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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까치 / 2001년 10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라디오'는 가볍다. 내 김영하의 '포스트 잇'을 읽을때 '이 보다 가벼운 수필을 쓸 수 있을까'라고 내심 궁금했는데 '무라카미 라디오'의 가벼움은 '포스트 잇'을 가뿐히 넘어선다. 물론 '가볍다'는 것이 단순한 '내용의 가벼움'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글 하나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속도, 그것을 되김질 하는데 필요한 노력의 정도..만으로 이 책의 '가벼움'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애써 비교하긴 했지만 '무라카미 라디오'의 가벼움과 '포스트잇'의 가벼움은 그 뉘상스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김영하의 에세이는 가볍지만 그 가벼움이 나오기 까지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어 '나는 개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 마누라도 개띠다.'라 와 같은 문장은 가볍지만 그 문장을 짓기위해, 그리고 애써 '가벼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보인다. 이래저래 김영하는 영민한 작가인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의 수필은 그렇지 않다. 그의 문장에는 한 문장문장마다 고민해서 쓴 흔적이 안보인다. 하나하나가 허술하며,심드렁하기 그지 없다. 이를테면 A라는 소재로 시작했다가 B의 내용을 꺼내더니 C로 끝내버리는 식의 글이 이 책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허술함과 심드렁함이야말로 하루키식 수필, 좁혀서 말하자면 '무라카미 라디오'의 매력이다. 할일없이 방에서 이거저거 하다가 심드렁하게 말하는 듯한 그의 글은 보는이에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루키는 정말 경지에 올라있는 '백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