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 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나. 타자의 퇴화, 투수·야수의 진화 탓일까. 하버드대 진화생물학 교수인 저자는 통계학적 방법을 통해 ‘야구의 전반적 수준이 향상돼 변이(variation)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생명 전체(야구)의 다양성·시스템(풀하우스)을 살펴야지 뚝 떼내서 인간(4할 타자)만 진화의 정점이라 보는 시각은 기존 인간중심주의적 진화론 사고방식일 뿐이라는 비판이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이다 ▲진화는 사다리 오르기가 아니라 가지가 갈라지는 과정이다 ▲진화에서의 우연의 역할은 중요하다는 점을 재미있고 설득력있게 논증한다. ( 2002-01-26 )
문화일보 : 인문학과 테크놀로지의 조응관계는 늘 흥미롭다. 1960년대 이후의 탈근대 이론들이 디지털 혁명시대 담론의 자산이었다면, 사회생물학이 최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정황에선 생명공학 혁명시대로의 진입을 읽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고부가가치의 첨단산업이 현재의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IT)산업에서 생명기술(Bio Technology·BT)산업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출판 트렌드를 살펴봐도 생명기술(BT) 담론을 형성할 대중과학서들이 한쪽 흐름을, 또 지난해 선보인 인간 유전자지도의 실용화가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유전자 비즈니스`를 앞세운 BT산업 전략서들이 다른 한쪽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통속적인 제목을 뽑는다면, `아톰(산업시대)에서 비트(디지털)`로 라는 화두에 `인간(생명유지)에서 유전자(생명조작)`로라는 슬로건이 오버랩되는 시점인 것이다. 가뜩이나 디지털 운운 하는데 주눅이 들었을 독자들이 다시 `인간 생명은 어디에서 왔는가` `생명의 본질은 무엇인가` 등을 둘러싼 철학·윤리·경제·생물·생명공학적 논쟁의 격렬한 관문을 통과해야 할 처지다.
이런 점에서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제이 굴드(지질학·진화생물학)교수의 <풀 하우스>(Full House·1996)는 생물학계에서 전개된 첨예한 논쟁과 향후 추이를 함축적으로 읽을 수 있는 대중과학서로 꼽힌다.
굴드 교수는 주저인 <다윈 이후>, <판다의 엄지>, <새로운 천년에 대한 질문>과 공저인 <시간의 종말> 등이 번역돼 나와있어 낯이 익다. 굴드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 이후 전개된 `자연선택`논쟁에서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에드워드 윌슨이 진화생물학을 사회과학으로 확장시킨 <사회생물학>(1975)을 펴낸데 이어, 리처드 도킨슨이 <이기적인 유전자>(1976)에서 "모든 생물은 유전자에 의해서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라고 극단적인 진화론으로 치달을 때, 굴드는 "생물은 유전자들의 융합 이상의 존재"라고 비판하며 맞서왔다. <풀 하우스>는 이런 `적응주의자`들의 허점을 예리하게 파헤친 비판서다. 이미 <판다의 엄지> 등에서 전문적 비판이 이뤄졌기 때문에, 굴드는 이 책을 비전공 독자를 위한 대중과학서로 썼다. 야구, 동전 던지기와 같은 일상 소재를 등장시키면서 흥미진진한 `진화의 게임`으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주장을 간명하게 정리하면 "인류는 근본적으로 진보적 성질을 지닌 생명 진화의 예정된 결과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적응주의자들은 생명 진화의 동력을 복잡성의 증가로 보고 단세포-다세포-파충류-포유류의 단계를 거쳐 영장류인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했다고 설명하는데, 굴드는 이것이 "오만한 인간중심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일축해버린다.
결코 `한송이 국화꽃(인간)을 피우기 위해 밤새(46억년의 지구 역사) 소쩍새(비영장류)는 그렇게 울었나(진화) 보다`라고 할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구의 역사를 다시 비슷한 조건에서 반복한다해도 인간이 탄생할 확률은 거의 없을 정도로 "인간의 탄생은 한순간 우연히 일어난 우주적 사건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굴드는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며 진화와 진보를 구분해낸다. 진화를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는 진보와 동일시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역사의 변화란 어떤 실체가 어디론가 움직여가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 전체(풀 하우스)에 걸쳐 일어나는 변이(variation)의 확장이나 위축의 현상, 즉 다양성의 증가일 뿐이다. 인간이란 전체 생명 시스템의 한 변방에서 일어난 확장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문화에 관한 것이다. 굴드는 "문화적 변화는 생명과 달리 진보적이며 스스로 복잡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생명진화에선 가능하지 않은 계통의 융합(문화 상호침투)과 `획득형질의 유전`(누적적인 지식의 발달)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 두뇌의 자연적 성질은 15만년전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리던 크로마뇽인과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두뇌의 문화적 산물이 진보했을 뿐이다. 인간의 신체가 그간 변화하지 않은 것은 성공적으로 번성한 종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정지상태다. `문명은 진보한다는데 왜 인간 본성은 그대로인가` `왜 모차르트보다 더 뛰어난 천재는 나오지 않는가`처럼 불쑥불쑥 찾아오는 `진보의 회의`에 대해 굴드는 자연과 문화간의 진보의 차이로 설명한다.
결국, 그가 주장하는 시스템의 다양성에 대한 강조는 "인간사회에서 변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라"는 주문이다. "생명의 우수함은 한 뛰어난 특성이 아니라 넓게 퍼져 있는 차이"라며 그는 생명에 대한 인간중심적 사고의 폐해를 경고하고 있다. (작품성 ★★★★★ 대중성 ★★★★) - 오승훈 기자 ( 2002-01-25 )
세계일보 :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이 출간된지 약 1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인간관과 세계관의 뿌리에서부터 학문, 문화, 예술에 이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진화론'을 논한다. 한마디로 진화론은 창조론 이후 인류에게 가장 강력한 침투력을 발휘해 온 이론이자 이데올로기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진화를 곧 진보이자 선으로 믿는다.
이러한 가운데 진화생물학의 최고 권위자이자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최근 저술한 '풀하우스(Full House)'(사이언스북스.이명희 옮김)에서 진화는 진보나 선이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 주창해 관심을 모은다. 굴드는 인간같이 진보한 것처럼 보이는 고등한 생물들 역시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인 다양성의 증가에서 나온 진화의 부산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지난 15년간 '진화 경향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통계학적 깨달음', '야구에서 왜 4할 타자가 사라졌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 등 세갈래로의 검증을 거쳐 진화란 '위나 아래로 움직여 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변이 정도가 변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힌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세가지를 자기의 주장을 재미있게 설명하는 개념적 도구로 활용한다. 딱딱할 것이라는 예단과는 달리 포커게임에서 따온 책 제목처럼 내용도 흥미진진하다. 이 저서는 19세기의 낡은 이데올로기를 떨쳐버리게 할 뿐만아니라 '다양성'에 대한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한다. 또한 자연에대한 인간 중심주의적 편견과 오만을 교정해주고 '과학하기'의 표본과 지식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 조원익 기자 ( 2002-01-25 )
전자신문 : 진화생물학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인 하버드대 스티븐 제이 굴드 교수가 쓴 진화론. 저자는 진화는 다윈이나 생물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처럼 진보가 아니라 단순한 다양성의 증가라고 단언하고 있다. 인간같이 진보한 것처럼 보이는 고등한 생물들 역시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인 다양성의 증가에서 나온 진화의 부산물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생명과 자연에 대한 진화론의 관점은 인간 중심주의자들이 대중을 호도하기 위해 펼친 진보주의 세계관이라고 지적하며 이는 부분과 전체를 혼동한데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 2002-01-26 )
조선일보 :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진화생물학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받고 있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역작 <풀 하우스(원제: Full House)>는 `다양성의 증가`라는 측면에서 진화를 설명한다. 진화를 우발적인 돌연변이와 이에 대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해석하는 그의 이론은, 진화를 진보, 또는 발전과 같은 개념으로 파악해 왔던 우리의 오랜 인식이 가진 오류를 지적한다.
그는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 등을 `적응주의자`라며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언어능력은 그 능력이 갖는 장점을 획득하기 위한 적응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 뇌가 커진 결과로 인해 얻어진 ‘우연의 부산물’일 뿐이다.
진보를 부정하고 다양성을 강조하는 그의 진화론은, 진보주의적 진화관, 더 나아가 이런 진화관에서 파생되는 진보주의적 세계관을 경계하게 한다. 가장 진보한 것처럼 보이는 인간도 실은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인 다양성의 증가에서 나온 진화의 부산물일 뿐이라는 겸손한 자연관이 깔려 있는 것이다. ( 2002-01-26 )
한국일보 : 다윈의 <종의 기원>(1859) 이후 인간은 '진화가 곧 진보이자 선'이라고 확신하며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굳게 믿는 세계관을 구축했다. 물론 서구에서 이런 직선적 세계관은 다윈보다 훨씬 이전, 플라톤적 사고방식에서부터 갈릴레오 데카르트 뉴턴 등에 의해 확립된 근대과학을 거치면서 굳어져왔다.
진보적 좌파 과학사상가인 스티븐 제이 굴드(61ㆍ하버드대 지질학 교수)는 <풀하우스>에서 이러한 단선적 인간관ㆍ세계관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진화는 사다리 오르기가 아니라 가지가 갈라지는 과정이다, 진화에서 우연의 역할은 중요하다"는 것으로 그의 주장은 요약된다.
굴드는 이미 국내에도 <다윈 이후> <판다의 엄지> 등의 저서가 번역소개돼 알려진 학자. 전문 학계에서 그는 다윈 진화론에서 이른바 미싱 링크(missinglinkㆍ양서류에서 파충류로, 침팬지에서 인류가 진화되는 중간 과정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화석기록의 불완전성'을 가리키는 말)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어떤 종이 오랜 기간 안정된 형태를 유지하다가 갑자기그 평형 기간이 단속되면서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다른 종으로 진화한다"는 '단속평형설'을 발표해 진화론해석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굴드는 바로 우리 주변의 알기 쉬운 사례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한다.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왜 4할대 타자가 사라졌을까. 미국 야구 역사상 최대의 수수께끼라는 이 문제에 대해 굴드는 타자의 실력 저하, 또는 투수 혹은 수비수의 실력 향상 때문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비판한다. 실제 자료를 기초로 그는 "야구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됨에 따라 '시스템 전체의 변이폭이 축소'되어 예외적 존재인 4할대 타자가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굴드의 이런 설명은 곧 현대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맥을 같이 한다. '평균값'이라는 부분적 속성으로 한 체계의 전반적 특성을 파악하려는 우리의 습관적 사고방식이나, 전체의 시스템을 하나의 본질로 환원하려는 플라톤적 사고방식에 대한 반동으로 현대과학은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며 유기체적, 시스템적, 전일론적인 복잡성의 사고를 추구하고 있다.
이 책에서 굴드는 자신의 전문분야뿐 아니라 문학, 음악, 건축, 스포츠 등 인류문화 전반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과시하며 독자를 흥미로운 진화의 세계로 인도한다. 자신을 사다리의 최상위에 올려놓고 오만 떠는 인류에 대한 경고이다. - 하종오 기자 ( 2002-01-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