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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ㅣ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모두 읽은지 아직 2시간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상이 제대로 된 글을 쓸 만큼 양조되지는 않았다.
[망량의 상자] 이후로 권태에 빠져 교고쿠도의 이야기가 아니면 읽을 수가 없다. 라고 공공연하게 떠들고다니고 있는 요즘,
[백기도연대]를 도서관에서 발견하고는 환호하며 읽다가 왠지 읽기가 아까워져서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을 읽다가
서문이 약간 늘어진다 싶어서 지겨운 마음에 기시 유스케의 [유리 망치]를 읽기 시작했는데
읽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건 조금 거짓말이고, 거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모두 읽어버렸다.
재미있다.
기시유스케는 뻔한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내는 제법 훌륭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것이 능력인지 노력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과물은 언제나 훌륭하다. 이번에도 역시 뻔하고, 뻔하고, 너무 뻔해서 돌아가실 지경인 밀실트릭이 주가 되는 이야기인데, 나는 '밀실'이란 단어만 봐도 지겨워서 힘이 빠질 지경임에도 끝까지 읽어버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탐정이 무척 매력적이어서 극악무도한 살인자가 얼른 잡히기를 바라다가, 두번째 이야기에서는 범인이 무척 매력적이어서 제발 잡히지 않기를 바란다. 미모의 변호사와 도둑 탐정이 미워진다. 첫번째 이야기에서는 책이 반 이상이나 남았는데 자꾸 그럴듯한 사건해결책들이 튀어나와서 이것이 중간에서 끝나는 중편소설집인가 싶어서 자꾸 목차를 보았고, 두번째 이야기는 완전히 새롭고 이야기 패턴도 달라서 이것이 중편집이었던가 싶어서 새삼 목차를 다시 돌이켜보았는데, 그만큼 색다르다.
그대는 진정 능력자.
기시 유스케의 작품에는 무서운 사건이 담겨있으면서 항상 그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언제나 범죄자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기묘한 매력이 있다. 예전에 한참 강호순 사건으로 시끄러울 때 누군가 내게 범죄자는 사회가 만드는 것이므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소스라칠 정도로 놀라서 그 사람을 냉대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기시유스케의 작품을 읽으며, 교고쿠도의 장광설을 들으며 나는 인간, 심지어 나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샘솟아 그분의 이야길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 자신도 믿지 않고, 타인도 믿지 않는다고 며칠 전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내게 손바닥을 위로두고는 검지와 엄지를 둥글게 말며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조금 우스웠지만 친구는 웃는 내게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꾸 타인을 냉대하지 말고 타인을 대중이라는 익명성으로 묶지 말고 타인을 개인으로 존중하라고. 교과서냐고 홀대했던 그 조언이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를 보니 새삼 다가온다. 범죄자의 욕심은 욕심이 아니었고, 살의는 살의가 아니었다. 그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정성을 다해 살 도리를 마련하고 있었지만 안쓰럽게도 그 무기가 유리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 뿐이다.
스스로 냉소적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조금씩 데워지고 있다.
실제로 책을 덮었을 때 열이 마구 나서는 얼굴이 빨개지고 땀을 흘리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