거론되었던 일체의 과정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ㅏ. 소금과 빛은 자신을 보존하려고 노력함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한다. 소금과 빛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소금과 빛은 모두 자신을 내주고 자신을 소비한다. 이것은 모든 류이 이기적인 사이비 신앙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틸리케는 진리와 사랑의 조화이뤄지지 않은 세상을 조화시키기 위해 오만을 버리고 원전인 성경에 충실하며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 반드시 기도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듯하다. 또한 소금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되있어서 도 역설의 삶(자신을 죽여 다른 이를 살리는 것 그로 인해 자신도 살 수 있다)을 살기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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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김정원 > 강해설교의 진수

많은 곳에서 강단의 권위가 무너지고, 더 이상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지 않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과 미래의 변화 속에서 설교는 과연 목회의 중심(中心)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도대체 설교가 최종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회의적인 상황 속에서도 설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가지 전제를 붙이고자 한다. 그것은 바른 성경적 말씀의 선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바른 성경적 말씀의 선포는 어떤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해돈 W. 로빈슨의 <강해설교>는 명쾌한 대답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는 달라스 신학교에서 19년 동안 설교학을 직접 가르치면서 체득한 것을 거침없이 쏟아놓고 있다. 본 서는 강해 설교의 첫 단계인 본문 성경구절의 선택에서부터 실질적으로 강단 위에서 행해지는 설교의 전달방법에 이르기까지 설교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고 있다. 필자는 본 서를 읽으면서 도전 받은 것을 중심으로 새롭게 깨달은 것을 정리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필자의 생각을 사로잡은 것은 '한 아이디어(idea)의 중요성'이다. 필자가 이해한 바로는 '한 아이디어(idea)'는 설교에 있어서 전체를 흐르고 있는 중심의미이다. 소위 말해서 'One point meaning'이다. 이것은 인간의 척추와도 같다. 이것은 인간의 신경줄과 같은 것이다. 적어도 저자의 주장에 비추어 본다면 필자는 지금까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설교를 하고 있었다. 하나의 중심사상에 초첨을 맞추지 못하고 이것저것을 무차별적으로 말한 것과 같았다. 과히 '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소'와 '보충요소'는 필자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 서에 수록되어있는 연습문제를 충실히 풀어보았지만, 답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따라서 저자가 강력하게 이야기했던 사고(thinking)의 훈련을 철저하게 할 것이다. 본문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철저하게 묵상하는 가운데 본문의 핵심 아이디어를 도출해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설교의 가장 중요한 것이며, 첫 단계임을 필자는 확신한다.

다음으로, 설교의 준비의 단계에 대한 서술이다. 책의 핵심부분을 차지하는 3장에서 8장은 성경본문의 선택하고, 선택한 구절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 한 아이디어의 발견, 설명·증명·적용의 단계, 설교 목적의 설정, 본문에 따른 설교 형태의 결정, 인상적 시작과 완전한 마침을 위한 서론과 결론의 준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설교학을 왜 배워야하는지에 대해 확신하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설교학을 배우지도 않고, 이러한 설교의 준비에 대한 이해도 없이 설교를 했다. 이를 보고, 함께 동역하던 부목사님은 설교학을 배우지도 않고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을 하기도 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러한 식으로 설교를 준비하시는 분을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유명한 설교가들의 글에서는 자신의 설교 준비에 대해 이와 유사한 의견을 기록한 것을 보았다. 한 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고투하고, 철저하게 준비함으로 위대한 설교가가 탄생함을 새삼 알 수 있다. 앞으로의 필자의 설교 준비에 있어서도 이러한 절차를 따르기 위해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설교의 전달에 대한 이해이다. 설교는 한편의 잘 작성된 설교문으로 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와 더불어 설교자가 설교를 하면서 전달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된다. 아직 준비하는 과정에 있는 필자에게 이 같은 것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설교자의 용모, 몸짓, 음성... 청중의 배려차원에서 중요하다. 특별히 설교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글을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으로 본 서에서 필자가 도전 받은 것을 정리해 보았다. 본 서는 애송이(?) 설교자에게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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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김정원 > 참된 회복을 꿈꾸는 실천가의 목회.

<회복의 목회>는 이재철 목사가 주님의 교회를 개척하고, 제나바 한인교회로 떠날 때까지의 10년의 목회사역에 대한 회고록이다.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이 목사님이 자신의 목회를 '회복의 목회' 라고 명명한 이후에 회복되기를 원했고, 회복되었던 내용이 제시되고 있다. 2부에서는 이 목사님의 목회 의 모델이다. 이 목사님은 창세기 2장 8절∼17절을 회복의 모델로 삼았다. 그러면서 7가지 구체적인 회복의 범위를 정하고 있다. 3부는 구체적으로 이 목사님이 주님의 교회에서 실천했던 목회에 대한 정체성이다. 무엇보다 이 부분은 한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를 원했던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의 철저한 자기 수련의 모습이 엿보인다. 4부에서는 예배당 건물을 소유하는 것을 처음부터 원치 않았던 주님의 교회가 이후에 정신여고 강당을 건축하게 된 배경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5부에서는 퇴임을 앞두고 퇴임이후에 닥쳐올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준비들을 피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회복의 목회'의 성경적 모델이었다. 이 목사님은 창세기 2장 8절∼17절을 모델로 삼았다. 그것은 에덴으로의 회복이다. 그리고 본문을 중심으로 7가지의 회복의 모델을 찾았다. 다른 어떤 것 보다 필자에게는 이 부분이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무엇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3부에 다룬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분이다. 이 목사님은 철저하다 못해 처절할 정도로 자신이 세운 목회의 원칙에 충실한 실천가였다. 그가 실천한 원칙을 가만히 살펴보면, 목회자는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철저히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사무실 문을 잠그지 않는다는 것, 손수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 문 밖까지 나가서 인사하는 것, 자동차를 탈 때의 원칙, 심방 때의 자리 배석, 당회와의 관계... 등은 이러한 그의 자세를 여실히 보여준다. 좀더 맑은 정신으로 말씀을 준비하기 위해 점심을 거르는 노력도 기꺼이 치른 이 목사님의 정신에 상당한 감명을 받았다.

또한 필자의 목회 사역에 귀한 지침을 제시한 부분은 3부 5장 '목회자는 자기관리자' 부분이다. 33가지의 자기 관리 원칙이 그것이다. 원칙에서도 이 목사님의 바른 목회 가치관과 자신을 철저하게 죽이고 성도들을 세우려고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원칙들 가운데서 필자의 관심을 끈 부분은 이러한 것이다. '새벽기도회가 끝난 다음에 집에 가서 자지 말라', '교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목회자이어야 한다. ... 연기를 통해서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는다', '자신이 행하지 못하는 것은 교인에게 요구하지 말고, 교인들에게 설교한 것은 무조건 실행하라', '명단을 작성할 때에 교인들의 이름을 먼저 쓰고, 교역자의 이름을 제일 말미에 넣어라', '하관예배까지 다 끝난 후에는 유족의 집까지 따라가서 위로의 기도를 드려라', '좋은 설교는 그 전체의 내용을 한 문장 혹은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목사 시절에 세계문학전집 한 질은 반드시 읽어라', '목회자는 자기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 중단 없이 정진해야만 한다' 등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문제는 필자의 사역에 이러한 것들이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 또한 평생 목회사역을 위한 지침서를 작성하고자 한다. 물론 그 내용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첨가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필자의 연구실 앞에 항상 부착해서 계속적으로 확인하고 실천하고 수정할 것이다. 이처럼 <회복의 목회>는 필자에게 많은 교훈과 감동을 주었다앞으로 필자의 목회사역에 귀한 지침 역할을 할 것이다. <회복의 목회>는 성경적 교회 만들고, 철저하게 성도를 섬기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사람의 목회자의 노력에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게 만든다. 필자의 사역가운데 이러한 목회의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경주하여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하여 성도들의 전 생애가 회복되는 날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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