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
가오싱젠 지음, 오수경 옮김 / 연극과인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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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오싱젠은 중국 출생으로 프랑스에 망명한 (주로 희곡을 쓰는)작가이고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점가에서 가오싱젠의 책은 민음사의『버스 정류장』과 예술담론 1권을 제외한 다른 작품은 모두 품절, 절판됐다.

(+)『피안』은 리뷰를 쓸 당시는 품절이었으나 지금은(2023년) 구입 가능하다.


피안』은 표제작 '피안'을 비롯해 '저승', '생사계', '팔월의 눈' 네 편이 수록되었다. 이 네 편 중 여기서 얘기하려는 건 두 번째 희곡「저승」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장주'는 장자)

 

천하를 거닐며 철학을 논하던 장주는 어느 날 문득 고향에 독수공방 홀로 있는 어리고 아름다운 아내의 정조를 의심한다. 그리하여 못된 장난을 계획하는데 내용인즉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며 상여를 앞세워 아내에게 간다.

 

장주의 아내

이 훤한 대낮 교만한 태양 아래, 웬 날벼락인가.
눈앞이 아찔하여라. 어두운 하늘, 캄캄한 땅.
멀쩡하던 서방님 졸지에 저 세상 사람 되다니.
낮밤으로 남편 기다리던 아내, 정말 팔자도 사납구나! (p.80)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하던 장주의 아내는 초나라 귀공자(로 변장한 장주)가 등장해 유혹하자 결국 귀공자의 유혹에 넘어가는데, 그 순간 귀공자가 돌연 아픈 척을 한다. 놀라서 걱정하는 아내에게 귀공자는 자신이 불치병을 앓고 있으며 이 병이 나으려면 사람의 뇌수를 먹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아내는 부엌으로 가서 도끼를 챙겨 장주의 관이 있는 방으로 간다. 그리고 도끼로 관을 내리찍기 직전 관 뚜껑이 열리고 (그 사이 변장을 벗고 관에 숨었던)장주가 나타난다.

 

장주

난 장주요. 귀신이 아니라, 바람둥이 아내의 남편이다.
나쁜 계집, 사람으로 수치도 모르는가?
여인아, 넌 왜 우느냐? 네 남편이 진짜 죽은 것도 아닌데.
됐소, 됐소, 한번 놀린 것뿐이오. 진짜가 아니라니까? (pp.92-93)

 

결국 정황을 모두 알게 된 장주의 아내는 도끼로 자살한다. 그리고 저승에 간 아내는 판관과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데 모두들 아내의 죄만 논할 뿐 아내의 억울한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장주의 아내

어떻게 감히 남편을 무고하겠습니까? 단지 억울함을 품은 귀신이 되기는 싫습니다.
남편 된 사람은 자기 아내를 희롱해서는 안 되지요.
아내 된 사람도 남자를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되지요. 여잔 절대 사랑에 빠져선 안 되지요.
여자는 사랑에 빠졌다해도 절대 자기 생명을 가벼이 버려선 안 되지요-  (p.113)

 

심판을 받은 장주의 아내는 결국 혀가 잘리고 연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형을 받는다.

저승사자에게 끌려 음양의 경계를 건넌 장주의 아내는 인간세상을 바라보며 그러지 말 걸, 이제 꽃도 달도 못 보게 되었구나... 후회하며 혼잣말을 읊조리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M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M이 불쑥 "아내가 뭘 잘못했는데?" 묻는다. 판관과 염라대왕에 의하면 '남편을 배신한 부도덕'이 죄라고 그러더군- 이라고 설명은 했는데 실은 속으로 뜨끔했다.
나 역시 내심 장주의 유혹에 넘어간 장주의 아내를 어리석다고 탓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아내를 잘 아는 장주가 아내가 정신적으로 약해진 틈을 비집고 들어가 유혹한 장난이야말로 정말 악하고 비열한 짓이었던 거다. 실은 장주의 아내는 잘못하지 않았고 나쁘지도 않다. 그녀는 그저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많이 지치고 약해져 있었던 불쌍한 여자였을 뿐.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장주로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장자의 지락편에 등장하는 일화와 겹치는데 일화의 내용인즉슨, 장주가 아내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절친 혜시가 조문을 갔는데 슬퍼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장주가 웬걸 술 마시고 노래부르고 있는 거다. 조강지처가 죽었는데 즐거워하다니 이게 될 말인가?, 추궁하는 혜시에게 장주 왈, 처음엔 자신도 무척 애통해 했으나 문득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모두 자연의 이치이고 자연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닫고 나니 슬픔이 덧없더라- 한다.

장주가 그렇게 깨달았다 하니 그런 것이겠지.

 

장주

(사람들에게, 아내의 시체를 가리키며 조그만 소리로) 한 마리 나비였어. 
(자기를 가리키며) 한 마리 전갈이었지.
(사람들을 향해 히히 웃으며)
사랑도 좋고 욕망도 좋아. 사람들은 다 연극을 하는 거야. (p.95)

 

아내의 시체를 보면서 읊는 장주를 보니 서머셋 몸의『인생의 베일(The Painted Veil)』에서 '죽은 건 개였어'라고 읊조리며 죽어가던 월터가 떠오른다. 남자들이란...

 

『피안』은 이야기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가오싱젠의 희곡 형식이 낯선 이에겐 가독성이 썩 좋지는 않은 책이다. 특히 메타희곡의 구조를 하고 있는 『피안 』은 제목에 어울리게 분열된 자아가 끊임없이 내뱉는 형이상학적인 독백을 쫓아가는 과정이 감각적인 방면으로는 빈말로도 '재미'라는 표현을 붙이기가 어렵다. 신기한 건 그럼에도 읽은 직후 묘하게 되씹는 맛이 있다는 거다. 희곡이라는 특성을 감안, 등장인물들의 무의식과 내면이 뱉는 독백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가오싱젠의『피안』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래된 옛날이요, 아주 해묵은 얘기고요. 
바로 지극한 현인 장자가 그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에게 황당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한번 말을 꺼내면 다시는 거둬들일 수 없는 농을 걸었다가, 이 믿을 수도 없고, 뜬눈을 감을 수도 없고 혀도 오그라붙고, 차마 눈뜨고 볼 수도 없는, 귀신도 놀라 자빠졌던 연극이 벌어진 거요. 지금 사람들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예요.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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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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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지 않는 세대, 책임지지 않는 세대.
세월호는 이 모든 무책임한 세대의 증언이고 민낯이다.
이 가슴 아픈 역사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한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 옳다.
우리는 저 차가운 바다를 외면하는 것으로 묵시적 공범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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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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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사라진 부의 편중, 세습으로 계층이 계급이 되는 사회를 다시 한번 자각하게 하는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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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하와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꿈꾸는 하와이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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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그녀의 책 목록을 보니 아마 그녀의 책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그 얘기는 즉슨 국내에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얘기일 테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나는 그녀의 책을 이제껏 읽은 것이 한 권도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름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설명에 따르면 '바나나'는 성별 불명, 국적 불명의 필명이라는 의미라지만 어쨌든 나는 그녀의 필명에서 지나치게 섬세하고, 페미닌한 어떤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분명한 건 기계공학 쪽 전문서적만 아니면 손에 잡히는대로 읽는 잡식성인 내 책장에 그녀의 책이 한 권도 없으며 이번 에세이가 내가 읽은 그녀의 첫 책이라는 사실이다.

 

"하와이는 정말 천국과 비슷하더군요. 그 바람과 햇빛의 느낌이. 그래서 다들 하와이에 가면 천국 같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가 아닐까요. 천국이 하와이 같을 겁니다. 사람들은 천국을 기억하고 있는 거죠." -pp.144-145

 

하와이에 대한 내 개인적인 감상은 '몹시 지루하고 따분하고 바다 밖에 안 보이는 섬'이다. 이 얘기는 1년에 한번 LA에 갈 때면 내게 한결같이 '하와이 비추'를 외치는 그곳 한인 지인들의 하와이에 대한 감상인데 어쨌든 그리하여 내 여행지는 내내 대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지루하고 따분하다'던 하와이도 누군가의 눈과 가슴에 담기면 지상의 천국이 되는 모양이다. 그나마 지인들에게 들은 것과 일치하는 부분도 있다. 바로 '조용하다'는 것. 다만 지인들에겐 지루한 시간이 저자에겐 평화로운 일상이 되니, 그야말로 여행지도 궁합이라는 게 있는 모양.
활자를 보면 늘 신기하다. 기호의 집합에 지나지 않을 그것들은 너무나도 또렷하게 자신만의 어조를 가지고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요시모토 바나나 스타일이랄까, 이 얇은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낌 감상은 아, 이 작가의 어조는 이러하구나 라는 것. 본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귀엽고 조그만 목소리로' 들려주는 그녀의 일상과 (최소한 그녀가 고르는 데 참여했을)사진이 마치 그녀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3인칭 시점, 딱 그만큼의 거리를 내내 유지하며 읽던 그녀의 글 중에 딱 한 번 그 거리가 사라진 것은 대형 지진 발생으로 방사능이 공기 중에 유출되어 외출이 제한되었다는 부분에서였다. 가감없이 계산이 확실한 우리의 현실은 불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가까이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녀의 현실의 삶도 그녀의 어조만큼이나 소소한 평화로 이어지고 있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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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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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펼치고 첫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휴대폰을 켰다. 그리고 기계공학 쪽으로 심하게 지식이 부족한 나는 M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우리 집 말이야, 책 때문에 바닥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을까?" 무너질- 까지 얘기했을 때 냉큼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목차를 지나 '추천의 글'을 읽는데 구구절절 '그래그래, 맞아맞아' 죄다 북마크하고 싶은 문장들이 줄줄 쏟아진다. 뿐인가, 도대체 이 별 내용도 없는 글이 왜 이리 재미있는 거냐고.

의문은 추천사 마지막, '장정일'을 보고서야 풀렸다. 아, 장정일이었구나. 나는 그의 소설은 친구네 걸 빌려서 읽고 그의 독서일기 시리즈는 1부터 하나도 빼지 않고 사서 내 책장 가장 좋은 위치에 꽂아두었다. 새삼 깨닫는다. 나는 역시 독서가 장정일이 정말정말 좋다. 각설하고, 이 책 <장서의 괴로움>은 분명 '에세이'이지만 저자의 분류에 따르면 장서가에 해당하는 내겐 명백하게 '실용서'로 기능한다. 이는 아마 소문난 장서가 장정일도 다르지 않을 터다. 즉슨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를 누군가 대신하는 것 같은 생생한 기시감을 느끼며 읽었다.

 

책이 한 권도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안하고 공허한 일인가. 책이 한 권도 없는 환경에 처해 보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으리라. -p.107

 

나처럼 집 밖으로 나갈 때 무조건 책부터 챙기는 사람에겐 책이 한 권도 없는 환경에 처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딱 한 번 그런 환경에 처한 적이 있는데 몇 년 전에 밴쿠버에 갔을 때다. 어쩌다 책을 못 챙겼는데 비행기에서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안절부절 했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나를 구원한 건 도착지 호텔 객실 내에 비치되어 있는 Holly Bible이었다. 읽을 수 있다는데 성경이 대순가. 이때의 경험으로 <파이이야기>에서 파이가 구조된 후 호텔에서 성경 즉 '읽을거리'를 발견하고 보이지 않는 신에게 감사하며 이후 기부하게 됐다는 (성경을 전세계 호텔 객실에 비치하는 기부였나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내용에 나는 체험적으로 공감했다.

 

<장서의 괴로움>은 저자가 일본인이다 보니 전반적인 내용이 일본내 장서가들의 독서환경과 관련된 에피소드로 채워져있다. 물론 이런 부분이 독서에 전혀 방해되지 않을 뿐더러 매 에피소드마다 공감하고 재미있게 읽었을 수 있었던 건 '장서가'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언어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므로.

 

일본의 장서가들의 독서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목조주택인데, 일본의 보편적인 건축 양식인 목조주택은 장서가에겐 여러모로 위협적인 환경이다.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하면 책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바닥이 내려앉을 수 있는 위험과 지진으로 인해 언제든 책과 책장에 깔려죽을 수 있다는 위험의 가능성인데, 본문에도 등장하는 작고한 어느 평론가의 저서의 제목이 <책이 무너진다>인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저자가 사례로 든 '장서 수난'의 내용을 보면 태평양전쟁 중에 공습으로 집과 함께 장서가 타버린 일화도 예사였던 듯 하다. 불운이라면 불운일, 타버린 장서에 대한 책 주인의 안타까움은 남겨진 기록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야나기다 구니오 선생의 《노변총서》가 깨끗이 타서 재만 남았다. 그런데 활자 부분이 하얗게 떠올라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대로 갖고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손을 대기만 해도 바슬바슬 부서졌다. -p.113

 

책 전반을 통해 등장하는 일본의 헌책방 시스템은 부럽기도 하고 인상적인 부분이다. 헌책방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진 최근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헌책방이 제법 잘 유지될 뿐 아니라 가격이나 수요공급 전반에 걸쳐 제법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느낌이다.

 

이 외에도 내용 중에 등장하는 '장서의 습격'이라는 호칭이 재미있다. 말하자면 '화재', '지진', '이사'가 이 습격 요인에 해당하는데, '지진'은 별개로 친다고 해도 나머지 두 개는 아마 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 하다.
이중 '이사'에 관해서, 무한증식하는 책을 보면서 나는 최근 들어 좀 다른 고민을 하고 있는데 3천 권까지는 책장을 늘리는 고민을 했으나 4천 권에 육박하니 이사를 하는 걸로 고민이 바꼈다. 우스운 건 '장서의 괴로움'을 벗고자 하는 해법에서 책을 줄이겠다거나 그만 사겠다는 방법은 애초에 제외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을 그만 사다니, 책을 팔다니 아직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언젠가 M에게 "내가 책이 많은 편인가?" 물었더니 "응" 한다. 어쩌면 내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4천 권에 육박하는 책을 보면서도 양적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장서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책을 정리해서 줄이라고 충고한다. 일본의 저명한 누구는 500권이면 충분하다고 했다고도 하는데, 물론 의미 없는 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의미 있는 1권을 100번 읽는 것이 훨씬 낫다. 알지만 세상에 의미 있는 책만 골라도 얼마나 많은데 '고작' 500권(숫자가 아니라 제한한다는 게 중요하다)으로 만족하라니 그게 과연 가능할까 싶다.

 

"수집가란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야. 99는 0과 같지. 100을 모으기 위해 인생의 전부를 거는 것이지." -p.162

 

책 말미에 가면 아니나 다를까 '전자서적' 얘기가 등장한다. 다만 장서가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책의 본질(내용)만큼이나 책의 물성을 아끼는 이들에게 전자책은 종이책의 보완재이지 대체재가 될 수 없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일까. 결국 장서가에게 남은 선택이란 책 사는 걸 멈추던가, 책을 팔아서 책장을 비우는 수 밖에 없는 듯. 가장 이상적인 건 어디서 눈먼 돈이 뚝 떨어져서 다치바나처럼 고양이빌딩을 세우는 것이겠지만.

 

* 저자가 재미있게 쓴 걸까, 역자가 재미있게 옮길 걸까 궁금할 정도로 책은 재미있고 가독성도 좋다. 한가지 흠이라면 문맥상 '꽂다'의 오타인 '꼽다'가 너무 많이 등장한다는 것.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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