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뱉어낸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던가, 글로 소통을 한다, 글쓰기의 목적, 이런 종류의 글을 볼 때마다 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데, 이유는 내 서재에 들락거리시는 분들도 아주 잘 아시다시피, 나의 글쓰기는 정보제공이 목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깊은 통찰의 끝자락에서 나오는 정돈된 글로써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말로 화려하게 꾸며놓아 트집잡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맛만 다시게 만드는 그런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삶의 낙이 없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워낙에 컴퓨터를 멀리하던 터였는데, 일을 하게 되며 나인투식스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자니 갑갑하기도 하고, 흡수할 굴림체가 너무 많다보니 약간 토할 지경이라, 그것을 좀 토해놓을 곳이 이곳이었다. 학교다니면서 과분할만큼 좋은 선생님들과 선후배,동기들과 함께 향유했던 지혜의 시간들이 회사에서 싸그리 사라지는 게 순간 씁쓸해져서 출퇴근시간, 주말에 책을 읽고 적어놓는다고 시작한 서재질이 점점 주객전도가 되어 잡설이 더 많아졌다. 

나 역시도 어려운 글 보다는 잡설이나 일상생활 이야기 읽기를 더 좋아해서 처음에는 부담 없이 손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는 대로 지껄여놓고, 스스로도 글 쓰는 행위를 배설한다고 칭할 정도로 부담 없이 적어두었었다. 당당하게 남들이 내 글을 좋아할 이유는 없다고도 얘기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게, 점점 온라인상의 인맥이 넓어지고, 이 얕디 얕은 인맥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글 쓰는 것이 자꾸 눈치를 보게되고,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그래서 깔끔하고 정갈하고 어렵고 단아한 문체로 '격이 낮은 글뿐인 서재는 눈에 차지도 않아.' 라던가 '왜 글을 써놓니?'. '싸질러 놓은 글에 책임을 져야한다.', '잘 쓴 글만 읽는다.', '제대로 좀 읽어라.' 라고 뱅글뱅글빙글빙글 돌려말하는 글을 보면 나도 좀 생각을 하고 멋진 글을 써놔야 하나 급 좌절감에 빠져버린다. 그럴 땐 내가 써둔 글들이 너무 부끄러워서 서재를 확 닫아버리고 싶기도 하고, 글 잘 쓰시는 분이 내 글에 댓글이라도 하나 달아놓으면 얼굴이 빨개져선 앞으로 더 잘 써보겠다고 굳게 허튼 다짐을 하기도 한다. 

글을 잘 쓰려면, 기발한 생각을 하거나, 유머가 있어야 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면 기억력이라도 좋아야 한다. 어디서 본 멋진 글귀를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고 적절한 순간에 더블클릭하면 되니까. 그런데 나는 물고기 기억력이라 좋아하는 철학자 이름 하나도 헛갈려하니까 정말 글을 잘 쓸래야 쓸 수 없는 것이다.  

으하하, 나는 쉽게 쓰는 것이지 결코 얕은 사람이 아니야!! 내공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알아보겠지!!!!!!!!
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봐도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바깥에서도 새는걸 알고 있다. 기품이 있어야 기품있어 보이는 것이고, 내뱉은 말 한마디에서도 인격이 보이는 법이다. 하물며 글이야, 난 결코 진중하고 지혜롭고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겠지?

그러니까 이 장황하고 지루한 페이퍼의 결론은 

보잘것 없는 이곳까지 찾아주시는 분들께, 제 삶의 낙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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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릴레이] 나의 독서론
    from 바람구두를 신다 2009-06-13 12:31 
    [블로그 릴레이] 나의 독서론 inuit 님으로부터 시작된 이번 릴레이의 주제는 '나의 독서론'입니다. 몽글몽글 새파란 블로거 님께서 다음 주자로 제게 바통을 넘겨주셨습니다. 릴레이 독서론 규칙 1. 독서란 [ ]다. 의 네모를 채우고 간단한 의견을 써주세요. 2. 앞선 릴레이 주자의 이름들을 순서대로 써주시고 3. 릴레이 받을 두 명을 지정해 주세요. 4. 이 릴레이는 6월 20일까지만 지속됩니다. 기타 세칙은 릴레이의 오상 참조 나의 독..
 
 
라주미힌 2009-06-1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엔 잘 쓴 글은 풍부한 독서량에서 나오는 듯 해용.. 근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은 진실한 경험만큼 좋은 거름은 없는거 같아용;; 전 둘 다 없어서;;; ㅋㅋㅋㅋ
아.. 나도 글 잘 쓰고 싶당..

Forgettable. 2009-06-11 14:07   좋아요 0 | URL
라주미힌님에게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미덕인 유머(!!!!!강조)가 있으니 잘 쓰시는 분입니다. ㅎㅎ
그리고 예전에 리뷰 같은거 본 적 있는데 잘 쓰시는데요 뭐..

전 마지막으로 영화 본게 5월 3일이군요.. 내게도 이런 일이(털썩)

뷰리풀말미잘 2009-06-11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부터 뽀님을 알아봤어요.

Forgettable. 2009-06-11 16:36   좋아요 0 | URL
헤헤 이런 은밀한 댓글은 비밀글로 했어야죠 ㅋㅋ

[해이] 2009-06-11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랑 똑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군요~

Forgettable. 2009-06-11 22:45   좋아요 0 | URL
랄랄라 우리는 사춘기를 함께겪는 '같은' 세대 ㅋㅋㅋ

2009-06-12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9-06-1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치 보고 자기 검열을 하는 순간은 다들 경험하나 봅니다.
개인의 기록을 위한 공간인데 눈치보고 자기검열까지 해야되나 싶다가도 그걸 완전히 떨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나름 알라딘 1기 부터 운영한 서재인데 제 서재는 참 누추합니다.ㅎㅎ

Forgettable. 2009-06-12 23:27   좋아요 0 | URL
제말이요.. 알라딘 1기시군요, 이 곳에 참 글 잘 쓰는 고수분들이 많으셨다는데 일찍 알지 못했다는게 아쉬워요 ㅎㅎ

누추하긴요, 분위기 있는데^^

Demian 2009-06-1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썽님^^ 트랙백 하나 드렸는데 괜찮으시다면 '숙제'해주세용. 이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