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이야기 1
김용택 지음, 황헌만 사진 / 열림원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지난 밤 내린 비로 서천의 물은 평소보다 많이 불어났다. 여름 방학을 한 국민학생 아이들이 덥다고 자전거를 타고 멱 감으로 서천으로 놀러왔다. 모두 웃통을 훌훌 벗어던지고 바지도 벗고, 보는 이가 없으니 팬티까지 벗고 이 옷가지들을 마른 돌위에 올려 놓고 서천으로 뛰어 들었다.  

늘 놀던 곳이라 아무런 의심없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중간 쯤 가던 아이가 물 소용돌이에 허우적 거리며 '사람 살려'고 외치고 있었다. 아이들은 친구가 물 속으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모습을 보고 어쩔 모르며 밖에 나와 동동 거리고 있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청년이 그 광경을 보고 뛰어들 가 구하려 했다. 아이를 안고 나오려는 순간 마치 용트림 하듯 물을 더욱더 거칠어 졌다. 아이들은 더욱더 소리를 지른다.  

가까이 밭에서 일하던 나이드신 어른신께서 급하게 소를 몰고 와서 소의 고삐에 줄을 이어 이들을 구하려고 던졌다. 청년이 아이를 한 손에 안고 다른 손으로 그 줄을 잡고 그곳을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쳤다. 청년의 힘이 세었던가? 아님 물의 힘이 강했던가 소도 마침내 같이 딸려 들어갔다. 결국 아이와 청년과 소가 같이 그 물의 심한 노여움 앞에 어쩔 수없이 굴복하게 되었고 결국 이들은 운명의 끈을 놓게 되었다. 그래서 경주에 있는 사람들은 이곳을 애기청소라고 부르게 되었다.  

섬진강 이야기를 읽으면서 기억의 저 너머 속에 있었던 과거의 사진들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들이 밀물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진메의 풍경과 사람사는 이야기는 나의 고향의 이야기이며, 우리가 어릴적 겪어 왔던 희노애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어머니의 품같기도 하고, 때론 엄격한 아버지의 꾸짖음 같은 섬진강은 우리가 잃고 있었던 우리의 것을 찾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겨 보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내 고향에 대한 기억들을 글로 기록해 보기를 권하는 것 같아 나도 내 고향이야기를 몇 자 적어본다.

경주에는 네 개의 천이 있다. 동,서,남,북천! 이 네개의 천은 저마다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다. 덕동땜과 보문호의 물줄기를 수원으로 하는 동천과 북천! 이 천들은 많은 비가 내리는 여름이면 땜과 호에 방류를 한 까닭에 그 곳에 살던 고기들이 물살에 휩쓸려 내려오면 한 손에 큰 야구방망이 같은 몽둥이를 들고, 등에는 큰 망태같은 것을 메고 물가나 물의 흐름량이 작은 곳으로 들어가 내려오는 고기를 몽둥이로 때려서 잡았다. 그렇게 잡힌 물고기의 이름은 초어로 그 크기는 작게는 어른 팔뚝만하고 크게는 어른 한 쪽다리 만큼 된다. 그것을 그 자리에서 회를 떠서 초장에 찍어 먹고 했던 기억들이 난다. 장마철이 지나고 나면 물의 양이 줄어들면 황성공원이라는 곳에서 실컷 뛰어놀다가 땀으로 찌질해진 몸을 씻기 위해 북천으로 뛰어든다.  

옛 신라의 궁궐이 있던 반월성 주위에는 남천이 흐르고 있다. 반월성은 낮은 동산과 같은 곳으로 주변에는 여름이면 자연의 먹거리들이 있어 이곳으로 놀려가 주인 몰래 서리도 하고, 미꾸라지도 잡곤 했던 곳이다. 또 남천은 다이빙을 할만 넙적한 바위가 있어 아이들이 올라가 나름의 포즈를 취하며 뛰어 내리던 그림들이 눈에 선하다. 다이빙을 한 후 물 속 바위틈에 손을 집어 송어, 메기들을 잡아오기 놀이를 하였던 기억들도 생각난다.  

서천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동해로 그 물줄기를 잡고 있는 형산강의 한 지류이다. 이 곳은 금장에서 시작되어 포항을 거쳐서 동해로 물줄기가 이어진 곳으로 예전에는 신라가 이 물줄기를 따라 물목들을 뗏목으로 실어날랐다고도 한다. 이런 까닭에 서천은 내의 폭이 따른 세 개의 것보다 넓었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수많은 추억을 주었던 이 네 개의 천들이 이젠 개발이라는 명목하여 훼손되고, 파헤쳐지고 하다보니 이제는 악취만 풍기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아파트를 짓는다는 둥, 공장을 짓기 위해 골재를 채취한다 둥, 무분별한 생활오염들을 폐기하다보니 이제는 이 네개의 천들이 제대로 숨쉬기 너무 어려워졌다. '삶도 사랑도 꽃도 너무 아름다우면 서러웁다' 일 정도로 옛 고향의 것들은 서러울 정도 아름다웠는데 지금은 삶도, 사랑도, 꽃도, 냇가도, 고향이 모든 것들이 분노를 일으킬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저자는 이런 현실을 보며 "자연에서 나온 것들을 자연으로 돌려 주는 운동을, 그 정신을 우리는 길러야 한다" 고 말한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네 고향들속에 비록 훼손되어 망가졌지만 자연이 우리에게 준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되돌려 주는 일들을 해 나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소명이 아닐까 생각된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돌아 고이시는 곳,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이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꽃은 말이 아니고, 글이 아니고, 상상이 아니다. 꽃을 보아야 꽃이다." p.54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은 말이 아니고, 글이 아니고 상상이 아니다. 그것과 상생의 기쁨을 심장으로 느낄 때에야만 진정한 자연과의 합일을 이루게 된다.  

마지막 밑줄 긋기 : 무식하고 못난 농사꾼들의 일과 놀이의 문화야말로 우리 문화의 진수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