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밤, <아우구스티누스> 평전을 읽으려다 다시 가방에 넣고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지호, 2001) 중 몇 개의 글을 드문드문 읽었다. 책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환경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좋을 지은이(그녀의 아버지는 <평생독서계획>의 저자인 클리프턴 패디먼이고, 어머니는 2차 세계대전 동안 '타임'과 '라이프'에 글을 실었던 애널리 패디먼이다)의 앎과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에세이들로 채워져있지만 다시 읽게되는 글들은 (처음 이 책을 읽게되면 눈이 자연스레 가는)그녀가 자신의 스노비즘을 은밀히,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글들('책의 결혼' '책벌레 이야기' '너덜너덜한 겉모습' '당근 삽입'이 대표적이다)이 아니라 책을 매개로 그녀의 삶을 담담히 묘사하는 글들이다.
탐독가들, 애서가들(혹은 '탐독가'들처럼 보이고 싶은 이들, '애서가'인양 말하고 싶은 이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책과 책에 관한 지식들을 다른 누군가에게 열거하고 싶은 욕구는 애연가들이 담배를 찾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떨쳐내기 힘들다. 정도의 차이지, 아무리 담백하게 쓰더라도 그 속에 담긴 욕구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글 자체를 쓰지 않을테니까. 좋은 '책 관련 에세이'는 그 욕구들을 적절하게 조율하면서 자신이 마주하게 되는 삶의 순간들과 연결하느냐에 달려있다.
"소네트의 ...위로하는 힘은 2년 전, 여든여덟인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버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평생 겪었던 즐거운 일과 실망스러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감상적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읽어나 쓰지 못한다면 나는 끝난 것이라고 봐도 좋다" ..."밀턴도 실명한 다음에 <실락원>을 썼잖아요"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했다. ...."'이 캄캄하고 넓은 세상에서 반생이 끝나기도 전에'-그 다음이 어떻게 되더라? 빛 이야기가 나오던가?" ...어둠 속에서 우리는 14행 가운데 6행 반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었다. "뉴욕에 돌아가거든 만사 제치고 그 소네트부터 찾아서 전화로 읽어다오" ...그날 밤 마이애미에서는 밀턴의 소네트가 계기가 되어 아버지의 그 불굴의 지적 호기심이 처음으로 희미하게 반짝거리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 지적 호기심이 아버지에게는 구원의 은총이 되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아버지에게 그 소네트를 읽어드렸다.
'이 캄캄하고 넓은 세상에서 반생이 끝나기도 전에
내 빛이 꺼져 버린 것을 생각하며,
또 감추어 두면 죽음이 될 한 달란트,
창조주가 돌아와 꾸짖지 않으시도록
그것으로 그 분을 섬겨 내 참 계산서를 제출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쓸모없이 내게 묵어 있는 한 달란트를 생각하며
나는 어리석게도 묻는다.
"하느님은 빛을 허락치 않고도 낮일을 하라 하실까?"
그러나 그 물음이 입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인내가 대답한다.
'"하느님에게는 인간의 일이나 재능이 필요없다.
부드러운 멍에를 가장 잘 견디는 자, 그가 그 분을 잘 섬기는 것이니...오직 참고 기다리는 자, 그 역시 하느님을 섬기는 것'
"그렇지, 그렇지" 평소 비관적이고 비종교적이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떻게 내가 그걸 잊었을까?" "('소네트를 멸시하지 말라', 60-1)
"나 자신이 받아본 최고의 헌사, 비록 그 스코틀랜드인의 헌사만큼 눈부시지 않지만 그것하고 절대 바꾸지 않을 헌사는 조지 하우 콜트의 <자살의 수수께끼> 속표지에 적힌 것이다. 나는 그 책하고 같이 잔 적은 없지만, 그 저자하고는 여러 번 같이 잤다. 그 헌사는 이렇다(조지, 진정한 새 친구 관계 이후로 우리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면지에 적힌 글'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