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신곡 연옥편 12곡을 소리내어 읽은 뒤 발터 니그의 <렘브란트>를 드문드문 읽었다. 니그에 의하면 (미켈란젤로와 고흐 사이에 위치해있는) 렘브란트는 "그리스도교 단일 문화가 서서히 무너지고, 삶이 교회와의 밀접한 관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던 시대"(14) 속에서 "그리스도교적 가치가 와해되는 곳에서는 삶이 중심을 잃고 세상은 본질 없는 껍데기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17세기의 탁월한 종교적 인물"이다. 렘브란트에 대한 해석을 통해 니그는 "모든 작품을 전문가로서 감정"하고자 했으며 "지난 시대를 훌륭하게 대변하는 사람들 앞에서 마땅히 가져야 할 경외심"을 갖지 않았던 (야콥 부르크하르트로 대변되는)"19세기 부르주아 사회"를 비판한다. "19세기는 렘브란트가 예술로 말하려 했던 것들을 충분히 이해할 능력이 없었다"(11). 렘브란트의 가치가 살아난 것은 "충격적인 방식으로" 부르주아 문화가 완전히 무너진, 그리하여 "삶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새롭게"(10) 열린 20세기에 들어선 이후이다.
무수한 시들과 편지들을 남긴 미켈란젤로나 고흐와는 다르게 렘브란트는 "그레 대해 문서로 기록된 것은 거의 없"(17)는데 덕분에 니그의 신학적 해석(과 그 해석이 지향하는 바가)이 앞선 두 책들보다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가 보기에, 렘브란트는 "상류 사회에서 추방"되어 생의 후반을 비참하게 보냈지만 "외적으로 몰락" 했을 뿐 "영혼의 단련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39) "늙은 렘브란트는 영혼의 성숙과 정신의 완전한 정화 상태에 도달했고, 이는 그가 견뎌 내야 했던 모든 어려움을 상쇄해 주었다" (40) 이러한 렘브란트의 삶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일어난 과정으로 볼 수 있다(43).
"하느님이 이 예술가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신 것은 그로 항금 영원하신 분과의 관계에서 더 높이 올라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화가는 그 깊은 구덩이에서 겪은 경험으로 새로이 이 세상을 보게 되었다"(43)
"만년에 그는 불행을 겪으며 정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는 가장 낮은 곳에 가 닿은 사람만이 높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영원한 표징이다. 낮아짐과 높아짐, 이 둘은 인과관계를 맺고 있다"(44)
감동스러운 해석이지만 동시에, 주어진 자료를 압도하는 해석이다. 이쯤되면 렘브란트의 삶이나 작품보다 이를 해석하는 니그의 시선이 렘브란트의 삶과 작품을 향하는 내 시선을 가로막는다. 저 해석의 밑바탕에는 목적론과 인과율이 섞여 있는데 니그는 저런 식의 해석이 무수한 가능성 중 우연히 발생한 하나의 경우에 대한 해석일 뿐임을 간과한다. 렘브란트가 사회적으로 불행진 이후 작품활동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면 어떻겠는가? 그 삶은 유치한 삶, 혹은 타락한 삶인가? 그 삶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지 않았나? 그것이 실제로는 보다 뼈저린 종교적 각성을 통한 '침묵'의 실천이었다면? 니그가 저런 식으로 찬미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렘브란트가 그가 불행한 삶을 살기 이전의 작품들보다 종교적으로 고양된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는 니그가 주창한 "내적 인간"(인간은 그의 현실적인 모습이나 행동으로 평가받을 일이 아니라 그 영혼의 핵을 봐야한다는)의 말을 스스로 배반하는 해석이기도 하다(혹은, 그 사이에 몇가지 제한 조항을 숨겨두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셈이다). 저런 해석을 따른다면 결국 한 영혼의 핵심은 그의 행위가 아니더라도 작품(음악이든, 텍스트든, 미술작품이든)을 통해서 '드러나야'하고, 그 작품의 탁월성을 통해 그 영혼의 핵심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니그는 침묵해야할 부분에 대해 침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