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그냥 오기엔 아쉬워서 문학 부분을 서성이다가 언제나 그렇듯 마르케스 앞에서 멈췄다. 어떤 책들이 있는 줄 빤히 알면서도 매번 그 앞에서 멈추는 것은 일종의 습관 때문인데 오늘은 못보던 책을 발견했다.  

[The general in his labyrinth] 

 

 

 

 

 

마르케스의 작품은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단편까지도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작품이라 괜시리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 재미가 없을 것이고 괜히 실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읽지도 못할 것이다란 불안감에(게다가 난 labyrinth란 단어도 모르니까.) 책을 두고 나오려고 했지만 예상대로 대출하고 말았다.  

커피를 마시며 읽고 있으려니, 도착한 친구가 책을 보곤 마르케스를 왜 좋아하는지 물었는데, 난 설명할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걸 알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벌어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믿게 하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서, 문장 곳곳에서 드러나는 슬픔과 공허함 때문에, 등장 인물 누구 하나 간과할 수 없도록 모두의 이야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책을 덮는 순간 내쉬는 한숨과 함께 나의 모든 생각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등등 설명하려고 했지만 이것은 전달되지 않았다. 

너무 좋은 건 그저 좋은거다. 왜인지 말 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은 온전히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안그래도 "Nobody understood anything."이라고 선잠결에 말하고는 잊어버리고 마는, 언제나 죽음의 한가운데서 제대로 잠들지도 못하는 대령 때문에 마음이 붕 떠버렸는데, 첫눈이 내렸다. 차디찬 습기가 날 익사시킬 것만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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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0-10-2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건 너무 좋은거죠!! 전 그런 경우가 넘 많아서 잘 알아요,,무슨 말인지,,
labyrinth라는 단어는 maze라고 할 때 보다 괜히 멋지잖아요??ㅎㅎㅎ

Forgettable. 2010-10-26 13:49   좋아요 0 | URL
함께 좋아하며 공감하는게 아니라면 좋아하는 마음을 전하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전 이 단어 처음봐서 ㅋㅋㅋㅋ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 공부 공부 ㅠㅠ

sslmo 2010-10-26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byrinth은 귀의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일종의 골미로이기도 하죠~

전요,우리같은 범인은 이심전심 따위는 헛된 희망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럴 땐 이심전심을 꿈꾸게 돼요.

첫눈이라고요?
아마 우리나라 서남해안엔 첫눈이 내릴지도 모를 그런 날씨예요~^^

Forgettable. 2010-10-26 13:52   좋아요 0 | URL
그 이중적인 의미가 책의 내용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아요. 대령이 자기의 과거를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재밌을 것 같은데, 요새 너무 책이 안읽혀서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ㅠㅠ

이심전심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랑도 어렵잖아요.
하지만 저도 은근히 바래요. ^^

눈이 약간 쌓일 정도로 예쁘게 왔어요. 이제 12월 부터 3월까지는 눈이 녹지도 않는다네요ㅋㅋ


pb 2010-10-26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르케스ㅠㅠ진짜 백년동안의 고독은 몇 번을 다시 봤는지..결국 아무리 다시봐도 끝까지 읽지 못했어요. 흐흙....


+밑에...ㅋㅋㅋㅋ독서의 폭;이라 합시다.
+같이 술마시고 노는 남자인 인간들은..애인이 아니라 다 그냥 여자사람처럼 아무 소용없지요ㅠㅠ아으 오늘부터 영하날씨 돌입하니 더욱더 쌀쌀해졌다는..호빵,붕어빵,군고구마라도 끼고외로움을 달래야겠어요

Forgettable. 2010-10-27 16:21   좋아요 0 | URL
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은 2번인가.. 그 다음부터는 중간중간 책 펼치고 아무데서나 부터 읽곤 했어요. 웬만큼 집중 안하고서는, 그리고 앞에 도표 없이는 다 읽기 힘든 것 같긴 해요;;;

독서의 폭 ㅋㅋㅋㅋㅋㅋㅋㅋ 맞네요. 왠 패러다임이며 스펙트럼 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 바보되는듯.

근데.. 호빵 붕어빵 군고구마면 달래지는 외로움이었던가요!!!!!!!!!!!!!!!!!!! (느낌표 작렬) 하긴.

기웃 2010-10-2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tv방송에서 돼지의 특수부위 중 돼지꼬리 양념구이를 다룬 방송이 있었는데 그때 문득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이 떠올랐어요. 자기는 지금 돼지 수십 마리를 먹고 있다면서 단 돈 1000원에 수북하게 쌓아놓고 먹던 아저씨가 환하게 옷으면서 인터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꼭 백년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인물 같기도 하고요...^^ 남미작가들-마르케스,아옌데,로사 등-을 보면 돌멩이 두 개만 놓고도 뭔가 근사한 얘기를 줄줄이 풀어낼꺼 같은, 그래서 긴-겨울밤이나 혹은 잠자기 힘들 것 같은 끈적끈적한 무더위에 더욱 빛나는 존재인 것 같아요.


p.s 뽀님 서재에 가끔씩 기웃거리는데 밑에 댓글 중 보스가 했다는 말을 볼 때마다 정말 가슴이 뜨끔뜨끔 하네요.

Forgettable. 2010-10-27 16:33   좋아요 0 | URL
아..... 진짜 웃긴 댓글이 아닌데 어쩐지 웃겨서 자다가도 실실거리고 있어요. 돼지 꼬리 양념구이를 드시는 아저씨를 보면서 마르케스를 떠올리는 님은 도대체 어디 숨어있다가 이제 나타나신 건가요???!!!

예전에도 글을 쓰긴 했지만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는 남자에 대한 로망에 대해 고백한 적이 있는데'-')* 보스의 말에 뜨끔하셨다면 나쁜 남자이신거죠? ㅋㅋㅋㅋㅋㅋㅋ

게다가 아옌데와 로사(로사 몬테로인가요? 아니면 요사의 오타인가요?)를 아시는 분이라.. 제 서재에 가끔 들르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 뭔가 이 댓글을 보며 할 말이 수만가지 떠올랐는데 지금 술을 너무 마셔서 다 까먹었네요. ㅠㅠ

기웃 2010-10-28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에구 제가 말한 '로사'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요. ㅎㅎ 얼마 전 노벨 문학상으로 요사가 선정되자 국내 언론에서 제1보로 '요사'가 아닌 '로사'라고 쓴 것을 보고 킬킬대며 바보 아니가 하며 조롱했었는데 제가 남 비웃을 처지가 아니었군요. ㅎㅎ

뽀님 서재에 처음 발을 디딘 건 로마인 이야기를 검색했을 때 '책 읽은 남자와의 연애'라는 페이퍼를 통해서였어요. 당시 책장 한 귀퉁이에 10년 전에 사고 읽지 않았던 로마인 이야기 1권이 다소 수줍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책장을 볼 때마다 언제나 마음의 부채를 안고 몇 번씩이나 만지작거리며 읽을까/말까 고민했었죠. 이것을 읽기 시작하면 결국 15권까지 읽어야 될 텐데 그러면 읽는 동안 신간들을 어떻게 모른척 할 수 있을까 하면서 결국엔 다음에 다음에 하며 그냥 저주받은 책들의 공간 -읽지 않은 책들의 무덤?-으로 슬며시 옮겨 놓았죠. 그러다 우연히 페이퍼를 보면서 다시금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지하철에서 본 로마인 이야기 14권을 읽고 있던 중년 남성에 대한 글이었는데, 그 남성을 보는 뽀님의 시선에 저의 시선 역시 수 많은 시선이 부딪치는 작은 지하철 공간에 숨죽이며 몰래 지켜 보는 느낌이었어요. 아니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지하'-철은 꼭 좀비들의 공간인 것 같애요. 다소 흐리멍덩한 상태로 눈만 뜨고 있는 좀비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그것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죠. 전차를 타고 유바바 언니를 찾아가는 전차 안의 풍경- 속에 따로 빛나는 존재랄까. 그래서 관심을 갖고 로마인 이야기를 읽게 되었어요.

그게 지난 7월 말에 일이니 3개월 정도 되었네요. 아직 로마 천년의 여정이 끝나지 않았지만 침대 한 켠에 여러 책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그 페이퍼를 읽은 뒤로 뽀님의 서재를 가끔씩 들리며 글이나 캐나다 사진들 몰래 보며 배시시 웃고 갔었는 데 이렇게 장황한 모습으로 "나 여기 있었소"하며 인사 드리게 되네요.

조르바였으면... "이보게 뭘 그리 주저리주저리 떠드나 이리 와서 춤이나 추세'라고 했겠죠.....^^

Forgettable. 2010-10-28 17:26   좋아요 0 | URL
저도 요사일거라 짐작은 했어요. 사실.. 로사 몬테로는 '로사 남미작가' 검색해서 나온 작가라능 ㅋㅋ 들어본 적도 없어요......... (뭐 아는 척 하더니 너무 솔직하네요) 전 요새 판탈레온 읽고 있어요. (한번 더 솔직해지자면 책 덮은지 2주 됐나봐요. 마음은 있는데 손이.. 손이 책을 다시 안펴요.)

아 그 말도 많고 탈도 있었던 페이퍼. ㅎㅎ 제가 좀 제 글 다시읽기를 좋아해서;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 페이퍼는 또 제가 좋아하는 글이기도 하고요.
로마인 이야기 지금 재밌게 읽고 계신가요? 전 아직 그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였던 미드 ROME도 못보고 있는데^^;; 책을 중간에 포기하진 않는다고는 하지만 읽다 만 책이라던가 펴보지도 않은 한국에서 자고 있는 책들 생각하면 눈물이 ㅠㅠㅠㅠㅠㅠ 한국책 정말 마음껏 읽고 싶네요 ㅠㅠㅠ 근데 요샌 책을 너무 안읽어서 -_-

지하철에서 누군가 책을 읽고 있으면 관심있게 보게 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람만 보다가 내렸던 적은 처음이었어요. 예전에 연극 한참 할 때는 옆에 앉은 훈남이 희곡을 보고 있어서 거의 말걸 뻔 했던 걸 제외하면 ㅋㅋㅋㅋ 지하철이 좀 그렇죠. 삭막하기도 하고. 저 역시 출근길 2호선 안에서는 좀비였어요. 영혼이 빠져나가 있는게 차라리 편하더군요.ㅋㅋ

인사 건네주셔서 정말 반가워요. 오늘 친구에게 자랑했어요. 블로그에 마르케스랑 아옌데 읽은 사람이 댓글 남겼다고. ㅋㅋㅋㅋㅋ 하나 더 추가해야겠네요. 카잔차스키도 읽었대!!! 진짜 오랜만에 잡담 안쓰고 책 관련 페이퍼 쓴 보람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