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척 하기, 가짜, 비문 사용, 물고 늘어지기, 과다한 부사나 형용사 사용, 억지스러울 정도로 질질 끌기, 아무리 정독해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정도로 난잡하기, 내가 싫어하는 글은 이런 글이다. 내가 이런 글을 싫어하고 욕한다고 해서 누가 상관하겠느냐만, 문제는 내가 상관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들이 내 글쓰기에 애매모호하게 숨어있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반대지점에 있는 사실적이고, 위트있고, 정돈되어 있는 글이나 거부할 수 없는 에피소드가 담긴 글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것은 내 글이 이렇지 않아서 그러한 글쓰기를 지향하기 때문에 좋아한다.

보통 뭔가가 너무 싫다, 견딜 수 없다, 하는 것들은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는 면인 경우가 많다. 간단한 예로 내가 누군가의 허례허식이 가득한 여행기를 보고 '해외 한 번 갔다왔다고 엄청 잘난척해대네.' 라고 느끼고 짜증내는 건 그것이 무의식중에 내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진찍으러 온 것마냥 유명한 장소에서 사진만 찍어대는 된장유럽/인도여행자들을 보면 그냥 짜증내고 잊어버리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거랑은 약간다르다.   

   
 

 여하튼 그 아카네가 최근 가장 혐오하고 있는 것은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소설을 씁니다.'라고 말하는 작가였다. 이 천편일률적인 말을 지껄이는 것은 대개 읽다 보면 '작가 사진'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것 같은 재색을 겸비한 멀티형 인간이다. 아카네는 이 말을 들을 대마다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고 한다. '이야기란 고작 한 개인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될 정도로 하찮지 않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마치 자기한테 예속되어 있는 물건처럼 다룬다는 건 이야기를 얕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먼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이 아카네의 이상이었다. 우선 이야기되어야 할, 이야기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작가의 존재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픽션.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다. 이야기는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작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삼월의 붉은 구렁은] 온다 리쿠.

브라운 신부의 이야기에 나오는 요소들을 제 것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도용해서 나의 분노를 산 온다 리쿠의 [삼월의 붉은 구렁은]의 한 구절이다. 말도 안되는 제목과 허접한 표절(?)로 기대에 부응했던 온다 리쿠였기에 이 부분은 너무너무너무 의외였고, 신선했고, 감동적이었다. 내 말이, 내 말이!! (물론 또 다시 실망하고 말았지만) 

4가지 이야기 중 2,3번째 이야기가 의외로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애매한 단편아닌 단편모음집이었기에 리뷰를 쓰다가 너무 까는 말만 쓰게 되어 선물해준 분께 누를 끼칠까 염려되어 페이퍼로 전향.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왜 체스터튼의 문구와 분위기를 표절했으며 작가의 존재를 과시하느라 억지스러운 단편집을 만들어 놨는지 알 수 없다. 칭찬 일색인 리뷰들이라니 참ㅎㅎ 

그러고 보면 호불호의 여부는 한 끝차이일까? 왜냐하면 내가 만약 소설을 썼다면 이와 비슷한 소설이 탄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나나 너의 호불호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호불호는 시비와 분명 다른 문제니까. 여기에서 몽테뉴는 이러저러한 말을 했다. 라고 멋있게 마무리 하고 싶지만, 기억이 안난다. 느낌만 있을 뿐.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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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10-2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난척 하기, 가짜, 비문 사용, 물고 늘어지기, 과다한 부사나 형용사 사용, 억지스러울 정도로 질질 끌기, 아무리 정독해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정도로 난잡하기.. 나, 나잖아. 난 내 글에서 저 특징들을 각각 스무개씩은 찾아 낼 수 있다는..

Forgettable. 2009-10-29 22:2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쩐지 첫문장 쓸 때 어렴풋이 누군가의 글을 염두해두고 썼나 했더니 미잘님 글이었군.
ㅋㅋ 장난이고요, 난 그런거 전혀 못느꼈는데? 내 글이나 이모냥이죠 ㅎㅎ

미잘님 글은 위트있고, 거부할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기 때문에 너무 좋아요. 지향하는 글쓰기랄까~

순오기 2009-10-30 0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난 이런 글이 좋아요.
꾸미면 읽는 사람이 다 알잖아요. 있는 그대로~~ ^^

Forgettable. 2009-10-30 10:01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칭찬쟁이 순오기님 ^^
온다리쿠는 이상한 작가에요. 호감가는 부분과 혐오스러운 부분을 동시에 갖고 있어요.

perky 2009-10-30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태그!!
온다리쿠 여자 아니었던 거에요???
그나저나, 저 사진 배경 참 아름다워요..^^

다락방 2009-10-30 08:23   좋아요 0 | URL
온다 리쿠 책 박람회 했을때 싸인하러 왔었어요. 멀리서나마 봤죠. 여자에요. ㅎㅎ

Forgettable. 2009-10-30 10:00   좋아요 0 | URL
저도 모르겠어서, 질문한거였어요. 친절한 다락방님께서 대답해주셨네요 ^^
필명인지도 궁금한데. 리쿠..라는 이름의 일본 여자는 본 적이 없는데, 차우차우님 일본어도 하시죠, 리쿠라는 이름이 있나요? 사키, 토모미, 마야, 후미에 정도는 저도 아는데 흐흐

사진은 제주도에요. 좋죠! 백장 중에 한장 건졌어요 ㅎㅎ

perky 2009-10-30 10:20   좋아요 0 | URL
여자가 맞았군요. ㅎㅎ
근데, 님 댓글 읽고나니 정말 '리쿠'란 이름을 여자 이름으로 보기엔 쫌 생소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네요. (예리하셔라~~)
저 사진을 직접 찍으신 거군요!! 색감 참 곱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