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를 눌렸을 때 메롱을 하면 풀린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언니의 친구가 가위에 자주 눌렸는데 메롱을 하자 누군가 옆에서 '지랄하네'라고 속삭여줬다고 하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한 번 그런 가위에 눌려봤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바랬었다. 

그러던 어느날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나는, (어쩌면 고딩시절 안풀리던 연애 스트레스였을지도) 한밤 중 가위에 눌리게 된다.  

처음엔 가위인줄도 모르고 잠결에 라디오 소리가 들리길래 안끄고 잤나보네, 라고 갸우뚱 하며 끄려고 하는데 문득 그날 밤은 아예 라디오를 키지도 않았다는 게 퍼뜩 떠올르면서부터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공포감이 몸을 죄어 오면서 누군가 볼륨을 키우는 것처럼 점점 라디오 소리가 커지고 감당할 수 없을만큼 너무 커지자 내가 '시끄러!!'라고 소리를 질러대니(속으로) 라디오 소리가 뚝 멈췄다. 그러더니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왕왕대서 너무 무서워져서 몸을 꿈틀댔더니 몸이 움직여지진 않는데 옆에 누군가 누워있다. 동생의 싱글 침대와 내 싱글 침대 사이의 작은 틈 사이에 침대보다 더 길고 네모난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있었다. 

어느샌가 아이들 떠드는 소리도 사라지고 알 수 없는 힘이 날 자꾸 그 사람 쪽으로 밀어댔다. 난 필사적으로 버텼고 침대 틈 사이로 빠지려던 찰나에 가위에서 깨어나 엉엉 울었다지, 이런 가위에 눌리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저주하며.  

소리가위가 무섭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줄게.'란 노래를 부르며 방 문쪽에서부터 걸어오는 소녀와 동시에 내 머리위에 둥둥 떠있는 그 소녀의 영정사진, '우리의 소리'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들려주는 현장에서 녹음한 할아버지의 노래와 같은 웅얼웅얼한 노래를 부르며 똑같이 방 문쪽에서부터 걸어오는 지게를 진 할아버지는 정말 손에 꼽히는 가위 눌림이다. 게다가 가까워질수록 노랫소리도 커지니 더 무섭다.

이에 비하면 악몽은 그냥 우습지.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9-07-31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위에 눌리게 되면 말도 못하게되고 몸도 잘 안움직여지더라구요. 전 힘으로 풀어버리는데 생각보다 힘들어요. 다른 방법으론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면 된다는 말도 있어요. 몸과 마음이 피곤할 때 가끔 가위 눌리는 경우가 생기더라구요. 몸은 잠들었는데 정신은 깨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죠.

메롱했을 때 욕을 하는 환청이 들리면 더 강하게 나가셔야해요. 전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진 않지만 정신적 신체적 의지를 시험받을 때 물러서지 마세요.

Forgettable. 2009-08-01 08:30   좋아요 0 | URL
저도 손가락, 발가락, 혓바닥 움직여보기, 주기도문, 아아 소리지르기, 도리도리, 시도 무지 많이 해봤는데 진짜 풀기 어렵죠^^
가위가 몸은 잠들었는데 정신은 깨있을때라죠, 그치만 이렇게 이해하기엔 너무 무서운 일들이 많아요 ㅜㅜ

2009-08-01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3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1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섭네요 ㄷㄷ, 전 고3 때 한 번 눌려본 적이 있는데, 피곤해서 가위 핑계로 더 자야지 하며 즐겁게 눈을 감았다가, 어머니께서 "너, 안 일어나!" 혼내시니까 가위고 뭐고 그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던 기억이 나네요-_-; 항상 아침은 시끄럽기에, 청각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귀신을 본 적도 있었는데, 고등학교 다니던 무렵의 어느날, 화장실에서 나오니까 안방 창틀에 엄마가 걸터앉아 계셨어요. 온 가족이 할머니 댁으로 출발하려던 차라, "저 먼저 내려가 있을게요." 말씀드리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니까, 엄마는 물론 모든 가족이 이미 차에 탄 채로 절 기다리고 있더군요. 깜짝 놀라서 문을 잠그러 다시 올라가니까 그곳엔 아무것도 없던데, 좀 섬칫했어요. 그런데 귀신이었다고 해도, 무심코 엄마라고 생각했을 만큼 포근한 느낌이라 그리 무섭지는 않더군요;

Forgettable. 2009-08-03 09:21   좋아요 0 | URL
으아 제 얘기보다 코님 얘기가 더 무서운데요;;;;;; 엄마 귀신이라니!! 근데 왠지 창틀에 앉아계시다니 엄마 저기서 뭐하나 싶으셨을거 같아요 ㅋㅋ 엄마모습을 한 귀신.. 진짜 무섭네요, 근데 이게 순간적인 정신적 현상같아서 딱히 해코지를 하지 않으면 그냥 당시엔 무서워도 나중엔 막 얘기하면서 재밌는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ㅋㅋ

고딩들의 학업스트레스가 대단한 거 같아요, 다들 학창시절에 가위 많이 눌리는듯 ㅋㅋ

다락방 2010-02-22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가위에 눌렸을때는 메롱? 오케이, 알았어요.

Forgettable. 2010-02-23 11:09   좋아요 0 | URL
안깬다구요. ㅋㅋㅋ
락방님 어제 한가했구나! 부러워용 ㅠㅠ

다락방 2010-02-23 11:53   좋아요 0 | URL
나는 깰지도 모르잖아요. 기억할거에요. 메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