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에 관한 다양한 접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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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존 도미닉 크로산 지음, 김준우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00년 12월
26,000원 → 23,4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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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비유
레온하르트 라가츠 지음, 류장현 옮김 / 다산글방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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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
존 도미닉 크로산 지음, 김기철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01년 8월
8,500원 → 7,650원(10%할인) / 마일리지 42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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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그의 과거, 현재, 미래
F. F. 브루스 지음, 조계광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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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독교 도상학의 이해, 앙드레 그라바 지음, 박성은 옮김,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2.미술과 신학, 테오 순더마이어 지음, 채순일 옮김, 한신대학교출판부
- 2월은 '기독교 도상학의 이해'로 시작된다. 지극히 사적인 관심사 중 하나가 기독교적 신념,사유와 미술작품,건축물과의 상관관계(기억으로는 틸리히가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다.)인데, 이 책이 바로 그 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이는 서문에서 '최근까지도 그림들이 내포하고 있는 기호학적 가치에 대한 연구, 즉 도상학적 연구' 는 '충분한 자질을 갖춘 고고학자나 신학자 혹은 기독교 사상사가들'이 담당해왔다고 하는데, 이 책은 그러한 시도들이 놓치고 있는 미술 작품의 형태 분석과 그 기법의 소개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앞선 시도들의 보완물이 되어준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가장 전통적 형식에 충실하게 기독교 도상을 다루었던 고대와 중세의 도상학에 대해 고찰'하고 있으니, 이 문제에 관해서는 배경지식이 (기독교 사상사를 제외하고는) 전무후무한 나로서는 퍽 좋은 입문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술과 신학'은 '기독교 도상학의 이해'를 읽은 뒤에 읽으면 좋은 책일 듯 싶다. 지은이에 대한 소개는 되어 있지 않지만, 목차에 '제3세계 그리스도 예술의 해석학적 문제'가 가장 처음으로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 지은이가 주안점으로 두고 있는 것은 '제3세계에서 행해지는 그리스도 예술이 자신들이 받아들인 기독교적 교리, 신념등을 어떻게 작품에 반영하고 있는가' 인듯 싶다. 이런 책들을 읽고 적용해야 할 것은 결국 '제3세계 그리스도 세계' 중 하나인 한국 기독교이므로 '미술과 신학'은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3.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정용섭 지음, 대한기독교서회
설교비평집 <속 빈 설교 꽉찬 설교>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던 정용섭의 두 번째 설교비평집이 나온 것도 기억할만한 일이다.  도서관에서 「기독교 사상」에 연재한 글을 몇 개 훑었을 뿐 책을 읽어 적은 없는데, 신학을 공부하고자 마음먹은 이들의 종착점은 결국 '목회'이고,  개신교에서 목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설교' 라는 점, 그리고 바로 그 신학이 설교로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은 읽어 볼만한 책인 것 같다. 이 부분은 지은이가 자신이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 듯 싶은데, 그의 비평이 어떠한 생각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면  <예배를 예배되게 하라- 예배의 이론과 실제> 를 읽어봐야 할 것이다. 



 

 

 

몇 마디 덧붙이면, 지은이가 결국 이러한 설교비평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엄밀한 학적 기반에 기초한 성서 텍스트의 이해'를 한 뒤에 설교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온당한 말이고, 온당한 말이기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지은이도 언제까지나 '비평가'의 입장에 있지 않는 이상, 이러한 지적은 본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비판을 온전히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엄밀한 학적 기반에 기초한' 성서 강해 또한 지속적으로 해야하고, 그것을 공표해야한다고 본다.










4.교회, 한스큉 지음 , 정지련 옮김, 한들출판사
5.본회퍼의 시편 이해, 디이트리히 본회퍼 지음, 최진경 옮김, 홍성사

소위 '일급 신학자'들의 책 중 대표적인 책은 한스큉의 <교회>와 본회퍼의 <본회퍼의 시편 이해>다. 
한스큉의 <교회>는 <신은 존재하는가>, <그리스도교>와 더불어 그의 노작이라 할만한 방대한 책이다(이 책의 다이제스트가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분도출판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출간을 2~3월 신학출판동향중 가장 기억할만한 일이라고 보는데,  출판사가 힘이 없어서 그런지(분도 출판사가 아닌 한들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것이 조금 의외이기는 하다. 옮긴이도 의외이고...) 그다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어쨌든 바르트나 틸리히, 불트만 같은 이들의 저작은 물론이요, 루터나 칼빈의 저작들도 '마른 땅에 콩나듯' 번역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 신학자의 주요 저작들을 대부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한스큉만큼이나 꾸준히 출간되는 본회퍼의 책이 나왔다는 것 또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열린서원에서 나온 '본회퍼의 시편명상'과 동일저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한 책을 두고 부분번역 한 것인가. 흠.). 2006년에 본회퍼의 책은 '무려' 6권이나 출간되었는데, 본회퍼 탄생 100주년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출간된 책의 대부분은 본회퍼가 직접 쓴 책이 아니라, 본회퍼에 대한 책들이라는 점은 불만족스럽다.  흥미롭게도 기독교 내부에서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각광받는 것이 본회퍼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참에 한 곳에서 본회퍼 전집을 내놓는 것은 어떨지.










6.요한복음 강해, 김용옥 지음, 통나무
7.기독교성서의 이해 , 김용옥 지음, 통나무

한스큉의 '교회' 출간도, 정용섭의 설교비평집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도올의 '요한복음 강해' , '기독교성서의 이해' 출간에 비하면 기억되지 않을 일들에 불과할 것이다. 두 책은 모두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고(오강남의 '예수는 없다' 이후 기독교 관련 서적이 이토록 각광받은 적이 있을까.), 연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관심을 갖지 않을 수는 없지만, 나는 도올의 웅변조의 문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았고, 읽을 일도 없을 것이므로 다르샨의 짧은 코멘트강유원의 서평(무수한 논란들과 무관하게 <요한복음 강해>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서평'이라고 생각한다.)을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한 선배의 말에 의하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읽을만하다고 한다.).









 8.장기려 그 사람, 지강유철 지음, 홍성사
<장기려 그 사람>은 「복음과 상황」에서 인터뷰어로 활동했던 지강유철이 쓴 장기려 평전이다. 장기려에 대한 세간의 평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라면 별로 관심없을 책인데, 장기려를 둘러싼 한국교회의 일화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내 관심(보수적인 총신출신으로서 나름의 개혁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은이의 활동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이 작용했다.)을 끌었다. 특히 관심가는 부분은 고신대학교와 얽혀져 있는 에피소드들이다.  







 9.기독교 인물 사상사전 , 토니 레인 지음, 양정호, 박도웅 옮김, 홍성사
2,3월에 기독교 사상사 부분에서 나온 책중 볼만한 책은 <기독교 인물 사상사전>이다. 지은이는 복음주의 성향을 띄는데, 가톨릭의 유산들과 현재를 상당히 반영하고 있다는 것, 현대 기독교 사상 부분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소개를 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이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개신교계에서는 충분히 해오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에 대한 지나치리만큼의 부정적인 평가는 여전하다). 기독교계의 또 다른 한 축이라 할만한 러시아 정교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충분한 면이 있지만, 이 정도만 하면 꽤 알찬 인물, 사상사전이라 할 수 있다. `교회사에 대한 지식을 조금 쌓아놓은 신학부 대학생들이 자신들이 배워온 것을 정리하는 책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0.신의 베스트 셀러, 브라이언 모이너핸 지음, 김영우 옮김, 민음in
<신의 베스트 셀러>는 예상외의 책이다. 예상외라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인데, 하나는 한글 제목이 책의 내용과는 조금 엇나간다는 느낌이 들어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종교개혁사로 분류되는 이 책을(그것도 영국의 종교개혁사) 메이저 출판사인 민음사에서 출간했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추측해보자면, <다빈치 코드>의 돌풍 이후, 일반인들에게 영지주의 문헌이나, 성서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그로인해 기독교 출판사들만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성서관련 서적이 꽤나 많이 출간되었는데(그 중에서 <성경 왜곡의 역사> 는 꽤나 많이 팔렸다. 이 책 역시 <신의 베스트 셀러>와 같이 '예상외의 책'이었다. ), 이 책 역시 연장선상에서 출간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글제목만 보면 성서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것 같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윌리엄 틴데일(이 책에서는 틴들)이라는 종교개혁자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물론 틴데일의 '영어 성경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므로 성서의 역사와 아주 무관한 책은 아니지만, 킹제임스 성서의 역사에 관한 책이라든지, '영어성경의 선구자'라 할만한 위클리프의 생애를 조명한 책도 안나온 시점에서(영국 종교 개혁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 토마스 크랜머의 생애를 조명한 책 역시 소개된 바 없다.) 의외의 선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당시 영국 교회개혁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 유용한 책이니 큰 불만은 없다.











11.그리스도 신앙, 요셉 라칭어(베네딕트 16세) 지음, 장익 옮김, 분도 출판사
2~3월에 출간된 가톨릭 서적 중 읽어 볼만한 책은 교종 베네딕트 16세가 튀빙엔에서 교수로 재직중하던 중에 강의한 것을 묶어낸 <그리스도 신앙>이다. 교종 베네딕트 16세가 가톨릭 내에서 보수파를 대표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이 책의 가치도 바로 거기에 있다(가톨릭 보수파의 신학적 사상을 알 수 있다는 것). 한국의 보수적인 교파들, 세계적으로도 근본주의적 성향에 가깝거나 보수적인 색채를 띈 개신교파들이 대체로 신학공부의 중요성에 대해서 큰 가치를 두지않는데 반해  가톨릭 보수파는 매우 학구적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면모를 볼 수 있다. 사도 신경에 토대를 두고 현재의 인간실존과 연결지어 논의를 진행시켜가는 이 책에서 남미, 아프리카에서 대다수의 교인들을 두었음에도 불구, 유럽에서만 교종을 뽑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규칙들을 '일괄 전달'하는 가톨릭 주류의 꼬장꼬장한 모습(이 모습은 얼핏 네오콘을 떠올리기도 한다.)이 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12.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 쉐인 클래어본 지음, 배응준 옮김, 규장
13.성경과 폭력 , 존 쉘비 스퐁 지음, 김준년, 이계준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와 <성경과 폭력>은 짧게 언급한다. 전자는 복음주의 계열의 지은이가 사회적 실천의 필요성을 자전적인 이야기와 섞어서 역설하고 있는 책이고, 후자는 성서안에 있는 폭력에 대해서 해명하고 있는 책이다. 둘 다 전문적인 학술서적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서적이고, 한 명은 개신교 복음주의이교 다른 한 명은 성공회 주교라는 점에서 둘의 자리 사이에는 큰 간격이 존재하지만 결국 기독교인들이 성서에 근거하여 이 사회에서 무언가 변혁을 이루는 주체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역설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흐름 속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 독자들 뿐이 아닌 신학을 공부하는 자들도, 아니 누구보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염두해 두어야할 사항이다. 그렇기에 <믿음은 행동이 증명한다>의 서문은 (지은이가 근거하고 있는 생각중 일정 부분은 공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큰 울림을 갖는다. 


...나는 세상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게 위험부담이 큰 모험임을 알고 있다. 이원론이 교회를 심각하게 오염시켰고, 그 결과 많은 크리스천들이 마치 사회정치적 쟁점들이 영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 양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제안할 더 좋은 비전을 갖고 있지 않은 양 영적인 것들과 사회정치적인 것들을 철저하게 분리했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의 거리에서 나온 것이든 이라크의 병원에서 나온 것이든 사회적이며 정치적이며 영적이다.  ...

 

 

 

 

+ 알라딘에 뒤늦게 등록되었기 때문에 빼놓은 두권의 책이 있다. 한들에서 야심차게 출간하고 있는 시리우스 총서 2권이 바로 그것인데, 하나는 에른스트 벤츠의 <기독교 역사와의 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아돌프 V.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이다. 전자는 브리네티커 백과사전의 <기독교>편을 확대증보해서 별도의 권으로 출간한 것이고, 후자는 19세기 자유주의 대가인 하르낙의 책 중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책이다. 후자의 출간은 특히나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데, 자유주의가 여전히 '빨갱이' 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한국 신학 풍토에서 이 책의 출간은 80년대 맑스의 <자본>이 번역된 것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사회적 파장은 그에 훨씬 못미칠지라도). 하다못해 기독교 서평지라도 있다면 이들의 출간이 크게 다루어져야겠지만, 어느 곳에서도 이 책들의 출간은 환영받지 못하는 듯하다.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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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미 2007-06-20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본회퍼의 시편 이해>를 만든 편집자입니다.^^ 먼저 저희 책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서평을 좀 찾아보려고 검색하다가 위 글에서 저희 책에 대해 올려 주신 내용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다르게 알고 계시는 것이 있어서 도움이 되실까 하여 댓글을 답니다~ <본회퍼의 시편 이해>는 부분번역이나 그런 것 전혀 아닙니다...-_-;;; 열린서원에서 출간하신 <본회퍼의 시편 명상>과는 우연히 우리말 제목이 비슷해진 것이지 원고는 전혀 다릅니다. <본회퍼의 시편 명상>에 보면 그 책의 영문 번역자가 서문처럼 써 둔 글에 저희가 낸 <본회퍼의 시편 이해>에 나오는 내용의 한 부분을 따로 인용해 두기도 했습니다. 그 인용의 출처인 본회퍼의 그 책(원래 제목 : <시편-성경의 기도책>)의 독일 원서를 직접 번역한 책이 <본회퍼의 시편 이해>랍니다. 실제 책을 보시면 다른 책임을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본회퍼의 시편 이해>는 본회퍼가 나치에 의해 출판 금지를 당하기 전에 공식적으로 출간된 마지막 책이고 또...(이 책이 나온 이듬해 본회퍼는 저작활동을 금지당했습니다.) 본회퍼 자신이 직접 쓴, 저작이고 엠베카 출판사의 '성경 속으로'라는 시리즈의 시편 부분을 청탁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책이 되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이시고 시편 좋아하신다면 개인적으로... 정말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랍니다.^^ 책에 대해 꾸준히 많은 관심을 가지시는 독자분들 뵈면 참 반갑습니다. 반가움 반, 약간의 오해 풀기 반.. 겸사겸사 두서 없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

Viator 2007-06-21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강미/ 그렇군요. 약간의 의구심을 가졌을 뿐 실제로 '불신'했던 것은 아닙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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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주 드물게, 에세이-강유원의 말을 빌리자면 '규정적 단어들로써 주관적 자의식을 표현하여 자기 스스로에게는 상황을 명료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나 타인에게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글-가 여러가지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경우가 있다. 에세이의 필연적인 한계를 의식하면서, 그것을 껴안은채 문제를 밀고 나아가 그 글을 접하는 타인에게까지 공감대의 형성을 불러일으킬 때 그 글은 좋은 에세이가 된다.

2.디아스포라 기행은 그러한 의미에서 좋은 에세이이다. 그는 통념상 이산유대인을 일컫는 '디아스포라'를 자신의 위치에서 재정의하고, 디아스포라의 역사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성격을 되짚는다. 자연스럽게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근대가 다루어지며, 근대의 파국, 혹은 얼룩이라 할 수 있는 파시즘과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등 온갖 폭력들이 언급되고 있다. 에세이 답게 일정한 체계로 엮어지지는 않고 파편화되어 있지만, 그 파편들 속에서 지은이의 성찰을 엿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3.그에게 있어 디아스포라라는 '긍정적인 자기규정을 할 수 없게' 자기규정이 된 서글픈 숙명을 지닌 존재이다. 국적으로는 한국인이면서, 모어가 일본어이고 일생의 대부분을 일본-한때 한국을 지배했으면서 여전히 껄끄러운 국민감정을 공유하고 있는-에서 보낸 그는 디아스포라들의 역사가 담긴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디아스포라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을 긍정한다. 그 긍정은 '자기 위안'이라는 소극적 긍정이 아닌 , '디아스포라'만이 지닐 수 있는 시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적극적인 긍정이다. 그러한면에서 이 책의 프롤로그는 지은이의 자기성찰의 결론이자, 그 성찰을 뒷받침한 디아스포라들에 대한 연대의 선언이다. 이는 엄청난 시공간적 차이를 갖지만, 구약시대의 디아스포라들에게도 언뜻 보엿던 부분이기도 한데, 아마 이러한 시선으로 성서를 바라본다면 또 다른 통찰이 얻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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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 시공 로고스 총서 34 시공 로고스 총서 34
헨리 채드윅 지음, 김승철 옮김 / 시공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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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우구스티누스는 신학에 있어서 철학의 플라톤과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이름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신학자는 화이트 헤드의 말을 변용해 '아우구스티누스 이후의 서구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저작 목록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거대한 체계를 구축했는지-신학 안의 카테고리가 나누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 그의 저작은 조직신학, 성서신학, 교회사(심지어는 기독교 교육학까지 포함된다)모두 걸쳐있다-알 수 있다.

2.채드윅의 소개서를 보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를 요약하자면 대략

1)키케로의 영향(그의 저작인 '호르텐시우스'를 보고)을 받아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

2)마니교에 빠져 있던 시기

3)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마니교에서 벗어나고 점차적으로 기독교인이 되던 시기

4)본격적으로 기독교인이 되어, 그 기준 에서 자신을 해석해낸 시기

 5)히포의 주교가 되서 다양한 신학적 사유를 펼쳐낸 시기 등 5시기로 나누어진다.(틸리히는 그의 강의록인 '그리스도교 사상사'에서 좀 더 세분화시켜 8단계로 나누었는데, 2기와 3기 사이에 '회의주의'시기를 추가했고, 사상적으로 금욕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를 추가하였는데, 5시기안에 포함되는 것 같아 이렇게 노트만 달아둔다.) 3기 부터 그의 주요 저작이 등장하는데 3기의 대표적인 저작은 그가 카르시쿰에서 그의 친구들과 수도적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간의 대화를 모색한 '독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기독교적 세계관에 경도되어 그 안에서 자신의 일생을 돌아본 '고백록'은 4기, 주교로서 신학적 문제들이나 교리에 천착한 저작들- '신국론'이나 '삼위일체론' -은 5기에 해당된다. 그의 작품들은 '당연히' 그의 시대,그를 둘러싼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는데 특히나 대표적인 저작인 '신국론'은 세계사적인 사건이라 할만한 로마의 멸망과 관련되어 그것을 신학적으로 규명해낸 작품이다. 따라서 '신국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당대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인데, 불행히도 이후의 기독교 사상사에서 '신국론'(을 포함한 그의 대표적 저술들)은 그런 식으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3.그는 당대의 첨예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의 가치를 역설하고자 했고, 그 속에서 자신의 근거를 찾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에 자기 성찰의 가치를 되새겼다는 점에서 '최초의 현대인'이라는 채드윅의 평가는 아주 생뚱맞은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적절한 수사학적 표현도 되지는 못한다. 강유원이 지적하듯이, 그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신과의 관계 속에서만 찾으려 했지, 사회와의 관련성을까지 고려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차라리 (자신의 신학적 사유에서 '이성'의 가치를 소중히 했했으며, 철학과 신학의 일종의 종합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 보다는 '최초의 중세인'이라는 한스큉의 평가가 더 적절한 듯 싶다.

 4.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은 모두 25권(각 저작 안에 있는 권수는 제외하고)이다. 하지만 국내에 소개된 것은 '신국론','고백록'이 다양한 형태로 소개되었을 뿐, 나머지 저작들은 분도출판사의 교부문헌총서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번역된 것이 없다.(크리스천 다이제스트에서도 몇 권 나온 것 같은데, 여기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가장 충실한 소개서라 할만한 피터 브라운의 아우구스티누스 전기는 번역이 되었으나, 오문과 비문이 너무 많아 사실상 이해가 불가능하다.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예수나 사도들을 제외하고,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신학자라는 것이 신학계의 공통적인 생각이라면, 아우구스티누스 전집이나 선집을 내고, 지금까지 번역된 것에 대한 새심한 검토를 해야할 것이다.(말로만 에큐메니컬을 외칠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데이터화하는데 힘을 합치는 것이 에큐메니컬적인 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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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의 오마주
박찬욱 지음 / 마음산책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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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화감독으로서 그 이름을 알리기 전에(물론 그 전에도 몇 개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으므로) 그는 (그의 인터뷰에서 그 자신을 정의한 것을 빌리자면) 정직한 비평가였다. 이 책의 기원이라 할 수 있을 '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은 영화 매니아를 사칭하던 때 내가 종종 빌려 보던 책이었다. '오마주'의 머리말에서 그가 언급한대로 그 책은 몇몇 영화들에 대해서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좋은 면'을 말하고 있었고, 그것은 꽤나 유용한 정보들이었다.(게다가 그는 그가 본 영화의 핵심을 간결한 레토릭으로 정리해내는데 상당히 탁월하다.)그리고 그 유용함은 이 책에서도 유지되는데, 만약에 'JSA'가 흥행에서 실패해 그가 영화 평론가 생활을 유지했더라도, 나는 그가 꽤나 신뢰할만한 글들을 발표했을 거라 짐작하고 있다. (무수한 영화잡지들이 있고, 그 안에 무수한 평론가들이 평론을 실어대지만 내가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글을 쓰는 이는 4명-정성일, 허문영, 김영진, Djuna(서동진을 넣을 수도 있지만 그는 '영화평론가'라는 직함으로 영화관련 글을 쓰지는 않는다.) 정도다.) 물론 이것은 그가 바랬던 생활이 아니었을 테지만. 

2.절판된 것을 다시 찍어낸다는 일차적인 목적 말고도 꽤나 많은 평이 추가되었다('영화 보기의 은밀한 매력'이 출간된 시점이 94년이니, 이 이후 개봉한 영화들에 대한 평은 다 추가된 것 같은데 약 40개 정도 된다.). '영화 보기의 은밀한 매력'의 속편을 기대한 이들에게나, 'JSA'이후의 영화들을 접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들 모두 다 일정 이상의 만족감을 줄만한 책이다. 나같은 경우는 전자에 속하는데, 이제 더이상 영화 매니아를 사칭할 필요를 못느끼므로-사칭한다는 것은 보지도 않은 영화들에 대해 남다른 식견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화 매니아를 사칭하기에 이제 내 영화감상 시간은 기준치에 미달이며 , 미감 역시 아주 좁다는 것을 스스로가 의식하고 있다.- 내가 본 영화들에 대한 평만 골라서 읽었다. 몇 개의 노트를 달아 놓자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스페인이라는 토양에서 정치적 부패와 부르주아적 위선, 무정부주의적 허무감을 자양으로 해서 자라난 독버섯이다. (p40, '마타도르')

무엇보다도 '분노의 주먹'은 이기주의 그리고 이기주의자의 고독에 관한 영화이다.(p45, '분노의 주먹')

'히치콕의 주인공이 미래의 화성에서 벌이는 모험'을 찍고 싶다는 버호벤의 야망은 성공했다. 히치콕적 인간형은 '오인된 사나이'와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의 두 가지로 대표되는 바, 전자는 자기가 아닌 사람이 되어 영문도 모른채 쫓기면서 진정한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이고, 후자는 자기정체성 때문에 현실에 빠지게 되는 사람이다. '토탈 리콜'에서 슈워제네거는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기억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자기가 오인받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쫓겨다닌다.(p86 '토탈리콜')

...고의적인 시/공간의 구체성 무시는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첫째, 이것은 재현된 세계가 아니다. 즉, 특정 시/공간에 전속된 이야기가 아니다. 둘째, 따라서 이 상상적 세계는 보편적이다. 종합한다면, 언제 어디도 아니기 때문에 , 동시에, 언제 어디서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것은 동화일 수밖에 없다. 룰라 모녀와 세일러, 바비 페루가 현대 영화의 주인공들답지 않게 지극히 전형적이고 피상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도 이제 설명 가능하다. '광란의 사랑'을 두고 영화에 역사가 없고 인물에 깊이가 없다고 비판한다면 '신데렐라'에 토마스 만을 요구하는 꼴과 같다.(p153~4 '광란의 사랑')

데릭의 영특함, 청결함, 남성적 매력, 마약에 대한 혐오, 육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는 편집증적 노력, 애국정신, 질서와 권위를 중시하는 태도, 노동에의 예찬, 종교적 경건함 따위의 특징은 근본적으로 청교도적인 것이다. 결국 스킨헤드의 폭력숭배, 마초주의, 인종주의는 다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데릭은 백인 지배계급 이라는 동전의 어두운 이면이다.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이 백인 쓰레기 집단은 자기들이 KKK와 동일시되기를 거부한다. 그따위 무식한 시골뜨기 농사꾼 무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가소로운 소리만은 아닌 것이, 남부의 그 백가면들이 부유한 농장주 내지는 자영업자였던 데 반해, 우리의 주인공들은 유색 인종에게 일자리를 빼앗겨 오갈 데 없어진 룸펜 프롤레타리아이기 때문이다.(p233~4 '아메리칸 히스토리X')

로보캅은 스스로 머피임을 선언하지만, 그는 여전히-아이작 아시모프의 유명한 '로봇공학 3원칙'을 연상케 하는-'로봇 경관 3지침'에 우선하는 '제4지침:OCP의 간부는 체포할 수 없다'의 프로그램이 내장된 반기계일 뿐이다. 그의 운명은 근본적으로 '중간자'다. 갑옷이 피부가 되어버린 중세/미래의 전사, '메트로폴리스'의 여성 로봇의 남성 모조품이면서 성별 정체성을 상실한 중성인, 그리고 영화 고아고 문안대로 '반인-반기계', 이것이 로보캅니다. 그에게 어느 한쪽을 선택할 권리란 이미 없다.(p249 '로보캅')

어른들의 죄악의 결과로 탄생한 프레디를 아이들이 대신 상대해야 하는 현실, 마이너리티 집단만이 희망이라는 주장, 그것이 천대받는 싸구려 공포영화 '나이트메어'시리즈의 핵심이다.(p272, '나이트메어3')

'양들의 침묵'이 불길한 것은, 렉터의 자유 때문이 아니라 클라리스의 부자유 때문이다. 어느 정사 장면보다 더 에로틱한 저 '손가락 통정을 보고서도 누가 이들의 사랑을 플라토닉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p280, '양들의 침묵')

사실 이 영화의 재미는 새뮤얼 잭슨의 오델과 로버트 드니로의 루이스, 브리지트 폰다의 멜라니, 마이클 키튼의 니콜렛 같은 흥미롭고 사실감 넘치는 캐릭터 그룹과 그들 사이에 낀 두 덤덤한 남녀 사이의 긴장에서 나온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인간들 틈에 던져진 조용한 남녀. 영화가 끝날 때쯤 되면 정말 일을 저지른 쪽은 바로 그들임을 알게 된다. 고분고분한 척함녀서 몰래 양다리 걸치고 가다가 막판에 양쪽 뒤통수를 다 치고 빠지는 재키의 행보, 거기서 오는 통쾌함은 대단하다.(p307~8, '재키 브라운')

그(이스트우드)가 존 웨인 이래 최고의 서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얼굴 때문이다. 그의 안면은 그대로 하나의 풍경이다. 그것도 와일드 웨스트의 풍경이다. 그의 눈두덩은 계곡과 같이 움푹 들어갔고 콧등은 산맥처럼 준엄하다. 눈가 주름은 강줄기처럼 갈라졌으되 그 강은 이미 말라버린지 오래다. ...요컨데 그의 얼굴은 황량하다.(p341, '용서받지 못한자')

...르네상스에서 팝아트에 이르는 서구 회화의 '시선의 역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남녀 시점의 일대 역전극은 결국 페미니즘의 패배로 일단락된다.(p351, '드레스 투 킬')

이(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의 영화 스타일)를 일러 , '영화 독학자의 스타일'이라 할 만하다. 제대로 배운 게 없으니 멋대로 찍어버린다는 뜻이다. 정교하게 연출할 자신이 없어 그런지, 다른 감독이라면 공들여 촬영할 장면을 대충 생략해 버린다. 거기서 엉뚱하게도 예술이 삐져나온다. 남이 버릴 장면은 기어이 붙여서 쓰고 남이 반드시 넣었을 신은 아예 안 찍어버리는 데서 생기는 예술.(p382, '하나비')

정치에 무관심한 영화일수록 정치적이고(더글라스 서크의 멜로드라마들), 정치문제를 직접 다루는 영화일수록 거기서 정치적 의미는 증발된다('JFK').(p438,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어쨌든 전통적으로 미국의 정치 성향 영화들은 그 근본적 성격을 분명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의도적 모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작가도 자기가 좌파로 분류되는 일을 피해야 했고, 자본과 대중 역시 철저하게 급진적인 영화는 애당초 원하지 않아왔다. 차라리 그런 종류의 양심은 앨런 파큘러('대통령의 음모','암살단')식의 냉정함과 '로보캅'유의 상업적 냉소주의, '대부'시리즈가 보여주는 은밀한 비유 등에서 더욱 비타협적으로 견지되었다는 역설조차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리버 스톤 개인의 이데올로기라든가 '7월 4일생'이 갖는 부분적 진실/허위에 대한 면밀한 분석은 오히려 불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리에게는 그것보다 더 크고 더 작은 것, 미국과 할리우드의 사회 성격, 자본 매커니즘을 연구하거나, 원하는 바를 때론 분명하게 때론 모호하게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영화적 기술을 공부하는 편이 이롭겠다.(p460, '7월 4일생')


덧.
부록으로 실린 것 같은 '우상의 영화, 우상이 된 영화'는 반진담 반농담으로 쓰여진 것 같다.(진정으로 사랑하는 19283편의 영화 중에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순서대로 썼다고 하는 능청이란.) 박찬욱의 의중을 파악하고 싶다면 그 언젠가 키노에 실렸던 10대 외국영화/아시아계 영화 를 고려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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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ustigers 2007-06-11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언젠가 키노에 실렸던 10대 외국영화/아시아계 영화'가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 있을까요?

Viator 2007-06-13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제가 모아놓은 키노를 모두 잃어버리는 바람에 몇호인지 기억이 안나는군요. 사이트앤사운드에서 10대 영화를 뽑은 것을 기념해 한국 감독들에게도 설문조사를 했던 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