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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신학생 여러분
헬무트 틸리케 / 나침반 / 1995년 2월
평점 :
품절
헬무트 틸리케, 나침반사 여러분은 왜 신학도가 되고자 하는가?
내용
1장 신학생에게 주는 글
신학적 오만의 병폐-인간에게서 진리와 사랑이 좀처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 제기
사랑은 소유하고자 하는 의지 반대편에 서 있다. 곧 자신을 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자신을 뽐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이다. 한 신학생이 불트만의 신약성경 신학을 들이밀음으로서 바리새적 승리감에 도취된 것은 진리를 한개이느이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삼고 동시에 누군가를 죽이는 수단을 사용한 예이다.
진리를 자기 방어와 교회를 파괴하는 수단으로 삼은자의 독백 " 내 영혼아 안식하라 너는 너의 진리 때문에 비방을 듣지만 너는 정당하다. 혹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 동료들처럼 신자들 귀나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이 도시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그들을 좇고 있나이다. 텅 빈 교회당의 좌석이 저를 대신해서 저를 증거하고 있나이다." 라고 자신을 옹호
당신을 강렧하게 감동시킨 모든 신학 사상들을 당신의신아엥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라 당신을 지식적으로 깨우쳐 주고 신학적으로 감동시킨 일체의 사상들을 당신이 믿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생각하지 말라 만일 그런 것을 당영하게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어는 순간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 않으며, 오리려 루터 혹은 어떤 신학 사상가들을 믿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가 2인칭이 아니라 3인치을 사용해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신중하게 검토해만 한다. 즉 신학은 오로지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공기 속에서만 살아 숨쉴 수 있다는 것이다.
* 신학의 난점 중 하나는 실제 삶을 통해 성경의 진리에 도달하고 건전하 체험에 귀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신학을 하려는 사람들은 쉬지 않고 남다른 열심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2장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인가,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할 것인가?(마6:5~8) 의 설교를 한 내용 : 주제-기도
보델슈빙크의 자서전의 내용을 소개(두 주 동안 네 명의 자녀들을 잃은 부모로서의 심정을 털어 놓은 내용을 소개)
그는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 하지 않고 오히려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기도로 승화시켰다.
예수께서는 기도의 고향으로부터 오셔서 말씀을 전파하고 치유하며 사역을 수행하셨다. 예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말씀은 이전에 하나님과 나누었던 말씀이었다. 아무도 받지 않은 곳에서 울리느 전화벨 소리갘이 기도가 전혀 무의미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 예수님의 기도하라는 명령은 고통과 번민으로부터의 완전하고도 진정한 해방을 줄 것이다.
기도할 수 있는 조용한 골방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혼란을 해결해 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시야에서 놓친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이 세상에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축복의 샘물을 막아 버린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겠으며 이 세상을 이기신 분고의 교제를 단절해 버린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공헌할 수가 있겠는가?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이미 우리를 부르시는 그분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신다는 것을 온 마음을 다해 믿어야 한다. 베드로가 바다에 가라앉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주님께 외쳤듯이 우리도 주님께 외치고 주님께 부르짖는 일을 결코 중단해선 안된다. 그리고 이 어두운 세상을 용감하게 성큼성큼 걸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다.
3장 세상의 꿀인가 소금인가? 마5:13~16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양들을 그리고 있다. 그리스도깨서 친히 소금이 되어서 빌라도와 로마 제국이 가두려고 했지만 결국은 세상을 부패케 하는 것을 막는 소금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포하시기를 너희는 소금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잗들은 이 세상에 소금을 운반하여 이세상을 멸망과 타락으로 이끄는 해독 다시말 해 현대ㅑ 산업 사회의 몰락이라고 까지 거론되었던 일체의 과정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ㅏ. 소금과 빛은 자신을 보존하려고 노력함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한다. 소금과 빛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소금과 빛은 모두 자신을 내주고 자신을 소비한다. 이것은 모든 류이 이기적인 사이비 신앙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틸리케는 진리와 사랑의 조화이뤄지지 않은 세상을 조화시키기 위해 오만을 버리고 원전인 성경에 충실하며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 반드시 기도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듯하다. 또한 소금으로서 역할을 감당하는 되있어서 도 역설의 삶(자신을 죽여 다른 이를 살리는 것 그로 인해 자신도 살 수 있다)을 살기를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