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모르는 나무 이야기
고규홍 지음, 김명곤 그림 / 사계절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김용택 산문집 섬진강 이야기 중에서 이런 글이 있다. "꽃은 말이 아니고 글이 아니고 상상이 아니다. 꽃은 보아야 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꽃의 아름다움은 상상 속 또는 활자화 된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오감을 통한 느낌만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러움이 굉장히 거북스러운 세계를 살고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삶이 여유롭지 못하고 무언가에 쫓기며 허겁지겁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삶에 넉넉함이 없고, 오직 질주본능에 충실하여 무작정 달리기만 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 책은 나무를 통해 고단한 우리의 삶을 좀 쉬어가며 나무의 평안한 자태들을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 비록 산업화로 인해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우리가 걷고 있지만 그나마 주변에는 아직까지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가로수들이 있다. 그것들을 통해서나마 우리가 조금은 위안이 얻고, 그 나무들의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작은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본서는 총 6부로 엮여져 있다. 우리 겨레를 대표할 만한 나무, 쓰임새가 요긴한 나무, 우리 살림살이와 가까운 나무, 꽃이 아름다운 나무, 자태가 아름다운 나무, 열매가 요긴한 나무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었던 나무, 쉽게 그 이름을 알 수 있는 나무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나무들의 공통점을 보면 모두 민중들의 애환과 같이 호흡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겠다.  

임진왜란과 같은 위험에서 마을을 지켜낸 음나무(귀신을 쫓아 내는 나무), 마두랑이라는 여인을 사랑했던 말의 이야기를 통해 생겨난 뽕나무, 가난한 네 식구의 슬픈 전설을 담은 개나리, 나무꾼과 선녀의 딸에 얽힌 애달픈 전설이 깃든 진달래,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기게 하는 동백나무 등 우리 주변에 많은 나무들의 이야기를 전해 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그 나무의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았지만 그 나무에 얽힌 이야기나 그 나무의 성장 환경, 쓰임새,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이로움이 모른채 단지 이름만 알 뿐이었다.  

이 나무 이야기 중 이팝나무의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이팝나무에는 쌀밥에 한이 맺힌 여인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옛날 착한 며느리가 있었다. 그녀는 부지런했지만 늘 시어머니의 구박만 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 집 제사를 지내던 날! 며느리는 조상에게 드릴 쌀밥을 지어야 했다. 잡곡만 짓다가 모처럼 쌀밥을 지으려니 몹시 불안한 나머지 밥이 다 되어갈 쯤에 뜸이 들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밥알을 먹어보았다. 그 순간 시어머니의 공교롭게 눈과 마주치게 된다.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먼저 퍼먹었다며 모질게 그녀를 구박한다.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는 그녀는 그길로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어 죽었다. 이듬해에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 나무가 자라났다. 그런데 그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더니 마치 며느리가 지었던 흰 쌀밥처럼 하얀 꽃을 소복하게 피워냈다. 동네 사람들은 쌀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서 자라난 나무라 하여 이 나무를 이팝(쌀밥을 다른 말인 이밥을 세게 발음한 것)나무라고 불렀다.  


비록 얇은 책이지만 이 책 속에 담긴 나무들의 이야기는 각박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쟁을 통해서만 무언가 쟁취하려는 생각과 본능적 질주를 조금은 멈추게 해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그 쓰임새 및 나무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소중한 것들을 간접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지용의 향수가 생각난다.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라도 잃은 것을, 잊은 것을 되찾으며 넉넉함이 있는 삶을 살아봄이 어떨까?    

국화차를 마시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