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주커먼의 <신 없는 사회>와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읽는 사람들> 화이트헤드의 <진화하는 종교>를 번갈아가며 읽었다. '시론들'을 모아놓은 <책읽는 사람들>은 몇 가지 메모해둘 만한 문장들이 있고, 나머지 두 책들은 따로 노트해둘 필요가 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전통에 따르면, 호메로스는 불쌍한 맹인이면서도 미래를 꿰뚫어보는 현인이었다. 이런 이중적인 특성에서 우리는 그의 서사시를 다양한 관점에서 읽어갈 수 있다. '맹인 호메로스'라는 존재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삶의 상징으로 읽어내고, 삶을 전투이며 여행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해석은 호메로스가 두 서사시의 확실한 저자이고, 신비에 싸인 시의 아버지임을 뜻하며, 나아가 서사시에 권위를 더해준다. 우리가 호메로스를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의 실제 저자라고 생각하든 아니면 두 서사시가 웅단한 저자를 나중에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하든 간에 이런 순환과정은 우리와 시적 행위간의 관계를 규정하고, 우리와 아득한 과거의 박학하고 창조적인 천재간의 관계까지 규정한다." (33-4)
"독자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시력을 잃어야 한다. 세상의 사물을 보지 못하고 세상 자체를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행복과 공포를 보지 말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를 에워싼 겉으로만 번쩍이는 것에 유혹되지 말라는 뜻이다. 자기중심적인 관점, 즉 우리가 세상 안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보이지 않아 우리를 세상의 중심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관점, 또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내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관점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탐욕스러운 눈을 가질 때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 기준에 맞추어지기를 바란다. 심지어 우리에게 전달되는 이야기까지 우리 기준에 맞추기를 바란다.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이야기, 우리를 내면으로 끌어가 고민하게 만드는 치밀한 이야기여서는 안 된다. 살갗 한 꺼풀 깊이로 피상적이어서 쉽게 읽히고, 조금의 파문도 일으키지 않고 금세 이해할 수 있는 모험담이면 충분하다. ...인간의 관점에서 신비로운 세계를 창조해낸 호메로스는 감각 때문에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해서, 현실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 또 (요즘의 표현을 빌면) 정형화된 사고방식에 프로그램되지 않기 위해서 맹인이 되어야 했다. 책의 이면에 존재하는 독자인 우리에게도 그런 능력이 필요하다. 영국 시인 루퍼트 브룩이 정확히 표현했듯이, '우리 눈이 우리를 눈멀게 하지'않도록 해야 한다."(38-40, 부분수정)
"...문학에서 믿음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문학적 믿음은 상상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회의와, 실체적인 현실 세계를 거부하는 광기 사이에 존재한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단테, 조토의 유명한 초상화를 닮은듯한 인물,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적인 고통와 즐거움을 겪었던 단테는 또 다른 단테, 즉 천국에서 '나'라고 말하며 지옥에서 뜨거운 불 가까이에서 걸었던 탓에 수염이 그슬렸다는 단테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우리가 대서사시를 통해 알게 된 단테에게 <신곡>은 픽션이 아니다. 진실한 말로만 쓰인 기록이며,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한 기록이다. 한편 <신곡>은 여행일지, 낯선 땅에서 쓰인 여행 기록이다. 그곳의 지리적 특징들, 그곳 사람들과 나눈 대화, 그곳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의견, 개인적인 불운 등을 상사하게 기록한, 훗날 비슷한 여행을 독자들을 위한 안내서다." (98)
"이상적인 독자는 무한한 망각의 능력이 있어,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가 같은 사람이고, 쥘리엥 소렐이 참수당했으며, 로저 애크로이드를 살인한 범인의 이름이 아무개라는 사실을 기억에서 지워낼 수 있다. ...이상적인 독자는 작가가 직관으로만 알아낸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이상적인 독자는 몇 권의 책을 소장했는지 헤아리지 않는다. ....이상적인 독자는 모든 문학 작품을 익명의 저자가 쓴 것처럼 읽는다. ... 이상적인 독자는 책을 표지로 판단한다. ...이상적인 독자는 어떤 책이든 끝까지 읽을 때까지 자신이 이상적인 독자인 것을 모른다. ...이상적인 독자는 밟아 다져진 길을 걷는다. "훌륭한 독자, 뛰어난 독자,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독자는 다시 읽는 사람이다." ... 이상적인 독자는 모든 책이 어느 정도까지는 자서전이라 생각한다. ...때때로 작가는 이상적인 독자를 만나기 위해 수세기를 기다려야 한다. 블레이크가 노스럽 프라이를 만나는 데는 150년이 걸렸다. ...이상적인 독자는 만약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독자는 책에서 쓰인 규칙과 법칙을 무자비하게 강요하는 사람이다. ... 이상적인 독자는 책을 끝까지 읽기를 바라는 동시에, 그 책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작가는 결코 자신의 책에 대한 이상적인 독자가 될 수 없다"('이상적인 독자란?' 글 중 몇몇 문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