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슬라브 불프 <삼위일체와 교회>중 한국판에 새로이 추가된 8장 '통일성의 삼위일체적 본성에 근거한 수위권'을 읽었다. 기존 내용을 보완하는 하나의 챕터라기보다는 책의 내용과 맥락을 같이하는 독립된 논문이라 할 수 있는데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담고있다. 그가 보기에 수위권에 대한 질문은 "교회의 정치-교회적 군주정 대 교회적 과두정 혹은 교회적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교회의 통일성의 본질에 대한 질문"(471)이다. 그가 보기에 가톨릭의 교황 수위권 주장이 타종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수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교회의 통일성의 본성"에 대한 가톨릭적 해석의 필연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몇몇 냉소적 신학자들이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직제의 개념은, 교회의 통일성에 대한 이미 주어진 개념에서부터 통일성의 직임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472)
형식적인 차원에서 "단일한 신앙과 사랑에 의해서 표현되는 신자들의 통일성이 "하나의 분리도지 않은"감독직을 요구"(475)에 맞추어, 실질적인 차원에서는 "영원한 목자는 사도들을 세상에 보냈고 이들이 하나되고 분리되지 않도록 복된 베드로와 그의 계승자들을 머리에 두셨"기에 가톨릭은 교황의 수위권을 옹호한다. 이러한 식으로 "한 분 하나님"에 상응하는 "신자들의 하나됨", 이를 매개하는 "하나의 교황"의 그림이 그려진다.
불프가 보기에 가톨릭의 그림은 "통일성의 원리(하나)"는 살리고 있는 반면 통일성의 본질은 살리지 못하고 있다. "통일성의 본질은 삼위일체적"(476)이며, 이 삼위일체의 핵심은 "신적 인격들의 동등성"(482), 그 동등성이 내포하는 "사랑의 '자기를 내줌'의 실천'"에 있다. 현대 가톨릭의 교회론 및 교황의 수위권 확립을 기초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던(그리고 사실상 그 최대수혜자인)라칭어는 교회적 통일성의 본성이 삼위일체적임을 분명히 인식했으나 다시금 "하나의 책임 있는 인격"이라는 원리가 삼위일체적 신앙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하나'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돌아갔다. 이는 "통일성의 (삼위일체적)본질과 그 제안된 통일성 사이의 균열"을 보여줄 뿐이며, 결과적으로 통일성의 삼위일체적 본질 역시 신적 인격들간의 동등성과 이와 결부된 자기내어주는 사랑의 실천에 상응하는 교회론이 아닌 삼위일체에 대한 위계적 이해에 상응하는 교회론을 구성할 수 밖에 없다.
"교회적 통일성의 가시적 원리는 바로 그 통일성의 본성"에 상응해야 하며, 교회적 통일성은 "하나"의 탁월함이 아닌, 다수가 행하는 자기 내줌의 사랑에 근거해야한다. "삼위일체에 대한 유비 속에서, 모든 인격은 그 자체로 성령의 담지자로서 통일성의 구성적 작업에 참여한다"(487) 이에 상응해 "교회 지도권의 최고의 단계는 바로 공동체적 방식 가운데 신학적으로 이해되고 제도적으로 규정되고 실천적으로 행사되어야한다"(488) 이 형식적 조건이 "삼위일체적 삶의 핵심에 존재하는 자기 내줌이라는 일관된 실천을 동반"(490)해야한다는 것은 불프에게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수위권의 공동체의 공동체적 본성과 또한 자기 내줌의 실천으로서 수위권의 실행은, 통일성의 가시적 섬김이 삼위일체적 통일성의 본성에 상응도록...결합되어야 한다. 수위권이 한 인격의 단일성에 위치하고 전해진 형식적 권력에 힘입어 실행되는 한, 수위권은 삼위일체에 상응하는 데 실패하고, 결국에는 통일성을 위해서 섬기기보다는, 비통일성을 만들어낼 뿐이다"(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