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냄새
이충걸 지음 / 시공사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이 동인 문학상의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동인 문학상에 얽힌 정치적인 이야기들과 조선일보의 관계로 인해서 그 상에 대한 호오는 '오'에 가깝지만(아니, 거의 확실히 '오'지만), 그렇다고 그 상을 받거나, 후보작에 오른 작품들의 질을 '동인 문학상'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깎아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쨌든 간에 그 작품들은 당대성을 반영하며,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인정받은 셈이니까. 딱히 소설로 구분되기 힘든(개인적으로는 엽편소설집정도가 적당할 듯 싶은데), 이 '슬픔의 냄새'가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다섯손가락안에 꼽히는 문학상의 후보로 올랐다는 것은 한국문단이 소설을 보는 관점, 혹은 소설의 장르성에 대한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이상문학상에서 복거일이 SF단편으로 후보로 오른 뒤 두번째로 그러한 징후를 내비치니 경직된 소설판도 점차 좁아지는 위치를 깨닫고 새로운 탄력을 받기를 원함을 드러내는 것이다.(물론 이 소설집, 혹은 에세이집이 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에는 회의적이다.)

...'슬픔의 냄새'는 이미지와 느낌의 이질거림으로 가득차다. '이충걸식 문장'으로 불리는 이충걸의 낯선 비유사용은 그의 생각과 겹쳐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됨으로써 파열음을 낸다. 그 파열음은 때때로 꽉 막힌듯한 느낌이 들지만, 대체적으로 매혹적이다. 고종석의 단아하고 적확한 문장과 대비되어, 이충걸의 문장은 이물질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이물질들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정서 '고독'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물론 그런 이물질스런 표현은 하루키 이후의 소설, 혹은 90년대 이후로 보여진 한국의 젊은 소설들에서도 이미 보여진 수법이 아니냐 반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충걸의 이질적인 표현은 하루키의 영향권 아래 있던 90년대의 이질적 표현과는 그 결이 틀리다. 아카데미컬하게 판단하자면 그의 이질적 표현은 90년대 쓰는 자의 '의식'에 앞서는 이질적 표현을 넘어서 자신의 '의식'속에 그 표현을 삽입한다. 이질적 표현의 진화를 이룬 것이다. 물론 그 '의식'이 90년대,혹은 그 이전세대의 것보다 깊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해서는 할 말 없다만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