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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기분으로 그를 만나보고 싶다는 애틋함보다는 오히려 그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마치 오래된 애인같은 익숙함이 간절히 필요했다. 그를 봐야만 했다. 난 너무 지쳐서 탈진할 지경이었고 빨리 그를 만나 그의 넓은 품에 안겨야 했다. 온 마음을 다해 원하는 것은 오직 그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그가 내 안에 가득 차 있었지만, 여전히 그를 원했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걸어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너무 지쳐있었고 비는 점차 폭우로 변해갔다. 버스를 놓쳤다. 어두웠고, 비때문인지 계속해서 버스가 날 보지못하고 지나갔다.
한시라도 빨리 그를 봐야했다. 자꾸 조바심이 났다. 그가 멀지 않은 곳에서 - 분명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테지만 - 내가 가기만 하면 아주 아늑한 곳에 날 앉히고 꼭 안아주면서 괜찮다고 토닥거려줄 것이었다.
아, 버스가 왔다.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
밖은 어느새 칠흑같은 어둠이 내렸고 버스는 실수로 날 한정거장 전인지 후인지 헷갈리는 곳에 내려주었다. 뒤로 다시 돌아가야할지. 아니면 앞으로 가야할지 비를 맞으며 고민에 휩싸였다. 내겐 한정거장 정도만 걸을 수밖에 없는 힘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은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해도 잘못 선택하게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내가 벨을 너무 빨리 눌렀는지, 너무 늦게 눌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난 되돌아가보기로 했다. 이게 되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왼쪽을 택해서 걷기로 한다.
그를 그립게 하는 비가 계속 내린다. 아마도 오늘은 그를 만나지 못할것만 같았지만 지친 몸을 끌고 걷기 시작해본다.
슬프지는 않다.
다만 그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